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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1  통권 79호  필자 : 강진구  |  조회 : 2862   프린트   이메일 
[중국 영화]
중국 여성은 무엇으로 사는가? "인연"
이혜민(李惠民) 감독의 영화 “인연(我要活下去)"


중국 영화 속의 여성은 강하다

중국이 서구사회와 비교할 때 당당히 앞서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분야가 있다면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아닐까 싶다. 페미니즘 운동에 열심인 서구의 여성지식인들 조차도 가정을 비롯한 중국사회 구석구석에서 드러난 여성의 당당한 지위는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가사일을 부부가 공동으로 하는 것은 이미 하나의 전통으로 인식된지 오래이고, 교육이나 사회진출 분야는 물론 이성간의 연애에서조차 중국의 여성은 남성에게 결코 뒤지는 법이 없다. 흔히 ‘3高여성’이라 하여 학력이나 소득, 직장의 지위가 남성보다 높은 여성에 대해서 도도하다는 편견이 나돌 정도로 여성은 남성과의 경쟁에서 결코 뒤처지지 않는다.

이러한 여성의 높아진 지위와 역할은 중국의 오랜 전통과는 무관한 것이었다. 유교전통이 지배하던 중국의 역사에서 여성들은 가부장적인 남성 사회에서 항상 종속당하거나 비하의 대상으로 여겨져 왔었다. 마오쩌뚱이 등장하고 사회주의 이념이 중국을 지배하기 시작한 시대의 변화는 중국 여성들에게는 희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자고로 사회주의 체계에서 여성운동은 자본주의에 대항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기존의 자본주의 체계에서 핵심인 자본은 남성의 전유물이었고 자본의 운용가로서 남성들은 사회의 중요한 지위를 독직하고 있었던 반면, 여성들은 고작 가사의 일을 도맡아 하는 바람에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제한된 생활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사회주의의 여성운동은 여성을 가정의 가사 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 중요했다. 마오쩌뚱은 일찍이 사유재산을 없애서 자본을 독점하던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던 남성의 의식을 바꾸는 한편으로 마을마다 공동식당을 운영하여 여성의 노동력을 가사일로부터 벗어나 일반사회에 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던 것이다. 즉 가족이 여성을 억압하는 가장 중요한 조직이었는데 마오쩌뚱의 사회주의 혁명은 그러한 가족관계마저도 새롭게 변화시켰다고 할 수 있다.

이 영화는 사랑을 이루지 못한 여인의 안타까움이 강조되기보다는 자본주의 경제구조 속에서 적극적으로 자신을 그 사회에 투입시키려는 여주인공의 의지가 돋보이고 있다.

특히 1966년부터 76년까지 10년 간 지속된 문화대혁명은 뜻밖에도 여성의 지위를 상승시크는 아이러니한 결과를 낳기도 했다. 문화대혁명은 중국이 지닌 지식의 기반과 역사 및 전통을 뿌리채 뽑아버리려는 대 격변 그 자체였다. 당시 남성이 주를 이루던 지식인들과 기득권층을 제거하기 위해 마오쩌뚱이 동원한 홍위병은 세상 물정을 전혀 모르는 애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여성들 역시 기존의 전통문화에서 소외당해 왔다는 점이 인정되어 혁명의 주체적인 구성원으로 참여하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문화대혁명 과정과 이후에 나타난 중국에서의 여성의 역할은 몰라보게 향상될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여성의 당당한 면모는 이념을 떠나서 일상생활을 다룬 영화 속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났다. 문화대혁명 이전인 50,60년대 중국어권 영화들에 나타난 여성들은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난 양순한 성격에다가 유교적 전통사회가 강조하는 정절을 중요시하는 여성의 모습이 주를 이루었다. 다만 극적 갈등을 만들기 위해서 성적으로 혹은 경제적으로 무능력한 남성과의 갈등이나 사회의 정조관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가운데 파국을 맞는 여인상이 대부분이었던 것이다. 51년도작인 <홍콩혈>이나 62년도작 <얼해유한>은 이 경우의 대표적인 영화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문화대혁명 이후 급속도로 신장된 여성의 지위와 홍콩과 대만의 눈부신 경제성장 등의 사회변화는 영화에서 여성의 역할을 멜로물이나 귀신의 역할로 나오는 괴기물로부터 벗어나 무협과 액션 그리고 수사물에 이르기까지 여성의 역할과 이미지를 크게 넓혀놨다. 임청하 주연의 <동방불패(東方不敗)> 와 <신용문객잔(新龍門客殘)>을 비롯하여 양자경, 장만옥, 매염방 등 홍콩 여성 3인방 주연의 <동방삼협(東方三俠)>은 남성 중심의 무협영화의 판도를 바꿔놨고, 양자경이 열혈형사로 주연하는 <예스 마담(皇家師姐)> 시리즈 등은 분명 중국 사회에서 상승한 여성의 지위가 영화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음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중국 본토영화도 마찬가지여서 비록 촌부(村婦)이긴 하지만 이장에게 맞고 돌아온 남편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대도시로 달려가 남성 관료주의에 대항하여 법정 소송까지 벌이는 내용을 담은 <귀주 이야기(秋菊打官司)>의 주인공 귀주나 심지어 <책상 서랍속의 동화(一个都不能少)>의 13살 먹은 대리선생 모두는 연약한 여성이 큰일을 낼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에 다름 아닌 것이다.

지난 2000년 중국여성기업인협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여성 기업인들이 운영하는 중국의 150만개 기업 가운데 단 1.5%만이 적자를 낸 것으로 나타난 것만 보더라도 현실 속 중국의 여성파워는 영화 속을 정복할 만한 것이다.

여성의 사랑과 야망

이혜민 감독의 95년 작<인연(我要活下去)>은 문화대혁명 이전인 1950년대로부터 최근에 이르는 격변의 세월 가운데서 변화하는 여성의 역할을 지켜볼 수 있는 보기 드문 영화라 할 수 있다. 시작은 전통적인 가부장제 사회에서 가난한 여성이 겪어야 하는 고통을 다루고 한 여성상을 그려내고 있다.

1950년대 중국 상하이, 여주인공 패신은 같은 동네의 청년 문장양을 사랑하지만 할머니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런던에서 중국음식점을 경영하는 홀아비 엽계성에게 시집을 가게 된다. 돈 때문에 머나먼 외국으로 팔려가는 주인공의 모습은 과거의 중국이나 우리나라 같은 가난한 농촌 사회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던 일이었다. 이 때 여성은 무기력하고 남성에게 종속당한 입장에 처해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언어와 문화가 다르고 중국 보다 앞선 경제력을 지닌 영국에서의 낯선 생활이란 패신과 같이 자기 것이라곤 몸뚱이 하나 밖에 없는 여인에게는 그저 남성에게 순종하고 살 수 밖에 없는 토대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여자가 주인공인 경우 이럴 때 중국인들이 영화나 소설에서 흔히 쓰는 수법은 여주인공을 상대하는 남성을 무기력하게 묘사함으로써 이 여성의 위치를 바꿔놓는 일이다. 막상 패신을 영국으로 데리고 온 엽계성은 뜻밖에도 교통사고로 아내를 잃고 딸은 장인인인 상태로 생활하고 있는데다 자신마저도 성(性)적으로 무능력한 존재임이 밝혀진다. 이런 경우 시간이 가면 갈수록 남성과 여성의 지위는 변하게 마련이다. 이제 서구 문화에 익숙한 패신은 스스로 나서서 식당을 경영하게 되고 엽계성의 딸인 엽범과도 마음을 터놓는 친숙한 사이로 변모한다. 이 가정을 위협하는 존재는 패신이 아니라 도박 빚을 진 엽계성이되고 이 빚을 갚기 위해서 패신이 빚쟁이와 담판을 짓는 담대함은 여성의 연약함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을 바꿔놓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내용이라면 여느 신파극이나 통속적 멜로물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영화의 후반부는 인물과 무대를 모두 바꾸어 홍콩에서 시작하고 이제 패신은 영국에서 익힌 세련된 서구의식과 한편으로 중국적인 것을 지향하는 복합적인 여성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패신과 이제 성년의 딸이 된 엽범은 홍콩으로 돌아와 몇 년 동안 연락이 끊긴 할머니를 만나고 할머니가 돈 많은 가문으로부터 아무것도 상속 받지 못한채 버려진 상황을 알게 된다. 패씨 가문의 거액의 돈을 상속 받을 수 있는가의 문제에서 패신이 할 수 있는 길은 오직 한가지 할머니가 패씨 가문의 사람임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그것을 위해 패신은 여성편력이 있지만 능력있는 변호사 고준과 결혼하기에 이른다. 패신의 원래 사랑의 대상은 문자양이었지만 그녀는 보다 낳은 현실을 택하여 고준과 결혼하고 마침내 상속권을 인정받기에 이른다. 이제 남은 것은 패신을 몰락시키려는 남성 패거리들과의 한판 승부. 영화는 이 부분에 있어서도 패신이 결코 남성에게 뒤지지 않는 수완과 능력을 갖췄음을 암시한다.

영화 <인연>의 무대는 중국 상하이와 런던 그리고 홍콩이라는 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세 도시를 배경으로 한 인물 안에서 드러나는 세가지 모양새의 여성의 모습을 비쳐주고 있다. 상하이가 중국의 전통적인 의식이 지배하는 봉건적인 여성상을 보여주었다면, 런던에서의 패신의 모습은 서구적인 면모와 중국의 가정적인 여성상이 결합되어 있는 동서의 복합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남편에게 매어있지 않고 자주적으로 식당을 끌고나가는 점에 있어서 서구적인 적극성을 엿볼 수 있는 한편으로 장애인인 엽범에 대해서 자애스러운 접근으로 어머니의 권위를 되찾는 동양의 지혜를 갖춘 여성의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홍콩으로 돌아온 패신의 모습은 크게 달라져있음을 알 수 있다. 그녀는 자본의 정글 속에서 생존하고 또 성공해야 하는 냉철한 기업가로써 움직인다. 성공지향적인 그녀의 욕망은 사랑마저도 잠재울 정도다. 패신은 어릴 때 친구 문자양을 마음에 두고 있지만 현실 때문에 바람둥이인 변호사 고준과 결혼하는 것도 사랑뒤에 감춰진 여성의 무서운 야망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그녀는 외할머니가 옛날부터 들려준 이야기를 되새긴다.

“여자는 자기가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하지 않을 수도 있어. 그러나 마음속에 그 사랑을 간직하면 그녀는 평화롭고 행복한 삶을 영원히 살 수 있지.”

그러나 이 영화는 사랑을 이루지 못한 여인의 안타까움이 강조되기보다는 자본주의 경제구조 속에서 적극적으로 자신을 그 사회에 투입시키려는 여주인공의 의지가 돋보이고 있다. 패신이 얻고자 하는 행복이 다시 상하이로 돌아와 옛사랑을 회복하는 것으로 끝을 맺지 않고 홍콩에서 경영자로서 수완을 발휘하는 것으로 끝나는 대목은 그래서 더욱 더 의미심장하다. 중국 여성들에게 가난한 사랑이란 별 다른 흥미를 주고 있지 않은 듯하다. 차라리 그런 사랑일랑 마음에만 간직해 두고 부유한 현실을 택하는 쪽이 훨씬 매력이 있다고 여기는 모양이다.


강진구 | 영화평론가, 크리스천문화커뮤니케이션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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