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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  통권 93호  필자 : 유관지  |  조회 : 3477   프린트   이메일 
[특집] - 특집/ 중국의 변화에 민감하라
종교제약이라는 족쇄를 풀어야 할 중국
종교, 인권문제의 개방화

지금 중국은 ‘메가 랜드 차이나(Mega Land China)’의 꿈을 착착 이뤄가며 국제사회에서 그의 위상을 빠른 속도로 높여가는 가운데 이미 세계정상국가의 하나로 자리매김을 하였다. 미국이 중국의 위상이 높아지는 것에 대해, 특히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경제대국'이라는 점에 대해 초조감과 강박감을 가지고 있음이 여러 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바울은 당시 모든 길이 통한다고 하던 로마를 방문하고 싶어 하며 ‘세계의 심장에 꽂은 복음의 화살’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로마서를 썼는데, 필자는 우리는 로마서를 쓰는 심정으로 중국선교를 해야 한다는 점을 여러 군데에서 역설한 바 있다. 전에는 중국선교의 동기가 인구가 많은 나라이기 때문에, 가까운 곳으로서 지리적, 역사적으로 긴밀한 관계가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북한선교의 통로 내지 대리만족을 얻기 위해서, 이런 것들이었다면 이제는 세계복음화의 지름길이기 때문에 중국선교에 힘써야 한다는 점도 밝혔다. 

그런데 국제사회에서 날로 높아가는 중국의 위상과 발언권과 영향력의 족쇄가 되고 있는 것들이 있다. 신앙의 자유문제, 인권 문제, 관료 사회의 부패 등 여러 가지인데 그 가운데서 가장 두드러지게 부각되고 있는 것이 신앙의 자유문제이다.

작년 11월 20일, 중국을 방문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베이징(北京)시 시청구에 있는 강와스(缸瓦市)교회에서 주일예배를 드리는 것으로 공식일정을 시작했다.
1979년 6월에 미국의 지미 카터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카터 대통령도 주일에 여의도에 있는 한 침례교회에서 예배를 드린 일이 있었다. 카터 대통령의 경우에는 독실한 신앙을 가진 한 크리스천 대통령이 주일을 맞이하여 신자로서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교회를 찾아 예배를 드렸다는 것 이상의 의미는 없다. 이 일을 통해 신앙인으로서의 카터 대통령의 모습은 한국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부시 대통령 역시 신앙을 가장 중요한 가치관으로 여기고 있는 신앙인이지만 그가 중국의 교회에 참석했다는 것은 의미가 다르다. 이 일을 보도한 일간지들은 ‘부시, 中 교회서 예배 종교자유 확대 촉구’식의 제목을 달았다. 이 일에 대한「조선일보」의 기사에는 “미국 정부가 신앙의 자유를 부정하는 나라로 지목해 특별감시 대상국으로 지정한 나라에서 부시 대통령의 첫 공식 행사는 일요예배에 가는 것이었다. 일본 교토 연설에서 중국을 향해 ‘자유를 두려워하지 말라’ ‘설교’ 했던 부시 대통령이 ‘행동’으로 중국에 ‘종교의 자유를 확대하라’는 압력을 행사한 셈이다.”라는 대목이 있다. 여기에 나온 교토 연설은 작년 11월 16일 부시 대통령이 일본 교토에서 한 ‘아시아 정책 연설’을 말하는데 이 연설에서 부시 대통령은 ‘자유와 개방만이 국가 간 신뢰를 강화할 수 있다.’고 하였고 ‘중국인민들은 제재의 우려 없이 성서 등을 얻고 싶어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것은 하나의 추측이지만 부시 대통령이 찾은 교회가 강와스교회 였다는 점에도 숨은 메시지가 있다고 여겨진다. 베이징에서는 외국인들, 특히 귀빈들은 충원먼(崇文門)교회로 안내 받는 것이 관례였었기 때문이다. 강와스교회는 90년대를 전후해서 정부와 긴장관계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되고 있다.

외신을 통해 전 세계에 전해지고 있는 중국교회와 관련된 소식들은 대부분 어두운 것들이다. 이와 같은 일은 작년 3월 1일, 중국이 새로운 종교사무조례를 발표한 이후 더욱 두드러지고 있는데 바로 이런 것이 중국이 세계의 정상국가로 인정받는데 큰 장애가 되고 있는 것이다.

작년 5월에는 지난 24년간 감옥생활을 한 지하 가톨릭 지도자 창바이런 주교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8월에는 28년간 감옥생활을 한 시에신광 주교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외신을 통해 알려졌는데 이 보도를 통해 가톨릭에 대한 중국 당국의 박해가 다시 한 번 세계의 관심을 끌었다. 중국 종교정책의 기본인 삼자원칙과 갈등을 가장 심하게 빚고 있는 종교가 바로 바티칸을 정점으로 하고 있는 가톨릭이다. 중국정부가 인정하는 가톨릭 조직인 천주교애국회는 교황의 사제?주교 서품권을 내정간섭이라는 이유로 거부하고 있기 때문에 바티칸 노선을 따르는 중국 내 천주교인들과 마찰을 빚고 있으며 중국과 바티칸은 54년 동안 외교관계를 단절하고 있는 실정이다. 중국 정부는 중국 내 가톨릭 신자가 400만 명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실제는 1200만 명 이상의 천주교인들이 비공인 지하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5월에는 지린(吉林)성 창춘(長春)의 가정교회 교인 500여 명이 체포되었다는 소식이, 여름에는 허베이(河北)성 가정교회 교인들이 수난을 겪었다는 소식이 들어왔고, 대표적인 국제도시인 상하이에서도 가정교회가 폐쇄 명령을 받았다는 소식이 들어왔으며 작년 10월 20일에는 미국의 한 중국 관련 단체가 중국 허베이 성의 지하교회 목사 50며 명이 집회 중에 체포당했다고 밝혔다는 소식이 AFP를 통해 전 세계에 타전되었다.

작년 11월 8일에는 중국 가정교회 지도자인 차이줘화 목사가 베이징의 법원에서 3년 형을 선고 받았다는 소식이 외신을 통해 알려졌다. 차이줘화 목사는 자체 인쇄시설을 마련하고 기독교서적들을 인쇄하여 전국의 가정교회에 보급한 죄목으로 체포당했는데 심문 과정에서 전기고문이 행해진 것으로 알려졌고 부인과 처남도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고 한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작년 11월 7일 미국 국무부가 의회에 제출하기 위해 작성한 종교 자유에 관한 제7차 연례보고서에서 종교 자유가 탄압 받고 있는 나라로 북한과 사우디, 중국, 에리트레아, 이란, 수단, 미얀마, 베트남 등 8개국을 꼽은 일이다(이것이 앞의 신문 기사에서 언급한 ‘신앙의 자유를 부정하는 나라’라는 부분의 내용이다.) 여기 열거된 나라들 가운데는 이른바 최빈국(最貧國)에 속하는 나라가 여럿 있다. 이 보고서의 객관성을 인정한다면 중국은 경제면에서는 세계의 대국으로 부상했지만 정신문화면에서는 최빈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부조화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중국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중국이 종교제한이라는 족쇄를 과감하게 풀 것을 제안하고 싶다. 그럴 때 중국은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지도국가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한 나라의 국력을 계산할 때는 경제력, 군사력, 외교력, 이런 것들을 먼저 본다. 중국은 이 면에서는 세계 최강국의 반열에 든다. 인구가 많은 것은 부담이기는 하지만 인구는 동시에 곧 국력이기도 한데 중국은 이 면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런데 그것이 다는 아니다. 그것은 유형국력이라고 해서 국력의 반쪽이다. 무형국력이라는 것이 있다. 유형국력 곱하기 무형국력이 진정한 국력이다. 정치학자들은 무형국력의 요소로 단결력과 전략 같은 것들을 드는데 필자는 도덕적 정결성, 그리고 종교적 우수성을 들고 싶다. 무형국력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가는 아랍세계와 맞서 있는 이스라엘의 경우가 대표적인 본보기가 된다.  

종교문제, 인권문제에 대한 중국의 입장과 방침이 있는 것은 잘 안다. 그것은 중국이 공산화되었다가 세계의 조류에 휩싸여 개방정책을 취하는 정황에서 불가피하게 이루어진 것이라고 이해하고 싶다. 이제는 지구촌 시대, 그리고 달라진 중국의 위상이라는 새로운 정황이 중국 앞에 열리고 있다. 

작년 11월 18일 발표된 한중 정상의 공동성명은 ‘중국은 완전한 자본주의’라는 파격적인 선언을 하고 있다. 이 성명은 중국의 제품가격이나 임금이 정부의 간섭 없이 자유경쟁 시장에서 결정된다고 인정하는 MES(Market Economy Status: 시장경제지위)를 부여하고 있다. 이와 같은 새로운 정황들에 걸맞게 종교에 대한 제한이라는 족쇄를 과감하게 풀 때 중국은 새로운 비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비상이 2007년 중국기독교 200년 기념행사의 중국 안에서의 자유로운 개최나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제약 받지 않는 선교활동에서 시작될 것을 기대해보고 싶다. 


유관지ㅣ 발행인, 목양교회 담임목사,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객원교수, 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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