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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2.20  통권 94호  필자 : 김성찬  |  조회 : 2646   프린트   이메일 
[선교중국]
세계선교를 위해 중국교회와 동역하라!

들어가는 말
현재 중국에는 1억 명이 넘는 기독교인이 있다는 아주 기쁜 소식을 듣고 있다. 「Operation World」의 2001년판에서는 중국의 기독교인을 9153만5000여명으로 발표하였다. 2005년 5월 차이나네트워크연구소(CNI)에서 발표한 2004년 중국 복음화 실태 자료에서는 가정교회 신도 8293만 명, 삼자교회 신도 1,495만3,000명으로 총 9788만3000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이는 중국 기독교인의 수가 1억여 명에 달할 것이라는 통계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그래서 중국은 세계에서 기독교인이 가장 많은 나라로 알려지고 있다. 공산체제 하에 핍박받은 중국의 기독교가 이렇게 부흥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를 배우고, 현재 이슬람권에서도 핍박받고 있는 기독교가 중국교회의 모델을 어떻게 도입할 수 있는지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제는 우리가 중국을 단순히 선교대상 국가로 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세계선교를 위해 중국교회와 함께 어떻게 동반자로 뛰어갈 수 있는지에 대해서 기도해야 한다. 또한 영적 침체 가운데 있는 한국교회가 다시 일어나기 위해서 중국교회의 간증을 듣고 영적으로 각성해야 할 때이다.

지난 5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공산통치하에 중국교회가 받았던 고난을 하나님은 어떻게 부흥의 환경으로 바꾸셨는가? 중국 가정교회는 모진 핍박 가운데서도 어떻게 성장하였는가를 살펴보면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들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고난을 부흥의 환경으로 바꾸신 하나님
1949년 중국에 사회주의 체제가 시작되었을 때, 중국을 바라보는 세계교회는 이제 중국에 선교의 문이 닫히고, 신앙에 대한 핍박으로 교회가 생존하기 어려울 거라는 많은 우려와 염려를 하며 중국을 위해 기도했다. 1966년 마오쩌뚱은 중국이 사회주의 건설에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이 계급의 모순이라고 판단하여 계급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문화대혁명을 주도하였다. 문화대혁명 때 지식인들과 종교인들은 심하게 핍박을 받게 되면서, 그 소용돌이 속에서 기독교도 엄청난 박해를 받아야만 했었다. 이때도 세계교회는 중국의 상황을 바라보며 중국에 기독교인들이 다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하며 더 큰 염려 가운데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은 사람들의 생각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그분의 방법으로 중국교회에 복음의 부흥을 일으키는 일을 우리들로 하여금 보게 하셨다. 문화대혁명이라는 용광로와 같은 모진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는 중국교회의 영적부흥을 위한 기초를 만드셨다. 

중국교회 부흥은 첫째, 중국정부의 언어통일 정책을 통해서이다. 중국어는 크게 8대 방언이 있어 의사소통이 어려웠었는데, 마오쩌뚱은 문화혁명을 진행하면서 중국어를 북경어로 통일하였다. 그래서 복음전도자가 중국 어느 지역에 가서도 북경어로 복음을 증거 할 수 있게 되었다. 

둘째는, 미신퇴치 정책을 통해서이다. 종교는 민중의 아편이라며 사회주의 체제에 반대되는 종교를 말살하는 정책을 통해 기독교뿐만 아니라 고대부터 현대까지 내려오던 수많은 미신들을 청소하였다. 

셋째는, 계급투쟁 정책을 통해서이다. 계급의 모순을 청산하기 위해 단지 지식분자라는 이유만으로 많은 지식인들을 핍박하는 과정에서 큰 역효과를 가져왔다. 존경하는 스승이나 부모가 지식인이라는 이유하나 만으로 엄청난 수모와 고통을 겪어야 했다. 문화대혁명의 회오리바람이 지난 후 중국인들은 비인격적으로 사람을 대하면서까지 이루려하는 사회주의 건설에 오히려 큰 실망을 갖게 되면서 공산주의라는 이데올로기에 실망과 공허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환경 가운데 중국 영혼들의 마음이 영적으로 정결케 되고, 가난한 심령이 되어 기독교를 받아들이는데 마음이 열리게 되었다. 

세계교회는 중국교회가 핍박 가운데 있는 어려운 상황을 보면서 염려하였지만, 우리의 생각으로는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뜻은 그 고난과 환경을 사용하셔서 중국 가운데 놀라운 일을 행하셨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사55:8-9)우리가 사역할 때는 우리가 일하지만, 우리가 기도할 때는 하나님이 일하신다.

순수한 믿음으로
중국교회가 부흥하게 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영성이다. 즉 고난 가운데서도 기독교의 순수 신앙을 생명을 걸고 지켰다는 것이다. 그러면, 중국 가정교회가 엄청난 핍박 가운데서도 초대교회 때와 같은 순수 신앙을 지키게 한 뿌리는 무엇인가? 중국의 가정교회는 어떻게 시작되어 중국교회를 세우는 역할을 하였는가?

중국 가정교회는 1949년 이전에 중국에 있던 토착교회의 신앙적 전통과 교회 형태에서 영향을 받아 형성되었다. 형태면에서는 교회 건물에서 예배드리는 것을 그다지 중시하지 않는 워치만 니 계열의「소군교회(小群敎會)」의 집회형식에 영향을 받았다. 또한 가정을 중심으로 교회를 개척, 사역하고 신앙적인 면에서는 고난을 당연시하는 정신과 십자가의 길을 걷지 않으면 예수의 길이 아니라는「예수가정」의 신앙적 전통을 그대로 계승하였다. 

가정교회는 1949년 중국의 공산정부 수립으로 인한 교회의 정치화 과정에서 교회의 순수성과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당시 기독교인들이 자발적으로 형성하여 발전되었다. 중국의 공산당과 정부의 기독교와 교회에 대한 관리 및 통제로 교회는 정치화되었고, 이 결과 중국교회는 기독교 운동이 아닌 사회주의 정치운동에 참여해야만 했다. 그래서 당시의 수많은 성도들과 교회지도자들은 정부로부터 받게 되는 탄압에도 불구하고 교회와 교회활동들이 정부의 관리 속에 놓이는 것을 거부하며 새로운 형태의 교회인 가정교회를 형성하게 된 것이었다.

성경적으로 사역하는 가정교회
중국교회가 부흥하게 된 또 다른 이유는 가정교회가 초대교회 형태의 성경적인 교회를 운영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중국 가정교회는 어떻게 성경적인 교회를 운영하고 있는가? 한국교회가 중국 가정교회를 통해 오히려 배울 점은 무엇인가?

첫째는, 교회 건물에 투자하지 않는다. 핍박과 감시의 상황으로 인해 많은 수가 모여서 예배드릴 수 없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적절한 수가 가정에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그 수가 많아지면 세포분열 하듯이 분리되어 또 다른 가정교회를 형성하면서 발전하였다. 바울서신을 보면 “라오디게아에 있는 형제들과 눔바와 그 여자의 집에 있는 교회에 문안하고(골4:15)” 와 같이 초대교회 때에도 가정에서 모이는 교회에 대해 말하고 있다. 성도들이 자연스럽게 가정에서 모여 예배를 드리기 때문에 굳이 예배당을 지을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교회건물을 건축할 필요가 없었고, 교회 건물 유지비와 운영비가 들어가지 않았고 비록 적게 모인 헌금이지만 그 재정의 대부분을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지역에 전도자를 보내면서 필요한 재정을 집중적으로 복음사역에 투자했다. 

둘째로, 교회가 셀을 형성하고 있어서 성도들의 교제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교회는 믿는 무리들의 모임이기 때문에, 사람중심으로 움직이는 것이지 건물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바울서신에서 “데살로니가에 있는 교회” 또는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들”에게 편지하는 것을 보면, 그 지역에 흩어져 있는 가정교회 전체를 대상으로 편지를 쓴 것이다. 이것은 초대교회들이 셀 교회를 이루며 서로 교제했음을 알려준다. 마찬가지로 가정교회도 가정에서 셀을 이루며 깊은 교제 가운데 역동적으로 사역을 하고 있다. 현재 세계교회도 새로운 변화를 요구하며 셀 교회에 대한 많은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셋째는, 순회목회를 한다. 중국 가정교회에서 리더는 누가 임명하거나 자격을 취득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 가운데 자연스럽게 권위가 주어진다. 이런 영적권위에 의해 세워진 리더들이 공동체에 기름부으신 은사를 통해 교회를 순회하면서 사역을 한다. 교회에 담임목사제도가 있어서 한 사역자가 교회를 떠맡고 있으면, 그 사역자의 한계를 교회도 벗어나지 못하고, 그 사역자의 개인의 연약함이 교회에 그대로 영향을 끼치게 된다. 그러나 중국 가정교회는 은사가 다른 공동리더들이 교회를 순회하며 교회에 필요한 은사들을 보충하면서 사역하기 때문에 교회가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었다. 

넷째는, 교회에 대한 소유욕이 없다. 중국 가정교회는 교회 개척자의 집에서 모이기도 하고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다른 가정에 모여 운영되기 때문에, 교회 개척자는 단지 교회 관리인의 역할을 하는 것이지 교회를 자신의 소유라고 여기지 않는다. 교회의 중요한 정책은 공동리더들이 함께 교제하며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결정된다. 

이같이 중국의 가정교회는 공산정부의 핍박으로 인해 초대교회 형태의 성경적인 교회를 운영하고 지도자들이 깊은 영성으로 사역하였기 때문에 성령께서 강력하게 역사하셔서 교회가 폭발적으로 성장하였다. 복음의 일꾼들이 온전히 순종하는 곳에는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곳에서는 어떤 장애물도 복음의 부흥을 막을 수가 없었다. 현재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G-12와 셀 교회보다 더 초대교회의 모델인 중국의 가정교회는 현재 이슬람권에서 핍박받고 있는 교회에도 적용할 수 있고, 더 나아가서 기독교가 핍박받는 모든 선교지역에 교회개척의 모델로 그리고 한국교회에서도 새로운 교회모델에 대한 대안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선교지에서 교회개척을 위해 중국 가정교회 지도자들로부터 배워야 한다.

세계선교의 비전을 품고
공산치하의 엄청난 핍박 가운데서도 생명을 건 순수 신앙을 통해 폭발적인 성장을 한 중국교회는 세계선교의 비전으로 일어나고 있다. 중국이 공산화되기 전에도 중국의 사역자들이 세계선교를 위해 예루살렘까지 서쪽을 향해 나아가다가, 1949년 중국에 국경이 세워지면서 서쪽 끝인 신장(新疆)성에 머무르기도 하였다. 이 신앙을 이어받은 중국 가정교회는 중국을 복음화하고, 소수민족과 나아가 이슬람권에 선교하려는 분명한 비전을 갖고 있다. 

이 비전을 위해 첫째, 중국 내 복음화가 낮은 지역에 사역자들을 파송하여 교회를 계속해서 세우고 있으며 둘째, 중국 내 소수민족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소수민족 지역인 내몽고, 티베트 그리고 신장지역에 사역자들이 나아가 일을 하고 있다. 셋째, 세계선교를 위해 기도하면서 훈련하고 특히 이슬람권, 불교권 등에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다. 

나가는 말
“볼찌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계 3:8). 중국교회는 시련과 고난 가운데에서도 이들이 당하고 있는 엄청난 핍박이 없어지고 환경이 바뀔 것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런 핍박을 이길 수 있는 힘과 능력을 하나님께서 주셔서 극복할 수 있도록 기도하며 하나님만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기도에 응답하시고 고난을 이길 힘을 주시며 성장하게 하셨다. 

이슬람권 국가들이 세계의 강대국 중에서 가장 환영하는 나라는 중국이다. 이라크에서 중국 사람이 인질로 붙잡혀 어려움 당했다는 소식을 우리는 듣지 못했다. 중앙아시아의 이슬람국가인 T국에서는 1990년대 말 서구 선교사들이 다 추방된 후 한국선교사들이 비즈니스선교를 통해 몇 가정이 정착하여 선교하고 있는데, 중국인들은 비자 없이도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세계복음화의 가장 큰 견고한 진인 이슬람권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중국을 정치적으로 준비하셨다. 그리고 경제적, 영적으로도 막강한 저력을 갖추게 하셨다. 

우리가 중국교회에게 선교에 대해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먼저 경험한 것을 함께 나누는 것일 뿐, 오히려 그들로부터 이슬람권과 같이 핍박받는 지역에서의 교회개척 사역에 대해 배워야 할 때이다. 이제 우리는 세계선교를 위해 중국 가정교회가 일어나 나아가도록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한국교회가 중국교회와 어떻게 동역할지에 대해 기도해야 한다.


김성찬선교사| InterCP 사역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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