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茶)의 나라 중국
예전에도 그러했듯이 지금도 중국에 가면 다양한 차와 함께, 가는 곳마다 차를 마시고 있는 중국인을 만날 수 있다. 차야말로 중국인의 삶에 깊이 뿌리박혀 있음을 알 수 있다. 흔히들 “중국인에게 매일 없어서는 안 될 생활 필수품은 땔감, 쌀, 기름, 소금, 간장, 식초, 그리고 차”라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차의 비중은 정말 크다고 할 수 있다.

중국에 가면 으레 차를 대접받는다. 사양할 때까지 계속 따라준다. 우리 나라에서는 석 잔의 차를 마시는 것이 기본이지만 중국에서는 일곱 잔의 차를 마시는 것이 기본이다. 만약 우리나라 같이 석 잔의 차만 마신다면, 콧등에 가벼운 땀이 일어 불평스럽던 일이 모공을 통해 사라진다거나, 날과 뼈를 맑게 한다거나, ‘신선의 영과 통하는’ 경지에는 이르기 못하리라.

예로부터 중국인에게 있어 차는 술 못지 않게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한적한 정서와 어우러져 은둔자의 벗이 되어 난세를 극복하는 방편으로, 때로는 영혼의 혼미함을 씻고 평정한 마음으로 사물을 바라보게 하고, 신선의 음료라는 말처럼 하늘을 날 것만 같은 자유자재함을 누리게도 했다. 이렇듯 차는, 역경에 처한 이들의 위로자가 되어 번뇌를 잠시 잊게 해 주는 술으 별칭된 ‘망우객(忘憂客)’이 아니라. 고뇌 자체를 해결해주는 ‘해번자(解煩子)’의 역할을 감당했다. 다인(茶人)이자 시인인 노동(盧仝)은 ≪칠완차가(七椀茶歌)≫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첫째, 잔은 입술과 목을 적셔 주고
둘째, 잔은 고민을 씻어 주고
셋째, 잔은 무더진 붓끝이 풀리니 생각나는 글이 오천 권이 되고
넷째, 잔은 가벼운 땀이 솟아 평생 불평스럽던 일들이 모공을 통해 사라진다네
다섯째, 잔은 살과 뼈를 맑게 하고
여섯째, 잔은 신선의 영과 통한다오
일곱째, 잔은 마시지도 않았는데 두 겨드랑이에 맑은 바람 일어나네
봉래산이 어드매뇨 나는 이 청풍을 타고 돌아가련다.

이런 차 저런 차
중국의 차는 기후와 지리적 조건에 따라 그 종류가 많다. 그 대표적인 6대 명차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불발효차인 녹차(綠茶, Green tea) : 용정차(龍井茶)▪황산모봉차(黃山毛峰茶)▪여산운무차(廬山雲霧 茶)▪벽라춘차(碧螺春茶) 등
▶ 완전발효차인 홍차(紅茶, Black tea) : 기문홍차(祁門紅茶)와 운남홍차(雲南紅茶)로서 가루로 만들 어 티백에 넣가나 잎차 그대로의 고급 홍차도 있다.
▶ 황차(黃茶, Yellow tea) : 군산은침차(君山銀針茶)가 대표적
▶ 백차(白茶, White tea) : 백목단(白牧丹)과 백호은침차(白毫銀針茶)
▶ 반발효차인 청차계열의 오룡차(烏龍茶, Oolong tea) : 문산포종차(文山包種茶)▪철관음차(鐵觀音茶)
▶ 후발효차인 흑차(黑茶, Dark green tea) : 보이차(普洱茶)나 천량차(千兩茶)가 주종을 이룬다.
대체적으로 불발효차인 녹차류는 탕수를 70℃ 정도 식혀서 차를 우려내고, 반발효차류는 90℃ 정도 그리고 완전발효차인 홍차류는 95℃ 정도로 차를 우려야 맛과 향이 좋다.

차를 마시는 데도 격식이
중국에는 다양한 차가 생산되는니만큼 차를 우려내는 방법도 여러 가지가 있다. 대표적으로 일인용 찻잔을 쓰는 개완 배포법(蓋椀杯泡法)과 하나의 다관(茶罐)과 여러 개의 찻잔으로 차를 나누어 마시는 격식 있는 공부차포법(工夫茶泡法)이 있다. 먼저 찻잎을 손님께 보여 감상하게 한 뒤에 비로소 차를 우리는데, 개완배포법에서는 뚜껑을 열어 개완배 받침대 위에 걸쳐 놓고 탕수로 찻잔을 헹구어 낸 뒤 2g 정도의 찻잎을 넣어 적당한 온도의 탕수를 부어 우린다. 다 우러 났으면 왼손 위에 받침 까지 들어올려 놓고 오른손으로 뚜껑을 열어 우러낸 차의 빛깔과 향기를 감상하고 뚜껑을 덮은 채로 조금 비스듬히 열고 차를 음미한다.
 물을 따르는 요령에 있어서는 봉황삼점두(鳳凰三点頭)를 중시한다. 여기에는 세 가지 뜻이 있는데, 하나는 물의 따를 때 찻잔 속의 찻잎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봉황새가 날개를 펄럭이는 모습에 비유하며, 둘째로는 차탕이 위 아래로 움직이며 균일하게 섞이는 것을 뜻한다. 셋째로는 주인이 손님에 대한 삼국궁(三鞠躬)의 뜻으로 주인이 손님에게 절을 하듯 예를 표하는 것이다.

차 이래서 마시나니
중국에서는 차를 마시는 사람들의 숫자 또한 중요하게 여겼다. 명나라 때 장원(張源)이 쓴《다록(茶錄)》에는, 혼자 차를 마시면 이속(離俗)이요. 둘이 마시면 한적(閑適)이요. 서넛이 마시면 유쾌(愉快)하고, 대여섯이 마시면 저속(低俗)하고, 일고 여덟이 마시면 박애(博愛)의 경지라고 했는데 어쨌든 차를 마실 때는 손님의 숫자가 적을수록 좋다고 했다.
 같은 시대 허차서(許次緖)는 《다소(茶疎)》에서 차 마시기 좋은 때를 언급했는데 이는 예나 지금이나 공감하는 바이다.

마음과 몸이 한가로울 때
책을 읽거나 시를 쓰고 피곤할 때
음악을 감상할 때
거문고를 타고 그림을 감상할 때
깊은 밤에 이야기를 나눌 때
밝은 창가 책상 앞에 앉아서
바람이 불거나 화창한 날에 
조금 흐르고 보술비가 내릴 때
작은 배에 몸음 싣고 
울창한 숲과 대나무 밭에서
꽃을 가꾸고 새를 바라보다가 
좋은 샘과 기이한 돌을 만났을 때...

 일찍이 우리 나라 조선시대의 이목(李穆)은 《다부(茶賦)》에서 차의 여섯 가지 덕을 찬양한 바 있다.

무릇 차는 
사람을 장수하게 하니
요임금과 순임금의 수덕(壽德)이 있는 것이고
사람의 병을 낫게 하니
유부나 편작의 인덕(仁德)이 있는 것이고
사람의 기운을 맑게 하니
백의와 양진의 청덕(淸德)이 있는 것이고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니
이노와 사호의 검덕(儉德)이 있느 것이고
사람을 신선이 되게 하니
황제와 노자의 선덕(善德)에 있는 것이고
사람을 예의롭게 하니
주공단과 공자의 예덕(禮德)이 있는 것이다.

차는 이렇듯 건강음료로써 수명을 연장시키며, 인간의 품성을 어질게 하고 마음을 맑게 한다. 또한 겸소한 삶의 자세를 갖추며 예의를 존중하여 이웃과 화목한 관계를 갖게 해주는 덕이 있다고 하겠다.

차향이 스민 명소를 찾아
중국의 어느 시인은 ‘시후(西湖)를 서시에 비유한다면 좋은 차는 아름다운 사람과 같소’라고 노래하거나 ‘차를 마시지 못하니 마음 밭에 먼지가 다섯 수레나 쌓였소’라고도 했다. 이렇게 차는 시인들의 노랫거리가 되기도 했고 화가에게는 그림을 표현되기도 하여 서민에서부터 궁궐에 이르기까지 모든 이들로부터 사랑을 받아왔다.

우리 나라의 경우 차가 생산되는 남쪽 지방에서 차 문화가 먼저 발달했는데, 중국 역시 차가 많이 생산되는 저장(浙江), 푸젠(福建), 원난(云南), 장쑤(江蘇), 등 지에서 차 문화가 흥성했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중국의 남방에 가면 전통찻집이 많이 있다. 시후(西湖)가 있는 항저우(杭州)에 ‘다인의 집’이란 조용한 찻집이 있는데, 울창한 대나무 숲 속에 보일 듯 말 듯 숨어있어 그윽한 정취를 자아낸다. 항저우에 가면 먼저 국제다엽박물관을 둘러본 뒤 시후에서 뱃놀이를 하고 이 조그만 찻집에 들러 차를 마시곤 하는데, 이때 우리는 당대의 백거이(白居易)와 송대 소동파(蘇東坡 )를 마음으로 만날 수 있다.

또 상하이(上海)에 가면 송대 귀족들의 사교장 이었던 ‘송원다예관(宋圓茶藝館)’ 그릭 옛 청대 건축물이 즐비한 가운데 호수 위에 지어진 ‘호심정다루(湖心亭茶樓)’를 찾아 나그네의 향수를 달래며 차 향에 취해보기도 한다. 그 밖에 육우(陸羽)가 《다경(茶經)》을 썼다고 하는 후저우(湖州) 뒷골목의 이름 없는 찻집, 옛날에는 마카오였다가 지금은 주하이(珠海)시로 바뀐 곳에 있는 ‘홍차관(紅茶館)’찻집에 들러 마시는 차 한잔은 몸도 마음도 시원케 한다. 타이완의 타이베이에 있는 ‘자등로(紫藤盧)는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한 찻집이다. 일제시대에 지어졌다는 이 집은 다다미방을 되어있는데, 예술활동을 위한 공간으로도 활용하고 있다. 때로는 중국의 고전음악을, 때로는 서양의 고전음악을 양탄자처럼 부드럽게 깔아 놓고 차를 마시며 우정을 나누거나 정담을 나누기도 한다.

한 잔의 차로 우주를 만난다
차는 보건음료와 정신음료로 나뉘며, 눈에 보이는 차와 보이지 않은 차로 나눌 수 있다. 눈에 보이는 차는 몸으로 마시는 자로써 육체적 건강을 가져오는 보건 음료이며, 눈에 보이지 않는 차는 마음으로 마시는 차로써 영혼의 때를 벗기는 정신적 음료로 풀이된다.

표의 문자인 “茶”라는 글자는 ‘艸’와 ‘人’과 ‘木’의 합성어이다. 사람이 풀과 나무 사이에 있는 것은 한 잔의 차를 마실 때 자연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겨울철에는 차나무는 성장을 멈춘다. 봄이 되어 그 뿌리는 대지의 정기를 모아 두었다가 한 잎 두 잎 차의 새순으로 옮겨가는데, 그 잎을 따서 차를 만들어 우려 마시면 그냥 차 한 잔이 아니라 바로 우주의 정기를 마시는 것이다. 자연과 내가 만나는 것이요. 소우주가 대우주를 만나는 시간이다. 차를 마시는 시간은 진실된 나 자신을 만나는 것이다.

김길자/ 부산여자대학 다문화과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