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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6.20  통권 82호  필자 : 김사랑  |  조회 : 2838   프린트   이메일 
[선교사의 삶과 사역]
그 날을 기다리며

13억이란 거대한 인구, 이 지구상 인구의 4분의 1을 차지하고 있는 땅, 이곳 대륙이 언제쯤 복음의 문이 활짝 열릴 수 있나!

 

그 날을 기다리며 몇 자 적고자 한다. 처음 중국 땅을 향하여 꿈과 희망과 또한 가슴에 중국 복음화에 대한 사명감을 가지고 , 벅차 오르는 감동을 안고 출발을 했었지만, 이제 지난 7년이 넘는 중국에서의 시간을 회고해 보니 그 때는 중국을 많이 안다고 자부했던 자신이 지금 생각해 보면 중국을 참으로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현지인들과의 만남과 사역, 또한 그들과 같이 삶을 나누며  공동체 생활도 했었지만 항상 외국 선교사로서 그들을 알려고 노력했지....그들의 문화에 동화되었던 것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끊임없이 주어야만 하는 삶이 가끔씩은 우리 자신을 지치게 만드는 요인이 되기도 하였다. 그건 바로 나 자신과의 싸움이며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우리들 자신이 선교지에서 늘 성령의 충만함을 힘입고 스스로의 믿음을 지키는 것 (즉 자신의 영적 관리)을 체크하며 살아가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으로부터 약 120년 전 한국 땅에 와서 복음을 전한 언더우드 선교사의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주여!  오직 제 믿음을 지켜 주소서> 라는 기도문이 가끔씩 나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어둠과 가난과 인습에 묶여 있는 조선 땅이 머지 않아 은총의 땅이 되리라는 걸 믿으며 조선인의 영혼을 위해 간절히 기도한 결과 지금은 열매를 맺어 축복의 땅으로 바뀐 것처럼 우리도 지금은 잘 보이지 않지만 중국 정부의 핍박과 어려움 속에서도 중국 교회가 굳건히 설 수 있을 것을 바라고 믿고 있다.

이제 필자가 느꼈던 중국에서의  생활에 대해서 잠시 소개 하고자 한다. 
처음에 중국에 들어갔을 때와 지금의 급변하는 중국의 상황을 비교해 보면 참으로 중국이 많이 변하고 있으며 또한 국제 사회의 적응에도 빠르게 대처하는 모습이 보인다. 요즘은 월마트, 프라이스, 까르푸 등 외국에서 들어온 여러 대형 슈퍼가 곳곳에 눈에 띄지만 그 때만 해도 물건은 거의 재래 시장에서만 구입하는 상황이었고, 우유 한 통을 사기 위해 시내 슈퍼까지 나갈 형편이었다. 처음에 남방에서 버스 노선도 맞는 게 없었고 지금 생각해 보면 거의 한 번도 택시를 타고 가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택시를 혼자 타고 가려면 여간해서 신경 쓰이는 일이 많고 택시로 인해 불편한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택시 기사가 어떻게든지 빙빙 돌아서 택시 요금을 최대한 많이 받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여기 어느 유학생의 실례를 적어 보기로 하겠다.

 

 


북경 처음 도착
(1993년 말)
사회주의에 대한 두려움으로 북경 도착 후 공항은 나오자마자 손을 잡아끌고 가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택시 기사였다. 택시는 시내를 빙글빙글 돌아서 (요금을 올리려고) 여관에 데려다 주었고 말도 제대로 안 되는 상태에서 바가지도 씌웠다. 외국인들이 처음 중국에 가면 길도 모르고, 중국어 소통도 잘 안 되는 상황에서 이런 경우를 많이 당하곤 한다.

천진 이동시
(고속도로 중간에서 가격 흥정)

 

천진에 가기로 하고 택시를 300RMB에 대절하고 북경-천진 간 고속도로를 가던 중 택시 기사가 중간쯤에서 돌연 차를 세우고 돈을 더 주지 않으면 못 간다고 하여 돈을 더 주고 간 황당한 일도 있었다.(우리도 96년 상해 공항에서 남경까지 택시를 타고 가다 이와 비슷한 경험을 당한 적이 있다.)

 

 


시골 인력거 기사
(발음  문제인지 의도적인지?)
중국 내 시골에서는 인력거가 흔하다. 시골에서 멋적게 인력거를 탈 겸 가까운 거리에 얼마냐고 하니 쓰콰이(4RMB)라고 하여 타고 갔다. 목적지에 가서 쓰콰이를 주니까, 스콰이 (10RMB)이라고 했지 언제 쓰콰이라고 했냐며 실갱이를 벌이기 시작했다. 돈은 얼마 안 되었지만, 나를 외국인으로 보고 바가지씌우려는 게 괘씸해 공안으로 가자고 큰 소리로 우겼더니 그냥 4RMB만 받았다.(택시비가 10RMB니 인력거가 10RMB면 너무 비싸다.)

중국은 큰 면적만큼 지방마다 특색이 다른데, 여기서 몇 가지 지방의 특색을 소개하고자 한다. 북쪽 지방은 겨울철 최저 온도가 영하 30도가 넘는 곳이 많고 5개월 이상의 긴 겨울 날씨 때문인지 사람들의 성격이 많이 거칠고 욕 문화가 발달되어 있다. 버스를 타고 가만히 앉아서 듣고 있노라면 서로 다투거나 (듣는 사람의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아무렇지 않게 욕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성적인 욕과 또한 조상까지 들먹이는 욕들도 있는데 뜻을 모르고 사용하는 어린이들도 있다.)  봄이 되면 길거리에서 다투고 싸움을 하는 사람들을 자주 보는데 아마도 기나긴 추운 날씨때문과 또한 봄의 황사 현상 때문에 그만큼 지치고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이들만큼 순수한 모습을 가진 사람들이 또 있을까?  생각해 본다. 급하고 다혈질이고 어떻게 보면 무지해 보이기도 하고 직선적이지만 마음에 '꽁'하는 부분이 적고 시원스럽다. 반면에 남쪽 지방은 더운 날씨 탓인지 그야말로 '만만디'라는 말이 너무도 어울리는 곳이다. 이 곳 사람들의 소박함, 친절함, 또한 비교적 온순함의 성격이 북쪽 지방과는 대조를 이룬다. 언젠가 한번은 항저우를 여행갔을 때의 일이 생각이 난다. 그곳 대학 기숙사에 숙소를 정하기 위해 길을 물어 보았는데 계속해서 조금만 걸어가면 도착한다고 하여 더운 여름철에 남편과 아이와 함께 30분을 걸어도 숙소가 나타나지 않았는 다(물론 중간 중간에 물어 보았을 때 조금만 더 가면 된다며 같은 대답이었음). 다른 중국 사람이 말하기를 잘못 왔다고 반대편의 길로 되돌아가야 된다고 하여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를 두세 번 반복하였는데, 어쩌면 다섯 명의 사람이 모르는 길을 그렇게도 자신감 있게 가르쳐 주었는지 그 때는 이해가 잘 안 되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낯선 외국인이 물어 보았을 때 거절을 못하는 친절함 때문인 것 같다. 

음식은 대체로 한국 사람의 입맛에 맞는 게 적은 편이다 여기서 특기할 만한 사실은 한국의 영, 호남 지역간의 갈등이 조금 있듯이 중국도 북쪽 지역과  남쪽 지역 서로간의 자존심과 약간의 지역적인 우월성이 있는 것 같다. 북쪽 지역 특히 동북쪽(옛날 만주 벌판)은 다소 한국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외모를 많이 중시하는 것 같다. 옷차림, 헤어스타일 등 특히 젊은 층 사이에선 한국의 패선 바람이 인기가 있으며 소박한 옷차림을 하고 외출을 하면 좀 무시를 받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들 젊은 여성들이 하는 말이 생각이 난다. 라면을 먹거나 굶는 일이 있어도 돈이 생기면 옷을 사거나 파마를 하는 것이 더 좋다는 것이다.(물론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도 하다.  결혼할 때 여자들은 지참금이나 혼수용품 등 돈이 안 드는데, 모든 결혼 비용은 즉 집이나 가전제품을 포함한  모든 살림살이는  약간의 지역적 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이 남자들의 몫임.) 반면에 남쪽 지역 사람들은 대체로 너무나 소박한 옷차림에 실리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직장이 없는 남쪽 지역 사람들이 북쪽에 올라와서  노동일, 목욕탕 때밀이 등 힘든 일을 마다 않고 일을 하여 몇 년이 지나 남쪽고향으로 저축한 돈을 가지고 돌아가는 근면성이 있다.(반면에 북쪽 지역 사람들은 좀더 편한 일자리와 체면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음) 그리고 남쪽에 살 때에 우연히 알게 된 형제, 자매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입은 옷차림이 너무 검소하여 아마도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겠지 싶었지만,  꽤 큰 평수의 집에 거실을 대리석으로 깔았던 좋은 집이었다. 이들은 수입의 대부분을 집을 사거나 저축을 하는 데 사용한다. 또한 남쪽 사람들의 특성은 몸치장의 외모보다는 건강을 더 중시하는 것 같다. 그리하여 조금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건강에 좋고 맛도 좋은 음식을 선호하여 음식 문화에 지출을 많이 하기도 한다. 

지금까지 두서없이 그동안 중국생활 가운데 개인적으로 느낀 것들에 대해 적어 보았는데 이제 마무리를 하고자 한다. 하나님께서는 이 시대를 향한 분명한 뜻과 계획을 가지고 계신데 그것은 바로 "세계선교"라고 생각한다. 특히 거대한 중국을 향한 선교에 힘쓰며 그 사역의 중요성을 절감하며 중국 내에서든지 아니면 제 3국을 통한 중국인을 향한 사역이든지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며 그 길을 걸어나가야 할 것이다. 지금도 세계 각처에서 흩어져 복음을 전하고 있는 선교사들과 그 가정 위에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시길 간절히 기도하며…, 함께 나누고 싶은 기도문이 있어 추신으로 적습니다.

 

 

지금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오 주여!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주님, 메마르고 가난한 땅, 나무 한 그루 시원하게 자라 오르지 못하고 있는
땅에 저희들을 옮겨와 앉히셨습니다.   
그 넓고 넓은 태평양을 어떻게 건너 왔는지 그 사실이 기적입니다.
주께서 붙잡아 뚝 떨어뜨려 놓으신 듯한 이 곳,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은 고집스럽게 얼룩진 어둠뿐입니다.   
어둠과 가난과 인습에 묶여 있는 조선 사람뿐입니다. 
그들은 왜 묶여 있는지도 
고통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고통을 고통인 줄 모르는 자에게 고통을 벗겨
주겠다고 하면 의심부터 하고 화부터 냅니다. 
가마를 타고 다니는 여자들을 영영 볼 기회가 없으면 어찌하나 합니다.
조선의 마음이 보이질 않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해야 할 일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 순종하겠습니다. 

겸손하게 순종할  때 주께서 일을 시작하시고, 
그 하시는 일을 우리들의 영적인 눈이 볼 수 있는 날이 있을 줄 믿나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하신 말씀을 따라 
조선의 앞날을 볼 수 있게 될 것을 믿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황무지 위에 맨손으로 서 있는 것 같사오나,  
지금은 우리가 서양귀신, 
양귀자라고 손가락질을 받고 있사오나, 
저희들이 우리 영혼과 하나인 것을 깨닫고 하늘 
나라의 한 백성, 한 자녀임을 알고 눈물로 기뻐할 날이 있음을 믿나이다.   
학교도 없고 그저 경계와 의심과 멸시와 천대만이 가득한 곳이지만 
이 곳이 머지 않아 은총의 땅이 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주여!  오직 제 믿음을 지켜 주소서

 

-언더우드 선교사 기도문-




김사랑/ 중국 사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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