성도 : 란저우(蘭州)
인구 : 약 2,603만 명
면적 : 36만 6,500㎢
행정구역 : 란저우, 톈수이(天水), 바이인(白銀), 찐창(金昌), 쟈위관(嘉峪關) 등의 5개의 지방급시(地級市)와 린샤후이족자치주(臨夏回族自治州), 깐난짱족자치주(甘南藏族自治州) 등 2개의 자치주, 칭양(慶陽), 핑량(平凉), 롱난(陇南),띵시(定西), 우웨이(武威), 짱예(?掖), 지우췐(酒泉) 등 7개 지역, 8개 현급시(縣級市), 60개 현(縣), 7개의 민족자치현(民族自治縣이) 있다.
위치 : 황허강(黃河) 상류와 닝샤후이족자치구(寧夏回族自治區), 산시성(陝西省), 쓰촨성(四川省), 칭하이성(靑海省), 신장위구르자치구(新疆维吾尔自治区), 네이멍구(內蒙古)와 접한다. 중국과 서방세계를 연결해주는 성으로, 예로부터 교통의 요충지이다.
기후 : 건조하고 대륙성 기온이 뚜렷하다. 일조량이 많고 일교차가 크며 수분과 열량이 동남에서 서북으로 갈수록 감소되는 특징이 있다. 또 기후의 지역차이가 커 아열대, 온대, 등의 기후 유형도 있다. 계절특징으로 겨울에는 눈과 바람이 적고 한랭 기간이 길며, 봄에는 기온이 급속히 올라가 덥고, 여름은 기온이 높고 강우량이 높으며 가을에는 기온이 급속히 내려가고 서리가 일찍 온다. 평균기온은 4-14℃ 이다. 기온의 연교차는 약 30℃, 연강수량은 400㎜ 미만이다.
역사 : 춘추전국시대의 여러 이민족을 비롯해 허시(河西)지방의 흉노 등의 민족이 집거하였다. 진대에 웨이허(渭河) 상류와 징허(涇河)유역 등은 농업이 발전하였다. 한 제국의 절정기인 무제(武帝)시대 이후 동서교역이 활발하게 전개되면서 이 지역은 실크로드의 간선지대로 부각되었다. 삼국의 대립이후 전개된 분열시대에는 관(官)무역이 쇠퇴하는 대신 변경무역이 왕성하게 전개되었다.
수(隋)나라에 들어 분열을 마감하고 허시지역을 중심으로 전개되던 변경무역이 수도인 장안과 낙양으로 연장되었다. 이 결과 하시의 돈황은 동서교통의 문호로서 흥성하였다. 안사의 난 이후 국세의 쇠락과 더불어 티벳의 잦은 침입과 함께 천산 이북으로부터 위구르가 진출하였다. 따라서 이 지역은 당의 휘하에서 멀어지게 되었고 11-13세기에는 시허국(西河國)의 영역으로 편입되었다.
당나라 말기부터 시작된 주변민족국가(토번, 티벳, 서하, 요, 금 등)의 발흥으로 중국왕조의 서역진출이 퇴조했고 이후 명대에 해상교통의 발달로 인해 하시지역을 중심으로 전개되던 실크로드가 퇴색되면서 깐수성의 경제도 쇠퇴하였다.
청대에 들어 깐수성으로 독립되고 란저우가 성도가 되었다. 광서(光緖) 10년(1884)에는 깐수성으로부터 신장성을 분리하였다. 1928년에 다시 칭하이성을 분리 독립하였다. 1954년에 닝샤성을 다시 깐수성에 편입시켰다. 1958년 재차 두 성을 분리시켜 닝샤회족자치구가 성립되었다.
지리 : 산지 56%, 구릉과 평원지대가 22%를 차지한다. 황허 상류부를 차지하는 네이멍구고원, 황투(黃土)고원, 칭짱(靑藏)고원의 접촉지대에 해당되며, 가장 낮은 룽시분지도 해발고도 1,000m 가 넘는다. 룽시분지 남쪽은 친링(秦嶺)산맥, 동쪽은 리우판(六盤)산맥, 서쪽은 치롄(祁?), 시칭(西?)산맥 등의 산지이고, 북쪽의 우차오링(烏齧嶺)을 넘으면 북서쪽으로 너비 50-70㎞, 길이 1,000㎞에 달하는 좁고 긴 허시후이랑((河西回廊)이 뻗어 있다.
산업과 경제 : 농경지는 거의 룽시분지에 집중되어 밀, 조, 보리, 수수 등을 재배하며 그 중 밀의 경작면적이 총경지의 40%를 차지한다. 경제작물로는 둔황의 목화, 란저우의 담대 및 마류(麻類) 생산이 많고 란저우 일대의 수박이 유명하다.
목축이 크게 발달하여 양을 비롯한 각종 가축이 사육되며, 특히 북부의 낙타털은 중국 제1의 품질로 손꼽힌다. 그 밖에 산간지대에는 산짐승이 많아 사향·녹용 등의 수출이 활발하다. 1995년도 농림목축업의 총생산액은 289억원(元, 전국23위, 내륙지역 13위)에 달했다. 주식량인 쌀의 생산량이 5만톤에 불과해 부족분은 다른 지역에서 조달한다.
지하자원은 위먼의 석유, 장예·란저우의 석탄, 바이인의 구리 외에 야금·구리·철 등의 매장량이 풍부하다. 공업은 톈수이·바이인·란저우·위먼 등 신흥공업도시에서 철강·기계·방직·석유화학·원자력공업이 발달하였다. 1995년도 공업 총생산액은 825억원(元)으로 전년대비 25.6% 증가했으나, 전국 30개 성과 자치구 가운데 23위로 이는 청뚜(成都), 우한(武漢) 등의 내륙 대도시보다 적은 수준이다. 공업구조는 경공업 대 중공업의 비율이 19:81로 광물자원 채굴과 가공업 중심의 중공업이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교통 : 란저우는 교통의 요충지로, 베이징(北京)·바오터우(包頭)·시닝(西寧)·우루무치(烏魯木齊)·시안(西安) 등지와 철도로 연결된다. 단둥(丹東)에서 라싸까지, 란저우에서 징훙(景洪)까지 통하는 13개 도로와 바오지(寶鷄)·인촨(銀川) 등의 고속도로가 있다. 란저우에서 바오터우에 이르는 황허강 상류의 수운(水運)에는 물의 흐름이 급하여 가죽으로 만든 배를 이용하기도 한다.
항공편으로는 란저우공항을 중심으로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등 전국 주요 대도시와 성내의 도시를 연결하는 20여 개의 노선이 개설되어 있다.
종교 : 깐수성에는 이슬람교, 불교, 천주교, 기독교, 도교 5개 종교가 있는데 그 중에 이슬람교와 라마불교 신자수가 가장 많다. 이슬람교를 믿는 소수민족은 후이족, 똥샹족, 싸라족, 바오안족, 하싸커족이 있으며, 라마불교를 믿는 소수민족은 짱족, 멍구족, 투족, 위꾸족 등이 있다. 천주교와 기독교 신자의 수는 많지 않다.
관문도시 - 란저우(兰州)
면적 : 1만 3,806㎢
인구 : 314만 명
행정구역 : 3개의 현, 5개의 구, 90개의 향진으로 구성된다. 란저우는 서북지방 최대의 공업도시이며 교통의 요지이다. 시내를 관통하는 황허를 끼고 동서로 길게 형성되어 있다. 과거 실크로드의 길목이었던 란저우는 칭하이성이나 티벳(西藏自治區)으로 들어가는 입구이기도 하다. 수(隋)나라 이전에는 금성(金城)이라 불리다가 수나라 때 란저우로 개칭하였다.
기후 : 란저우는 해발 1,524m에 위치해 있는데 최저 기온은 1월이 영하 7℃이고 최고 기온은 7월이 23℃이다. 그러나 강수량이 적고 공기가 건조하여 사막기후와 유사하다. 또 일교차가 15℃이상 이다. 란저우의 여름과 겨울의 절대기온은 서울과 비슷하나, 습기가 적어 체감온도는 여름엔 덜 덥고 겨울에도 덜 춥다.
교통 : 란저우에는 톈란(天蘭: 톈진→란저우), 란신(蘭新: 란저우→신장), 바오란(包蘭:바오터우→란저우), 란칭(蘭靑: 란저우→칭하이)의 철도노선이 산시(陕西)와 닝샤, 칭하이, 신장을 연결한다. 이외에도 쓰촨, 칭하이와 연결된 도로가 교통의 요지로 역할을 하고 있다. 시내의 간선은 200개 노선, 교량은 112개나 있어 “다교지성(多橋之城)이라고도 불린다.
역사 : 란저우는 진나라 9개 주(州)가운데 속옹(屬雍), 양이주(梁二州)에 속하였다. 춘추시대에는 진과 서융에 속했고, 원나라 때에 이르러 감숙행중서(甘肅行中書)란 이름으로 알려졌다. 명나라 때 샨시성에 속했다가 청나라 때 이 지역을 깐수성으로 분리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서기 59년 한나라 때 이곳에 서역도호부를 설치하였고, 서기 121년에는 흉노족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인근에 옥문관(玉門關)과 양관(陽關)을 세웠다. 2200년 전에 세워진 란저우에서 금이 발견됨에 따라 금도(金都)라고도 불렸다. 특히 란저우는 서역과 중국을 잇는 통로로서의 역할을 해왔다.
교육· 문화 : 란저우는 과학기술 도시로 유명하다. 654개소의 과학연구 및 개발기구가 있고, 과학분야 연구인원만 10여 만 명이 넘는다. 한편 14개의 고등교육기관과 88개의 전문대학 및 학원이 있으며 1,558개의 초·중학교가 있다. 실크로드의 중심지였던 란저우에 본격적인 실크로드의 문화유산은 많지 않지만 많은 민족들이 섞여 있어, 란저우 시내로 들어서면 이국적인 인상의 소수민족들을 많이 볼 수 있으며, 그 민족들의 다양한 문화를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산업과 경제 : 란저우는 풍부한 석유, 석탄, 수력발전 등 에너지 자원의 혜택을 받아 서북지역 최대의 공업도시로 발전하고 있다. 석유, 화학공업, 기계, 야금을 위주로한 중공업이 발달하였다. 무엇보다도 인근에 풍부한 석탄, 전기, 건축자재 등을 이용한 공업이 발달하였다. 합성고무, 알루미늄, 모방직 등의 제품은 전국에서 유명하다. 또 란저우 주변엔 강물이 풍부하여 유가협(劉家峽), 팔반협(八盤峽), 염과협(鹽鍋峽) 등 세 곳의 수력발전소가 건설되었다. 란저우 시내에는 330여 개의 각종 시장이 들어서 있다.
종교· 기독교 상황 : 이슬람이 강력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란저우에는 후이족, 바오안족, 뚱샹족 등 이슬람을 믿는 민족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란저우 시외를 합쳐 160여 개 정도의 이슬람 사원이 있고, 이슬람 신학교도 3곳이 있다. 터기 등지에서 온 모슬렘 선교사들이 깐수성은 지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깐수성은 이슬람 외에 라마불교도 매우 성행하는 지역이다.
기독교 현황을 보면, 란저우 전체의 기독교인은 0.3% 정도이고, 깐수성 전체로는 0.001%밖에 되지 않는다. 허드슨 테일러가 주춧돌을 세웠다는 란저우 시내의 한 삼자교회는 신도수가 800여 명 정도이다. 목회자 및 지도자 양육을 위한 신학과 경건서적, 훈련교재 등의 공급과 일꾼이 절실한 지역이다.
대상종족 - 뚱샹족(东乡族)
인구 : 48만 명
위치 : 뚱샹족의 대부분은 깐수성 남서부의 길고 산재된 협곡에 살고 있다. 이들이 사는 지역은 고립되었고, 비록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여 있지만 불모지인 땅이다. 대략 5만5천 명의 뚱샹족 또한 신장의 일리지구와 칭하이성과 닝샤후이족자치구의 몇몇 곳에 살고 있다. 뚱샹족은 주로 깐수성 린샤회족자치구 경내와 타오허(逃河) 서쪽과 따샤허(大夏河) 동쪽, 황허 남쪽의 산악지대에 살고 있는데 그 인구는 27만 9천여 명이다. 그 중에서 50% 이상은 뚱샹족자치현에 모여 살고 그 나머지는 허쩡(和政), 띵시(定西), 캉러(康乐), 린샤(临夏), 란저우 등지에 흩어져 살고 있다.
언어 : 뚱샹족은 몽골어를 사용한다. 뚱샹족의 어휘는 상당량이 현대 몽골어와 비슷하고 어떤 부분은 현재 내몽골의 언어와 동일하다. 또 어떤 부분은 13-4세기의 중앙 몽골리안어와 비슷하다.
역사 : 13세기 중국은 몽골의 지배를 받았다. 칭기스칸이 그가 차지한 땅을 지배하기 위해 그의 군대와 함께 중국으로 갔었다. 이 군사들의 그 지역의 여인들과 혼인관계를 맺었고 뚱샹이라 불리는 명백한 민족으로 발전했다. 뚱샹족은 13세기 칭기스칸이 서쪽으로 정벌해 나올 때 깐수성 린샤현 뚱샹일대에 들어온 몽고사람들을 위주로 하고 그 주변에서 함께 살던 한족, 후이족, 짱족 등이 서로 융합되어 이루어졌다. 뚱샹족은 하주의 뚱샹지역에 살았기에 그 지명을 따서 지은 명칭이다.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이전에는 단일한 소수민족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똥샹후이족 또는 몽고후이후이(蒙古回回)족으로 알려졌다가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이후 뚱샹족으로 부르게 되었다. 대다수 사람들은 한어를 알기에 한어로 통용된다. 그리고 종교적 관계로 많은 사람들이 아랍어도 사용한다. 뚱샹족은 농업을 위주로 하고 목축업도 겸하여 운영한다. 그들은 중화인민공화국 성립시기 이전에까지 봉건적인 지주경제단계에 처해있었다.
생활관습 : 뚱샹족은 농업위주의 경제생활을 하며 주요 농산물로는 밀, 쌀보리, 옥수수, 감자 등이고 감초 등 약재와 양, 말, 소 등을 사양한다. 일부일처제이며 가족구성의 특징으로 3, 4대가 한집안에 거주한다. 자녀가 7, 8세가 되면 정혼을 하고 15, 16세에 결혼식을 올린다.
뚱샹족의 금기는 이슬람교의 계율에 따라 자연사한 동물, 피, 돼지, 말, 노새 등을 먹지 않는다. 사람이 먹는 동물을 도살할 경우에는 이맘을 청해서 코란경을 읽은 후에야 도살할 수 있다. 비이슬람교도가 만든 주방기구를 사용하지 않고, 부녀가 음식을 만들 때에 먼저 음식 맛을 보아서는 안된다. 비이슬람교도와의 혼인을 금지하고, 이슬람교 내부에서도 서로 다른 교파간의 혼인을 금한다. 장례는 이슬람교리에 의거하여 토장을 한다.
주요명절은 이슬람교를 믿는 다른 민족들처럼 10월 10일 카이짜이제(開齊節)와 카이짜이제가 지난 70일 후 후이력(回曆)으로 12월 10일의 꾸얼빵제(古爾邦節), 셩지제(聖紀節) 등이 있다.
종교 : 1949년 공산당이 중국을 장악했을 때 매 30집마다 하나씩의 모스크가 있었고 9가정마다 한사람씩 무슬림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있었다. 60-70%의 뚱샹족이 무슬림의 성자의 무덤에 예배하기를 강요하는 옛 교파에 속해 있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근본주의자와 혁신주의자 그룹인 새 교파에 속한 사람들이다. 지난 세기에는 이 두 교파사이에 잔인한 싸움이 빈번하게 있었다. 뚱샹족들은 보편적으로 이슬람교를 신봉하는데 그 교파가 아주 많다.
뚱샹족들이 사는 지역의 이슬람교는 주로 노교(老敎)와 신교(新敎) 두 갈래로 나누어진다. 노교는 문환제도가 있는 교파이다. 뚱샹족자치현에는 홍문(洪門), 백장(白庄), 화사(華寺), 대공북(大拱北), 장문(張門), 목대제(穆大提), 사구(沙?), 풍문(?門), 해문(海門) 등 9개의 문환이 있다. 그 중에서 해문, 백장, 장문은 뚱샹족들이 세운 것이고 기타는 외지로부터 들어온 것이다.
노교에는 신도가 많은데 뚱샹지역 인구의 67%를 차지한다. 각각의 문환마다 그 자체의 신도들이 있다. 신도들은 문환이라는 종교제도의 통제를 받는다. 문환은 달라도 신앙은 일치하여 모두 이슬람교의 기본적인 교의를 따른다. 기독교 상황 : 뚱샹족에서 교회나 기독교인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40년대에 몇몇의 선교사들이 잠시 이 뚱샹족지역을 방문했었지만 어떤 사람도 기독교인으로 개종시키지는 못했다. 1993년에 홍콩에 근거를 둔 한 단체가 복음에 관한 인쇄물을 대량 유포한 적이 있었다. 이곳에서 가장 가까운 교회는 린샤의 한족교회이다. 그러나 그곳의 한족기독교인은 뚱샹족과 관계를 맺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믿는다.
정리 /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