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한대학(武漢大學)의 한 여학생이 성냥을 켜지 못한다는 이유로 학교 친구와 시비가 일어나 결국 폭력사태로까지 치달았다. 그러나 학교 측과 지도 교수는 이를 못 본 척 하였다.…”
베이징대학(北京大學) 개교 100주년 기념행사 때문에 인근 일대에 차가 막히자 버스에 타고 있던 한 학생이 아주 의기양양하게 소리쳤다.
“우리 베이징대학이나 되니까 이런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거야! ” 버스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아무 말이 없었다.…”
“어머니의 사랑이 너무 지나쳐서 아홉 살 난 어린이가 어머니를 살해한 사건이 신문에 실렸을 때 사람들은 모두 경악했다.…”
최근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로 말미암아 중국의 교육자들은 입시 위주의 교육을 지양하고 정서를 중요시하는 ‘소양교육’을 추구하게 되었다. 하지만 중국의 현 상황은 여전히 병든 창백한 모습이며 비틀거리면서 간신히 걸어가고 있는 꼴이다. 중국의 교육은 이미 말로를 치닫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한 가지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이 있다. 황폐한 사막 가운데 푸른 오아시스가 나타나기 시작했으니 그것은 바로 교회의 주일학교이다. 이 오아시스의 푸르름이 아직은 사람들의 주목을 끌지 못하지만 앞으로 더 크게 확산될 것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깨어나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오천 년 역사를 가진 중화민족은 계속 패역의 길을 걸어왔고 아직도 그 마음이 단단하지만 하나님의 때가 이르면 주께 속한 양떼들이 모두 주의 울타리 안으로 돌아올 것이다.
주일학교 사역은 성경에 기초를 두고 사랑을 근본 취지로 삼는 가르침의 사역이다. 이러한 사역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생명의 근원으로 돌아올 뿐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 가운데 자신의 가치를 찾게 된다. 이 글에서는 주일학교 사역이 중국교육에 생명을 줄 수 있다는 새로운 사실을 다루어 보기로 한다.
첫째, 주일학교 사역은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선다
이는 주일학교 교육이 다른 교육과 본질적으로 구분되는 점이다. 인간이 타락한 뒤 모든 것이 부패하고 썩어진 가운데 세상에서는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이 옳은 법칙인듯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주일학교 사역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참되심을 선포하도록 한다. 길을 잃은 자들에게 집으로 돌아갈 길을 가르쳐 주며, 이 길은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서만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임을 깨닫게 한다. 핸더슨 박사가 「주일학교의 투시」에서 말한 것처럼 “주일학교를 바라볼 때 우리가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첫째로 성경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일학교의 가치는 성경의 명령과 원칙, 역사적 모형과 실행, 시대적 요구와 도전에 그 기초를 두어야 한다.” 이것은 주일학교 교사들이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현실적인 도전이 될 것이다. 내가 가르치는 것이 시대적 요구에 부합하는가? 하나님의 복음 안에서 내가 가르치는 것이 생명을 완전히 새롭게 할 수 있는가?
기독교 교육의 목적은 “주께 속한 자들을 완전하게 하며 여러 선한 일을 할 수 있도록 준비시킴”이며, 주일학교의 사역을 통해 아이들과 청년들과 성인들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다. 동시에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복음의 좋은 것을 함께 누리도록 하여 인간의 존엄을 충분히 살릴 수 있도록 한다. 그러므로 주일학교의 교사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점들이 절실히 요구된다.
영성의 배양 : 주일학교 사역은 단순한 하나의 사역이 아니라 생명을 전하고 생명을 이어나가는 과정이다. 생명만이 생명을 인도해 낼 수 있다. 이론은 단지 인간의 두뇌가 수긍을 하도록 만들어 줄 뿐이지 인간의 심령을 울리게 할 수는 없으며, 또한 인간의 의지를 움직여 행동을 변화시킬 수도 없다. 그러므로 주일학교의 교사들에게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바로 개인과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세우는 것이다. 자신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떠하냐에 따라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가 결정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긴밀한 교통이 있을 때 비로소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선하심을 올바르게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진리의 무장 : 지식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우선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튼튼한 기초이다. 성경과 신학에 대해 기본적인 지식과 이해가 있어야만 항로를 이탈하여 한 쪽으로 치우치는 일이 없는 법이다. 진리로 무장할 때 전체 속에서 개인의 독특성이 발휘될 수 있으며,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계획하신 일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것이다.
가르치는 기술의 개발 : 주일학교 교사는 끊임없이 가르치는 기술을 연구하고 개발해야 한다. 그래야만 사역의 효과가 극대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주일학교 사역은 사랑을 그 근본 취지로 한다
이 말은 일반 교육이 사랑의 존재를 소홀히 했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각종 윤리 교육의 공헌으로 ‘사랑’은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단지 놀라운 것은 ‘사랑의 외침’이 더 이상사랑의 외침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선단체도 사랑의 영역을 넓히지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스스로를 사랑하는데 더 급급할 뿐이다. 원래의 뜻과 실제의 행함이 서로 반대되고 있는 이러한 현상은 사람들을 의문에 잠기도록 만든다. 진리, 선함, 아름다움, 사랑이란 것은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진리, 선함, 아름다움, 사랑을 추구하는 일은 왜 실패하는 걸까? 결국 이 모든 것은 다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이미 타락한 존재이다. 이미 타락한 존재가 어찌 순결한 사랑과 완벽한 아름다움을 만들어 낼 수 있겠는가?
「교육의 비결은 참사랑」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나는 저자의 견해에 동감한다. 그러나 참사랑이란 과연 무엇인가? 허무한 이 세상에서 참사랑이 나올 수 있단 말인가? 참사랑은 오직 사랑 그 자체에서만이 나올 수 있을 뿐이다. 그 본체 가운데서만 사랑의 샘이 용솟음쳐 나올 수 있으며 본체를 떠나면 모든 것이 다 헛된 것이다.
주일학교 사역 가운데 사랑의 전달은 바로 사랑의 본체이신 하나님을 근거로 하는 것이다. 사람은 모두 유한한 존재이며 지나가는 존재이다. 오직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사랑을 전할 수 있으며 그래야만 비로소 마르지 않는 영생의 물이 만들어 질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주일학교 사역이 계속해서 이어져 나갈 수 있는 원동력인 것이다.
인간은 타락함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을 조금도 느낄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진정으로 하나님을 아는 자들은 하나님의 깊고 넓으신 사랑을 느낀다.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때 인간의 나약함과 어두움도 깊이 깨달을 수 있게 된다. 그래서 끊임없이 하나님께 고개를 향하면서 점차 인간을 의지했던 습관을 버리게 된다.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 안에서만 인간은 비로소 진정한 확신과 평안함을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예측할 수 없는 이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으로 인하여 삶의 의미를 찾아낼 수 있으며, 가장 약하고 힘들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위로로 다시금 먼 바다를 항해할 돛을 활짝 펼칠 수 있게 된다.
요한은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요일4:16). 이러한 진리의 선포는 하나님이 사랑이시라는 사실을 보여줄 뿐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품안에 거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가르쳐준다.
교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계약관계에 의해 학생을 지도하고 가르친다. 물론 어떤 교사들을 사표(師表)의 입장에서 학생들을 널리 품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자세는 쉽게 고갈되고 쉽게 부정적으로 변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주일학교 교사는 날마다 하늘 아버지로부터 오는 은혜로 인하여 사랑의 눈빛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때로는 세상 풍파로 인해 근심하고 넘어지지만 하나님께 속한 자녀들은 또다시 풍랑 가운데에서 고개를 들고 일어날 수 있다.
중국의 주일학교는 아직 초보단계라 할 수 있다. 중국인들의 혈관 속에는 오랜 역사와 문화가 남긴 독소들이 들어 있다. 이 독소를 깨끗이 씻어 내릴 방법은 어느 누구에게도 없다. 그러나 날아가는 제비도 하나님께서 먹이시고 기르시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13억을 하나님이 그냥 내버려 두시겠는가? 하나님은 반드시 중국 땅에 그의 행하심을 나타내실 것이며, 하나님 뜻에 합당한 백합화를 피우실 것이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사60:1)아멘.
출처 | ‘主日學興中國敎育’, 基督敎神州網 (www.21sz.org)
번역 | 김경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