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기고 있는 교회의 가까운 곳에 있는 수원구치소를, '교화위원'이라는 이름으로 종종 방문하여서 집회도 인도하고, 서적들도 공급하고 명절에는 다과도 제공하고 있습니다. 구치소에서는 이런 것을 교화활동이라고 부르지만 저는 물론 선교활동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 번은 면회실에 들렀다가 거의 모든 안내 간판에 간자(簡字)가 병기되어 있는 것을 보고 그 이유를 물었더니 한족과 재중동포들이 각기 수십 명씩 수용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주로 여성들이고 죄목은 위장결혼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가슴이 너무나 아팠습니다. 낯선 이국땅에서 감옥살이를 하고 있으니 그들의 몸과 마음이 얼마나 괴롭고 외롭겠습니까? 구치소의 교무과장에게 그들을 위한 특별집회를 하고 싶다고 부탁을 해서 응낙을 받았습니다. 먼저 재중동포들을 위한 집회를 했습니다. 여러 가지 말로 그들을 위로하고 이런 일을 겪었다고 해서 반한(反韓)감정을 갖지 말아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뒤에 앉아있는 구치소 간부와 직원들을 향해 '이분들의 부모나 그 위 세대는 일제 때 살길을 찾아서, 또는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중국으로 간 분들로서 이 분들은 나라를 대표해서 어려움을 겪은 분들의 후손들이고, 이 분들이 그곳에서 소수민족으로 살고 있는 것은 당시 나라의 힘이 약했기 때문이고 이 분들의 잘못은 아니니 이 분들에게 최대한의 친절을 베풀어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했더니 그 분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한 주일 뒤, 몹시 추운 날에 한족을 위한 집회를 하는데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저는 중국말은 '화맹(話盲)' 이어서 이 잡지를 발간하고 있는 중국어문선교회에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당일 중국어문선교회를 주축으로 중국복음선교회, 그리고 중국 S지역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있는 선교사 한 분 등, 혼성지원팀이 이십 여 명의 한족 재소자들을 상대로, 함께 찬양하기, 사영리 설명, 색소폰 연주, 기도 등 여러 가지 순서를 진행했습니다. 그 한족자매들, 그 날 모국어를 실컷 듣고, 모국어로 노래할 수 있었다는 것 한 가지만 해도 대단한 행복을 누렸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자매들이 눈물을 흘렸고 몇몇 자매는 집회 시간 내내 눈물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거의 끝날 때쯤 '我的中国心' 을 함께 부르는데 모든 자매들이 흐느껴 울었습니다. 곡조나 가사 내용이 찬양 같지는 않아서 어떤 노래냐고 물었더니 간사 한 분이 "말하자면 대중가요로서 해외에 나와 있는 화교들이 중국을 그리워하는 노래입니다. 우리에게 아리랑과 같은 정서의 곡입니다." 라고 하기에 제가 마지막 인사와 기도를 할 때 그 점을 참고하여 복음과 연결시키며 집회를 끝냈습니다. 집회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한 여자 교도관이 대단히 감동을 받은 얼굴로 '교회는 없는 것이 없고 못하는 것이 없군요.' 하더군요.
이 일을 하면서 하나님은 참 여러 가지 방법으로 중국선교의 좋은 기회들을 우리에게 주신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번 호는 '여성 사역자, 그 존재의 아름다움을 특집으로 하였습니다. 이 특집이 여성사역자들에게는 힘과 도움이 되고 독자들에게는 여성사역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2004년 여름호 '발행인 통신'에 '불어라 여풍(女風)아, 중국선교계에도!'라는 제목의 글을 쓴 일이 있는데 여풍이 더 강하게 부는데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또 2003년 9․10월호 '발행인 통신'에는 김순호(金順好)여선교사를 소개하는 글을 썼는데 제2, 제3의 김순호 선교사가 탄생하는 일도 생기면 좋겠습니다.
봄입니다. 독자 여러분에게 좋은 일이 많기 바랍니다.
유관지 | 발행인, 목양교회 담임목사,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객원교수, 신학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