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이번호 
북쇼핑
2003.6.20  통권 82호  필자 : 장에스더  |  조회 : 3056   프린트   이메일 
[특집] - 특집/ 사스가 중국선교에 미치는 영향
사스가 중국에게 가져다 준 것

하나님께서 중국을 사랑하신다는 것은 중국의 모든 기독교인들의 흔들림 없는 믿음이다. 우리의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며 이것을 한 글자로 표현한다면 바로 “사랑”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구가 13억이나 되는 중국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속하실 큰사랑의 증거가 될 것이다. 

그러나, 2003년 봄에 중국은 사스라는 너무도 갑작스런 큰 재난을 만났다. 사스는 순식간에 모든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으며, 그로 인해 엄청난 공포가 중국 전역을 엄습하였다. 마치 공기 속에도 죽음의 바이러스가 날아다니는 것과도 같았다. 항상 인산인해로 북적거리던 북경은 일시에 오간 데 없이 사라져 버렸다. 사람이라고는 그림자조차 찾아보기 힘든 적막한 수도의 모습은 도저히 우리가 알던 그 북경이라고 믿을 수 없었다. 주안에 하나된 형제자매라면 모두가 이러한 시련 앞에서 고난을 받고 있는 중국동포를 위해 하나님께 간절한 기도를 드리면서, 또한 사스를 중국에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를 원했을 것이다. 우리의 주님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앞으로도 영원토록 변함 없이 전능하시다. 만약 주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셨다면 사스는 나타날 수 없었기에 그동안 우리 마음속에 이에 대한 의혹이 생긴 것도 사실이다.

시간이 차츰 흘러가면서, 하나님의 섭리하심도 점차 드러나고, 우리의 마음속에 의구심도 조금씩 풀려가고 있다. 사스는 바로 하나님께서 중국에게 주시는 가장 시기 적절한 채찍이었던 것이다. 이 채찍에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 가득 담겨 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사스를 통해서 중국정부는 전에 없이 국민의 생명을 중시하고, 국민의 알권리를 존중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것은 엄청난 고통을 대가로 치른 것이다. 솔직히 말해 처음 광동에서 사스가 발생했을 때만 해도 정부는 여전히 쉬쉬하며 이를 감추기에 급급하다 사스의 전염을 초기에 진압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쳐버렸다. 사실 중국의 방송매체가 국가의 통제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지에 대해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바이다. 부패한 정부의 관료들은 국민의 복지는 안중에도 없고 자신의 정치적인 업적을 세우는 데만 신경을 쓴다. 사고가 나면 숨기고, 윗 전에는 좋은 일만 보고하고 나쁜 일은 보고조차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사스는 정부의 관료들로 하여금 모두 지난날의 이와 같은 잘못을 고치게 만들었다. 정부는 이례적으로 4월 20일 이후, 매일 한 차례씩 적어도 24시간 이내에 사스의 최신상황(단지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더라도)을 보고하였다. 또한 위생부장관 짱원캉(張文康)과 북경시장 멍쉐농(孟學農), 그리고 이와 관련된 관원들이 관료로서는 보기 드물게 파면을 당하였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 “사스를 통해서 처음으로 중국인의 생명이 가치 있는 것이라는 것을 느꼈다. 이것은 바로 사회가 발전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두 번째, 사스의 경과를 지켜보면서 사람들은 “황금만능주의”가 가져온 결과에 대해 반성을 하게 되었다. 

개혁개방 이래로 중국인과 중국 정부는 온통 “경제”에만 마음을 빼앗겨서 GDP만 신경을 써왔다. 일반 국민들도 돈벌이에만 급급해서 다른 것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확실히 중국인의 돈주머니는 나날이 두둑해졌지만, 반대로 다른 귀중한 것들을 잃어 버렸다. 일부 지식인의 자성의 소리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쓸데없는 기우로 치부되고 말았다. 그러나 사스가 이 모든 것을 변화시켰다. 중국인에게 “세계화”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깨닫게 하였다. 인터넷에 들어가 보면 많은 일반 중국인들의 진실된 반성의 글들이 올라와 있다. “세계화는 단지 경제의 세계화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중국은 WTO 뿐만 아니라 WHO도 알아야 한다.” 등이 바로 그것이다. 중국의 공중위생과 안전, 건강복지, 사회문화와 행동의 규칙들을 모두 국제적 수준에 맞추어야 비로소 중국의 세계화에 진정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제45차 WHO에 참가한 중국대표단은 중국정부가 앞으로 80억원을 투자해서 대규모의 질병방역센터를 건설하여 공중위생체계를 개선할 것이라고 밝혔다. 만약 사스가 발생하기 전이라면 이런 일은 일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정부와 국민 모두가 “돈”보다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는 반성의 기회가 된 것이다.

세 번째, 음식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돌이켜보게 하였다. 

음식문화는 중국전통문화의 중요한 구성 요소이다. 중국민족은 오랜 역사를 통해서 중국의 음식을 최고의 요리로 발전시켰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몸에 좋다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먹어 치웠다. “사스 바이러스는 동물에서 전염되었다”는 사실과 야생동물을 먹는 것이 가장 보편적인 광주가 사스 발생의 근원지라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인간은 동물과 평화롭게 공존해야 한다. 인류는 야생동물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보호해야지 무조건 잡아먹어서는 안 될 일이다. 인간은 자연에 경외심을 가지고 대해야 할 것이다. 식탁에 풍성하게 차려진 혐오식품을 먹은 대가는 너무 참혹했다. 사스의 발생은 중국인의 별난 음식을 선호하는 것에 대한 경고일지도 모른다. 사실 과거 몇 년간, 환경운동가와 보건위생전문가들의 경고와 지적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그러나 혐오음식을 즐겨먹는 사람들은 그들의 말을 곧이 듣지 않았다. 때문에 환경운동가와 야생동물보호운동가들은 절망 가운데 빠지기도 하였다. 이번 사스는 절망에 빠진 그들에게 큰 힘을 실어줄 수 있을 것이다.

네 번째, 아무 곳에서나 가래침을 뱉는 비문화적인 행위가 전대미문의 질시와 처벌을 받게 되었다. 

중국인의 가래침을 뱉는 습관은 매우 유명하다. 정부가 아무리 노력을 기울이고, 뜻 있는 사람들이 입을 모아 이를 시정하려고 하여도 잠시 뿐, 가래침을 뱉는 습관은 여전히 고쳐지지 않았었다. 어찌보면 우리는 거대한 가래침 속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사스의 주된 전염경로가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타액과 재채기라는 사실이 이러한 비문화적인 습관을 바꾸게 하였다. 벌금도 열 배 내지 수십 배가 늘어나서 광시(廣西)성의 난닝(南寧)市는 최고 오백원(한화 약 8만원)의 벌금형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하였다. 올 봄에 찾아온 사스는 중국인들을 문명의 세계로 끌어내었다. 

다섯 번째, 의료진과 환자와의 관계를 다시 설정하였다. 

최근 들어 여러 가지 이유로 의료비용이 대폭 증가하여 병이 걸려도 치료를 받지 못하는 사례가 늘어났다. 의사들이 뒷돈을 받는 일도 다반사가 되었다. 이를 제지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별 실효를 거두지 못하였다. 이 ‘뒷돈’이 수술을 받아야 할 때 생기는 여러 가지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만능열쇠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스를 통해서 의료진들은 다시 한 번 그들의 직업과 사명을 돌이켜 볼 수 있게 되었다. 많은 의료진들이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귀중한 생명을 헌신하면서까지 사스의 확산을 막기 위해 주력하였다. 그들의 최선을 다하는 모습과 용기 있는 태도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그들을 “백의의 천사”로 다시 한 번 각인시켜 주었다. 

여섯 번째, 사스는 분명한 재난이다. 

이는 오히려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어떠한 정치적인 위기나, 다른 이익집단 같은 적대세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때문에 사회안정과 민족의 단결, 그리고 국가의 안전에 위협이 되지는 않는다. 반대로 사스는 정부와 국민이 손에 손을 맞잡고 함께 이 난관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하였다. 21세기 들어 중국이 처음 맞은 대 재난에 오히려 감사할 뿐이다. 중국인은 지난 1세기 동안 많은 천재지변과 인재를 겪어왔다. 국가가 안정되고 사회가 질서를 지키기만 한다면 사스를 물리치고 곤경에서 벗어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믿으며 또한 기도할 것이다.

결론

결코 사스가 중국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사스의 기세가 점차 수그러지면서 많은 문제들이 또 다시 발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스는 일시에 중국 사회가 오랫동안 외면해 오던 문제들을 들추어내었고, 황금만능주의에 물들어 버린 모든 중국인들에게 경종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자기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 이것은 바로 우리에게 아직 희망이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요, 또한 하나님께서 중국을 사랑하시고 돌보아 주고 계시다는 증거가 되는 것이다.


장 에스더/ 중국 성도

    인쇄하기   메일로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