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여름 단기의료선교 여행으로 한국에서 중국으로 왔었지만, 올 1월에 떠났던 겨울 선교여행은 저에게 있어 조금은 다르게 다가왔습니다. 중국 B시에서 이미 4개월을 지낸 늙은 유학생으로서 처음 떠나게 된 선교여행이었기 때문입니다.
여행은 Y성 K시에 모여 70여 명의 인원이 13개조로 나뉘어 각기 다른 소수민족을 찾아 가야 했습니다. 저는 부조장으로 섬기게 되었고 이러한 저에게 있어 기도제목이 있었다면 하나님 앞에서 가장 낮아짐의 체험이었습니다. 지난 수개월간의 삶에 대한 영적 부담감 때문이기도 하고, 제 마음속에 느껴졌던 왠지 모를 두려움과 저희 조의 여정에 있어 고생을 많이 할 것 같은 막연한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이러한 생각들로 인해 기도하며 나아간 단기 선교여행을 돌아보면 밤새도록 추운 기차에 앉아서 지새웠던 일, 기차에 내려 비 오는 캄캄한 새벽길을 추워 떨며 오래 걸었던 일, 폭설로 교통이 차단된 산길을 지프차 기사 아저씨를 설득해서 3시간 반 동안 험난하게 그곳을 찾아 도착했던 일, 정말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생으로 시작된 여행이었음을 고백합니다.
하지만 ‘가장 낮아짐의 체험’이란 기도제목을 내놓은 저로서 이 정도의 고생은 넉넉히 참아낼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움직이는 가운데 우리는 한 마을에 도착했고 상황은 점점 더 열악해져갔습니다. 음산한 산간지역의 날씨와 심하게 질퍽거리는 진흙탕거리를 헤매며 헤매다 찾아든 첫 집은 돼지우리의 제일 좋은 공간처럼 지어졌고, 그 안에 사람들도 함께 주거하도록 되어 있어 비위생적일 뿐만 아니라 마실 물도 화장실도 없었고, 먹을 음식도 거의 없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너무 춥고 배가 고팠고, 날은 점점 어두워졌습니다. 원래 계획했던 이 마을 소수민족 집에서 묵는 것은 포기하고. 그 동네에서 제일 좋다는 여관을 찾아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곳 역시 난방시설은 없었고 바깥보다 더 춥게 여겨졌습니다. 먹을 음식을 파는 곳조차 없었습니다. 이 지역의 유일한 난방 시설은 세숫대야 같은 그릇에 숯덩이 몇 개를 태우는 것이 고작이었는데 그것조차 준비되지 않았습니다. 그 순간 생리적 욕구 불만으로 참을 수 없는 화가 제 속에 치밀어 올랐습니다. “화롯불 구해주지 않으면 나는 꼼짝 안 할 거예요”라며 조장에게 소리쳤습니다. 잠시 후 조장은 조그마한 세숫대야와 숯불을 얻어왔고 그나마 손발을 녹여주어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형제 둘, 자매 네 명으로 구성되었던 저희 조는 형제 둘을 크고 더 추운 방으로 보내고, 네 명의 자매들이 함께 숯불을 피워둔 채 눈동자까지 얼어버린 것 같은 그 추위를 이겨내며 잠을 청하였습니다. 그런데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옆에 자던 조장이 몸부림을 치며 심하게 주님을 외치는 것이었습니다. 그 소리에 잠을 깬 저는 다시 자려고 했지만 너무 추운 날씨 탓에 쉽게 잠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조금의 시간이 지났을 때 제 귓가에 “뜰꺽, 뜰꺽” 소리가 들리는데 바로 제 심장 박동 소리였습니다. B시에서 막 앓았던 독감이 재발했으리라는 생각 때문에 내심 걱정이 된 저는 해열제를 찾으러 일어나려 했습니다. 그 순간 침대아래 몸이 ‘쿵’하고 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심장의 열이 너무 심해서일까, 의도하는 대로 몸이 움직이질 않았고 침대 위로 올라가려 했지만 연체동물 마냥 허느적 허느적 거리기만 했습니다. “주님 저를 치료해 주세요, 제 몸이 약한 것 때문에 우리 조에 피해를 주면 안 되잖아요” 전에 앓았던 폐렴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기를 몇 분, 어느 정도 심장이 진정되고 다시 침대에 누웠는데 다시금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래도 옆사람의 도움을 청해야겠다고 생각이 되어 조장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박선생님?” “박선생님?”
“예에에~”
“제게 뜨거운 물과 약 좀 먹여 주세요. 그리고 기도도 부탁드려요”
“예에에~”
박선생님은 일어나려다 나동그라지며 쓰러졌습니다.
그 순간 ‘숯 가스에 중독?’이라는 생각이 매섭게 내 뇌리를 때렸습니다. 저는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켜 문부터 열어놓고 바로 침대 위에 꿇어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주님! 살려주세요...”
순간 우리 네 명의 생명이 백척간두이니 실제로 죽음의 극심한 공포가 제게 찾아들었습니다. 생명을 건 급박한 기도가 절로 나왔습니다. “주님! 이들은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젊은이잖아요. 주님 아직 저는 제 아이도 돌봐야 되잖아요. 지금은 천국 갈 때가 아니잖아요. 주님, 우리를 살려주세요! 주님 제가 잘못했어요. 어제 갔던 그 집에 다시 갈게요. 집이 너무 더럽고, 짐승의 기생충이 옮을 것 같아 소름이 끼치고 싫었는데, 살려주시면 아침에 다시 가서 복음을 전할게요. 주님 살려주세요.
“주님…”.
“주여…”
얼마나 기도했을까, 너무 소리쳐 온 몸과 목소리에 힘이 빠졌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주님의 세미한 음성이 제게 들려 왔습니다.
“걱정하지 말아라”
저는 또 다시 간구 했습니다. “주님 저희 모두 학생이니 후유증도 말끔히 없게 해주셔야 해요, 성경도 잘 기억해야 되 잖아요” 그때 다시 주님의 음성이 제게 들려 왔습니다. “그것까지도 내가 책임지마.” “이제는 살았다”라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제 마음이 그렇게 평안해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 우리 모두는 주님의 품안에 건강한 모습으로 지금 안겨 있는 거야”
잠시 후 다른 방에 있던 두 형제가 기도소리에 깨어 우리 방에 들어오고, 후속 조치가 진행되었습니다. 본부에 전화하고(새벽 3시경), 제가 정신을 차려 침으로 사람들을 따고, 이후 자매들은 토하고, 또 정신을 잃었다가 다시 깨어나고, 드디어 아침이 되었습니다. 네 명의 자매 모두 씻은 듯이 회복되었고 우리 모두는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셨음을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모두들 외쳤습니다.
“하나님 살려주셔서 고맙습니다!”
간밤 죽음에서 살아난 우리에게 이젠 더 이상 아무것도 문제될 것이 없었습니다. 추위도, 배고픔도, 더러움도… 우리는 다시 준비를 하고 다시 어제 주님과 약속했던 그 집으로 찾아갔습니다. 그 집 식구들이 어찌나 정답게 느껴지던지, 주저 없이 복음을 전하고 두 손을 꼭 잡고 함께 영접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는 그 다음 집으로 가서 복음을 전하였는데 8명의 가족 모두가 예수그리스도를 그들의 구주로 받아들이는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였습니다.
올 초에 가졌던 단기 선교 여행을 다시금 떠올립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복음을 들어야 할 영혼을 예비해 두시고 우리를 인도하셨습니다. 그 날 우리가 만난 모든 영혼들이 어떻게 그렇게 순순히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었는지를 생각하면 우리의 힘과 노력이 아니라 오직! 오직 주님이 모든 일을 주관하셨음을 우리의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경험하는 놀라운 시간일 뿐입니다. 또한 저의 기도제목대로 하나님 앞에서 가장 낮아짐을 경험케 하셨습니다. 사람 앞에서 겸손함을 배우게 하셨습니다. 은혜 가운데 인도받았던 여행이었습니다. 지금 저는 이곳 B시에서 더욱 그분의 은혜와 주관하심 가운데 지내고 있음을 느끼는 순간들입니다. 죽음과 생명에 관한 체험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며, 게을러지려는 나의 옛 본성이 고개를 들 때면 항상 지난 여행을 생각하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함경희/ 중국 B시 협력 사역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