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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  통권 93호  필자 : 한수아  |  조회 : 3322   프린트   이메일 
[특집] - 특집/ 중국의 변화에 민감하라
‘민카오한(民考漢)’을 통해 본 중국사회의 성격
민카오한과 선교적 의미

중국사회를 이해하는 기본적인 관점
중국은 한국이나 대만과 같은 동아시아의 발전모델을 참고하여 개혁개방 정책을 실시한 이후 1978년부터 매 10년마다 일인당 국민소득이 두 배 이상 증가해왔으며 지난 10년간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세계최고수준을 나타낼 정도로 놀라운 경제성장을 하고 있다. 중국은 대외 개방과 저렴한 노동력을 이용한 급속한 경제성장이라는 면에서 한국의 경제발전 모델과 비슷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중국사회는 분명히 한국과는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다. 그 차이는 역사적 문화적 정치적 배경의 차이 등을 통해 다각도로 설명해야 하겠지만 사회학적인 측면에서 볼 때 중국의 사회주의 경험은 바로 이러한 차이를 만들어내는 핵심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주의적 요소와 시장화의 진행이라는 다소 모순되거나 이질적인 체제요소가 중첩되면서 중국적인 사회성격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글은 현재 중국사회를 이해하기 위해 사회주의적 유산과 시장화의 진행을 통합적으로 보아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산업화의 진행에 따라 인구가 도시로 이동하는 도시화 현상이 진행된다. 이 점에서 한국과 중국은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그런데 중국은 도시로의 자유로운 인구이동을 제한하는 사회주의적 유산에 따라 ‘유동인구’라는 독특한 이주자 집단을 만들어 냈다. 또한 중국의 도시사회에 불어 닥친 시장화의 물결은 사회주의 시절 도시사회를 조직했던 단위제를 변형시키고 있다. 기업에 밀어닥친 시장화는 경제력이 약한 기업의 퇴출과 구조조정을 만들어내었는데 이 과정에서 역시 사회주의적 유산 때문에 ‘씨아캉(下崗)직공’이라는 독특한 퇴출노동자 집단이 탄생하게 된다. 중국사회의 계층변화도 마찬가지다. 사회주의 시절 2계급 1계층(지식분자)으로 단순하게 분류되던 중국사회는 시장화의 과정에서 새로운 계층들이 생겨나고 있다. 이중에 예를 들어 ‘개체호(個?戶)’와 같은 계층의 성격은 사회주의적 배경을 통해 이해해야 한다. 

교회도 마찬가지로 이해할 수 있다. 사회주의 국가 설립이후 교회에는 삼자교회와 가정교회의 분립이 진행되었으며 이것이 현재 중국교회를 이해하는 기본적인 구조가 되고 있다. 여기에 사회적 계층분화에 따라 소위 ‘문화기독교인’이라는 새로운 기독교계층들도 생겨나고 있으며 이들을 중심으로 한 제3의 형태의 교회도 시작되고 있다. 하지만 삼자교회와 가정교회라는 두 형태의 교회가 어떻게 통합되어 갈 것인가가 중국 기독교의 미래를 바라보는 기본적인 축이 된다.

중국인의 국제적 이주
다른 하나의 예로서 시장화의 국제적 효과에 대해서 조금 자세히 살펴보자. 사회주의 시절 냉전구도 속에서 ‘죽의 장막’안에 있었던 중국은 과거에 인구와 군사적인 면에서 영향을 주었다면 이제는 경제적인 면에서 국제사회에 더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시장화의 진행은 중국인의 국제적인 노동력 이동을 활성화시키고 있다. 과거 전통사회 속에서 경제적 빈곤으로 인해 중국에서 배출되었던 중국 동남부 지방 사람들의 동남아시아의 이민, 노예노동의 성격을 지닌 쿠울리(coolie- 하급노무자) 이민 등과는 다른 새로운 이주의 물결이 일어나게 되었다. 자본주의적 노동력 이동이 바로 그것이다. 

필자는 현재 카작스탄에 거주하고 있는데 중국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이곳에 중국의 영향력은 단순히 외교-경제적인 거시적인 것뿐만 아니라 이곳에 몰려오는 수많은 중국 사람들과 상품으로 인해 미시적으로도 관찰된다. 외국인들에게 현지어를 가르치는 학교는 중국인들로 가득차 있다. 상점마다 진열된 값싼 공산품이나 소비재들은 거의 대부분 우루무치를 통해 들어온 ‘메이드 인 차이나’이다. 최근에는 중국이 ‘페트로카작스탄’이라는 석유회사를 36억 불을 써 낸 인도를 제치고 42억 불이라는 가격에 사들여 세계를 놀라게 했다. 물론 중앙아시아 지역으로의 ‘차이니즈러쉬’는 중국 상품에 대한 싸구려 이미지와 중국인들에 대한 적대감 혹은 경멸감으로 인해 아직 한계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차이니즈러쉬’는 계속 확대될 것이며 중국인 비즈니스맨들과 이주자들이 기독교정신으로 무장되어 있다면 그 선교적 파급력은 상당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미전도지역에 흩어져 있는 중국인들에 대한 사역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선교사 파송이 처음에는 해외거주 한인들에게 이루어졌듯이 중국교회도 시장화의 결과로 생긴 새로운 디아스포라 중국인들에게 사역적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중앙아시아 이슬람화에 큰 역할을 한 사람들이 이슬람 장사꾼들이었던 것처럼 이 지역에서 자본주의로 무장한 중국 교인들의 활약을 기대해 볼만하다. 원저우(溫州)인들이 중국 전역에 흩어지면서 했던 일을 미전도지역으로 이주하는 중국의 기독교인들이 감당할 수 있기 바란다.

시장화와 민족관계의 변화
필자가 이 글에서 사회주의적 유산과 시장화라는 통합적 시각을 가지고 주로 논의하고자 하는 중국사회의 성격은 소수민족 사회에 대한 것이다. 이 주제는 사회-인류학적으로 의미가 클 뿐만 아니라 중국의 소수민족 선교가 개척선교로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한다면 이 주제는 선교적으로도 의미가 크다. 

공식적으로 56개 민족으로 구성된 중국에서 사회주의 건설 이후 중국정부는 국민적 통합을 위해 한족의 언어인 한어를 보통화라는 이름으로 명명함으로써 공민이면 누구나 익혀야 하는 공용어로 삼았다. 동시에 사회주의 체제하에서 소수민족의 언어에 대해서는 비교적 호혜적(互惠的)인 정책을 적용하여 왔다. 사회주의 정부는 소수민족의 반발을 무마하고 민족 평등을 강조하기 위해 모든 민족어는 동등하게 존중받아야 한다는 정책을 시행하였다. 그 결과 민족어 교육과 민족어로 된 방송 출판 등이 정부의 후원과 보조로 이루어졌다. 

시장화는 이러한 민족어와 문화에 대한 보호정책을 약화시키고 있다. 최근 중국정부는 소수민족의 언어에 대한 보호정책을 철회하고 있는 실정이다. 중국 전체가 한 시장으로 통합되어 가는 상황에서 한어 및 외국어의 필요성이 더욱 증가하고 있는데 소수민족 언어보호를 실시하는 것은 소수민족에 대한 차별이라고 할 수 있으며 오히려 이것을 없애는 것이 그들로 하여금 국가의 통합적(시장화된) 공동체에 효율적으로 소속되게 하는 ‘온정주의’적 배려라고 중국정부는 주장할지 모른다. 물론 여기에는 경제성장에 따라 소수민족에 대한 장악력이 증대된 것에 대한 중국정부의 자신감이 배어 나온다. 이에 따라 자체적으로 자기언어를 유지할 능력 - 인구 규모나 경제적, 정치적- 이 없는 문자 그대로의 소수민족의 언어는 소멸될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다. 언어가 민족존립의 가장 중요한 요소임을 인식할 때 중국의 시장화는 민족어의 약화를 통해 소수민족의 한화(한족화)를 촉진시키고 있다. 이제 서부대개발과 신장성의 상황을 통해서 이 상황을 보다 자세히 살펴보자.

서부대개발의 의미
중국은 1990년대 중반 이후 서부대개발이라는 야심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국토면적의 약 70%, 인구 27%를 차지하고 있는 서부지역은 중국에서 가장 낙후되어 있는 지역이며 이들 지역의 발전은 중국의 현대화를 위한 중요한 과제라는 것이다. 

그러나 서부대개발은 시장화의 지역적 확산에 다름 아니고 동부자본의 진출이며 또한 한족노동력의 진출을 의미한다. 중국학자들은 이 현상을 1차 5개년 개발계획, 삼선건설과 함께 제3의 한족 서진이라고 부르고 있다. 앞의 두 번의 서진은 사회주의 하의 계획적인 서진이라고 한다면 제3의 서진은 시장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물결을 동반하고 있는 면에서 더 광범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의 계획적 식민과 투자를 넘어서서 민간과 개인 차원에서의 자본과 인력의 자유이동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서부지역의 소수민족들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그들의 삶은 이제 한족과의 공존이라는 것을 넘어서서 시장화라는 시대적 조류에 휩싸이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화에 적응하고 살아갈 것이냐 도태될 것이냐 하는 것은 한족과의 민족적 관계 이상으로 중요한 도전을 안겨주고 있다. 

세계화는 사실 미국중심의 세계시장화를 의미하는 것처럼 서부대개발은 한족 중심의 서부지역 시장화를 의미한다. 세계화 과정에서 경쟁력이 없는 나라는 더욱 빈곤하게 되었듯이 서부대개발의 과정에서 소수민족은 더욱 빈곤해질 가능성이 크다. 자본주의적 시장경쟁 상황에서 자본이나 시장 경쟁력이 없는 국가나 개인이 주변으로 밀려나듯이 국가의 보호와 우대정책이 철회되는 상황에서 자본과 기술로 무장한 한족들의 유입 앞에서 소수민족들의 주변화는 불보듯 뻔한 일이기 때문이다.

민카오한의 의미와 증가상황
이러한 도전에 직면한 소수민족 사회의 대응 혹은 변화는 어떠한가? 소수민족 사회는 광범위한 한화의 물결이 휩싸이게 되었으며 그 결과 ‘민카오한’이란 새로운 계층이 증가하고 있다. 민카오한(民考漢)이란 문자적으로는 소수민족 학생으로서 한족말로 시험을 보는 사람 즉 한족학교를 다닌 사람들을 말한다. 그러나 이 단어는 한족화된 소수민족을 지칭하는 말로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반대로 민족어로 교육받은 전통적인 소수민족을 민카오민(民考民)이라고 부른다. 

현재 중국인들은 이 민카오한 계층에 대해서 새로운 민족의 탄생이라는 의미를 부여하는 뜻에서 중국의 57번째 민족라고 부른다. 신장에서는 신장의 제 14 민족이라고 부르고 있다. 신장에는 13개의 주요 민족이 있는데 이제 새로운 민족하나가 탄생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유치원부터 한어를 배우고 한족과 어울려 지내기 때문에 외모만 소수민족이지 내면의 사상이나 행동하는 모습은 모두 한족을 닮게 된다. 물론 그렇다고 완전히 한족과 같은 언어능력과 문화를 가지는 것도 아니다. 이들은 한족과도 외모상이나 일부 언어문화상 차이를 지님과 동시에 소속 민족과도 내면적인 차이를 나타내기 때문에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집단이 된다. 이러한 점들이 바로 이들의 등장에 대해서 민족적 의미까지 부여하는 이유이다. 그래서 소수민족 부모가 자녀를 민카오한으로 키울 때 민카오민인 부모와 민카오한인 자녀사이에 감정적인 말이나 복잡한 표현은 서로 잘 못 알아듣고 서로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해프닝도 일어난다. 

현재 민카오한은 급속한 증가추세에 있다. 신장대학의 경우 현재 전체 민족학생의 10-20%를 차지한다. 전에는 한 반에 1-2명 정도였지만 현재 도시에 사는 소수민족 부모들은 자기의 자녀들을 거의 한족 유치원에 보내고 있으며, 젊은 부모일수록 증가율이 더욱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10-20년이 흐르면 대학에 입학하는 소수민족학생들은 거의 전부 민카오한이 될 것이다.

시장화와 민카오한 성장의 메카니즘
이들이 급속하게 증가하는 것은 소수민족 자체의 생존전략에 기인하기도 하지만 이 지역 교육기관의 구조적 변화 때문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신장성에서 가장 유수한 신장대학의 경우 학교정책이 1999년부터 소수민족 언어 강의를 없애고 전부 한어로 강의하도록 전환되었는데 준비기간을 거쳐 2002년 가을학기부터 일부과목을 제외한 전 과목을 한어로 강의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런 정책을 펴는 이유가 국가의 서부대개발 정책에 따른 요구 때문이 아니라 학교가 스스로 중점학교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한어로 강의하고 연구하지 않으면 교육의 질을 높게 유지할 수 없다는 생각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이 학교 교수의 말에 따르면 시장화 속에서 이제 학교들도 경쟁체제여서 다른 지역의 많은 학교들이 국가중점학교의 지위를 얻고자 노력을 하고 있기 때문에 뒤쳐져서는 그 지위를 유지할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실 민족어로 공부를 할 때 새로운 교재가 한어로 소개되더라도 이것이 민족어로 번역되어 사용되려면 2년 정도가 더 걸리기 때문에 교육의 효과가 떨어진다. 외국어 번역서는 더욱 그렇다. 민족어로 된 강의를 유지하더라도 이러한 상황속에서 변화하는 경제와 사회상황에 민족학생들이 더욱 적응하기 어렵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신문이나 신문연보와 같은 방송도 민족어로 읽고 들으려면 한어보다 하루 늦게 된다. 번역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분초를 다투는 현대사회에서 정보나 소식을 구조적으로 한족보다 늦게 접한 다는 것은 그만큼 경쟁에 뒤쳐지고 시대에 뒤 떨어진 사람으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학교의 정책은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 결국 신장대학은 동부나 내륙지역의 다른 한족 대학을 닮아가고 신장 내 다른 대학들은 신장대학을 닮아가는 현상을 보이게 될 것이다. 

대학의 이러한 변화와 함께 직장을 구할 때 한어 구사능력이 요구되는 것이 민카오한을 증가시키게 된 또 하나의 이유이다. 실제로 신장대학 출신의 소수민족 학생은 우루무치에 있는 회사가 노골적으로 민카오한을 찾는다고 불평한다. 자신이 민카오민이라고 하면 무조건 거절한다고 한다. 과거 신문사나 방송국, 출판사 등에는 민족어를 요구하는 직업들도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민족어의 사용도가 줄어들고 국가의 소수민족 언어우대정책의 약화에 따라 이 기관들에 대한 정부보조도 줄어들게 되면서 민족어를 사용하는 기관이나 회사의 취업기회가 줄어들고 있다.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한어능력이 더욱 필요하게 되면서 어려서부터 한족과 함께 교육을 시키고자 하는 일이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도시에서 민족학교를 보내는 부모들이 줄어들면서 민족학교의 질은 낮아지고 점점 폐교의 위기에 몰려가고 있다. 그 예로서 신장대학 옆의 카작족 민족중학교는 한족학교와 통합되었다고 한다. 이 예는 한화의 바람이 대학교에서 중학교까지 내려갔음과 아울러서 민카오한을 증가시키는 교육 및 취업구조와 소수민족의 선택간의 상호작용을 알게 해 준다. 

2000년 이전에는 사실 민카오한이 한족과 소수민족 중간에 끼어서 어려움을 가졌다. 민족어를 잘 구사하는 진정한 소수민족도 아니고 그렇다고 한어를 한족만큼 하는 것도 아니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무시를 당했다고 한다. 그러나 21세기에는 민카오한이 시장화에 적응한 교육받고 능력있는 소수민족 계층으로 인식될 것이다. 이처럼 민카오한 증가현상은 결국 민족언어와 문화의 소실을 가속화시키고 민족융합을 증가시킬 것이다. 동시에 소수민족지역 내 도시와 농촌사이의 문화적 간격을 늘어나게 만들 것이다.

민카오한의 성장과 선교적 의미
이 현상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그 선교적 의미는 무엇일까? 우선 소수민족 지식인들 속에서 민카오한이 결정적으로 증가할 것임을 예측할 수 있다. 앞으로는 소수민족 대학졸업자들은 모두 민카오한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번듯한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도 민카오한으로 채워질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소위 소수민족 지식인 계층에 대한 선교나 지도자 양성을 위해서 민카오한에 대한 사역이 매우 중요하게 취급되야 할 것이다. 

이 현상의 긍정적인 측면이 존재한다. 민카오한은 전통적인 소수민족보다 오히려 문화수용적이다. 카작스탄에서 ‘러시아화 된 카작인’이 카작인들 중 가장 문화수용적인 계층이었으며 이들이 교회에 가장 무슬림 배경의 민족구성원들이었다. 그리고 이들 이중언어를 쓰는 자들이 지도자로 세워지고 있다. 중국의 민카오한도 비슷할 가능성이 크다. 이들은 전통에 얽매이기보다 개인주의적이며 사회적 이동을 추구함과 동시에 종교적 결단에 있어서 보다 자유로운 성향을 지닐 것이다. 친구들을 초대해도 민카오민의 경우는 여러 명이 있을 경우 꺼려하는 것이 있으나 민카오한은 그것에 대해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개방성이 엿보인다. 그러나 물론 이들의 현실주의적이고 물질주의적인 성향은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 

또한 그들은 사고방식이나 언어적인 면에서 한족과 유사하기 때문에 한어를 통해서 접근할 수 있다. 양육 교재의 면에서 위구르족의 경우 아직 성경공부 교재가 문답식이 아니라 설명식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민카오한의 경우 한어 성경이나 한어교재를 바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양육이 쉽다. 

우리는 이들을 통해서 이중 언어 사역자를 기대할 수 있다. 민카오한은 한어를 자유롭게 구사하지만 대부분 민족어도 어느 정도 할 줄 아는 사람이다. 이들이 이중언어 사역자로 쉽게 훈련될 수 있으며 그렇게 된다면 가장 적절한 소수민족 사역자가 될 것이다. 게다가 만약 민카오한과 민카오민 커플이 사역자가 된다면 민카오한과 민카오민을 함께 도울 수 있는 중요한 사역자로 세워질 수 있다. 

그런데 민카오한이 한족화 된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바로 한족과 동일시 할 수는 없으며 따라서 그들이 신자가 되더라도 한족교회에 가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신장의 위구르족이나 카작족의 경우 외국인의 집에 와서 식사를 잘 하지만 한족집에 가서 식사를 하는 것은 꺼려한다. 그들은 민카오한이라도 기본적으로 이슬람 문화의 배경을 지니고 있으므로 돼지고기를 먹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민카오한을 별도의 종족집단으로 간주하고 사역해야 한다. 그리고 민카오한을 다리로 해서 전통적인 민족구성원 혹은 민카오민에게 접근하는 것도 하나의 중요한 전략이 될 것이다. 

하지만 현재는 민카오한을 대상으로 한 사역자라도 한어와 민족어를 모두 할 필요가 있다. 도시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한어를 못 쓰는 사람들이 많아서 이들에게는 서툴더라도 민족어로 나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민카오한에게도 민족어를 쓸 줄 아는 사역자는 보다 친근감을 줄 것이다. 그러나 사역대상이 민카오한이냐 민카오민이냐에 따라서 한어와 민족어 중 어떤 언어를 사역어로 선택할 지가 달라진다고 하겠다.

맺음말
위에서 필자는 사회주의적 요소 혹은 유산과 시장화의 통합적 결과를 잘 이해하는 것이 현재의 중국사회를 파악하는 중요한 시각임을 지적했다. 그리고 주로 민카오한 계층을 예로 들어 민족관계의 면에서 시장화의 결과를 살펴봄으로써 이러한 시각에 대한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자 했다. 

하지만 중국사회 이해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결국 소수민족 혹은 미전도종족 선교를 위해서는 이른바 민카오한 계층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향후 중국 소수민족을 대상으로 하는 도시선교나 소수민족 지식인에 대한 사역은 민코우한 선교를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따라서 이들을 잘 연구해서 이들을 통한 소수민족 선교의 가능성과 한계, 그 전략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한수아 | 선교사(MVP 선교회), 본지 집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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