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식년은 무슨 안식년!
선교사에게 안식년이 꼭 필요한 것인가? 현대 사회에서 안식년을 향유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후원하는 교회도 교인들도 안식년을 가지기가 어려운데 후원받는 선교사가 안식년을 보낸다는 것이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거의 10여 년을 사역하다가 상황에 밀려 첫 안식년을 지내게 되었다.
안식년! 꼭 해야 하는가?
선교사는 누구이고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선교사는 이 세상을 본받기 위해서 사는 사람이 아니라 이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도록 부름받고 보냄받은 사람이다. 그러므로 선교사의 삶을 언급할 때 세상이 어떻게 하는가 하는 관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일차적인 기준으로 고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나님은 친히 안식을 실천하시고 우리에게 안식을 명하시고 계셨다. 어떤 의미에서는 안식하실 필요가 없으신 그분이 친히 쉬셨다.(그분은 피곤하지 않으신 전능하신 분이시고 또 재충전과 업그레이드가 전혀 필요치 않으신 전지하신 분이시다.) 우리로 하여금 7일마다 안식일을, 7년마다 안식년을 그리고 50년째인 희년을 하실 것을 명하셨다. 물론 구약 성경을 오늘 시대에 적용하는 데는 신학적인 견해 차이에 따라 각자 다를 수 있다. 그러나 구약의 가르침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신앙적인 패러다임을 제공하고 있기에 그것을 오늘 우리의 삶 속에 패러다임적 적용을 하는 것은 타당하고 또 필요하다고 생각된다.그러면 안식년을 주신 하나님의 의도와 목적이 무엇일까? 여기서 안식년에 대한 신학적인 입장을 정리하기보다 실제 안식년을 보내면서 배우고 느낀 교훈을 나누고 싶다.
우리는 쉽게 내가 하는 일에 종속되기 쉬운 경향성을 지니고 있다. 오늘날 세계화와 더불어 서구적인 가치관이 마치 보편적인 가치관인 것처럼 우리의 모든 삶을 강제하여 모든 것을 생산과 이익이라는 관점으로 바라보며, 화폐경제의 발달로 모든 삶의 결과를 화폐적 가치로 측정하려고 한다. 이러한 세상을 살면서 우리는 내 자신이 일의 주인이 되든지 아니면 일이 나의 삶의 주인이 되는 실수를 범하기가 쉽다. 그러나 사실 이 두 가지 다 건강한 상태가 아니다. 안식년은 일이 나의 주인이 아닌 것뿐만 아니라 내가 일의 주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천명하고 확인하는 귀중한 작업을 하는 과정이다.
군대에 가서 사격 연습을 할 때 먼저 영점 조준 사격을 해서 이 총이 제대로 조준이 되는지 알아보고, 제대로 조준되도록 조정을 한 다음 실제 사격을 한다. 이처럼 안식년을 통해서 우리의 삶의 영점 조준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가 안식하는 시간을 보내지 않을 경우 우리는 상황과 가치를 바르게 판단하지 못하는 실수를 범하기 쉽다. 나는 누구 못지 않게 일 중독자처럼 지난날들을 살아왔고 태어나서 한 번도 쉼이라는 것을 제대로 가져보지 않고 지냈고 그것이 마치 성공적인 삶인 것처럼 생각했었다.(심지어 군대를 갈 때도 입대 전날까지 학교를 다니고 휴학하고 제대한 다음날 곧바로 복학을 해서 수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쉰다는 것이 바로 게으름으로 생각이 되어서 죄책감에 사로잡히는 경향을 내면에서 지속적으로 발견했다.
그러나 제대로 안식하지 않을 경우 우리는 쉽게 일의 노예이자 자신이 자기 인생의 왕이 되는 자리에 가 있기가 쉽다. 쉼 없이 일을 하게 될 경우 내가 일을 하는지 아니면 일이 나를 이끄는지 모르고 지내게 된다. 또 나의 모든 상황과 심지어 미래까지도 내가 주관하는 것처럼 행동하게 되는 마치 자신이 자신의 인생의 주인인 것처럼 생각하기가 쉽다. 안식년 없이 많은 일을 한 목회자들과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는데 그들은 대부분 자신이 원치 않지만 그 조직의 왕으로 군림하고 있는 모습을 많이 보게 된다.
한국 사회의 많은 사회적인 병리현상이 바로 안식할 줄 모르는 데서 기인하는 것 같다. 쉼 없이 살도록 서로를 독려하는 것이 상당한 물질적인 번영을 가져왔는지는 모르지만 그 이면에 많은 파괴를 가져온 것도 사실이다. 쉼이 없는 삶이 내면적인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살게 만들기에 이웃에 대한 배려도, 상대에 대한 감정이입도, 참사랑도 긍휼도 불가능하게 만들어 가정과 사회에 수많은 병리현상을 낳게 만드는 것 같다. ‘빨리빨리’가 한국인의 대명사가 된 이면에는 바로 이런 강박관념이 자리잡고 있고 이것이 바로 우리 모두를 피곤한 삶으로 몰아넣게 되는 것 같다.
안식을 제대로 하지 않을 때 오히려 비효율적인 인생 경영을 하게 되기가 쉬운 것 같다. 나는 어린 시절 방과 후에는 꼭 가축에게 먹일 풀을 뜯으러 다녔다. 풀을 베러 가기 전에는 반드시 낫을 갈아서 가야 한다. 낫을 갈지 않고 풀을 베러 가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아마 아주 힘이 들어서 조금밖에 풀을 베지 못하고 돌아오게 될 것이다.
성경은 말한다. 무딘 철 연장 날을 갈지 아니하면 힘이 더 드느니라. 오직 지혜는 성공하기에 유익하니라.(전10:10) 안식년은 무뎌진 자신이라는 연장을 가는 시간인 것이다. 부지런한 자의 경영은 풍부함에 이를 것이나 조급한 자는 궁핍함에 이를 따름이니라(잠21:5)라고 말하고 있다. 부지런하게 사는 사람과 조급하게 사는 사람은 외관상 비슷하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이다. 안식년을 가지는 이유는 바로 부지런한 삶을 살기 위한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무뎌진 연장으로 일을 하면 자기도 힘이 들고 또 보는 사람도 힘이 들며 성과는 별로 없게 된다. 영적 사역을 하는 데 있어서 이처럼 어리석은 것은 없다. 없는 물을 퍼올리기 위해 샘의 바닥을 긁는 것이 아니라 흘러 넘치는 샘이 되어 사역을 할 때 많은 사람들에게 참된 유익을 줄 수 있다. 어디에서 어떻게 안식하느냐 하는 것은 개인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조급한 자로서의 사역이 아니라 부지런한 자의 사역이 되어 많은 열매를 얻기 위해서라도 안식을 잘 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안식을 통해서 우리는 모든 것을 투입과 산출이라는 공식에 대입하여 생산과 수익을 측정하는 이 시대의 정신을 넘어서 진정한 성경적인 가치에 입각한 삶을 살고 또 그것을 전파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안식년의 위기, 무엇이 어떻게 찾아오는가?
한국 선교사의 경우 안식년을 사실 체계적으로 준비하고 돌아오기가 힘든 면이 많이 있다. 우선 현실적으로 떠나기 하루 전까지 바쁜 것이 일반적인 상황이고 또한 안식년을 가는 것도 민망한데 미리부터 안식년을 가기 위해 준비한다는 것이 사뭇 죄스럽게 생각되기도 한다. 그래서 대개 마치 출애굽을 하듯이 안식년을 떠나오게 되는 것 같다.
사역을 할 때에는 정신 없이 일에만 몰두하고 지내다가 막상 안식년을 가지게 되면, 일순간 그 동안의 모든 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자유로워진다는 것이 한편은 참 좋은 것이긴 하지만 또한 위험이 따라온다. 그 동안 일 속에서 누리던 성취와 일로 인해 가졌던 소속감과 정체성이 한꺼번에 사라지고 오직 자신과 가족의 현실적인 문제와 부딪히게 된다. 사실 이 때부터 많은 위기가 찾아오는 것 같다. 사역 현장을 떠나서 자신과 가족의 문제에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자신에게 집중하게 되는 시기를 맞이하게 된다.
자기 집중
자신에게 집중하는 것이 자신의 충실화를 가져올 수 있는 좋은 기회이지만 초기에는 이것이 위기로 다가오기가 쉽다. 많은 경우 선교사가 현지를 떠나서 자기를 볼 경우 난 너무 낙후되어 있다, 난 가진 것이 하나도 없다, 난 뭔가? 등등의 생각에 휩싸이기가 쉽다. 세상적인 기준으로 자신을 바라볼 때 한심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자기 연민
자신에 대해서 상대적인 빈곤감과 열등감, 그리고 심한 박탈감을 느끼면서 자신의 처지와 형편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과 부정적인 관점을 가지게 된다. 난 너무 고생을 했다! 난 그 동안 너무 세상을 모르고 살아온 것 같다! 난 너무 바보처럼 일만 한 것은 아닌가? 난 너무 실속을 차리지 않은 것 같다! 하는 등등의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게 되면서 깊은 자기 연민에 빠지게 되기 쉽다.
자기 강화를 위한 이기심의 발동
이와 같은 현실과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상황 인식은 이기적인 관점으로 생각을 몰고 가게 되는 것 같다. 이제부터는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 나도 실속을 좀 차리자! 나도 뭔가가 되어야겠다! 나도 객관적으로 뭔가 내세울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하는 등등의 생각들을 하게 된다. 이때 병리적 바이러스가 침투하게 되는 것 같다. 바로 안식년 선교사가 걸리기 쉬운 질병인데 필자는 이를 바디매오 증후군이라고 명명해 보았다. 바디매오는 소경 거지였다. 그의 문제는 바로 소경이고 그래서 거지라는 것이다. 안식년 선교사도 첫째는 자신이 앞을 잘 볼 수 없다고 생각하기 쉽다. 바로 지식과 정보에 대한 결핍감을 느끼게 된다. 앞을 보는 능력도, 내면을 성찰하는 능력도 결여되고, 시대에 뒤져 있고, 아는 것이 너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 물론 안식년 선교사가 지식과 정보에 있어서 보충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 그런 상식적인 선을 넘어서서 정확한 현실 인식보다는 자기 연민을 해결해 가는 과정으로서, 현실보다 더욱 비관적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그런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바람직하지 못한 방향으로 자신을 강화시키길 원하게 되는 것이다. 둘째는 나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기 쉽다. 난 가진 것이 없다! 선교의 자원이 부족하다! 후원 교회와의 지원으로는 어림도 없다! 앞으로는 어떻게 대책을 세워야 하나? 하는 등등의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경제적, 관계적, 신분적인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서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하고 외교적, 정치적인 시도를 할 채비를 하게 되는 것 같다.
이기심에 입각한 대안 탐색과 선택
그리고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방법을 모색하게 된다. 그 결과 처음과는 다르게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학위과정을 들어가거나 아니면 선교사로서의 사역보다는 목회 자리를 알아보거나 또는 바람직하지 않은 동기로 선교지를 다른 곳으로 바꿀 시도를 한다. 하나님의 왕국 차원에서 더욱 요긴하고 필요한 것보다는 자신의 입지를 강화시켜줄, 자기를 섬기는 기회들을 찾고 선택한다는 것이다.
합리화와 이해자들의 설득
이런 활동과 동시 이런 시도들을 자신에게 납득시키고 또 다른 관계자들에게 납득시킬 여러 가지 노력들을 하게 된다. 이런 것들을 하기 위해서 다양한 지식과 경험 그리고 사례들을 동원한다.(합리화를 위해서 지성을 사용하는 것이 죄인데 대개의 경우 이런 죄악은 자각 증세를 별로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더욱 심각하다.) 그래서 모든 과정을 합리화시키고 그것을 자신과 주변의 관련자들에게 설득하는 작업을 해 나가게 된다. 이런 과정을 일컬어 안식년 선교사의 심리적 악순환이라고 생각을 해 보았다. 안식년 선교사의 바디매오 증후군은 이런 심리적인 감염의 경로를 통해서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게 되는 것 같다. 바로 이런 것들에 대한 사전 예방 접종과 임상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을 경우 안식년의 초기는 참으로 어려운 시간으로 점철될 수도 있게 된다.
안식년 어떻게 보내야 하는가?
안식년의 중요한 과제는 쉼과 동역자와의 관계의 강화 그리고 재충전이다. 안식년에서 가장 중요하게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문자 그대로 안식하는 것이다. 바로 내가 내 일의 주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주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분께 우리 자신을 내어 드리고 그분의 주되심 안에서 쉼을 누리는 것이다. 일 중독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하나님이 전부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자신이 그 일부가 되길 원하는 메시아 증후군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사역에 열중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쉬게 될 때 내가 게으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등으로 인해 잘 적응이 되지 않는 경우가 있어 자꾸 다른 일들을 찾게 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안식년은 바로 안쉴년이 되고 더 지친 상태에서 빨리 사역자로 돌아가고 싶다라는 말을 자주 하고 또 그것이 마치 선교지에 너무나 잘 정착한 선교사의 표지인 것처럼 말하기도 한다.
현대를 살아가면서 우리는 내가 무슨 일을 하는가? 하는 것으로 우리의 정체성을 인정 받고, 또 바쁠수록 중요한 것처럼 생각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하는 일 이전에 내가 이미 하나님 앞에서 사랑받는 자라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고 또 주장하여 몸과 마음이 새롭게 되어지는 것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사역은 내가 누구인가라는 나의 존재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견고한 자기 인식이 사역자에게 무엇보다 필요하다. 우리는 항상 내가 하는 일로써 나의 중요성을 인정받고, 내가 차지한 위치로 나의 지도력을 나타내려고 하는 위험 앞에 노출되어 있다. 내가 아무 행한 바가 없을 때, 나를 의로 여기셨던 하나님 앞에서 쉼을 누리고 또 그분의 나를 향한 치유하심과 회복하심 가운데 나아가서 나의 육체와 영혼과 정신과 감정이 온전히 그 분의 본래적인 창조의 상태로 회복되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 선교는 이렇게 마음과 육체와 정신과 영이 온전히 회복된 사람이 그 주님을 보여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식년을 와서 현실적으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아마 파송하고 후원한 교회와 동역자들에게 사역을 보고하는 일이 될 것이다. 그 동안 다양한 방법으로 동역한 분들은 선교에 대한 현장 소식이 궁금해서 한시라도 빨리 듣고 싶어할 것이다.(반대로 귀국해도 별로 우리의 선교 사역에 관심을 보이지 않을 때도 있는데 그럴 때가 더욱 낙심이 되기도 한다.) 장기 사역을 위해서 동역자들과 같은 선교 의식과 목표를 가지고 연합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선교 보고를 하는 것은 뒤로 미룰 수 없는 일이다. 본국으로 돌아와서 우선 한 두 주일 정도 충분히 휴식을 하고 나서 이 일을 하는 것이 좋다. 귀국 준비를 하느라 지칠 대로 지친 상태에서 자칫 제대로 자료와 심신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하게 될 경우에는 좋지 않은 결과를 낳을 수도 있으니까 우선 회복을 위한 쉼을 누리는 것이 필요하다. 일단 한 두 주일 정도 쉬고 나서 몇 주간에 걸쳐서 사역 보고를 하고, 이 때 앞으로의 안식년의 계획도 함께 나누어서 빠른 시간 내에 안식과 재충전의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그리고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할 부분이 바로 재충전의 과정일 것이다. 요즘은 대부분의 선교지에도 인터넷이 연결되어 정보가 오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는 본국과 선교지와의 정보의 격차가 심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이 된다. 그래도 많은 경우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고 또 자신이 행한 사역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와 앞으로의 사역에 대한 방향을 잡는 일 등을 하는 재충전의 과정을 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무디어진 철 연장을 잘 가는 것이 중요하다. 지성과 영성을 새롭게 하고 육체를 새롭게 다듬는 전인적인 재충전의 과정을 걸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정서적, 문화적인 필요를 채우는 것도 필요하다. 그리고 나서 지적이고 관계적인 필요들을 채워 나가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
참된 안식년의 지표
자기 강화가 아니라 자기 부인의 길로 더욱 나아가길
안식년을 보내는 이유는 다른 한편 사역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고백하고 또 천명하고 그것을 주님께서 확정하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바로 안식년을 통해서 나의 사역과 위치와 영역이 내 것이 아니고 나는 다만 청지기일 뿐이라는 것을 고백하고, 주님의 주권을 인정해 드리는 재 신임을 받는 과정인 것이다. 쉼을 얻고 한편 자신을 상대화시키는 과정이 되어야 할 안식년이 잘못하면 오히려 자기를 섬기는 자기 강화의 길로 치닫기가 쉬운 위험을 많이 보았다.
주님은 우리로 하여금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삶으로 우리를 초대한 것이지 우리가 대단한 사람이 되고 우리가 높은 위치를 차지하는 삶으로 초대하신 것이 아니다. 물론 그런 것들이 주님의 은혜로, 일한 결과로 주어질 수는 있겠지만 그런 것들이 우리를 부르신 본래적인 의도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는 우리로 하여금 계속해서 부추긴다. 너 자신을 섬겨라! 오늘 이 시대에도 예수님을 시험했던 사단의 시험은 여전히 강력하게 당신의 종들, 특히 안식년 선교사들을 유혹하고 있다.
자기를 부인하는 것과 자기를 강화하는 것의 차이, 자기를 개발하는 것과 자기를 강화시키는 것의 차이는 무엇인가? 외형적으로는 둘 다 꼭 같이 보인다. 그러나 내면적으로 엄청난 차이가 있는데 그 차이는 바로 섬기고 주기 위해서 내가 무언가를 시도하는가 아니면 우선 내가 뭔가 되고 나서 줄 것을 생각해 볼 것인가 하는 것의 차이라고 할 수 있겠다. 섬기고 주기 위해서 행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십자가의 삶, 제자도의 삶이 아니라 이 시대의 정신을 따르는 삶이 될 것이다. 끊임없이 섬김과 줌을 위해서 사는 삶을 연습하고 또 실천하는 것이 필요하다.
두 번째는 능력과 자원의 부족이라는 부분이다
사실 우리 모두는 소경과 거지였던 바디매오와 같은 자였다. 겉옷을 두르고 길가에 웅크리고 있던 빈한한 자와 같았다. 바디메오가 능력과 지성으로 구원받은 것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우리의 자격과 능력으로 그런 자리에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바로 주님에 대한 믿음이 눈을 뜨고 보게 하였고, 주님을 쫓게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능력이 부족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바로 주님을 향한 온전한 믿음 가운데 서 있지 못하는 것이 본질적인 문제인 것이다.
문제는 어린 아이와 같은 믿음을 가지지 못하는 것이다. 어린 아이(little child)와 아이(child)의 차이는 무엇인가? 어린 아이는 아빠 엄마가 못하는 것 모르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상태이고, 아이는 이미 엄마 아빠도 못하는 것, 모르는 것이 많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버린 상태가 아닌가 하는 생각된다. 그런 사람은 이것이 가능할까 하며 자기 안에 있는 자원을 찾는 시도를 하게 되는 것이다.
나에게 어떤 힘이 있는가, 어떤 재능이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바로 내가 믿는 하나님이 가지신 능력과 그 분의 성품을 향한 전폭적이고 온전한 신뢰 가운데 있는가 하는 것이 본질적인 문제이다. 자신의 부족하고 어리석음을 탓하지 않고 온전하게 주님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설 수 있고 그것이 우리의 선교 사역을 위한 최대의 자원이요 영향력이 되는 것이 진정으로 회복되어야 한다. 또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 리더십인 것처럼 생각하는 위치적 리더십이 아니라 주고 섬기는 것 자체가 리더십이라는 영향력의 리더십을 추구하는 것이 또한 요구된다.
왜 우리는 자기를 부인해야만 하는가? 그리고 어떻게 자기 부인을 할 수 있는가? 우리가 우리 자신을 부인하지 않는다면 결국 우리 자신의 일을 하는 것이 되고 그럴 경우에는 결국 주님의 일을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떻게 우리 자신을 부인할 수 있는가? 그것은 우리가 전심으로 성령을 기다리고 성령의 임재를 온전히 누리고 성령의 능력으로 사역하길 열망함으로 주님 앞에 서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주님께서는 그런 자를 찾으시고 그런 자에게 성령을 부어 주셔서 능력을 베푸시기 때문이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선택이 아니다. 바로 주님의 능력으로 사역하길 원하는 갈망이고 결단인 것이다. 왜 오늘날 그토록 주님의 능력이 제한적으로 나타날까? 왜 주님은 우리를 제한적으로 밖에 사용할 수 없는 것인가? 그것은 우리가 자기 부인의 길로 들어서기 보다 너무 쉽게 자기 강화의 길로 나아가기 때문이 아닐까?
안식! 그것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큰 축복이요 그 분의 우리를 향한 기대를 온전히 이루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이다. 그러나 우리의 원수는 이 안식을 위해 안식년을 가지는 선교사에게도 그의 치명적인 덫을 놓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깨어 있는 마음으로 올바른 안식을 가짐으로 몸과 마음이 진정으로 새로워져서 힘찬 함성과 함께 주님이 주신 밭에서 주님의 일을 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한다.
신갈렙 / ANN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