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스쿨에 대한 일반적인 이야기에 앞서 홈스쿨과 관련하여 미국과 영국에서 발생한 매우 중요한 두 사건을 소개하고자 한다. 두 사건은 미국과 영국에서 각각 홈스쿨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인 농부 존(John)의 죽음과 홈스쿨 1979년 1월 6일, 미국 유타(Utah) 주에 사는 존 싱거(John Singer)라는 한 농부가 자기 집 앞에서 경찰관의 총에 맞아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여러 명의 경찰관이 ‘의무취학법’을 어기면서 아이들을 집에서 가르치고 있던 존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자기 총을 들고 경찰관과 대치하던 그가 경찰관의 총에 맞아 죽은 것이다. 이것은 존이 자기 아이들을 공립학교에서 빼내와 자기 집에서 아내와 함께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한 지 6년 만의 일이다.
존은 독실한 몰몬교 신자로서 학교에서 가르치는 교과서의 내용이 자기의 종교적 신념과 일치하지 않다는 이유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기 시작했다. 이러한 존에 대해 교육청에서는 유타 주의 의무취학법 사본과 함께 공문을 보내 그것은 위법이므로 아이들을 학교에 다시 보내든지 교육위원회의 특별한 허락을 받아 집에서 가르치든지 할 것을 종용했다.
교육위원회의 특별한 허락을 받으면, 학습내용과 학습시간을 교육청에서 지시한 대로 따라야 하고, 정기적으로 교육청의 감독을 받도록 되어 있다. 교육청의 요청에 따르지 않으면 법원에 고발할 수밖에 없다는 내용도 덧붙였다. 이러한 교육청의 서한에 대해 존은 자기의 종교적 신념에 따라 아이들을 집에서 가르칠 것이며 절대로 학교에 보내지는 않을 것이라는 내용의 답장을 보냈다. 존의 죽음을 계기로 대부분의 주에서 홈스쿨을 합법적인 교육의 한 형태로 인정하게 된다. - Fleisher & Freeman(1983)이 지은 ‘한 미국인의 죽음’이라는 책에서
영국 학부모 단체 ‘다른 교육’(Education Otherwise)의 탄생 영국의 학부모들은 영국의 ‘1944년 교육법’ 제36조에서 ‘취학’이 의무가 아니라 ‘교육’이 의무임을 명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취학이 의무인 것으로 믿고 있었다. 제36조의 조항은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의무 취학 연령의 아동을 둔 학부모는, 그를 학교에 정기적으로 출석시키든지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 그의 나이, 적성 및 능력에 알맞은 효율적인 전일제 교육을 받도록 해야 할 의무가 있다.’(강조는 필자)
영국의 학부모들도 학교에 다니는 것이 곧 교육이라는 신화를 오랫동안 신봉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교육법이 발효된 지 30년이나 지난 1976년에 이르러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라는 교육법의 조항을 발견하게 된다. 의무교육과 의무취학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자발적으로 모인 10가정이 가정에서 자녀들을 가르치기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이들은 교육법의 조항에서 가져 온 이름인 ‘다른 교육’(Education Otherwise)이라는 학부모 단체를 조직하여 체계적으로 홈스쿨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홈스쿨이란 무엇인가? 홈스쿨은 적령기의 아동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학부모들이 직접 또는 다른 도움을 받아 가정에서 아동을 교육하는 제도를 말한다. 홈스쿨은 미국뿐만 아니라 독일을 제외한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 즉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벨기에, 덴마크, 룩셈부르크, 노르웨이, 포르투갈, 스위스 등에서도 합법적인 교육기관으로 인정되고 있다.
미국이나 영국뿐 아니라 지금 전 세계적으로 홈스쿨에 동참하고 있는 사람들의 숫자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쉽지 않지만 점점 증가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1997년도의 자료에 의하면, 미국의 경우 학교에 가야 할 나이에 있는 아동 중 약 123만 명이 집에서 교육을 받고 있고, 영국에서 1만 명, 호주에서 2만 명, 캐나다에서 3만 명, 뉴질랜드에 3천 명 정도가 홈스쿨에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일종의 사회 운동으로까지 번져 가고 있는 홈스쿨 운동은 공교육 제도가 지구상에 도입된 이래 약 200년간 교육을 독점해 왔던 학교체제에 큰 도전을 던져 주고 있다. 다시 말하면, 홈스쿨은 일정한 자격(예: 교사자격증)을 가진 사람이 일정한 공간(예: 학교)에서 정부가 가르치라고 지정한 것(예: 교과서)을 가르치는 것이 교육이라고 믿어 온 관행과 신화를 깨뜨리고 있는 것입니다. 홈스쿨 운동은 ‘학교’의 개념과 ‘교육’의 개념을 분화시키면서 그 교육적 근거를 확고하게 얻어가고 있는 중이라고 하겠다.
홈스쿨이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점점 관료화되어 가고, 기술에 의한 인간생활 통제가 심해지며, 도덕적으로 파편화되어 가고 있는 현대 사회에 대한 반발 때문이라고 보는 입장도 있다. 일부 극단적인 학자들은 홈스쿨을 “공교육 등 제도적 형태에 의해 가정이 식민지화되는 것에 대한 일종의 반발”로서 “자기가 자유롭게 선택한 삶의 방식에 따라 살면서 국가의 간섭으로부터 가정의 가치와 신념을 보호하고자 하는 운동”으로 이해하고 있다.
어떻게 홈스쿨을 실시하고 있나? 아래에서는 미국을 중심으로 홈스쿨의 실제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홈스쿨을 선택한 가정에서는, 주에 따라 자율성의 폭이 다소 차이가 나기는 하지만, 아동의 흥미와 수준을 최대한 고려하여 교육과정을 구성, 운영할 수 있다는 장점을 누릴 수 있다. 그러나 홈스쿨의 경험이 없는 초보자인 경우에는 홈스쿨을 하는 사람들을 위해 Beka Home School, Saxon Publishers 등 사설 출판사가 제작한 교육과정과 교재를 구입하여 사용하기도 한다.
홈스쿨은 교수-학습 활동을 설계하는 데 있어서도, 일반 학교에 비해서는 융통성의 폭이 매우 큰 편이다. 무엇보다도 일대일 교수-학습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한 교사가 여러 명을 동시에 가르치는 학교에 비해서 아동의 교육적 필요를 채워 주기에 유리하다고 할 수 있다. 방학이 따로 없기 때문에 1년 전체를 학사 운영에 고려할 수 있으며, 하루 시간표도 교육내용에 따라 융통성 있게 작성할 수 있는 것도 홈스쿨이 누리는 장점 중 하나이다.
홈스쿨을 실시하고 있는 가정은 개별적으로 충분한 교수-학습 자료를 보유하지 않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지역의 도서관, 박물관 등을 자주 활용한다. 현장 방문(field trips)이나 특별 활동의 경우에는 지역의 홈스쿨 아동들과 함께 참여하기도 한다. 지역에 따라 스포츠, 특별활동은 일반 학교의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경우도 있다. 한편, 모든 교육과정을 두 가정 이상이 협력하여 홈스쿨을 운영하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홈스쿨 협동체(co-ops)라고 부르는 일종의 교육 품앗이로서, 이 경우 학부모는 각자 자기의 전공 또는 관심 영역을 책임 맡아 가르치기도 하고 연령별 소집단을 형성하여 분담하기도 한다.
홈스쿨에 있어서 아동의 교육은 전업 가정주부가 맡는 경우가 가장 많은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그러나 홈스쿨에서는 어머니가 자녀 교육을 전담하는 것은 아니고, 아버지가 일부 과목 또는 활동에 대해 자녀의 학습을 돕기도 하고 자녀들끼리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다. 그리고 음악, 외국어 등 특별한 교과에 대해서는 가정교사를 활용하기도 한다.
홈스쿨의 교육적 효과는 어떠한가? 여기에서는 홈스쿨 출신들의 학업성취, 사회성 발달, 졸업 후 진로 등에 관하여 주로 미국의 연구 결과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미국 홈스쿨연합(HSLDA, 1997)의 연구에 의하면, 홈스쿨 학생들은 미국 전국 표준화 학력검사에서 같은 학년의 공립학교 학생들에 비하여 읽기, 듣기, 수학, 사회, 과학 등 전 교과에 걸쳐서 성적이 월등하게 높다고 한다. 예컨대 홈스쿨 학생들은 과목에 따라 평균 상위 13%에서 20% 위치에 놓여 있었다.
사회성 발달과 관련이 있는 특별활동과 지역사회 봉사 활동 면에서도 홈스쿨 학생들은 결코 집안에만 틀어 박혀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평균 5가지의 사회 활동에 참여하고 있으며, 2가지 이상의 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학생들이 무려 92%나 되었다. 이러한 활동에는 스카우트, 현장 방문, 댄스 교실, 4-H, 스포츠, 음악, 선교, 주일학교, 자원봉사 등 다양한 활동이 포함된다.
고등학교 수준까지 홈스쿨을 마친 후 학생들이 각종 대학에 진학하는 비율은 69%로서 공립학교의 71%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을 알 수 있다. 현재 하바드대학교 등 일류대학을 비롯하여 많은 대학들이 홈스쿨 출신의 입학을 허용하고 있으며, 홈스쿨 출신의 입학을 허용하는 대학의 숫자가 매년 증가하고 있다. 이것은 홈스쿨이 교육적으로 일반 학교와 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 주는 하나의 증거라고 할 수 있겠다.
홈스쿨의 법률적 위상과 전망 우리나라 헌법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누릴 수 있는 권리와 함께 반드시 행하여야 할 의무에 관하여 규정해 놓고 있다. 그 가운데 교육(제31조)은 근로(제32조), 납세(제38조), 그리고 국방(제39조)의 의무와 함께 소위 국민의 4대 의무 가운데 하나로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초?중등교육법 등 교육관련 법률은 헌법에서 정하고 있는 ‘의무교육’을 ‘의무취학’으로 보고 있다.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모든 아동은 중학교까지 의무적으로 취학해야 한다. 따라서 (홈스쿨을 포함하여) 어떠한 이유에서든 취학적령아를 학교에 보내지 않으면 1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초?중등교육법 제68조 제1항).
미국에서 홈스쿨에 관한 법적 논쟁의 역사가 시사하고 있듯이, 홈스쿨의 법적 쟁점은 아동의 교육에 대한 우선권이 국가에게 있는가 학부모에게 있는가의 문제에 있다. ‘의무교육’과 ‘의무취학’을 개념적으로 구분하고 있는 국제적인 추세 속에서 학교에 대한 학부모의 불만이 점점 더 커지고 있고, 학부모의 자녀교육에 대한 권리가 국가의 아동 교육에 대한 권리에 앞선다는 생각을 갖는 학부모가 많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바, 우리나라에서도 머지않은 장래에 홈스쿨에 대한 법적 토론이 시작될 것으로 본다. 만일 홈스쿨이 합법적인 교육기관으로 인정된다면, 이것은 교육의 주도권을 국가에서 가정으로 되돌려 놓는 교육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그리고 어쩌면 교육혁명을 가져올 수 있는 씨앗이라 할 수 있다.
김재웅 / 서강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