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 대신 ‘행복한 날들’을 택한 이유
<해리포터>와 <반지의 제왕>의 뒤를 이어 2003년 한국의 겨울 극장가를 장악한 영화는 <영웅>이었다. <타이타닉>을 누르고 중국 역사상 최대의 흥행기록을 세웠다는 장이모우(張藝謨)감독의 <영웅>은 마치 중국인들의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서 만든 양 거대한 스케일과 중국 특유의 무협액션으로 치장했지만, 작위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수많은 중국 역사의 인물 가운데 중국 대륙을 최초로 평정하고 통일 국가를 세웠지만 잔혹한 정치로 이름을 날린 진시황제의 이야기를 다루었다는 것도 그렇고, 장쯔이를 비롯한 중국의 유명한 배우들이 공산당에 입당했다는 소식이 외신을 타고 전해진 시점에서 개봉하는 것도 이 영화를 밀어주는 정치적 배경을 의심케 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최초의 통일 국가를 이룬 진시황을 다룬 것 자체를 문제삼을 수는 없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된 대규모의 전쟁을 통해 일궈냈다는 영웅담을 소재로 한 신화적인 접근 양식 외에 새로운 역사적 해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렇다는 뜻이다.
내용에 새로운 것이 없으면 감독은 흔히 형식주의로 빠지기 쉬운데 장이모우 감독 또한 그러한 위험성에 노출되었다는 평가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한 듯하다. 무협영화에서 본 익숙한 장면과 내용을 장이모우 특유의 색채 감각과 카메라 연출로 극복하고 있다는 절반의 칭찬과 절반의 비난을 동시에 받고 있는 것은 그나마 기본이 갖춰진 감독의 저력 때문일 것이다. 어찌됐던 세계의 중심에 서고 싶어하는 중국인들 입장에서 보자면 헐리우드의 아성을 무너뜨리고 싶어하는 민족주의 의식이 이 영화를 통해 도출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의 힘으로 뭉친 위대한 중국 민족의 기상을 온 천하에 알리고 싶어하는 중국 정부와 인민들의 결의가 합쳐져 이뤄낸 작품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는 듯하다.
그런데 한국 관객들이 이 영화에 몰리는 데는 그 이유가 조금은 다른 것 같다. 첫째는 감독의 이름에 거는 기대감이 컸고, 둘째는 스케일로 승부를 거는 중국 대륙의 기질을 확인하고 싶어서였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한국인들은 일단 규모의 면에서 늘 중국에 대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극복의 대상이기 보다는 경외와 호기심으로 상대하려는 경향으로 나타나곤 한다.
내가 알고 있는 장이모우는 중국 황제를 다루는 가운데 오락적이면서 동시에 역사적인 영화를 만들어 빛을 내려는 사람은 아니다. 그의 문화관은 권력의 중심부가 아닌 민중적이며 토속적 대상으로부터 나온다고 볼 수 있다. <붉은 수수밭(紅高粱. 1988)>, <국두(菊豆. 1990)>그리고 <홍등(大紅燈籠高高掛. 1991)>이 그의 독특한 스타일이라 할 수 있는 색채미학을 통한 민중과 주변인의 삶을 다루었다면, <귀주이야기(秋菊打官司. 1993)>나 <책상서랍 속의 동화(一個都不能少. 1998)> 그리고 <집으로 가는 길(我的父親母親. 1999)>은 자본주의 물결이 들어오는 근대화의 길에 서 있는 중국 소시민들의 삶을 맑은 색채로 담아 놓았었다. 지금까지 그의 영화 어디에도 중국 사회의 엘리트층 혹은 권력 중심부를 어떤 방식으로든 진지하게 다뤄본 일은 없었다.
따라서 그가 <영웅>과 같은 무협대작을 만든다고 했을 때 그의 전력과는 좀 다르다라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어떤 이들은 더 나아가서 <아호장룡>이 서구에서 히트한 사실에 고무되어서 중국 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진시황제의 무협극을 만들었을 것이라는 말을 서슴치 않고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앞으로 장이모우의 영화 세계가 <영웅>을 기점으로 새롭게 변화할런지는 두고봐야 하겠지만, 아직까지는 장이모우의 진면모를 보려면 스케일이 큰 <영웅>보다는 소박하고 때묻지 않은 중국인들의 마음씨를 다루는 작은 규모의 영화가 더 어울릴 수 있다. 장이모우 감독의 2000년 작인 <행복한 날들(幸福時光)>은 그런 면에서 장이모우다운 연출 감각을 현대적 배경에서 감상할 수 있는 적절한 영화가 아닐까 싶다.
배금주의 풍조 속에 살아있는 감독의 따뜻한 시선
<행복한 날들>은 장이모우 감독이 늘상 해오던대로 가난한 삶 속에서 얻게되는 돈과 노동의 가치에 대한 언급이 살아 있는 영화라 할 수 있다. 즉 돈의 가치를 인정하되 그것은 신성한 노동을 통해서 얻어져야 하며, 그렇다고 돈의 권력이 주는 달콤함에 빠져드려는 현대인을 경계하는 계몽적 성격을 아울러 가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장이모우 감독은 돈 자체보다는 돈버는 과정에서 경험하는 인생의 의미를 밝히려는 데 온 힘을 쏟고 있는 듯 하다.
영화<행복한 날들>은 공장에서 정년 퇴직한 50대의 주인공 남자 자오가 결혼이 하고 싶어서 두 번의 이혼 경력을 가진 여인을 사귀면서 시작된다. 가난하지만 가정을 꾸리고 싶어하는 중년의 퇴직자와, 그가 부자이기를 바라는 중년 여성의 서로 다른 욕망은 이미 영화 첫 부분부터 두 사람의 관계가 틀어질 것을 예고하고 있다. 그래서 장이모우 감독은 사람보다 돈에 눈이 먼 여성과 그녀의 아들을 뚱뚱하고 탐욕스런 이미지를 가진 인물로 설정하고 있는 반면, 자오는 가난하지만 인간미가 살아있는 역할로 상정시켰다.
이러한 자오의 상대역은 청혼 상대자의 이붓딸인 우라 할 수 있다. 우는 앞을 못보는 시각장애인이며 돈을 벌러 간 아버지를 기다리는 팥쥐 가정의 콩쥐 같이 천덕꾸러기 대접을 받는 존재로 그려지고 있다. 스스로를 호텔 경영자로 소개한 자오는 거짓말한 덕분에 우의 일자리를 책임지게 되면서 이 영화의 핵심이자 가장 코믹한 사건을 일으키게 된다. 물론 핵심이란 말에는 장이모우 감독 특유의 생각이 담겨 있다. 즉 가난 속에서 돈과 노동이 어떻게 가치를 발휘하게 되는 가를 보여준다는 의미이다.
돈을 벌어 아버지를 만나야 겠다는 우와 앞을 못 보는 아이를 실망시키지 않으려는 자오의 생각은 어처구니없는 해프닝을 일으키게 된다. 자오는 우에 대한 측은함과 아울러 어떻게든 소녀를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마음으로, 친구들과 짜고 공장 가운데 그럴듯한 간이 안마시술소를 세운다. 비장애인이 보자면 형편없는 세트에 불과 하지만, 앞을 못 보는 우에게 사실이라고 믿게 만들려는 연출인 셈이다. 자오의 친구들이 돌아가면서 손님 노릇을 하고 자오는 자신의 호주머니를 털어 팁을 마련한다.
한적한 공장이라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하도록 시내 중심가의 소음을 녹음해와 카세트로 계속 틀어주는 지혜도 부려보지만, 남을 속인다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인가. 팁을 줄 돈마저 바닥나는 바람에 종이를 돈 크기로 잘라서 사용해야할 만큼 열악한 연출력이지만, 우는 여전히 자오의 애정있는 배려에 모르는 척 따라주었다. 그러던 어느날 우는 아버지를 찾아 떠나고 그 동안의 관심에 감사를 표한다. 모든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우는 오히려 자오를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스스로 또한 연기를 했던 셈이다.
장이모우는 <책상 서랍 속의 동화>에 나오는 분필이 학생들에 대하여 갖는 가치처럼 가난한 사람들에게 지니는 돈의 의미가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비록 적은 돈이지만 그것을 벌기 위해 노동하는 사람들의 귀중함을 보여준다. <책상 서랍 속의 동화>에 나오는 여주인공인 13 소녀 웨이민치가 대리 선생님이 된 것도 돈 때문이고, 말썽구러기 장휘거가 도시로 가는 것 또한 돈 때문이다. 장휘거를 데려 오기 위해 차비를 벌려는 의도로 꼬마들이 벽돌 공장에서 주인 허락도 받지 않는 노동을 하는 등 모든 인간 행동의 중심에 장이모우는 돈과 노동의 의미를 새겨 놓았다.
그러나 장이모우의 이러한 가치들이 단순히 세속적이고 비인간적인 물질만능주의에 편승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돈을 모으기 위해 노동하는 과정에서 얻는 진정한 인간의 소중함, 즉 사랑을 깨닫기 때문이다. 돈을 따라 왔지만 얻는 것은 사랑이라는 결말이 그의 영화에 대해 높이 평가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행복한 날들>은 <책상 서랍 속의 동화>에서 한발 더 나아간다. 자오와 우는 모두 돈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지만, 현실의 돈을 버는 과정을 통해 행복을 얻으려 하기보다는 연극을 통해 서로를 만족시켜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것은 영화 속 주인공들이 워낙 무능력한 사회의 주변인들인 까닭에 어쩔 수 없는 현실 상황에서 벌이는 일이지만, 그 안에는 돈이 아니더라도 행복할 수 있는 조건들을 제시해주었다고 볼 수 있다. 돈을 위해 노동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지만 돈만을 위해 일한다는 것은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로또복권과 장이모우의 영화들
2003년 새해 벽두부터 한국 사회에 몰아 닥친 로또복권의 열풍을 돌아보면서 장이모우 감독의 영화들이 생각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인생역전’의 표어 속에서 일확천금을 기대하는 사람들의 열기가 혹시라도 노동의 의미를 퇴색시키지나 않을까 걱정스러운 까닭이다. 그런 의미에서 <행복한 날들>을 포함한 장이모우 감독의 영화들은 배금주의 풍조가 만연한 사회일수록 그 빛을 발할 수 있으리란 생각을 해 본다.
강진구 | 영화평론가, 크리스천문화커뮤니케이션 연구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