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이번호 
북쇼핑
2006.1.1  통권 93호  필자 : 이성욱  |  조회 : 2100   프린트   이메일 
[선교중국]
중국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

한국과 중국은 2천년 이상의 오래된 역사의 흐름 속에서 하나님이 아닌 인간을 절대 권력을 가진 황제 또는 왕으로 섬기면서 싫든 좋든 긴밀한 관계를 맺어 왔다. 오랜 기간 동안 한국은 약자로서, 중국은 강자로서의 수직적 지배관계를 유지하여 왔으며, 1949년 중국이 공산화되면서 양국의 관계는 적대적 관계로 전환되었지만, 1992년 양국 간의 수효가 재개되면서 양국은 동북아시대를 이끌어 가는 새로운 경쟁자 관계를 또는 동반자 관계를 유지하여 오고 있다.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 온 하나님 역사의 흐름 속에서 한국교회와 중국교회는 마지막 시대인 21세기에 마지막 남은 아시아 대륙의 5,100여 미전도종족(unreached people)을 향한 변방선교(frontier mission)와 복음의 출발지인 예루살렘으로의 회복(Back to Jerusalem)이라는 선교전략을 수행하는 확실한 동반자 관계가 기대된다. 1,200만 성도의 한국교회는 동방의 독수리로서(46:11), 12천만 성도의 중국교회는 시님의 군대(49:12)로서 복음의 문이 굳게 닫혀진 무슬림의 여리고성을 무너뜨리게 될 것이다

중국교회의 확장

중국은 625년 당 태종시 네스토리우스선교회 선교사인 아라본(아브라함의 중국말)에 의해 경교(景敎)란 이름으로 복음이 전해졌으며, 1582년 마태오 리치가 청에 복음과 과학을 전하기도 했지만, 본격적으로 중국 땅에 복음의 문이 열린 것은 런던선교회의 파송을 받은 로버트 모리슨(25)180797일 주일 저녁 중국 광저우(廣州)에 도착하면서 시작되었다. 미국교회의 중국을 향한 선교는 23년이 지난 1830년에 브리지만과 아빌이 미국선교회의 파송을 받고 광저우에 도착하면서 시작되었다. 1842년 아편전쟁의 결과로 체결된 난징(南京)조약으로 인해 상하이(上海), 광저우, 푸저우(福州), 샤먼(廈門), 닝뽀(寧波)5개항이 외국인에게 열리면서 중국선교의 준비시대가 중국선교의 개척시대로 전환하게 되었으며, 1860년 제2차 아편전쟁의 결과로 체결된 베이징(北京)조약으로 인해 중국 해안과 내지로의 교회건설시대를 맞게 되었다

본격적인 중국 내지로의 선교는 1854년 평신도인 허드슨 테일러(22)가 상하이에 도착하면서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믿음선교(faith mission)로 양쯔강 연안과 저장(折江)성 지방들을 다니며 복음을 전파하면서 시작되었다. 1860년 영국에 돌아온 허드슨 테일러는 1865년에 중국내지선교회(CIM)를 조직하고, 18665월 아내 마리아와 4명의 아이들, 그리고 7명의 독신 여성들을 포함한 15명의 젊은 평신도 선교사들이 중국 상하이에 도착하여 저장성의 항저우(杭州), 닝뽀, 샤오씽(紹興), 장쑤(江蘇)성의 난징과 양저우(揚州), 그리고 장시(江西)성 등지로 선교지역을 넓혀 나갔다. 그리고 188545일 부활절 아침, 미국의 언더우드(26)와 아펜젤러(27) 선교사가 한국에 도착할 무렵 찰스 스터드를 포함한 케임브리지 대학생 7명이 영국교회에 큰 충격을 일으키고 중국내지선교회의 파송을 받고 중국을 향해 떠났다.

이렇듯 19세기 영국교회와 미국교회가 영적으로 각성하고 복음운동이 일어났을 때 하나님께서는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을 복음의 문이 강력하게 닫혀졌던 아시아 대륙으로 보내셨으며, 그들의 겸손한 순종을 통해 중국과 한국 땅에 복음의 길을 내시고 생명의 강을 흐르게 하는 새로운 일을 행하셨다.

1894년 시작된 청일전쟁의 패배로 세상의 정사와 권세가 무너지면서 중국 땅에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주님의 몸된 교회가 급속하게 확장하여 중국교회 성도는 189555,093명에서 1900년에 약 11만 명으로 증가하였으며, 1911년 신해혁명으로 중화민국이 수립되면서 신앙의 자유가 허용되어 1915년에 약 27만 명으로, 1920년에 약 37만 명으로 급속히 늘어났으며, 중국교회가 백투예루살렘의 비전을 받은 1945년에는 70여 만 명으로, 그리고 중국이 공산화 된 1949년에는 86만 명에 달하게 되었다. 한편, 한국교회 성도는 선교역사 20년 만에 7만여 명으로 늘어났으며, 1907년 평양 대부흥을 통해 급속도로 성장하여 1910년에 약 20만 명으로, 1936년에 34만 명으로 증가하였다.

중국교회의 핍박과 고난
이렇듯 양국에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면서 십자가의 고난이 있었으며, 순교의 피도 흘리게 되었다. 중국교회는 1900년 의화단 사건으로 188명의 선교사들이 순교하였으며, 5천명의 성도들이 살해당하고 2만 3천명의 성도들이 핍박을 당하였다. 또한, 백투예루살렘의 비전을 받은 중국교회를 말살하기 위한 사단의 강력한 궤계로 1949년 10월 1일 중국이 공산화되면서 중국 내 모든 선교사들이 추방되었고, 일천여 명의 교회 지도자들이 사형 당하였으며, 왕밍따오(王明道), 쑹상제(宋尙節), 워치만 니 등 수천 명의 지도자들이 감옥에 투옥되어 순교하거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하게 되었다. 

1953년 중국교회의 대부분은 폐쇄되었고, 삼자애국운동에 의해 공인된 삼자교회만 남게 되었는데, 1966-76년의 문화대혁명 기간에는 그나마 남아있던 삼자교회들마저도 모두 폐쇄되는 환란을 겪게 되었다.

1949년 86만 성도였던 중국교회는 중국교회를 말살하려는 공산주의의 모진 핍박과 탄압에도 불구하고 1776년 마오쩌둥(毛澤東) 사망 이후 개방화와 경제화의 물결과 더불어 1950년대에 투옥되었던 교회 지도자들이 20년 형을 마치고 세상으로 나오면서 허난(河南)성, 안후이(安徽)성, 푸젠성, 저장성, 산둥(山東)성 등 지역에서는 가정교회가 부흥하기 시작하였다. 1979년 8월 도시를 중심으로 삼자애국운동이 재개되어 1993년 중국교회의 성도는 4천만 명으로 늘어났으며, 중국정부의 가정교회에 대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2000년에는 9천만 명으로, 최근에는 1억 3천만 명을 넘어서게 되는 엄청난 영적 부흥이 진행되고 있다.

하나님의 새 일과 부르심
한국교회는 지난 1970-80년대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경제성장과 더불어 대학생 복음운동 등으로 1,200만 성도로 성장하였으나, 분열과 영적 나태함의 죄악에 빠져 1990년 이후 교회 성장이 멈추었을 뿐만 아니라 세속화되어 교회가 받은 권세를 잃어가고 있다. 그러나 이 땅에 선교사로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께서 한국교회의 새벽이슬 같은 청년들에게 변방의 마지막 남은 미전도종족을 향한 선교비전을 부어주심으로써 1990년 1,645명의 선교사를 파송하던 한국교회가 2002년에 10,422명, 2004년에 1만 3천명 이상의 선교사를 파송하게 되었다. 한편, 중국은 1776년 덩샤오핑(鄧小平)이 집권하고 1984년 이후 개방화와 경제화를 추진하면서 지난 20년 동안 연 평균 9%의 고속성장을 유지해 왔으며, GDP(국내총생산)가 1조 달러를 초과한 세계 7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하였다. 중국은 섬유, 신발, 가전, 일반기계 등 전통제조업 부문에서는 이미 일본을 추월했으며 향후 5-10년 이내에 철강, 석유화학, 조선 등의 중화학공업 및 정보통신, 자동차 등의 분야에서도 한국을 추월할 것이라는 보고도 나오고 있다. 이제 중국은 과거의 전통산업에서 벗어나 정보기술 산업과 통신, 금융 등 첨단산업의 비중이 빠르게 확대하고 있으며, 확대되는 내수시장 규모, 안정적 리더십, 6천만에 달하는 화교 네트워크과 자본 등과 함께 중국경제는 엄청난 발전가능성과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중국 내부의 시스템에 관한 많은 문제점들을 갖고 있지만 중국은 앞으로도 세계 경제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며, 한국과 동반자로서 또는 경쟁자로서 더욱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2008년 베이징올림픽 및 2010년 상하이 세계박람회 이후 중국에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게 될 것이다. 중국의 경제성장은 둔화될 것이며, 빈익빈 부익부의 현상은 가속화되고, 중국사회는 물질만능주의와 세속적 타락이라는 쓰나미에 빠지게 될 것이다. 향후 중국사회가 맞이하게 될 영적 위기에 직면하여 공산주의의 극심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심으로 중국교회를 부흥시키신 주님의 목적을 깨닫지 못하고 눈을 들어 하나님께서 유업으로 주신 열방을 바라보지 않는다면 중국교회는 중국 사회를 변화시킬 영적인 힘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며, 19세기에 “우리 세대에 세계를 복음화하자”는 비전을 품고 아시아 대륙에 복음을 전했던 유럽교회 및 미국교회와 마찬가지로 주님 재림의 길을 예비하여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는 영광에 동참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영적 위기의 시기에 위대한 하나님께서 한국교회와 600만 디아스포라를 아시아 대륙에 남아 있는 5,100여 미전도종족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여 제자를 삼고 교회를 개척하는 제사장민족(동방의 독수리)으로 사용하는 부르심을 깨닫게 하시고, 10만 선교사를 세워 시님의 군대인 중국교회와 함께 백투예루살렘과 마지막 변방으로 향하는 新사도행전의 새 일을 행하고 계신다. 한국교회는 백투예루살렘 운동으로 중국교회를 깨어 일어나게 하여 주님이 유언으로 주신 지상명령을 완수하는 마지막 하나님의 군대로 세워야 할 것이며, 한국교회의 선교사들이 먼저 나아가 실크로드와 초원길, 그리고 아시안 하이웨이를 따라 곳곳에 복음의 교두보들을 세우면, 하나님의 때가 이르러 하나님께서 한국교회의 10만 선교사와 중국교회의 100만 선교사를 일으켜 마지막 남은 견고한 성, 무슬림을 무너뜨리고 대적의 문을 여는 아마겟돈(므깃도) 영적 전쟁을 일으키시고 그 광야에 복음과 진리의 길을, 사막에 사랑과 생명의 강을 내실 것이다.         


이성욱 | 수원대 교수, 인터콥 성남지부장

    인쇄하기   메일로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