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타이완 다오성(道生)신학원에 소속된 한 사역자가 중국 농촌의 청소년들을 위한 여름 캠프를 기획하고 진행한 과정을 기록한 것이다. 중국 가정교회의 근간을 이루는 농촌 지역에서 청소년 사역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_편집자 주
서막을 열며
그곳엔 우렁찬 함성도, 위풍당당한 진용(陣容)도 없었다. 오로지 청소년들을 향한 뜨거운 사랑뿐이었다. 우리 네 명의 동역자들 가운데 가장 나이 어린 사람은 대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학생이었고, 그 중 경험과 나이가 가장 많은 사람은 필자였다. 우리 사역은 비교적 단순했다. 외지고 폐쇄되어 있는 중국의 농촌 지역에 가서, 중학교 1학년부터 20대 초반 청년에 이르기까지 총 35명이 참여하는 6일 간의 청소년 캠프를 개최한 것이다. 이것은 장차 이 넓은 중국 땅에 펼쳐질 복음 사역의 서막을 여는 것과 동시에 중국 복음사역의 내일의 희망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기우(杞憂)
이러한 캠프 방식의 사역이 폐쇄적인 농촌 사회에 들어가는 것은 처음이었다.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중국 농촌 사역자들이 어떠한 반응을 나타낼 것인가? 과연 그들이 이런 방식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필자는 내심 두렵고 염려도 되었다. 캠프에 참석한 학생들 역시 처음에는 관망하는 자세와 피동적인 태도가 없지 않았던 것 같다. 우리 동역자들은 서로 격려하고 중보하면서 이 도전적 ‘프로젝트’를 실험해보기로 하였다.
‘환영식’으로 캠프의 문을 열었다. 간단한 촌극과 율동, 찬양, 게임 등은 낯설고 서먹한 분위기를 깨기에 충분했다. 힘써 준비한 것을 다 보여주었는지는 모르겠지만, 90분의 프로그램이 모두 끝나자 현지 사역자들과 캠프에 참여한 청소년들의 반응이 상당히 뜨거운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은 곧 이러한 캠프 방식이 가능한 것이며, 앞으로도 계속될 수 있는 것이라는 의미였다. 함께 했던 동역자들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으며, 마음속에 남아 있던 부담도 말끔히 떨쳐낼 수 있었다.
기회
캠프는 첫날의 ‘환영식’으로부터 시작해서 마지막 날의 ‘촛불예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진행되었다.
오전 5:30~6:30 기상, 찬양, 성경읽기, 묵상기도
수련회에 참여한 청소년들이 매일 아침 주님과 친밀한 영적인 관계를 가지도록 지도한다.
오전 7:30~8:00 소그룹 모임
소그룹으로 나뉘어 자신의 일생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나누도록 한다. 이들이 자라온 환경과 경험을 나눔으로 우리는 그들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한 자매는 어렸을 때 아버지가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오랜 세월 감옥에 있었기 때문에, 학교에서 선생님들과 친구들이 자신을 무시했던 일들을 이야기했다. 이러한 일들로 인해 그녀는 늘 고개를 들지 못했고, 자신을 비하하는 열등감과 상처를 갖고 있었다. 자매가 조금 성장했을 때 아버지가 풀려나오기는 했지만, 복음을 전한다는 이유로 늘 밖에 나가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아버지의 사랑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자랐다. 이런 그녀에게 예수는 미움이자 질투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어머니가 중병에 걸렸을 때 그녀는 교회의 많은 형제자매들의 사랑과 관심을 보게 되었고,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어머니를 치유하시는 것을 경험하면서 마침내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세주로 영접하였다. 현재 그녀는 아버지의 신앙과 뜻을 이어받아 전도자로 헌신하였다. 이 자매의 가증을 들은 모든 사람이 감동을 받아 눈물을 흘렸다. 신앙의 이유로 핍박받는 가정에서 자라난 청소년들이 이 모임 가운데 그토록 많았던 것이다.
오전 9:30~12:00/ 오후 2:30~5:00 성경 세미나
세미나 시작 전 30분 동안 찬양을 가르쳐 주었는데, 모두들 무척 좋아하였다. 세미나는 성경 연구를 통해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삶의 중심에 놓도록 했으며, 예수님의 증인이 되고자 하는 마음을 심어 주었다.
오후 5:00~6:00 야외 레크리에이션
학생들에게 가장 인기 있었던 시간이었다. 게임을 하면서 동시에 영적인 원리들을 배울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저녁 7:30~9:00 영성훈련
모두들 걸상을 들고 야외로 나가, 상쾌한 바람과 은은한 달빛 아래에서 마치 예수님과 연애를 하는 듯한 기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 실내는 너무 더워서 이러한 낭만적이고 부드러운 분위기를 조성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프로그램들이 독자들에겐 별로 낯설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일반적으로 타이완을 비롯하여 해외 교회의 주일학교나 학교에서 널리 행해지는 방식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곳 중국의 청소년들에게는 얼마나 흥분되고 가슴 벅찬 시간인지 모른다.
비전
필자는 다음 세기의 중국선교를 이어받을 사람은 다름 아닌 이들 중국 농촌지역 청소년들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주의 국가의 농촌이라는 환경 안에서 자라난 이들이야말로 최소한의 장비만을 가지고 곳곳으로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능력의 전도자가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한 번의 캠프를 기획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중국 곳곳에 복음이 편만하게 증거되는 비전을 품게 된 것이다. 그 비전은 바로 이들 청소년들이 주님께 자기 자신을 드리고, 또한 자신을 중국에 드리는 그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캠프 마지막 날 프로그램은 다음과 같이 진행되었다. 수련회에 참여한 모든 학생들이 손에 촛불을 들고, 자신의 마음을 대표해서, 중국 땅을 상징하는 나무에 그 촛불을 꽂았다. 많은 청소년들이 “주여! 나를 이 땅의 가장 가난하고 외진 곳에 보내셔서 주님을 위해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하게 하옵소서!” 라고 기도했다. 그 순간을 생각할 때마다 필자의 눈엔 눈물이 흐른다. 헌신한 이들 청소년들이야말로 내일의 복음 전도자들이라는 확신을 갖게 된다.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가! ‘주님! 우리에게 꿈과 비전을 주소서, 그리고 당신이 우리에게 주신 이 아름다운 꿈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게 하소서.’
누가 목양할 것인가
캠프는 끝났고 우리가 그들을 떠난 지도 벌써 3개월이 되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우리들 뇌리 속에 잊혀지지 않는 몇몇 학생들이 있다. 함께 기도하며 교제를 나누는 가운데 우리를 바라보며 눈물로 호소하던 그들을 잊을 수 없다. “교회가 우리들을 낳았지만, 우리를 양육해 주지 않습니다.”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갈급해하는 그들에게 성경을 가르쳐줄 사람이 없다. 성경 한 권외에는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것도 없는 것이 그들의 현실이다. 수년 간 타이완에서 청소년 사역을 하는 동안, 나는 학생들에게 성경을 읽게 하려고 눈물을 흘리면서 갖은 방법을 다 썼다. 교회 안에는 신앙서적과 비디오 테이프들이 수북이 쌓여 있지만, 그것을 읽거나 구하려고 애쓰는 이들은 참으로 드물다. 타이완과 중국 사이에는 이렇게 큰 차이가 존재한다. 중국 대륙 각지에 하나님의 말씀에 갈급한 영혼들, 추수되기를 기다리는 수많은 영혼들이 있다. 이들을 위해 일꾼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는가?
전략이 필요하다
중국 대륙 청소년 사역은 확실히 고조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보다 신중하고 전략적인 방법으로 사역을 감당해야 한다. 우리는 우선 중국 교회 신도들의 자녀들을 타겟으로 한다. 이 캠프의 목적은 ‘양육’과 ‘영성훈련’이지 복음을 제시하는 성격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사역자 자녀들을 초점으로 한다. 그 부모들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자신을 포기하며 헌신하여 사역하는 것을 생각할 때, 기들의 자녀들을 양육하고 돌보는 일에 힘쓰는 것은 당연하다. 그들의 영성을 훈련하고, 그들의 부모의 대를 이어 복음 전하는 사명을 이어받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중국 각 지역에서 진행되는 수련회마다 그 지역의 동역자들을 필요로 하고 있다. 청소년 사역에 합당한 자들을 더 많이 발굴하여 함께 수련회에 참여하도록 한다. 캠프가 끝난 후에는 이들을 남도록 하여 이틀 동안 교사 훈련을 실시한다. 그래서 앞으로 그들 스스로 직접 청소년 수련회를 인도할 수 있도록, 또한 그 지역에서 청소년 집회를 일으키도록 격려하고 지도한다. 그 후 수련회를 통해 헌신을 결단한 청소년들에게 성경을 가르친다. 성경공부는 대상에 따라 ‘사역자반’과 ‘청년반’으로 나뉘어지며, 이러한 방법으로 전국 각지에서 사역자 성경공부를 전개한다. 성경의 단비로 말미암아 주님의 이름이 전국 각지에서 높이 들리기를 소망한다.
출처/ “在中國大陸的中學生下令會”, 臺灣 道生神學院 月訊 , 2000년 12월호
번역/ 김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