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가 중국 대륙에 전례없이 광범위하게 전파되면서 수천만 명의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고, 그 중에는 수십만 명의 지식인들도 있다. 이들은 스스로 중국과 기독교 신앙의 관계에 대한 중대한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하였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중화민족의 운명과 역사적으로 어떤 연관이 있는가?”, “5천년 중국 역사 가운데 하나님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셨는가?”, “과연 하나님은 태고부터 영원까지 중화민족의 하나님이신가?”
중국 역사상 당대(唐代)에 경교(景敎)가 전래된 이후부터 지금까지 기독교와 중국인 사이에는 반목상태가 계속되어왔다. 중국인의 문화 우월주의, 근대 이후 만연한 반기독교 정서(의화단의 난 등), 그리고 교황과 서구 신학자들의 중국 문명에 대한 잘못된 인식은 기독교와 중국인 사이에 문화, 정치, 종교 관계 등 대외적으로 많은 갈등과 논란을 일으켰다. 1949년 이후 사회주의 의식구조 하에서는 신학 방면에서조차 기독교와 중국 문명에 관한 논증은 거의 금기시되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이 문제를 외면만 할 수 없게 되었다. 수십만 중국 지식인들의 가슴 속에는 중국의 유구한 역사가 면면히 흐르고 있으며, 그 역사의 풍랑을 체험한 이도 많다. 그런데 이제 그들이 하나님의 빛 가운데로 들어왔다고 해서 그 파란의 역사를 망각해 버리고 백지를 만들 수 있겠는가? 해외에서 살았거나 서구 신학에 능통한 사람들 가운데 진지하게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해 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필자는 이 문제에 대해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으로 여기고 독자들과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한다.
복음의 본질상 기독교 신앙과 중국의 오천년 역사는 각각 별개의 것인가, 아니면 밀접한 관계가 있는가?
기독교는 2천년이 안되었고, 서구에서 시작된 종교이므로 중국의 역사, 문화와는 상관없는 것이라고 인식한다면, 결구 기독교와 중국 역사 간에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무신론적 민족주의자나 기독교 신학자들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이러한 각도에서 문제를 바라본다면, 기독교는 하나의 특정한 역사적 전통과 시공간 및 조직을 갖추고 특유의 용어를 가진 종교에 불과하다. 그러나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이러한 결론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영원한 분이시며, 전지전능하고 선하신 창조주이다. 성육신하여 세상에 죄인들을 구원하러 오심으로 창세 전부터 예정하신 구속사역을 성취하셨다. 이러한 의미에서 기독교 신앙과 중국의 역사는 분명 관계가 있다.
성경의 성부관(聖父觀)을 보면, 하나님은 단지 이스라엘 민족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모든 민족의 하나님이시다(행 17:26). 그는 인류의 빛이시며(요 1:4), 세상을 구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왕이다(시 47:2,8). 성경에 따르면, 하나님께서는 우주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신다(시 19편). “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도다”.(행 17:27)
성경의 역사관에 따르면, 하나님께서는 전 인류 역사의 주재이시며(행 14:16, 시 29:10), 현 인류는 모두 노아의 후손들이다. 창세기 전반부에서 11장까지는 인류의 공통적인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데, 고대 문명 가운데 그 흔적들을 찾아볼 수 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자고로부터 중국인의 하나님이었고, 중국에서 그 주권을 드러내셨으며, 중국 문화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일반계시를 발견할 수 있다. 즉 중국인 역시 노아의 후손이며 중국 옛 문헌에서 창세기 앞부분 11장의 흔적들을 찾아볼 수 있다.
복음을 중국의 역사 문화로부터 분리시켜야 하는가? 아니면 중국의 역사 문화 가운데로 복음을 들고 들어가야 하는가?
어떤 이들은 그저 예수를 전하는 것만으로 족하다고 한다. 그런데 왜 지금 나는 중국의 오천년을 들여다 보고자 하는가? 성경은 주의 길을 예비하고 그 길을 평탄케 하라고 말씀하신다(마 3:3, 사 40:4-5). 이 말은 바로 지금의 중국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5 ∙ 4 운동(1919년 5월 4일 베이징(北京)의 학생이 일으킨 반제국주의 ∙ 반봉건주의 혁명 – 편집자 주) 당시 중국은 과학, 인본주의, 민족주의, 유물론 등이 어우러진 무신론적 사조가 정치, 역사, 문화계 모든 영역을 뒤덮었다. 그 중에서도 중화문명에 대한 무신론적 해석은 가장 심각했는데, 이것이 국가적 정설이 되었고 일부 기도교인도 이를 받아들였다. 무신론자들은 하나님은 단지 서구인들의 하나님이고, 성경은 유대인의 경전에 불과하다고 주장하였다. 어떤 기독교인들은 중국 역사 어디에 하나님의 제시와 간섭하심이 있었느냐고, 어떻게 성경 이야기와 중국 역사를 한데 묶어 생각할 수 있느냐고 반문하였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 했다. 명말 청초 마테오 리치, 탕약망(湯若望),, 남회인(南懷仁)과 같은 천주교 선교사들과, 당시 중국을 이끌었던 서광계(徐光啓), 순치제(順治帝), 강희제(康熙帝) 등은 “천국은 성자(聖子: 그리스도)를 통해서 가는 것이다. 유교는 섬길 만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복음의 전성기를 이끌어냈다. 그러나 양광선(陽光先), 옹정제(雍正帝) 등은 기독교와 중국 문화는 물과 불처럼 결코 섞이지 못할 것이라 했고, 바티칸의 교황 역시 같은 입장이었다. 그래서 중국의 그리스도인들과 서구 선교사들이 서로에게 등을 돌리고 대적하는 심각한 상황까지 벌어졌으며, 중국은 백여 년 동안 기독교에 문을 굳게 달아 걸었다. 그리고 결국 아편전쟁이라는 비극적인 결과를 낳았다.
지금 그 오래된 질문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 복음은 진정 중국에서 영원히 중국 문화와 섞일 수 없는 것일까? 중국에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맹자와 공자, 노자와 장자, 제자 백가를 깨뜨려 부수어야만 하는가? 중국인이 하나님을 믿기 위해서는 오천년 역사를 잊어버려야만 하는가?
하나님은 결코 편협한 분이 아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하나님께서는 별을 통해서 동방의 박사들에게 이를 계시하셨고, 다른 유대인 랍비들에게는 계시하지 않으셨다. 또한 700년 전 이사야의 입을 통해 “혹자는 원방에서, 혹자는 북방과 서방에서, 혹자는 시님(중국) 땅에서 오리라(사 49:120”고 말씀하셨다. 그렇다. 기독교는 이천년이 안되는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예수님은 태초부터 계셨던 말씀이며 중국인들의 삶 역시 이미 그분의 빛 아래 있었던 것이다. 즉 중국 역사와 하나님의 주권을 분리하는 것은 비성경적이며, 중국 복음화의 걸림돌이라고 할 수 있다.
신앙적 입장에서 기독교를 중화문명의 입장에서 해석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무신론적 입장에서 해석해야 할 것인가?
그리스도인이라면 당연히 무신론적 해석에는 찬성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도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이에 동조하고 있다. 예를 들어 논어(論語), 노자(老子), 하나님(上帝), 하늘(天), 도(道), 용(龍) 등을 얘기할 때, 우리가 떠올리는 것은 모두 귀에 익숙하게 들어왔던 기존의 해석들이다. 이러한 해석들은 수천, 수백, 수십 년 동안 무신론자들의 손에 좌지우지 되어왔다는 사실을 독자들은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중국인들이 도(道)와 하늘(天), 하나님(上帝)의 뜻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모두 어릴 적 학교에서 배웠거나 다른 사람들로부터 들은 무신론적 입장의 해석인 것이다.
한 사람이 하나님을 믿고 새 생명을 얻어 그 마음과 가치관이 새로워졌다면, 더 이상 과거의 가치관으로 이 세계의 역사와 현상을 바라볼 수는 없다. 더욱이 무신론적 관점에서 논한다는 것은 더더욱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제 하나님의 빛 가운데에서 새롭게 중화문명을 재해석하는 작업은 중국 교회가 간과할 수 없는 과제가 되었다. 오천년의 문명 역시 고스란히 무신론자들의 손에 내어줄 수 없지 않은가. 중국의 그리스도인들은 더 이상 무신론자들의 이론과 방법에 놀아나서는 안될 것이다.
신학적 현상에서 바라볼 때, 기독교 신앙과 중국 문화의 근본적인 관계는 중시되어야 하는가 아니면 간과해야 할 것인가?
중국의 오천년의 역사는 거의 신앙과 신학이 없는 상태에서 진행되어왔다. 대부분의 중국 신학자들은 중화문명사를 연구하지 않으며, 중국의 신학계는 중국 역사에 관심이 없다. 중국 신학교에도 하나님의 빛 가운데 중국을 바라보는 과정이 없다.
몇 년 전 나는 「중국무신론사개관(中國無神論史槪觀)」이라는 책을 구입했는데, 후속으로 「중국유신론사개관(中國有神論史槪觀)」이라는 책이 나오면 아주 두꺼운 책 한권이 만들어지겠구나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결코 무신론자는 이 책을 쓸 수 없을 것이다. 결국 교회가 이 작업을 해야 할텐데 현재 이 작업을 하는 교회는 없다. 그도 그럴 것이 교회 안에서 역사는 그저 교회사로만 이해되고 있고, 하나님은 단지 교회 안의 하나님으로만 이해되고 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 위대한 신앙이 이러한 단순한 종료로만 축소되어 버린 것일까?
하나님 나라의 복음 사명을 위해서 중국 기독교인들은 더 이상 안일해져서는 안 될 것이다. 마땅히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는 비전을 좇아 용감히 중국 당을 밟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기쁨으로 이러한 일에 헌신할 사람을 찾으신다.
구체적인 연구를 진행하는데 있어, 어떤 태도와 시각에서 중화문명과 기독교 신앙의 연계성을 연구해야 할 것인가?
중국 근현대에 이루어진 기독교와 중화문명과의 연계성에 대한 연구는 다음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눠볼 수 있다.
첫째, 문화 연구이다. 기독교를 서구 문화로 보고, 그것과 중국 문화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연구하는 것이다. 이 연구는 종종 학술계에만 한정되고, 교회 신앙안으로는 들어오지 못했다.
둘째, 상호보완적 연구이다. 어떤 이들은 기독교가 중국 유교의 부족한 점을 보완할 수 있다고 하기도 하며, 심지어 어떤 이는 기독교가 중국의 병폐를 고칠 수 있다고도 한다. 원죄설과 구속설이 그것이다. 또 어떤 이들은 신구약 성경은 유대인의 역사이므로 여기에 중국의 고전 역사를 보충한다면 쉽게 중국 안으로 전파될 수 있을 것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종류의 연구들은 지금까지 교회 안팎에서 큰 영향력을 미치지 못했다.
셋째, 비교연구이다. 이것은 다소 막연한 형태의 수평적인 비교로서 중화문명과 성경 간에 서로 비슷하거나 상통하는 점이 있는지 발견하는 연구이다. 그러나 성경의 진리는 영원히 불변하는 것이어서 어떤 보충도 필요 없으며, 사람들에 의해 증명될 필요도 없고 수평적인 비교도 어려운 것이다. 이와 달리 문화, 역사, 고고학, 과학 등은 인류사의 활동으로서 각기 다른 각도, 다른 시기, 다른 방식으로 하나님과 그 말씀이 진리이고 믿을 만한 것임을 인증하고 확인시켜주고 있다. 증명할 필요가 없는 진리는 이미 온 땅에 드러나 있다. 중국 역시 예외가 아니다. 중화문명과 기독교 신앙의 연계는 완전히 증명하고 증명되어지는 관계의 것이다.
들꽃이나 한 마리 새, 따스한 햇빛 한 줄기, 봄에 내리는 한 줄기 비 그 어느 것도 무신론자의 논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은 그것들을 통해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볼 수 있으며, 주님의 놀라운 사랑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마 5:45, 6:26-30). 하물며 오천년의 유구한 중화문명 속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발견할 수 없겠는가?
만약 내가 하나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오천년 역사 뒤에 숨은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의 거대한 손은 결코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인본주의의 물결 속에서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우리가 용의 후손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도 전혀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더욱이 하나님께서 우리의 반역과 불순종으로 인하여 눈물을 흘리시며, 끊임없이 우리에게 구원의 손길을 뻗어 오셨다는 사실을 깨닫지도 못했을 것이다.
의심할 바 없이 어느 한 중국인이 기독교인이 되어도 여전히 그는 중국인이다. 새 생명을 얻은 그는, 중국의 어제와 오늘 또한 내일에 새로운 비전을 품고 새로운 사명을 소유한 중국인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중국인의 한 사람으로서 하나님께서 내게 보여주신 일, 즉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 생명의 빛이 아니고는 그 어떤 것으로도 중국인들의 가슴에 깊이 새겨진 분노와 병폐, 죽음의 그림자를 걷어낼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다. 모든 정치 파당이나 신학적인 종파를 뛰어넘는 십자가의 사랑 외에는∙∙∙.
출처 | ‘上帝與中國’, 「擧目」, 2001년 3월호
번역 | 김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