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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8.20  통권 77호  필자 :  |  조회 : 2106   프린트   이메일 
[중국 탐구]
가난 속에 움트는 희망의 새싹

도시의 잊혀진 사각지대

베이징 야윈촌(亞運村)에서 북쪽으로 가다보면 하이디엔(海淀)구의 베이스탄(北沙灘)이라는 곳이 니온다. 이곳 사람들조차 무엇이라고 부르는지 모르는 작은 골목을 지나 진흙과 자갈이 뒤범벅된 길을 따라 들어가면, 이 지역에 거주하는 민공 자녀들이 공부하는 ‘와비엔춘(漥邊村) 희망초등학교’를 만나게 된다. 이곳에는 농촌에서 온 다수의 민공들이 살고 있는데, 그 중 95%가 허난(河南)성 구스(古始)현에서 온 사람들이다. 17,000명에 달하는 허난 출신 민공들은 이곳에 자신들만의 작은 집단을 형성하였다. 베이스탄이 속해 있는 롱왕탕(龍王堂)향은 도심과 외곽의 경계선에 놓여있기 때문에 사실 베이징에서 그렇게 멀리 떨어진 곳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가난, 호적이라는 장벽 때문에 민공들은 베이징시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있다. 날품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부모 밑에서 호적도 없는 아이들이 베이징 시내에 있는 학교를 다니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아이들만 고향에 남겨두고 학교에 다니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현재 약 1억 2천만 명에 달하는 중국의 유동인구 가운데 민공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이 중에서 20~30%가 취학아동 및 청소년이라고 추산하여 볼 때, 그 수는 약 240만~360만 명에 달한다. 이들은 분명히 의무교육 대상이지만, 사실상 교육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가난의 장벽 앞에 

와비엔춘 희망초등학교로 들어서자 어린이들이 소리를 맞추어 책을 낭독하는 소리가 들렸다. 교실문을 밀고 들어가자, 붉은 옷을 입은 여교사가 카메라를 보고 깜짝 놀라며 경계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녀가 바로 학교의 교장 리징(李靜, 42세)이었다. 리징은 학교가 언론에 보도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시끄러워지는 건원치 않습니다. 이곳을 보도하면 향(鄕) 정부에서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을 겁니다. 우리는 다만 학교가 조용히 유지되어 졸업생들을 배출해낼 수 있기만 바랄 뿐입니다.” 그녀는 말하는 도중에 계속 자신과 학교에 관련된 각종 허가증과 서류들을 꺼내어 보이면서 자신의 ‘정당성’을 증명하였다. 늘 불안한 환경이 자연스럽게 만들어 낸 습관인 것 같았다. 

허름한 학교 건물의 벽과 천장은 여러 번 덧칠하여 얼룩덜룩하였고, 유리도 없이 뻥 뚫린 창문으로 차가운 바람이 불어와 어린 학생들을 괴롭혔다. 그러나 학교 내부는 정리가 잘 된 편이었다. 처마 밑의 담에는 시멘트를 발라 칠판을 대신했다. 가장 눈에 뛴 것은 흰 벽에 붉은 색으로 크게 쓴 두 개의 표어였다. “교육은 백년대계”, “열심히 공부하여 실력을 향상하자” 그래도 이 학교는 이 근체에 있는 서너 개의 민공 학교 중 조건이 가장 좋은 곳에 속한다고 했다. 

리징의 고향 친구가 처음 시작한 이 학교는 4년이 되었으나, 아직까지 교육부의 승인을 받지 못하고 있다. 18세부터 교직에 종사한 리징은, 1년 전 허난성에서 친구의 도움 요청을 받고 곧장 이곳으로 달려왔다. 하지만 교육환경이 이토록 열악할 줄은 생각조차 못했다고 한다. “원래는 몇 백 명의 학생들이 있었는데, 이 근체에서 올림픽 관련 건물 공사가 시작되면서 학교가 철거될 상황에 놓였습니다. 그러자 많은 민공들이 아이들과 함께 다른 곳으로 이사 갔습니다. 지금은 백여 명의 학생만 남아있습니다”. 

이 학교에 소속된 여섯 명의 교사들은 대부분 허난성에서 왔다. 월급으로 겨우 300~400위안(한화 5만~6만 5천원)을 받는데, 그나마 제 때 지급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교사는 부족하지만 재정 부족으로 인해 더 이상 고용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 학교 교사들은 어린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1학년부터 5학년까지 있고, 1년 학비는 300위안으로 저렴한 편이지만 민공들에게는 매우 부담스러운 액수이다. 리 교장이 가져온 장부를 보니 90%의 학부모들이 100위안만 냈고, 겨우 한 두 명이 300위안 전액을 납부했다. 

민공들은 ‘임시거주증’ 등 6~7가지의 허가증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 가운데 하나라도 없으면 공안이나 치안요원에게 끌려가 수용되었다가 고향으로 쫓겨난다. 한번은 한 학부모가 공안에 끌려갔는데, 이 사실을 모르고 학교에 있던 아이는 수업이 끝나고 날이 어두워졌는데도 부모가 데리러 오지 않자 하는 수없이 선생님 집에서 며칠 동안 먹고 자야 했다. 얼마 전에도 두 학생의 부모가 수용소에 있다가 고향을 쫓겨난 뒤 다시 베이징으로 황급히 올라와 아이를 데리고 갔다고 한다. 

리징은 항상 여러 허가증들을 몸에 지니고 다닌다. 다른 교사들에게도 각종 증명서들을 잊지 말고 챙기라고 틈만 나면 당부한다. 만약 교사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학생들에게 미칠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리징 교장에겐 두 자녀가 있는데, 열일곱인 큰 아이는 허난에서 학교에 다니고 있어 1년에 몇 번밖에 만나지 못한다고 한다. 학교의 재정이 어려워 그녀는 지난 학기에 월급을 한 푼도 받지 못했다. 남편은 원래 장거리 버스 기사였지만 지금은 그만두어 온 가족의 생계가 그녀에게 달려 있다. 

“이곳엔 모두 허난 사람들입니다. 말도 온통 허난말을 쓰죠. 아마 고향을 떠나온 느낌이 별로 안 들거예요. 나는 이상주의자는 아닙니다. 그저 고향 아이들을 위해 하는 일이죠. 처음 베이징에 왔을 땐 나도 돈을 많이 벌고 싶었지만, 지금은 이 길로 들어섰고 이젠 돌이킬 수 없습니다. 내 마음에 아이들이 자리 잡게 되었으니까요.” 

예전에 한 학부모가 다른 지역에서 일자리를 얻어 이사를 가려고 하자, 아이는 울면서 학교와 선생님으로부터 떨어지지 않게 해달라고 애원하였다. 하는 수없이 부모는 할머니와 아이를 이곳에 남겨두고 아이가 계속 학교에 다니도록 했다고 한다. 

향 정부는 학교에게 각종 관리비용을 독촉하고, 그때마다 즉시 납부하지만 교장 리징은 매일매일 불안하다. 합법적인 등록절차가 제대로 안 된 학교를 이끌어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어느 날은 한밤중에 누군가 교문을 두드리면서 무슨 비용을 배라고 독촉했다. 너무 늦은 밤이라 무서워 문을 열어주지 못하고, 이튿날 아침 일찍 관련부서로 찾아가 비용을 지불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알아본 바로는 그런 비용을 지불하라는 일이 애당초 없었다는 것이었다. 누군가 꾸민 일이었다. 

아이들이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아이들은 모두 자신들이 도심에 있는 좋은 학교에 들어갈 돈이 없는 날품팔이 노동자의 자식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온갖 고생을 참으면서 열심히 공부합니다. 손바닥만한 단칸방에서 온 식구가 밥을 먹고 잠도 잡니다. 그러다 보니 집에서 공부할 환경이 안 되지요. 아침 7시면 아이들은 모두 등교해서 오전수업을 합니다. 세 시간 정도인 점심시간에 집에 돌려보내면 가서 밥만 먹고 얼른 다시 학교로 돌아와 숙제를 한답니다. 오후 늦게 수업이 끝나도 아이들은 학교에 남아 있다가, 해가 지고 깜깜해지면 그때서야 집에 돌아가지요. 이런 학교가 없다면 아이들은 그저 골목에서 시간만 보내고 있었을 겁니다. 저는 늘 학생들에게 열심히 공부해서 실력을 갖추라고 말합니다. 그래야 다른 사람들이 우습게보지 못 한다구요.” 어느새 그녀의 눈가가 촉촉이 젖어들었다. 

“민공 자녀들은 늘 도시 아이들에게 무시당합니다. 전 아이들이 고개를 들고 자라났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당당하게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리징 교장은 칠십이 넘은 홀어머니를 얼마 전 베이징으로 모셔왔다. 그녀의 어머니 역시 딸이 이끄는 학교가 이렇게 열악한 상황인지 몰랐다고 한다. 그러나 노모는 이렇게 말했다. “네가 기왕 이 일을 시작했으니 절대로 중도에 그만두어서는 안 된다. 어린 아이들을 돕는 이 일을 저버리면 안돼.” 

오랫동안 참았던 눈물이 그녀의 눈가에 흘러내린다. 눈물을 닦으며 리징은 말했다. “나중에 아이들이 대학에 붙고 나서 이 학교를 찾아와 저를 보고 ‘선생님!’하며 기쁘게 함성을 지를 거예요. 이것이 저에게 가장 큰 위로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앞으로 이 학교가 얼마나 유지될 수 있을지는 그녀도 모른다. 학교는 철거될 상황에 놓여있고 관련기관에서도 벌써 다녀갔다고 한다. 미래를 말하는 리징 교장의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스쳐 지나갔다. 

소외당하는 민공 자녀 

현재 대다수 도시의 공립학교는 그 지역 호적이 있는 학생만 입학을 받아들이고, 호적이 없는 학생들에게는 고액의 학비를 요구하고 있다. 민공 자녀 학교들은 이러한 이유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이다. 같은 도시에 거주하면서도 사회적 지위가 최하위에 속하는 민공 자녀들은 지역 주민 또는 제도권으로부터도 소외를 당하고 있다. 전국 정협 부서기장은 공립학교가 제시하는 고액의 교재비, 찬조금, 자비 등이 저소득층 어린이의 취학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라고 말한 바 있다. 저소득층에 속하는 민공 자녀들은 자연히 학비가 적은 민공 자녀 학교에 입학하거나 학업을 중단하기까지 한다. 


출처∥‘流動花朵的陽光雨露’, 「亞洲週刊」, 2002. 4. 8
번역∥김경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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