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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0.20  통권 78호  필자 : 강진구  |  조회 : 3848   프린트   이메일 
[중국 영화]
전통적 역사 영웅의 재림
척화영웅(斥和英雄)


오랜만에 만나는 애국 충절의 영화


영화사에 있어서 ‘충성’과 ‘애국’을 보여주는 영화를 발견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특히 전쟁이나 군인을 소재로 한 영화에서 이 주제들은 쉽게 관객을 만나기도 한다. 나라가 전란에 휩싸이는 위기의 순간에서 자신의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리고 장렬히 산화하는 인물들은 늘 관객에게 깊은 감동과 아울러 민족과 국가에 대한 충성지수를 높이는 효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왜냐하면 영화를 본다는 것은, 보는 관객이란 주체가 스크린이라는 타자와 아무런 관계도 맺지 않고 그저 바라만 보는 것을 뜻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관객을 영화 속 주인공과 동일시하게 되며, 그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거나 가지고 있는 신념을 강화받기도 한다.

이 때문에 ‘애국’과 ‘충절’의 영화들은 국가가 적극 장려하는 교육용 영화로 이해되기도 했었다. 우리나라 70,80년대에도 중∙고등학생들이 시험이 끝나면 학교에서 단체로 영화를 보러 가곤 했는데, 이럴 때의 단골 메뉴는 <성웅 이순신>과 같은 민족의 영웅이 출현하는 영화들이 주를 이루었던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비록 어느 정도의 강제성이 있다고 해서 ‘충성’ 과 ‘애국’ 처럼 민족과 국가를 지지하고 개인보다 높은 상위 가치를 제공받는 영화들이 고전적이고 전근대적인 영화라고 인식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인간은 사회나 민족, 국가와는 별도로 독립적인 한 개인으로서만 존재하며 살아가지는 않는다. 과거로부터 이어지는 역사의 한 부분을 이루며 그 역사의 주인공이 되든 희생자가 되든 민족이나 국가와 운명을 함께 하는 것이 일반적인 경우였다. 따라서 한 개인의 삶을 조명하는 영화일 경우 그것이 단순한 개인적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진행되면  모를까, 전쟁과 같은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한 영화라면 주인공 개인이 가지고 있는 역사의식이나 시대정신 등은 ‘조국애’나 ‘민족애’등과 같은 이념적인 요소를 수반할 수 밖에 없다. 

가장 오락적이며 상업적인 영화를 만들고 있고 개인주의가 지배하는 미국의 할리우드 역시 이 점에서는 예외가 아니다. 흔히 군대에서나 볼 것 같은 영화들이 사실은 할리우드의 세련된 감각으로 제작되어 끊임없이 출품되고 있다. 최근에 나온 <위 워 솔저스>와 같이 베트남 전쟁 초기의 군인들의 전투하는 모습을 다룬 영화들은 물론이고, 소말리아의 테러를 지원하는 군벌들을 토벌하기 위한 작전을 다룬 <블랙 호크 다운>이나 <커리지 언더 파이어>같이 걸프전에서 전사한 여군 장교를 다룬 영화들에 이르기까지 미국은 고답적인 어휘로만 여겨질 것 같은 ‘충성’과 ‘애국’을 가장 잘 상품화하는 나라라 할 수 있다.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관객이 본 것이 오직 미군과 독일군과의 총싸움뿐이겠는가? 자식을 넷이나 전쟁터에 보내 세 명의 자식을 잃어버린 어느 어머니의 슬픔이 더 깊어지지 않도록, 남은 한 명의 아들을 구하기 위해 뛰어든 병사들. 한 사람을 위해 여러 명이 희생되는 과정 속에서, 미국인들은 명령으로 이루어진 것이긴 하지만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영웅의 존재를 확인했을 뿐만 아니라, 가정과 개인을 끝까지 배려하는 국가라는 조직의 역할에 새삼 감동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전쟁터에서 꽃핀 전우애와 성조기로 둘러싸인 관, 죽은 이를 애도하는 조포(弔砲)와 울리는 미국 국가, 어쩌면 이것은 미국과 상관이 있건 없건 관객의 눈시울을 젖게 만드는 익숙한 장면들이 아닌가 싶다. 

우쯔뉴(吳子牛) 감독이 만든 최신작 <척화영웅(斥和英雄)>은 우리의 눈에 낯익은 전쟁 영우을 보여주면서도 중국 고전을 읽는 듯한 착각이 들만큼 교훈의 요소들을 많이 가지고 있는 영화라 할 수 있다. 우쯔뉴 감독은 장이모(張藝謨)나 천카이거(陣凱歌)감독과 같이 소위 말하는 중국 영화의 제5세대에 속한다. 제5세대 감독들은 중국 고유의 문화와 자연 그리고 인생에 대하여 특유의 예술적 감각을 유감 없이 발휘하는 사람들이다. 우쯔뉴 감독의 경우 멜로드라마보다는 사극(史劇)에서 그의 재능을 보여주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최근 중국 베이징 TV(BTV)가 제작하는 30부작 대하사극<독행시위(獨行侍衛)>의 연출을 맡았고, 한국 배우 김민이 여주인공 영녕공주 역에 전격 캐스팅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정성공(鄭成功)을 통해서 본 영웅관 

명나라 말기의 호국 충신 정성공(鄭成功)의 활약상을 그린 <척화영웅>은 유교를 이념으로 삼은 중국 황조의 전통적 신하의 이상형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청나라에 쫓겨 남쪽 푸젠(福建)성까지 밀려간 명의 황제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것은 어찌 보면 너무 순진한 행동으로 비춰지기까지 한다. 명의 황제는 정성공이 22세의 청년에 불과하지만 청에 대해 끝까지 저항하려는 그의 기개를 높이 사서 주씨 성을 내리고 격려하지만, 대세는 이미 청에 기울어진 상태였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중국 고전의 영웅관은 이러한 위기의 상황에서 나타난다. 먼저 세류에 휩쓸리지 않고 정도(正道)를 가려는 의지의 발현이 출발점을 이룬다. 중국 사방 곳곳에서 청의 군인들이 보는 사람마다 즉각 변발을 시행하는 것을 보고 분개하며 이를 거부하는 행위를 통해 명황조에 대한 변치 않는 마음을 다짐한다. 변발이란 단순히 헤어스타일의 변형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곧 마음을 빼앗는 것과 같다라고 여겼다. 정성공이 갖는 영웅의 정의로움은 이 영화에서 선(善)으로 작용한다. 

둘째, 충성의 의지를 약화시키는 배반의 음모가 나타난다. 의지가 곧은 정성공을 죽음의 위기에 몰아 넣은 인물은 다름 아닌 아버지와 둘도 없는 자심의 부하. 남이 아닌 가족 안에서 벌어지는 배신과 음모는 영웅의 고뇌를 강화시켜 극적 효과를 가져오는 한편, 앞으로 벌어질 영웅의 활약상에 대한 기대감을 모으는 역할을 한다. 역사적으로도 정성공은 청에 복종한 아버지와 의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셋째, 가족으로부터 배신당한 상태에서 영웅은 고독을 느끼지만 그의 곁에서 충성과 절개의 의지를 북돋아 주는 조력자가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그 중 설랑이라는 타이완 여인은 청의 공격으로부터 함께 저항하고 타이완을 네덜란드 군인들로부터 탈환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정성공의 친어머니는 일본인인데, 어머니가 일본에서 중국으로 배를 타고 오던 중 타이완에서 도망쳐 나오다 물에 빠진 사람들을 구해주게 된다. 그중 한 명이 바로 설랑이라는 여인이었다. 그녀는 그 은혜에 감사하여 정성공에게 또 다른 충성을 보여준다. 은혜 갚기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충성이지만 그 결과는 정성공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큼 헌신적이었던 것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그리스나 로마 신화 혹은 일반적인 영웅들이 저지르는 여성 편력의 모습이 여기서는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당시 중국의 상황 속에서 설랑은 정성공의 욕심에 따르자면 얼마든지 소유할 수 있는 대상이었지만, 자신의 부인을 존중하고 설랑을 인격적으로 대하는 모습은 충신의 윤리가 사생활의 영역에까지 미침을 보게되는 매우 흐뭇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넷째, 드디어 영웅적 행위의 결정체라 할 수 있는 전쟁을 치르는 용기와 지혜가 드러난다. 네덜란드는 1624년부터 1661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타이완을 지배하고 있었다. 역사 기록에 따르면 그는 1661년 2만 5천명을 이끌고 타이완 수복 전투를 개시해 약 1년 만에 네덜란드와의 전쟁을 승리로 끝맺었다. 

영화 <척화영웅>은 청조에 대항하는 한편으로 중국의 땅 일부라고 여긴 타이완을 지배했던 네덜란드인을 물리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그러나 영화의 강조점은, 제목이 의미하는 바대로 외침을 이겨내고 본래의 땅을 회복하는 것에 모아져 있다. 정성공은 타이완을 장악한 후 이를 근거지로 청나라에 대항하다 타이완이 회복된 이듬해에 죽었다. 

<영웅본색>과 같이 홍콩 뒷골목의 갱들이 영웅화되거나 <황비홍>과 같은 무술의 영웅이 추앙되던 영화계에서,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인물을 영웅화시킨 이 영화는 시대적으로 매우 의미있는 해석을 낳게 한다. 첫째는 중국 본토와 타이완과의 관계를 빗대어 정치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한편, 서구의 자본주의제도를 도입하고 개방화가 이루어져 서구의 문물이 물밀 듯 쏟아지는 이 시점에서 탈환하고 회복시켜야 할 영영이 존재함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 

오랜만에 고전적 영웅을 만나는 감회는 분명 할리우드의 망토 뒤집어쓰고 나오는 영웅들에게서 볼 수 없는 아시아인으로서의 감동이다. 


강진구 | 영화평론가, 크리스천문화커뮤니케이션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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