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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5.20  통권 86호  필자 : 이은아  |  조회 : 2487   프린트   이메일 
[인터뷰]
앞으로 문서사역은 인터넷으로

일시 : 2004년 1월 22일
장소 : 평강교회(번동) 회의실
대담 : 왕웨이창 목사
진행 : 이은아(“중국을주께로” 편집장)
 
편집자 주 - 왕웨이창(王伟强) 목사는 현재 타이완에 있는 침례신학교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며 “중국인 노동자 설날 수련회”에 강사로 한국을 방문하였다. 그는 슬하에 부인과 2남 2녀의 자녀를 두고 있으며 문서선교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있다. 그의 약력은 다음과 같다.  

1958년 홍콩 출생
1978년 대만화교학교 연수반에 입학
1979년 대만대학 외국어과 입학
1979년 일본선교사에 의해 예수님 영접하고, 네비게이토 제자훈련을 받음.
1982년 대학졸업 후 출판사에서 근무함.
1989년 대만 침례신학원 졸업(성경학 석사)
1994년 침례신학원 겸임강사 역임, 아주침례신학대학원 신학석사.
1996년 침례신학대학교 전임교수
1997년 아주침례회신학원에서 신학박사 수료


이: 한국에 몇 번째 오셨으며, 오셔서 한국 교회를 방문한 소감은 어떠한지요?


왕: 한국에는 처음 왔는데 눈이 내리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지금까지 한국에 올 기회가 없었는데, 이번 수련회에 강사로 초대받게 되어 아주 기뻤습니다. 한국 교회는 목사님을 매우 존경하더군요. 대만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일꾼처럼 종의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에 좀 힘이 듭니다. 

한국에 와서 여의도순복음교회를 방문했을 때 성도들의 기도하는 모습과 찬양하는 모습이 대단히 열정적이었습니다. 교회의 건물도 무척 웅장하게 보였습니다. 그리고 평강과 힘이 넘치는 교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대만의 교회는 규모가 비교적 작습니다. 그나마 크다는 교회는 링량탕(灵粮堂) 교회로 성도들이 대략 6천명에서 7천 명 정도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있으며, 원주민 교회인 안디옥교회는 교인이 만 명 정도 됩니다. 그 외의 교회들은 평균 50여 명 정도의 성도들이 모여서 예배를 드립니다. 대만의 인구 중 3%만이 기독교인이며, 대만은 아직도 복음전파가 많이 되어야 할 곳입니다. 한국 목회자들은 기도를 많이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대만 목회자들도 기도하면서 목회에 임한다면 많은 성과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홍콩에서 대만으로 가시게 된 경위와 주님을 영접하게 된 동기, 그리고 가족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왕: 제가 대만으로 떠나려고 할 당시 홍콩은 아직 영국의 식민지였고, 우리가 공부할 수 있는 대학은 2곳밖에 없었습니다. 공부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가난해서 외국으로 유학을 간다는 것은 더욱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나 대만은 공부하기에 좋은 곳이었습니다. 문화대혁명 시기에 친구 6명과 같이 민주주의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대만으로 갔습니다. 그 때는 예수님에 대해서 알지 못했습니다. 제 부모님은 5살 때 이혼하셨고, 대학 다닐 때 저를 길러 주신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습니다. 대만(台弯)대학교 외국어과에서 공부를 하고 있던 저는 그 때 인생의 문제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마침 네비게이토 출신의 일본 선교사가 학교 기숙사로 찾아왔는데 그 선교사님과 2시간 정도 대화를 나눈 후 저는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민족에 대한 생각이 변하게 되었습니다. 

대륙과 대만이 분리된 지 몇 십 년이 지났지만 원주민과 외국인이라는 민족간의 감정이 아직까지 남아 있습니다. 대만 원주민에게 있어서 국민당은 대륙에서 온 외부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현재의 대만 총통이 대만 출신이어서 대륙에서 온 사람들은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습니다. 1997년 홍콩 반환이후 대만과 대륙이 서로 적으로 보고 있으나 그렇다고 해도 공용어(共用語)로 대만어(閩南語)를 사용하지는 않습니다. 복음이 민족간의 감정 문제를 해결하는 데 많은 공헌을 하였습니다. 서로간의 한(恨)을 복음으로 완화시켰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기독교인들이 앞장서서 그러한 상처들을 계속해서 복음으로 고쳐주게 되기를 진심으로 원하고 있습니다.

아내와 결혼한 지는 16년이 되었습니다. 제가 대학 4학년 때, 그리고 그녀가 대학 2학년 때 네비게이토에서 만났습니다. 아내는 대만대(臺灣大)에서 수석으로 공부하던 재원이었고  당시 유학준비를 하고 있었으나, 저를 만남으로 유학을 포기하게 되었습니다. 유학을 포기할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예수님을 영접했기 때문입니다. 장인어른은 사천성(四川省)사람이고, 장모님은 대만(臺灣)사람입니다. 당시 그들은 전통종교에 심취해 있었습니다. 결혼을 허락받기 위해 장인어른을 만나러 갔을 때, 장인이 제게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물었습니다. 나는 전도자가 되겠다고 말씀드렸더니 별로 탐탁해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결혼을 했고, 현재 아들 둘, 딸 둘이 있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하신 말씀에 순종한 셈이죠.

이: 목사님이 대만에서 현재 하고 있는 사역에 대해 소개해 주십시오.

왕: 저는 침례교 신학교에서 교수로서 사역한 지 8년이 되었습니다. 학교에서 신, 구약과 논리학을 강의하고 있는데, 성경에 대한 모든 것을 강의하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현재 박사논문을 쓰고 있으며, 교회에서 목회는 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내는 아이들 넷을 홈 스쿨링하고 있는데, 저도 가끔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저는 가정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가정에 충실하려고 노력합니다. 

현재 하고 있는 또 다른 사역은 매 주일마다 다른 교회에 가서 설교를 하는 것입니다. 순회사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만 교회 중에는 아직도 목회자가 없는 곳이 많습니다. 어떤 교회는 신학생이나 전도사가 설교를 하고 있어서 돌아가면서 그들을 도와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저에게는 두 가지 기도제목이 있습니다. 

하나는 박사논문을 마치는 것이며, 또 다른 하나는 뤼따오(綠島)에 가서 목회하는 것입니다. 그동안 저는 박사논문을 계속해서 쓸 것인지에 대해 무척 고민했었습니다. 포기할까도 생각했었지만 앞으로 문서사역을 하기 위해서는 논문을 마쳐야 한다고 생각하고 논문을 마무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다른 한 가지는 목회에 대한 기도제목인데, 그전에 타이중(臺中)에서 감리교 목사로 4년 동안 사역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설교 할 때 교단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습니다. 제가 목사가 되기까지 여러 교단을 거쳐 왔기 때문입니다. 장로교. 순복음, 그리고 감리교(목사안수를 받은 교단임)를 거쳐 지금은 침례교 목사로 사역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비록 여러 교회에서 순회 설교를 하고 있지만 앞으로 일정한 곳에서 목회를 하고 싶습니다. 신학교는 교회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앞으로 목회하고 싶은 곳은 대만에 뤼따오(綠岛)라는 섬입니다. 그 곳에 작은 교회가 하나 있는데 약 80여 명의 교인이 있습니다. 거주민은 약 3천 명 정도이며, 연간 관광객의 수는 30만 명에서 50만 명 정도입니다. 그 교회는 8년 동안 전도사나 목회자가 없었습니다. 제자들이 가지 않으려고 하니까 교수인 제가 가야지요. 저희 아이들 학교는 홈 스쿨링을 하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섬은 원래 흉악범들을 수용했던 곳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아내는 그곳에 가는 것을 아직까지 반대하고 있습니다. 
 

이: 앞으로 문서사역을 하실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 사역을 위해서 구체적으로 어떤 준비를 하고 계시는지요?

왕: 문서사역은 지난 7년 동안 해 왔습니다. 예전에 잡지사에서 편집장으로 일하면서 일반도서나 단행본, 잡지, 청소년 잡지 등을 편집한 적이 있습니다. 뤼따오(綠島)로 가더라도 글을 써서 인터넷으로 보급할 수 있기 때문에 어느 곳이든지 인터넷이 되는 곳에서는 문서사역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에 인터넷은 앞으로 문서사역에 있어서 중요한 도구가 될 것입니다. 앞으로 문서 사역은 인터넷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미국에서 유학하고 있는 대만 대학생으로부터 이메일이 왔습니다. 그는 중문으로 된 설교나 글을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미국에 있는 중국인 유학생에게 나누어주려고 한다는 것인데. 저는 그 때 “미국에는 더 많은 자료가 있을 텐데 굳이 중문으로 된 문서가 필요로 할까”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중국인들이 비록 미국에서 영어로 공부를 하고 있기는 하지만 중문으로 된 책이 그들이 읽고 이해하는 데 편하기 때문에 중문으로 된 책을 선호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200페이지 정도의 책 한 권을 대만에서 출판하려면, 한국 돈으로 340만 원정도가 듭니다. 그러나 인터넷에 올리면 돈이 들지 않습니다. 전에는 책을 먼저 만든 후에야 인터넷에 자료를 올렸지만, 이제는 먼저 인터넷에 올리고, 독자들의 반응을 살핀 후에 반응이 좋으면 책을 만드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넷만 있으면 문서사역을 하는 데는 제가 뤼따오(綠島)에 있든지, 학교에 있든지 장소가 중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미 대만에서는 누군가에 의해서 인터넷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현재 260여 명이나 가입했다고 합니다. 인터넷 교회는 약간의 위험성을 지니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사이트를 운영하는 담당자가 누구인지 잘 모르지만 여러 형제자매들이 이 교회를 운영하도록 도와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또 대만의 어떤 기독교인이 인터넷 서버회사를 운영하고 있는데 이미 많은 사역자들이 이 사이트를 이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 회사와 계약을 해서 7년 동안 인터넷에 글을 올리려고 합니다. 그 사이트에 들어가는 자료를 눈으로 보는 것은 무료이지만, 만약 그 자료를 다운로드를 받으려면 요금을 지불해야 합니다. 저는 이곳에서 10% 정도의 저작권료를 받게 됩니다. 

이: 앞으로 중국인들에 대한 선교 전망을 어떻게 보시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왕: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다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인터넷 선교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중국도 이제 인터넷이 매우 발달되어 있는 나라입니다. 중국인들에게 맞는 내용을 올려서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알고 보면 중국인들도 고난을 많이 받아서 상처가 많은 민족입니다. 근대시기 100여 년 동안 서양과 일본의 침략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중국이 강국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강국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홍콩이 대륙에 귀속되는 것은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영국이 홍콩을 떠나므로 인해 정치, 경제 등 모든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식민지 이후에 발생할 수 있는 문제가 있는데, 그것은 중국인들이 자기가 가야 할 길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도 해방이후 일본이나 미국의 통치를 받는 것이 아닌데도 반일 반미 감정이 남아 있는 것처럼 중국, 대만, 홍콩에도 그러한 감정이 있습니다. 이러한 부분은 치료받아야 합니다. 이러한 감정문제로 인해 감상에 젖어있을 때 사단의 공격을 받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이런 문제는 해결될 수 없습니다. 감정적인 부분을 모두 버리는 것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에베소서 2:14에 예수님의 죽음은 우리의 화목을 위함이며, 그 분의 죽음으로 막힌 담을 헐어버리셨다고 했습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엡2:14)

대만 교회 중에 일부는 중국어(普通话)로, 일부는 대만어(闽南语)로 설교를 하는데, 얼마 전에 중국어로 설교하는 교회들이 모여서 대만 사람들에게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습니다. 이것은 중국에서 건너 온 기독교인들이 대만 본토사람들에게 시도한 최초의 화해 제스처였습니다. 대만에 온 장개석, 손문 등 모두 기독교인이었습니다. 현재 중국의 위상이 높아져 주변국가에게 끼치는 영향이 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중국이 복음화 되면 대만에도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설날 수련회에 참석한 분들은 용감하고, 결단력이 있으며, 용기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 제가 대만으로 갈 때 어머니는 울면서 반대했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 온 이분들(대륙에서 온 근로자들)은 용기와 결단이 있었기에 사랑하는 가족들과 떨어져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한다면 같이 있어야 하지만, 가족에 대한 사랑 때문에 떨어져 살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들이 돈을 벌지 못하면 문제가 생길 것입니다. 중국인들에게 가르칠 때 돈 모으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가르쳐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입니다.  

한 기업가가 있었습니다. 그는 컴퓨터회사의 사장이었는데 55세에 죽었습니다. 그는 중국의 여러 마을을 다니면서 가난한 동네에 컴퓨터를 설치해주고 이용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리고 농촌에 거하는 많은 인재를 발굴하여 일만 명의 학생들을 길렀습니다. 그런 후에 농촌 마을은 부자가 되었습니다. 농촌 주민들은 인터넷을 통해 농산품을 팔았습니다. 그는 ‘인터넷은 가난한 자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다.’라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인터넷 선교야말로 가장 좋은 선교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방문이 저에게는 한국을 알 수 있게 된 좋은 기회였습니다. 수련회에 참석한 참가자들도 고향을 떠나서 예수를 믿게 된 점이 저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을 사귀고 교제하는 가운데 마음이 통한다고 봅니다. 수련회를 개최해 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 모임에 참석하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또 수련회에 참석한 참석자들을 위해서도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어떻게 협력해서 사역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문서사역에 있어서 많은 것을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대만 교회가 한국 교회와 어떤 부분에서 협력 사역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왕: 현재 중국인이 대만에 오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많은 중국 여성들이 대만 사람과 결혼해서 대만에 와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만의 정책은 대륙과 멀리하는 것이라 그들은 많은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볼 때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중국인들은 돕는 사역을 누군가는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인들이 대만에 와서 중국인들을 위한 가정교회에서 사역하면 좋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분들이 대만에 와서 생활할 때 좋은 점은 대륙과 언어, 문화가 같다는 점입니다. 글자도 2천 자 정도만 다를 뿐입니다. 대만은 중국 복음화의 좋은 전초기지라고 여겨집니다. 대만은 한국처럼 춥지 않기 때문에 생활하기도 매우 편리합니다. 그리고 대만인은 아주 선량합니다. 그래서 대만에 와서 언어훈련이나 선교훈련을 받는 것이 좋습니다.  대만이나 한국은 생활수준이 비슷해서 적응하기 좋은 곳이므로 대륙에 먼저 가기보다는 대만을 거쳐서 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대만의 신학교에 가서 선교언어 등을 익히면 사역하는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대만은 중국 선교사가 훈련받을 수 있는 좋은 기지입니다. 

이: 대만 침례교신학원의 선교학 석사과정 소개해 주십시오.

왕: 침례교신학교에서 선교학 석사과정을 개설했습니다. 학교의 교육방향이 세계 선교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가정단위로 오시는 분들을 위해서 아파트도 4곳을 준비했습니다. 언어연수를 위해서 오시는 분도 그곳에서 1년 동안 생활하면서 언어연수를 할 수 있습니다. 

이 학교에 들어오려면, 신청서류를 통한 서류심사와 면접을 통해 선교사를 우선순위로 선발하고 있습니다. 언어연수 과정은 1년으로 선교언어를 집중적으로 배울 수 있습니다. 싱글로 오시는 분은 싱글 룸(2인 1실)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저를 이번 중국인 수련회 강사로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문서사역을 통해 좋은 협력과 나눔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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