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로 인해 중국이 공황상태에 빠졌다고 한다.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그곳에서 고통 당할 믿음의 지체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다. 인간적으로 형언치 못할 연민의 정을 금할 수 없다. 유가족들에게 주님의 위로하심이 함께 하시며 병중에 있는 환자들에게 주님의 유쾌케 하시는 치유의 은총이 임하기를 기도 드린다. 중국에서 주님을 섬기는 현지인 동역자들과 선교사들에게 주님의 보호하시는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기도 드린다. 그리고 사스가 중국선교와 중국선교사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무엇인지를 묵상하는 가운데 정리해 본다.
중국선교를 전진하게 하시는 섭리의 손길
하필이면 왜 중국에서 사스가 발생하였을까? 위생문제라면 이전의 중국 상황은 지금보다 훨씬 열악하지 않았던가? 사스는 물론 발생지역의 불결한 환경에서 발생하였을 것이다. 어느 동역자가 사스가 발생하기 한 달 전 사스가 발생한 광동성의 그 지역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곳은 모란 시장과 같이 동물을 사고 파는 곳인데 너무나 더러워서 토할 것 같았다고 하였다. 우리의 생사와 모든 여건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하였고, 삶 속에서 만나는 모든 일들도 하나님의 허락하심으로 주어진 것이라고 간주하는 것이 성경적이고 복음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중국에 사스가 발생하게 된 것도 하나님의 허락하심 가운데 진행된 것이라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가 중국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사건들을 보는 관점을 성경적이고 복음적으로 갖는 것이 요청된다. 어떤 한 사건을 보면서 그 사건을 기초로 앞으로 되어질 일을 예측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왜 이 사건을 허락하셨으며 이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이 의도하시는 바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러면 구속사의 완성을 위해 세속사를 주도하시는 하나님의 경륜과 섭리의 손길을 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중국에 사스가 발생하도록 허락하심으로 의도하시는 바가 분명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중국선교의 주요 장애는 정부의 선교의 자유 불허와 통제인 것 같다. 그래서 중국선교는 중국의 종교정책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종교정책에 따라 중국교회들의 입지가 달라지며, 중국선교의 기회와 장이 축소되거나 확대될 수 있다. 중국의 종교정책은 중국정치상황에 따라 좌로도 변하고 우로도 변한다. 그래서 중국선교를 볼 때 중국의 정치지도력의 변화를 눈여겨보아야 하는 것이다. 중국의 정치지도력을 놓고 볼 때 제3세대보다는 제4세대가 합리적이기 때문에 제4세대가 지도력을 발휘하는 것이 중국선교에 유익하다고 볼 수 있다. 그동안 제4세대가 명목상으로 지도력을 이양 받았지만 실제적인 지도력은 아직도 제3세대에 있었다. 제3세대 지도력은 기독교와 선교에 대해 제4세대 지도력보다 완고하였다고 보여진다. 그런데 사스로 말미암아 중국 정부의 지도력이 제3세대에서 제4세대로 명실상부하게 이양되어지고 있다. 제4세대 지도자들이 사스를 대처하는데서 제3세대보다 탁월한 지도력을 발휘하여서 이제는 어쩔 수 없이 제3세대의 지도력의 입지가 줄어들고 명실상부하게 제4세대가 지도력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정부가 선교의 자유를 준다해도 중국인들이 복음을 거부한다면 중국선교의 문은 닫히는 것이다. 중국인들의 복음에 대한 수용성은 날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중국에서 사회주의는 이미 빛 바랜 깃발이 되었다. 중국인들을 사로잡고 있는 공통적인 관심은 부의 축적이다. 전통적인 가치관에다 개혁. 개방은 중국인들의 불타는 물욕에 기름을 부었다. 물질에 마음을 빼앗기다 보니 복음을 받아들이는 가난한 마음은 온데 간데 없어지게 되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중국선교가 계속 전진하지 못하고 답보상태에 머물게 된 것이다. 그러나 사스는 물욕에 속박되어 있던 중국인들의 심성에 죽음에 대한 공포에 직면하게 만들었다. 죽음에 직면하는 경험은 다른 모든 세속적인 것들을 상대화시킨다. 그리고 존재론적인 고민을 심각하게 하도록 만든다. 측정해보지는 못하였지만 사스는 중국인들의 복음에 대한 수용도를 높여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부의 통제 못지 않게 중국교회와 중국선교의 위기는 중국교회의 세속화라고 생각한다. 정부의 핍박은 어떤 면에서 중국교회에 신앙의 활력소가 될 수도 있지만 세속화는 내부에서 중국교회를 허무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그동안 중국교회, 특히 가정교회가 세속화되는 것을 번연히 보면서도 그에 대한 대책을 찾을 수 없어서 심히 안타깝고 답답하였다. 세속화된 중국교회는 중국을 복음화하는 사명은 물론 세계선교의 사명도 감당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스는 중국교회에 경고하는 하나님의 메시지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지각이 있는 중국교회 지도자들은 사스를 통해 주시는 ‘회개하라, 첫 사랑을 회복하라’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받아들일 것이다. 현재 중국교회 지도자들 중에 의식이 있는 분들은 세속화로 인해 중국교회의 생명이 전만 못한 것을 보면서 안타까워하고 있다.
그런데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그들이 무능해서가 아니라 사람의 힘으로 세속화라는 대세를 역전시킬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위기에 처할 때 본래의 자기로 돌아가기 쉽다. 회개도 위기에 처할 때 하기 쉽다. 사스가 횡행하는 도시는 도시대로, 농촌은 농촌대로 공황상태에 빠진다. 생사의 기로에 설 때 중국교회 사역자들과 지도자들은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이다. 그리고 회개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그 크신 은혜를 잊어버리고 물질을 추구하고 우상으로 섬겼던 죄악을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결단을 하게 될 것이다. 첫 사랑을 잃어버리고 세상을 사랑했던 죄악을 깨닫고 철저히 회개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타락해 가던 중국교회가 다시금 영적인 힘을 얻고 소생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선교사나 중국교회 지도자들도 안타까워하지만 어쩔 수 없었던 문제를 하나님이 친히 개입하셔서 해결하시는 손길을 사스에서 본다. 중국선교는 다시금 전진하는 힘을 얻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중국선교사들에게 주시는 은총
근래 중국선교를 규모있게 하는 선교단체의 실무책임자로 사역하는 지인이 방문하여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그 선교회 소속 선교사들이 사스를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선교사와 가족의 귀국과 잔류에 대한 가이드 라인을 정해 달라고 요청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하였다. 그러면서 중국에서 만난 조선족 형제의 이야기를 하였다. 조선족 형제가 사스로 인해 북경을 떠나는 한국인들을 보면서 "한국인들은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떠날 사람"이라고 하면서 씁쓸해 하더라는 것이다. 참 난감한 문제이다. 그래서 중국선교사와 관련하여 사스를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할 것인지에 대하여 고민하며 기도를 하게 되었다. 묵상하는 중에 사스는 중국선교사들을 위한 주님이 섭리하시는 은총이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사스가 창궐하는 현지에서 머무르든지, 귀국하든지 그것은 전적으로 선교사 자신의 결단에 달려 있다. 제 삼자가 남아 있으라, 귀국하라고 말할 수 없는 문제이다. 여기서 선교사의 가족에 대한 것은 논외로 하려고 한다. 가족은 귀국할 수도 있고, 남아 있을 수도 있다. 어떻게 하든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선교사의 경우는 다르다.
선교사가 사스 때문에 귀국하게 되면 육체적으로 안전할 지는 모른다. 사실 그 조차도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중국에 거류하고 있는 것보다는 낫다. 그러나 그로 인해 지불해야 할 중국선교사로서의 대가는 매우 크다. 중국은 관계사회인데 위기를 만나 일신상의 안전을 위해 선교지 지체들을 내버려두고 떠나는 선교사들을 마음으로부터 받아들이는 것은 심히 어려울 것이다. 설사 사역을 계속할 수 있다고 해도 그것은 현지인들과 거래를 하는 관계는 유지할 수 있어도 성도의 교통을 하는 관계는 회복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현지인들은 한국선교사들에 대하여 곱지 않은 눈으로 보고 있다. 평소 교통하며 지내는 재미교포 장로님이 계시다. 그 장로님이 남경신학교를 방문하여 조선족 신학생을 만났는데 한국인에 대하여 극도의 적개심을 나타냈다고 한다. 자신이 재미교포라고 하니까 적개심을 누그러뜨리더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한국선교사들이 어떻게 하였길래 이 지경에 이르렀느냐고 하소연을 하였다. 지금 한국선교사들과 조선족 사역자들은 물론, 한족사역자들과의 관계도 결코 원만하다거나 좋은 관계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다 사스를 피하여 귀국한다면 현지인들과 사역자들이 한국선교사들을 어떻게 대할지 보지 않아도 짐작이 된다.
그러나 사스 때문이든 다른 문제로든 이미 귀국한 선교사들을 백안시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다 연약한 존재임을 인정하고 그 아픔과 고뇌를 같이 나누고 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심기일전하여 다시금 선교현장으로 돌아가도록 영육간에 재충전의 기회를 제공해 주어야 할 것이다. 선교사가 사스의 위험을 알고도 현지에 남아 있다면 몇 가지 면에서 주님의 은총을 누리게 될 것이다.
선교사 자신에게 평생에 잊지 못할 귀한 신앙사건이 될 것이다
영적으로 놀랍게 성장할 것이고, 평생에 영향을 받는 신앙사건이 될 것이다. 그리고 사역에도 놀라운 주님의 은총이 임할 것이다. 국내에서 교회를 개척하여 초대형 교회나 대형교회로 성장시킨 목회자들 가운데 필자와 아는 지인들이 상당수 있다. 그들의 공통점은 거의 대부분 어떤 형태로든지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온 경험이 있다는 사실이다. 아마도 죽음의 문 앞에까지 갔다 온 경험은 인간 실존의 밑바닥에서 하나님과 일대 일로 만나는 경험을 하게 하는 것 같다. 그래서 그 경험이 그들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예수 그리스도 중심의 세계관으로 바꾸게 하고, 그 세계관을 가지고 사역을 하기 때문에 역동적이고, 주님을 철저히 의지함으로 크게 사역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극적인 신앙사건은 우리가 임의로 기획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주님의 은총으로 거칠고 험한 환경 속에서 연단의 기회가 주어질 때 주님과 일대 일로 만나고 자신이 깨어지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된다. 사스는 중국선교사들에게 생명을 걸고 하나님을 일대 일로 만날 수 있는 일생일대의 기회라고 생각한다.
중국현지 사역자와 교회 지도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줄 것이다
그들과 친구가 될 수 있는 신뢰심을 심어줄 수 있을 것이다. 북경에 사는 친지로부터 온 메일에 의하면 귀국하지 않고 남아있는 외국인들에게 현지인들이 고맙다고 감사를 표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였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중국에서는 친구가 되면 사역을 할 수 있는 길은 얼마든지 있다. 친구관계가 아니라 거래관계에 머무르고 마니까 사역도 진보가 잘 되지 않는 것이다. 친구가 되려면 깊은 신뢰관계가 구축되어야 한다. 중국교회에 깊숙이 들어가서 사역하는 선교사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이번 기회를 잘 횔용하면 지금보다 놀랄만한 사역의 진보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된다. 중국인들과 진정한 친구가 되는 것이 얼마나 복된 일인가?
중국현지 사역자들에게 선교사의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삶을 통해 극명하게 보여줄 것이다. 중국인들은 한국선교사들에게 그들이 증거하려는 복음과 가르치려는 내용을 말로만이 아니라 삶으로 보여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선교사들이 사스가 창궐하고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서도 의연하게 그들과 함께 지내는 것은 주님의 보호하심에 대한 믿음, 천국에 대한 소망, 현지인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된다. 수십 년을 사역하는 것보다 더 많은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그보다 더 강력하게 보여줄 방법이 있는가?
중국 현지 사역자 들에게 잊지 못할 고마운 마음을 심어줄 것이다
목회의 기능인 치유, 지탱, 인도, 화해 중에서 현재 중국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지탱이다. 선교사들이 그들과 함께 사스의 위험에 놓인다는 것은 그들을 지탱해 주는 강력한 격려와 위로가 될 것이다. 선교사들을 보면서 중국현지 사역자들은 주님이 그들과 함께 하심을 눈으로 확인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두고두고 잊지 않고 기억하게 될 것이다. 한국선교사들에 대한 섭섭함과 불편한 심기, 경원시하는 마음을 일거에 멀리 날려보낼 것이다. 상식을 따라 살기 원한다면 귀국해도 무방하다. 그러나 주님과 깊은 만남과 주님의 보호하심을 경험하며 현지의 지체들과 깊은 관계가 되고, 깊이 있는 사역의 장, 광활한 사역의 장을 얻기 원한다면 시편 23편에 있는 목자의 보호하심 속에서 현지에 머물러 있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중국에 선교사들을 파송하고 후원하는 한국교회가 힘써 할 일이 있다. 중국선교에 대해 관심이 식어져가고 뜨악해 하던 것을 회개해야 한다. 이전보다 더한 열정으로 중국선교에 헌신해야 한다. 선교사들의 후원에 더욱 성실하게 임해야 한다. 그리고 중국선교사와 그 가족들을 위하여 특별히 기도해야 한다. 그들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 비상기도가 요청된다. 합심하여 드리는 중보기도는 사스의 위기에 처한 중국선교사들을 위험에서 보호할 것이다. 그리고 사스가 퇴치되고 사스로 인해 고통 당한 사람들이 주님께로 돌아오도록 기도해야 할 것이다. 사스로 인해 중국이 보다 더 개방되고, 특히 선교에 대하여 관대해지도록 기도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정녕 사스는 저주가 아니라 중국선교를 위한 은총이 될 것이다.
인병국/ 한동교회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