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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8.20  통권 91호  필자 : 편집부  |  조회 : 8429   프린트   이메일 
[중국의 지역과 종족]
신장 위구르 자치구(新疆维吾尔自治区)
관문도시-우르무치, 대상종족-위구르족

성도 : 우루무치

면적 : 166만㎢

인구 : 1963만 1천 1백 명(2004년 말)

행정구역 : 우루무치(乌鲁木齐市), 커라마이(克拉玛依), 스허즈(石河子市), 투무스커(图木舒克市), 아라얼(阿拉尔市), 우자추(五家渠市), 투르판(吐鲁番地區), 하미(哈密地區), 허티엔(和田地區), 아커수(阿克苏地區), 카스(喀什地區), 타청(塔城地區), 아러타이(阿勒泰地區)와 커즈러수커얼커즈자치주(克孜勒苏柯尔克孜自治州), 바이궈렁멍구차치주(巴音郭楞蒙古自治州), 창지후이주자치주(昌吉回族自治州), 보얼터라멍구자치주(博尔塔拉蒙古自治州), 이리하사커자치주(伊犁哈萨克自治州)로 나뉜다.

위치 : 신장위구르자치구는 중화인민공화국의 1/6의 면적을 차지하는 가장 넓은 행정 단위이다. 북동쪽은 몽골, 북서쪽은 러시아 연방, 남서쪽은 아프가니스탄 및 잠무캐슈미르, 남동쪽은 시장자치구, 동쪽은 칭하이성(靑海省), 깐수성(甘肅省)과 접하고 있다.

기후  :
전형적인 대륙성기후이다. 북부 신장의 연평균 강수량은 150~350㎜이며, 1월 평균 기온 -20℃, 7월 평균 기온은 20℃이다. 남부 신장의 연평균 강수량은 100㎜ 이하이며, 1월 평균 기온은 -10℃, 7월 평균 기온은 25℃로 기온의 연교차가 30℃가 넘는다.

역사·지리 : 신장이 속해있는 중앙아시아 지역은 6세기경 투르크어 계통의 언어를 사용하는 유목민이 발호(跋扈)하기 전까지는 원 페르시아인들이 거주했던 곳이다. 

1911년 신해혁명의 발발 이후에도 신장은 청조의 관리였던 양쩡신(楊增新)과 후임자였던 진쑤런(金樹仁)에 의해 통치되고 있었다. 그러나 신해혁명으로 청조가 전복된 뒤 신장에 대한 재정의 지원은 더욱 악화되었고 신장 주민들의 생활은 더욱 궁핍해졌다. 1928년 진쑤런은 무슬림들의 메카 순례까지 금지시키는 등의 가혹한 통제를 실시했다. 1931년 무슬림들에 의한 반란이 빈발하게 되었고, 무슬림 반란 세력들은 1933년-1934년까지 단기간 동안 ‘동투르키스탄 투르크-이슬람 공화국’을 선포하였다.

국민당의 소수민족에 대한 입장은 한족으로의 민족동화정책을 추구하였기에 무슬림 소수민족들의 저항은 더욱 거세지게 되었다. 1944년 11월 무슬림 반란 세력들은 지금의 이닝시를 수도로 하는 ‘동투르키스탄 공화국’을 세웠다. 국민당의 동투르키스탄에 대한 정책은 사실상 분열적이였으며, 한족과 무스림을 더욱 멀어지게 하였다.

신장지역은 알타이 산맥과 몽골의 국경을 따라 반원형으로 뻗어있다. 중가리아분지 북서쪽의 산맥으로 에워싸여 있으며 동쪽과 서쪽은 트여있다. 천산산맥 신장위구르자치구의 거의 1/4을 차지하고 있으며 산맥의 경사면을 따라 긴 빙하가 내려오고 있으며, 만년설로 덮여있다. 타클라마칸사막 현지어로 ‘한번 들어가면 나올 수 없는 사막??이라는 의미를 지닌 것처럼 신장위구르자치구의 남쪽에 광활하게 펼쳐져있다. 쿤룬산맥은 해발 7,300m에 이르고 자치구 중앙부에 통과하기 매우 어려운 장벽을 형성하고 있다. 신장위구르자치구는 바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고, 특별히 성도인 우루무치는 세계에서 격해도가 가장 높은 곳이다.

산업·경제 : 풍부한 지하자원과 무한한 개발의 가능성으로 한족을 비롯한 외부로부터의 진출이 활발해 지고 있다. 지금은 비록 중국 내에서 가장 빈곤한 지역이지만 무한한 농축업 토지와 광물질을 볼 때 신장위구르자치구의 경제 발전 잠재성은 무한하다.

농업과 목축이 주종이며 순수 유목민은 극히 소수이다. 정착생활과 함께 반농반목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신장은 예로부터 중앙아시아, 서아시아, 서아시아 각국과 빈번하고 밀접한 경제, 문화 관계를 맺어왔다. 즉 중국 서부지역의 대외 개방의 문호라 볼 수 있다.   1982년 이래로 신장은 홍치라푸(红其拉甫) 통상구를 개설하여 파키스탄과의 문호를 개방하였고, 구소련과의 관계가 개선된 후 훠얼궈쓰(霍尔果斯) 및 투얼가터(吐尔果特) 통상구를 개방하였다. 대외개방이 진일보함에 따라 1999년 후반기 국무원과 자치구 정부의 비준을 거쳐 1류, 2류 통상구가 대외 개방되었다. 그 중 1류 통상구는 16곳, 2류 통상구는 9곳이다. 

주요 농산물은 전국 최고 생산량의 면화와 식용유, 곡류, 사과, 배, 포도, 하미과 등이 있으며, 몽골에 이어 중국 제2의 목축치역으로 각종 낙농제품과 약초 등이 유명하다. 주요 광산자원으로는 중국전체 매장량의 38%에 해당하는 석탄과 세계최대 미개발 유전지대인 타림분지가 있다.

주요 산업으로는 농업, 석유채굴업, 석유가공업, 방직업, 식품업, 목축업 등 이며 주요 광산자원은 석탄, 석유, 천연가스, 철 이다. 설탕, 면사, 옥수수, 쌀, 육류, 면직물은 주요 수출품이며 승용차, 중장비, 통신설비, 석면 등은 주요 수입품이다.

대도시의 경우는 현대문명이 들어와 있지만 지방의 경우는 매우 낙후되어 있어 한국의 과거 60-70년대 수준이며, 일반 도시 노동자의 월급은 400-800(元)이다. 그러나 대도시의 정치 및 상권은 한족이 장악하고 있으며, 대다수의 위구르족은 저임금 노동에 종사하고 있다.

교통 : 란신철도(蘭新鐵道)가 통과하고 깐수성, 칭하이성, 네이멍구, 티베트로 연결되는 자동차도로도 연결되었으며 항공로도 여러 지방과 이어진다.

우루무치의 공항은 중국의 5대 관문 공항 중 하나이다. 1973년 외국으로의 개방 이래로 중국과 유럽, 서아시아 국제 항공노선의 연결점이 되었다. 1989년 7월 우무루치↔알마타 국제 노선이 개통된 이래로 1994년 6월 톈진↔우루무치↔신시베리아(新西伯利亞)↔모스크바 항공 노선이 개통되었고, 1994년 7월 우루무치↔이슬라마바드 노선이 개통되었다. 1994년 8월 우루무치↔홍콩 간의 전세 여객기가 개통된 이래 매일 운행하고 있다. 현재 우루무치와 카자흐스탄의 알마타, 키르키즈스탄의 비쉬켁, 러시아의 모스크바와 노보스비르스크, 아랍에미레이트의 샤르자, 파키스탄의 이슬라마바드, 아제르바이잔의 바쿠 간 국제노선이 운행되고 있다. 

관문도시-우르무치

인구 : 약140만(2000년)

위치 : 아름다운 목장이란 뜻의 우루무치는 천산북로에서 가장 큰 도시이며 신장위루르자치구의 수도(州都)이다. 천산산맥의 북쪽 기슭에 위치하고 있으며, 해발 고도는 915m 이다.

기후 : 봄, 가을이 짧고 겨울은 추으며 여름은 덥고 길다. 연평균 강수량은 200mm로 비가 적게 내린다. 시내에는 이슬람 사원이 많이 있고, 도시 주변에는 사막처럼 황량한 산들이 두르고 있다. 시내에서 동북쪽으로 115km떨어진 곳에 있는 천지는 천산의 눈이 녹아 내린 물이 고여 이룬 호수로 경치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시내 중심에는 농작물, 식품, 향료, 주단 등을 파는 바자르(노천시장)와 2천여 점의 문서, 직물, 석기 등 실크로드와 관련된 출토품을 소장한 박물관이 있다. 

한,당대까지만 해도 우루무치는 서역의 중심도시가 될 정도는 아니었다. 18세기 청나라 때 적화(迪化)라는 성을 쌓으면서 비로서 도시의 모습을 갖추고 19세기 초 남장과 북장을 연결하는 지리적 중요성을 인식하여 중앙 정부는 이곳에 신장성을 설치하였다.

주
축이 주산업을 이루던 사회에서 벗어나며 지하자원을 개발해 급속히 산업화가 진전되고 있는 우루무치는 신장의 정치, 경제, 문화 및 교통의 요지로 예수님이 없는 상태에서 빠른 개발과 물질문화가 급속히 퍼짐으로 빈부의 격차가 심화될 뿐만 아니라 영적 피폐함이 심각하다. 공식적인 삼자교회에 한족만 3천명이 모여 예배를 드리고 있으나 위구르족은 예배를 드리는 곳이 없다.

대상종족 - 위구르족 : 신장위구르자치구의 인구는 10.06%의 중국 전체 인구증가율보다 높은 12.81%의 자연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중국의 55개의 소수민족 가운데에서 장족, 회족에 이어 세번째로 인구가 많은 위구르족의 주요 활동무대이다. 위구르족은 우루무치를 중심으로 하는 자치구의 북부에는 분포가 작지만, 남북쪽으로 내려올수록 많은 분포를 보인다.

위구르족은 중국 내의 소수민족으로서 신장위구르자치구에 주로 살고 있다. 위구르족의 기원에 대해서는 흉노(匈奴)와 돌궐(突厥)의 한 갈래라는 것이 통설이다. 인구 1963만 1천 1백 명 중 소수민족이 차지하는 비율이60.5%이며 13개 소수민족이 있다. 그중 위구르족 897.67만 명(45.73%)를 차지한다. 한족 780만 명, 하싸커족 138.16만 명(7.04%), 회족 87.63만 명(4.46%) 등 이다.  

수십 년 동안의 중국과 구소련의 영향에도 불구하고 그들 고유의 문화적 전통을 강하게 유지해 왔다. 따라서 이들의 종교적 전통과 문화는 불가분의 관계를 갖고 있다. 위구르족은 “위구르족이라면 당연히 모슬렘이지요"라는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1949년 중국 공산당 건국 이래 중국의 지배 하에 속하게 되었고 무신론자인 공산주의자들은 수 세기 동안 자신의 문화를 이슬람교에 밀착시켜 강한 유일신 사상을 간직해 온 위구르족을 이상하게 여거 특히 문화혁명 기간에는 이러한 갈등이 극도에 달해 이슬람 종교 지도자들을 투옥시키고 토지를 몰수할 뿐만 아니라 수천 개의 모스크를 파괴하고 코란을 불살랐다.

이로 인해 오늘날까지 위구르족과 한족 사이에는 좋지 않은 감정이 깊이 스며들어 있다. 1992년부터 위구르족은 중국으로부터 분리, 독립하려는 운동이 강력하게 일어나기 시작해 중국 당국은 이들을 항상 경계하고 있다. 

언어 : 알타이어계 돌궐어족 서부어지(西部語支) 카얼루커어조(卡尔鲁克語組)에 속하고 우루무치화의 어음을 표준으로 발전해 왔으나 한편으로 인도, 유럽어계의 아랍어와 이란어계의 한어의 성분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생활풍속 : 서로 만나 인사할 때, 남자는 오른손을 왼쪽 가슴에 놓고 허리를 굽혀 “사라마리쿤"이라고 하고, 여자는 허리를 약간 숙이며 "사라무"라고 하는데 모두 "평안을 빈다"는 뜻이다. 근래에는 악수로 대신하기도 한다.

음식 : 양고기 등 육식 위주의 식생활이라 차를 즐겨 마신다. 차에 한약재를 타서 마시는 치아이다라(恰依达拉)가 있다. 지역마다 다양한 재료로 만든 빠오즈(包子)를 즐겨 먹으며 손님이 오면 쌀에 양고기, 파 등 십여 가지의 각종 채소, 과일을 섞어 지은 쭈아판(抓饭)을 접대한다.

주거 : 넓은 지역이라 기후 차이가 많아 지역에 따라 형태의 차이가 많은데 난장(南疆)은 강우량이 적고 겨울에는 따듯하고, 여름에는 시원하다. 그래서 지붕이 약간 경사지고 벽이 두터운 나무와 흙으로 지은 토방이며, 일자(一字)로 되어있다.

의복 : 색상, 재료, 복식이 지역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워낙 꽃을 좋아해 화려한 꽃무늬를 여자의 긴 옷, 통치마, 바지 등 거의 모든 옷에 수를 놓고 남자 역시 비슷하다. 부녀자에게는 카스, 허티엔 등지에서 생산하는 비단으로 만든 통치마는 명절에 입는 예복으로 필수품이다. 

결혼 : 여자는 이슬람교를 믿지 않는 다른 민족과는 결혼하지 못하지만, 남자는 안 믿는 여자와 결혼하더라도 여자가 교리를 받아들이는 절차를 거친 후에는 가능하다. 예전에는 이혼을 죄악시했으나 근래에는 바뀌어가고 있다. 투즈(吐孜=소금)를 신이 인류에게 준 은혜로 알고, 재난에서 보호하며 결혼 생활을 행복하게 지켜주는 신성한 물건으로 여겨 결혼 당일 아침에 신부집에서 행하는 니카(尼卡)라는 종교의식에서 신랑, 신부는 소금물을 찍은 빵인 낭(馕)을 먹어야 한다. 그 후 집에 돌아와 오후에 예복을 입고 결혼식을 준비한다.

종교 : 일찍이 샤머니즘의 영향으로 자연을 숭배하는 무속신앙이 두루 퍼졌다. 762년 당(唐 )에서 마니교가 들어와 큰 영향을 미쳤으나 살생을 금하는 교리가 유목을 하는 이들에게 부적합했다. 9세기부터는 타림분지를 중심으로 불교가 성행하고 불교문화가 발달하게 되나, 복잡한 역사의 과정을 거쳐 10세기 이후 서서히 들어오기 시작한 이슬람교가 5세기에 걸쳐 불교를 구축하고 생활 전반에 깊은 영향을 미쳐 오늘에 이르며, 일상생활에서 아홍(阿訇)의 가르침에 따를 만큼 철저히 종교적이다. 

기독교는 극히 제한적으로 전해져 있는 형편이고, 성경이 아직 완전히 번역되지 못하고 있다. 1980년대 중반부터 서양 선교사들의 노력으로 현재 요한복음, 누가복음, 사도행전, 로마서, 요한 1, 2, 3서, 창세기 등이 번역되어 출판되어 있으며 계속적으로 번역과 검토작업을 하고 있는 중이다. 

 


정리 /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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