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사상(中華思想)'이란 거대한 영토와 찬란했던 문화를 지닌 중국인들의 자존심과 우월감을 반영하는 사상이다. 더 쉽게 말하면 중국인들이 자기 나라, 자기들의 문화야말로 이 세계와 인류문화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는 생각에서 발전한 것이다. 사람에 따라 정도의 차이, 성격의 차이는 있지만 중국인이라면 누구나 이 사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중화사상은 중국과 중국인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빼놓을 수 가 없는 요건이라 할 수 있다.
'중화'라는 말은 중국(中國)∙ 중원(中原)∙중토(中土)∙제하(諸夏)∙화하(華夏)∙중하(中夏)등과 같은 뜻으로, 모두 세계의 중심지역을 뜻한다. '중(中)'은 말할 것도 없이 중앙의 뜻이고, '하(夏)' 에는 크다는 뜻이 있으며, '화'는 찬란한 고도의 문화를 가리킨다. 그 밖의 '원(原)'과 '토(土)'는 광대한 영토를 뜻하며, '제(諸)'는 천자 밑의 여러 제후(諸候)들의 나라가 있음을 뜻한다.
본래 '중화'의 지역이란 지금의 허난(河南)과 산둥(山東)의 서부지역 및 허베이(河北), 산시 (陕西) 의 동부지역이 보태어진 황허(黃河) 유역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이었다. 그러나 근래에 와서는 멍구(蒙告)∙신장(新疆)∙시짱(西藏) 등의 지역까지도 다 포함하는 광대한 중국의 영토를 가리키는 말로 발전하였다. 따라서 중화사상 자체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성격상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중화'라는 말도 서기 429년에 완성된 <삼국지(三國志)> 제갈량전(諸葛亮專)의 배송지(裵松之)의 주(註)에 보이는 것이 처음인 듯 하고, '중화사상' 이란 말은 훨씬 더 후세에 만들어졌다. 그러나 중화사상의 근원은 그보다도 훨씬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야만 한다. 왜냐하면 중국인들은 상고시대부터 자기의 나라가 바로 천하(天下)락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중국을 다스리는 임금은 '천자(天子)' 라 불렀다. 반면 천하 밖의 지역은 무시해도 좋은 곳이고, 그런 변두리에 사는 사람들은 올바로 사람노릇도 못하는 오랑캐들이라고 생각하였다.
중국인들은 사방의 오랑캐들을 사람노릇을 하는 원리가 되는 윤리(倫理)를 전혀 모르는 금수(禽數)와 같은 자들이라 규정하였다. 그리고 북쪽의 오랑캐를 적(狄), 남쪽의 오랑캐는 만(蠻), 서쪽 오랑캐는 융(戎), 동쪽의 오랑캐는 이(夷)라 불렀다. 이 말들은 모두 오랑캐들을 비하하기 위하여 붙여진 호칭이다. '적'은 본시 개의 일종을 이르는 말이어서 개 견(犬) 변이 붙어있고, 또 독음은 벽(僻)과 같이 음벽(淫辟) 또는 편벽(偏僻)되다는 뜻도 지니고 있다. '만'은 본시 뱀의 일종을 뜻하는 글자였다. 중국의 옛 사람들은 뱀을 벌레의 종류라 보았기 때문에 뱀 사(蛇)자에도 충(忠)자가 변으로 붙어있게 된 것이다. 그뿐 아니라 만횡(蠻橫), 야만(野蠻)과 같은 말처럼 사람으로서 형편없는 짓을 하는 것도 뜻하고 있다. '융'자는 창 과(戈)자와 갑옷 갑(甲)자가 합쳐져 이루어진 글자로 전쟁이나 싸움을 뜻한다. 서쪽의 유목민들은 옛날부터 기회만 있으면 중국으로 쳐들어와 약탈을 일삼았기에 그렇게 부르게 된 듯하다.
동쪽 오랑캐인 '이'자 만은 큰 대(大)자와 활 궁(弓)자가 합쳐져 이루어진 것이라 다른 방향의 오랑캐들 호칭처럼 나쁘지는 않다. <설문해자(說文解字)>의 단옥재(段玉裁)의 주에는 "동이(東夷)의 습속은 인(仁)한데, 인한 사람은 장수를 하여 거기에는 군자(君子)의 죽지 않고 사는 나라도 있다"고 하면서, "중하(中夏)와도 다른 점이 없다"고도 말하고 있다. 그러니 동쪽 오랑캐들에 대해서 특별한 대우를 한 셈이다. 그러나 '이'자도 뒤에는 '죽인다' , '무너뜨린다'. '뽑아버린다', '손상시킨다' 등의 나쁜 뜻으로 쓰이게 되었으니, 역시 오랑캐를 무시하려는 마음가짐에는 변함이 없었던 듯하다.
그밖에 남쪽 오랑캐로 민(閩), 동북쪽 오랑캐로 맥(貊또는 貉), 서북쪽 오랑캐로 강(羌) 등이 있는데 이것도 모두 뱀의 일종(虫) 이나 기어다니는 벌레(豸) 또는 양의 일종(羊)을 뜻하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즉 이러한 중화사상의 바탕에는 독선과 배타적인 생각이 깔려있는 것이다. 그 경향은 현대까지도 이어져, 중국인들의 외국인들에 대한 호칭만 보더라고 서양 사람들은 양꾸이즈(洋鬼子), 일본 사람들은 뚱양꾸이즈(東洋歸子), 러시아 사람들은 마오즈(毛子)라 흔히 부르고 있다. '꾸이즈'는 도깨비 또는 귀신의 뜻이지만 중국어에 있어서 '꾸이(鬼)' 자는 보다 훨씬 나쁜 뜻으로 많이 쓰인다. '마오즈' 는 짐승처럼 몸에 털이 많이 났고 하는 짓도 짐승과 같다는 뜻에서 그렇게 불렀을 것이다.
그런데 중화사상도 역사적으로 시대에 따라서 그 개념에 변화가 있다고 하였다. 서주(西周)때만 하더라도 중국은 바로 천하이고, 그 천하는 천명(天命)을 받은 천자가 다스린다고 여겼다. 천자는 윤리면에 있어서는 성인(聖人)이기 때문에 천하의 태평을 위해서도 모든 백성들은 말할 것도 없고 금수나 다름없는 사방의 오랑캐들도 모두 천자에게 복종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예기(禮記)>의 예운(禮運) 편에서 논하고 있는 대동(大同)의 세계란 바로 그러한 통치 질서가 제대로 유지되는 사회를 말한다.
세상이 어지러워져서 여러 나라들이 서로 싸우는 춘추전국(春秋戰國) 시대에 들어와서도 이 중화사상은 나라의 질서를 지탱하기 위한 구실로 활용된다. 보기를 들면 춘추(春秋)시대에 힘으로 세상을 지배하던 이른바 제(齊)나라 환공(桓公)같은 오패(五覇)들은 모두 '존왕양이(尊王攘夷)의 명분을 내세웠는데, 천자를 정점으로 모시며 자신이 여러 제후들을 이끌어 사방 오랑캐들을 물리쳐 평화를 보전하겠다는 것이다. 중원의 정치가 어지러워진 틈을 타 주변 오랑캐들의 세력이 날로 강해지고 있던 형세였기 때문이다. 패도(覇道)로서 왕도(王道)를 지켜주겠다는 모순된 이론이지만, 중화사상을 지닌 중국 백성들에게는 그래도 잘 먹혀 들어가는 이론이 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진시황(秦始皇)은 천하를 통일하고 나서 다시 온 천하의 법률, 화폐, 도량형, 문자, 수레바퀴 폭, 사상 등도 통일하여 대중국의 확고한 터전을 이룩한다. 그리고는 진나라가 바로 천하임을 의심치 않게 되자, 임금의 칭호도 나라의 박사(博士)들이 "옛날에 천황(天皇)이 있었고, 지황(地皇)이 있었고, 태황(泰皇)이 있었는데 태황이 가장 존귀했습니다. 임금님은 태황이라 부르기로 하십시다." 하고 건의한 말을 근거로 태황과 옛 제왕(帝王)의 칭호를 합쳐 '황제(皇帝)' 라 부르기로 한다. '황제'는 하늘의 아들인 천자가 아니라 하늘보다도 오히려 존귀한 지위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바로 뒤의 한(漢)나라는 진나라의 통일을 계승하면서 자기 나라가 바로 천하이며 천하는 하나일 수밖에 없다는 이론을 바탕으로 대제국을 건설한다. 특히 무제(武帝) 때의 동중서(董中舒 B.C.179-B.C.104)는 하늘과 임금은 같다거나, 온 천하는 대일통(大一統)을 이루어야 한다는 이론을 내세워 무제의 전제(專制)와 원정(遠征)을 옹호하여 주었다. 이에 중화사상을 내세운 사람은 없었지만, 실제로 중화사상은 중국 정치의 기반이 되고 중국 민족의 막대한 국력에 대한 자부와 찬란한 문화에 대한 자존심의 바탕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송(宋)대에 이르러, 금(金)나라에 밀려 남쪽 변두리로 도망쳐 겨우 명맥을 유지하며 남송(南宋)을 세운 뒤로는 중화사상에도 굴절이 생긴다. 오랑캐들이 힘을 당해낼 수가 없게 되면서 생겨난 당연한 추세라 할 것이다. 천하에 있어서 사방의 오랑캐들이란 본시 삼강오륜(三鋼五倫)도 모르는 짐승이나 새와 다름없는 자들이었다. 그러나 남송 때에 와서는 중국인들이 오랑캐들의 세력에 밀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들의 사회윤리를 지탱해 온 유학(儒學)이 도학(道學)또는 성리학(性理學)이라고도 부르는 이른바 신유학(新儒學)으로 발전한다. 신유학의 목표는 누구나 수양을 하여 성인(聖人)의 경지를 추구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성인의 경지에 도달하느냐 하지 못하느냐이지, 그가 중국인인가 또는 오랑캐 종족인가가 아니다. 오랑캐라 하더라도 제대로 공부를 하고 수양을 하면 군자가 되고 성인도 되지만, 중국인이라 하더라도 공부를 하지 않으면 소인(小人)의 경지에 머물러 있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치적으로 오랑캐가 지금 천자 자리에 올라 앉아 있다는 것은 오랑캐가 이미 성인이 되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 지배자에 복종하고 따라야 한다는 이론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이에 중화사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원(元)나라가 천하를 다스리면서 <황천일통지(皇天一統志)>를 낸 것은, 비록 그것이 지리서(地理書)라고는 하지만 몽고족인 처자가 천하의 지배자임을 천명하려는 뜻도 있었다. 그 후로 명(明)과 청(淸)에 이어서 <일통지(一統志)>를 각각 냈는데, 모두 같은 뜻이 담겨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어떻든 몽고족과 만주족이 세운 원과 청에 <일통지>가 있다는 것은 옛날의 중화사상으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다.
남송 이후 외국 지배자들의 압제 아래 살아온 일반 중국인들 마음 속의 중화사상은 옛날과 같을 수 없게 되었다. 특히 근세에 이르러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까지 받고 나서는 중화사상에 더 많은 굴절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대국으로서의 자존심도 무참히 짓밟히고 우수한 문화인으로서의 우월감도 유지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외래 민족의 압제 아래, 중화사상을 바탕으로 도도했던 자존심이나 독선적인 사고에 많은 경우 비열함과 간교함도 끼어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손문(孫文, 1866-1925) <산민주의(三民主義)> 첫 머리「민족」의 앞 부분은 “자연스러운 힘인 왕도(王道)로서 이루어진 단체가 바로 국가이다.(제1강)”라고 하면서 ‘왕도’의 위대함을 내세우다가, 뒤에 가서는 왕도 때문에 중국의 민족사상이 멸망하였다고 말하고 있다(제3강). 그는 중국의 고유사상을 크게 내세워 「민족」을 해설하고 있으면서도, ‘왕도’를 대하는 태도는 맹자(孟子) 이래의 이전의 중국 지식인들처럼 당당하지 못한 듯 하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된 뒤 중국인들의 중화사상은 굴절을 멈추고 새 시대에 맞는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그러나 오랜 세월 외족의 지배를 통하여 파괴된 전통을 다시 회복시킨다는 것은 간단하지 않은 일이다. 오히려 지금도 몽고족이나 만주족이 자기네 한족에게 동화되었다고 강변하면서, 잃어버린 전통은 외면한 채 자존심을 잃지 않으려고 억지를 쓰는 이들도 있다. 아직도 제자리를 못 찾은 중국인들의 중화사상 때문에 지금 우리는 중국인을 이해하기가 더욱 어렵고 중국인을 잘 대해주기도 매우 어려운 것인지도 모른다.
어떻든 우리는 중국인을 대함에 있어, 사람에 따라 굴절의 차이는 있지만, 아무리 무식하고 가난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그들은 막대한 국토와 인구를 배경으로 한 자존심을 갖고 있고, 오랜 역사와 찬란한 문화를 지녔다는 우월감을 지니고 있으며, 그것을 바탕으로 한 중화사상을 갖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김학주 | 서울대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