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중국 가정교회 지도자 자녀의 간증이다. 자신이 세 살 때 투옥된 아버지로 인해 힘겨운 성장기를 보낸 딸에게 사역자인 아버지의 존재는 오히려 원망의 대상이었다. 10여 년이 지나 석방되어 가정으로 돌아온 아버지에게 여전히 마음을 열 수 없었던 딸은 아버지와 함께 전도여행을 하는 가운데 화해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새롭게 깨닫게 된다. 이 글을 통해 중국 가정교회 지도자 자녀들이 성장하면서 겪는 아픔과 그들이 이러한 환경 속에서 인격적인 하나님을 만나도록 기도하고 돕는 사역의 중요성을 알게 될 것이다.
_편집자주
아버지의 빈자리
아버지가 집을 떠나셨을 때 난 겨우 네 살이었다. 하지만 그 일에 대해 아무 기억도 나지 않는다. 어머니로부터 이야기를 들어서 알 뿐이다. 아버지가 석방되어 집에 돌아오셨을 때 난 열일곱의 소녀로 성장해 있었다. 그러나 내 짧은 인생에서 아버지의 자리는 늘 비어 있었기에, 아버지란 존재의 의미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내 눈앞에는, 힘겹게 농사를 지으면서 남는 시간에는 교회를 섬기느라 분주한 엄마뿐이었다.
하나님이 우리 엄마를 특별히 불쌍히 여기셔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일찍부터 철이 들었던 것 같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버티면서 참았다. 어릴 적, 집에서 예배를 드릴 때면 아무리 예배가 길어져도 언제나 한 쪽 구석에 얌전히 앉아 있었다. 한 번도 엄마를 괴롭히거나 마음 쓰게 한 적이 없었다.
여섯 살 때부터 밥 하는 것을 배웠다. 누군가 불 켜는 것만 도와주면 나는 혼자 밥 짓고 반찬도 만들 줄 알았다. 집안일을 요모조모 잘 거들었던 나는 엄마의 가장 든든한 위로자였다. 또 어려서부터 성경구절을 잘 암송하였고, 교회에서 나보다 어린 동생들을 돌보며 성경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그러나 단 한 가지, 내가 가장 두려워하고 싫어했던 것이 있었는데 바로 기도였다. 내 입에서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도문이 한 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방황은 시작되고
어느 날, 수감 중인 아버지를 면회할 수 있다는 연락이 왔다. 엄마는 나를 데리고 아버지를 만나러 갔다. 교도소 측에서는 내가 어리기 때문에 작은 문을 통해 감방 안으로 들어가 아버지가 나를 안아볼 수 있도록 특별히 허락하였다. 그러나 난 그 순간 내내 두려워 어쩔 줄 몰랐다. 아버지한테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텐데,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머릿속으로는 아버지가 날 사랑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내 감정으로는 도저히 그의 사랑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초등학교 다닐 때 나의 수업 태도나 성적은 매우 좋았지만 그런 건 아무 소용이 없었다. 출신 성분이 좋지 않은 나 같은 아이가 인정받을 기회는 오지 않았다. 또한 다른 친구들이 한 주에 20위안(元)씩 용돈을 받아 쓸 때, 내 주머니엔 엄마가 가까스로 벌어오는 돈 중에 남은 3위안이 전부였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한다 해도 결과는 뻔했다. 아버지란 존재가 나에게 이것밖에 되지 않는다면 내 이상과 꿈은 도저히 실현될 수 없다고 생각되었다. 자라면서 내 마음 속에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미움이 쌓여갔다. 엄마와 내가 이렇게 가난하고 힘들 수밖에 없는 것은 모두 아버지 때문이었으니까.
학교에 들어간 후부터 수업에 빠지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수업에 빠진 이유에 대해 이리 저리 둘러대는 내 말을 전부 믿으시는 것 같았다. 엄마도 상황이 이렇게까지 악화된 것에 대해서는 전혀 눈치 채지 못하셨다. 당시 나는 가면을 쓴 이중 생활을 하고 있었다. 교회와 집에서는 예수님을 잘 믿는 착한 아이였지만, 다른 곳에서는 놀기 좋아하고 학교를 빼먹기 일쑤인 불량학생이었다. 난 그러한 자유와 쾌락을 즐겼다. 결국 성적은 바닥까지 떨어졌고, 더 이상 학교를 다닐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런데도 엄마는 나를 꾸짖지 않으셨다. 엄마는 내가 원래 착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는 아이인데, 천성적으로 머리가 별로 좋지 않고 또 옆에서 가르쳐 줄 아버지가 없기 때문에 공부를 못한다고 생각하셨다. 엄마는 오로지 내가 열심히 주님을 섬기다가 좋은 형제를 만나 결혼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믿으셨다.
머나먼 평행선
결국 그 날이 오고야 말았다. 아버지가 출옥하신 것이다. 13년이라는 긴 세월을 참고 인내해 온 엄마는 물론 교회의 삼촌, 아저씨들 모두 기뻐하며 아버지를 환영하였다. 아버지는 감옥 안에서 여러 사람들을 주님께 인도하였고, 어두컴컴한 감방 안에서 죄수들에게 세례를 베풀었다고 말씀하셨다. 아버지가 수감되어 있는 곳에서는 죄수들로 인한 사고나 문제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교도소 측에서는 다루기 힘든 죄수들을 아버지와 같은 감방 안에 수감시켜서, 죄수들을 관리하는 데 따르는 자신들의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하였다. 간수들조차 아버지를 매우 존경하였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난 고민에 빠졌다. 그렇다면 아버지는 사람들과 아주 잘 지내는 좋은 사람이 분명한데, 이상하게도 나는 아버지가 집에 있으면 마치 낯선 사람과 함께 있는 것처럼 어색했다. 난 아버지가 교회와 여러 형제자매들을 사랑한다는 것은 납득할 수 있었지만, 딸인 나에게 사랑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가 없었다. 사실 내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자리 잡고 있었다. 아버지 때문에 엄마와 내가 오랫동안 고통을 겪어야했다는 데 대한 상처였다. 그래서 아버지가 집에 계실 때면 난 밖으로 나가버렸고 아버지가 외출하시면 집에 돌아왔다. 아버지는 오래지 않아 이 문제를 느끼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나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면서, 내가 마음을 열고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게 되길 바라셨다. 아버지는 엄마를 통해, 얼마 후 지방으로 전도여행을 가는데 함께 가자고 하셨다. 난 어려서부터 한 번도 엄마 말씀을 거절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이번에도 할 수 없이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하였다.
가슴 저린 아버지의 사랑
한 달 간 아버지와 동행하면서,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경건이 몸이 밴 아버지의 삶을 직접 보게 되었다. 아버지는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8시까지 기도하고, 저녁에 잠들기 전에도 오늘 하루 지켜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기도를 드렸다. 아버지의 무릎은 늘 멍이 들어 푸르스름했는데, 이것은 헌신된 기도생활의 흔적이었다. 아버지가 설교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아버지가 마치 하나님 나라의 큰 장군처럼 느껴졌다. 그의 모습 어디에서도 비천한 죄수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설교를 들은 많은 사람들이 통곡하며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했다. 그리고 동시에 그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해준 아버지에게 무척 고마워했다.
간혹 형제자매들 사이에 일어나는 문제들을 처리할 때 아버지는 사랑과 인내심을 갖고 그들을 대하셨다. 어떤 사람이 아버지를 오해하면 그는 결코 자신을 변호하는 데 마음을 쏟지 않았다. 아버지는 “지나간 감옥 생활은 나에겐 오히려 영광이었다.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13년의 세월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결국 나는 이 여정을 통해 나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여행 기간 내내 나를 세심하게 보살펴주었고 따뜻하게 배려해주셨다. 어느 날 나는 무심코 아버지가 나를 위해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것은 내가 진정으로 주 예수님을 만나게 해 달라는 간절한 호소였다. 이 순간 난, 아버지가 처음부터 나를 이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아버지를 미워한다는 사실, 그리고 내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원통함과 불평, 고집을 그는 이미 다 알고 있었던 것이다. 마음속에 단단히 세워져 있던 벽이 갑자기 무너져 내린 듯했다. 이제야 비로소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가슴 저리게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솟구치기 시작했다. 나는 처음으로 사랑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아빠!”라고 불렀다.
만약 이 땅의 아버지가 이렇게 나를 사랑한다면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는 나를 얼마나 더 사랑하시겠는가! 이 사실을 개달은 후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기도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고 오히려 기도하는 것을 좋아하게 된 것이다. 머리를 짜내어 대사처럼 외우는 의미 없는 기도는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 후부터 난 자유롭게 아버지를 대하고 즐겁게 대화하게 된 것은 물론, 하나님 아버지와 화목케 되어 그 분의 자녀로서 교제를 누리고 있다.
출처/ “好愛一聲聲的叫他”, 「中國與福音」, 2001년 9월호
번역/ 한 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