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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6.20  통권 70호  필자 : 훠수이(活水)  |  조회 : 2801   프린트   이메일 
[특집] - 특집/ 지식인과 중국복음화
중국 지식인과 기독교
기독 지식인의 당면 문제

중국에서 기독교 열기가 최고조에 달했던 80년대 초, 교회에 다니거나 예수 믿는 사람은 대부분 농민들이었고, 그 중 대다수는 여성과 노인이었다. 그들은 많이 배우지 못했지만, 간절한 소망과 경건, 놀라운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10년 후, 기독교의 열기가 어느 정도 가라앉자 중국에서 기독교 발전은 평온한 양상을 띠게 되었지만, 신도 수는 계속 안정적인 증가를 보이고 있다. 이것은 중국 정부도 결코 부인할 수 없는 변화이다. 이러한 변화의 양상에서 눈에 띄는 특징은 점점 더 많은 청장년 지식인들이 주님께로 돌아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그들 중 상당수가 공산당원이라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중국의 지식인 중 특수 그룹이라 할 수 있는 이들의 출현은 중국 기독교 발전에 새 장을 열 것으로 보이지만, 중국의 지식인 전체와 비교할 때 그 비율은 확실히 미미하다. 지식인의 대다수는 여전히 정치적 입장과 상관없이 무신론을 신봉하고 있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기독교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지식인들 중에 점차 크리스천들이 생겨나고 있다는 사실은 좋은 조짐이다. 또 한편으로는 이런 크리스천 지식인들에게도 간과할 수 없는 몇 가지 문제들이 존재한다.

번복과 동요-초신자 최대의 위험 
처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지식인들은 예수님의 사랑의 위대함을 깊이 체험하고 큰 감동에 휩싸인다. 그러나 처음의 경건하고 뜨거운 심정이 새로운 정신적 영역으로 들어서게 되면, 처음 믿었을 때의 신비감과 흥분은 사라지고 교회 내부와 사역자, 성도들의 연약함, 소극적인 부분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진리와 선, 아름다움에 대한 높은 기대와 냉혹한 현실, 완벽한 이상과 완벽할 수 없는 인간성 사이에서 이들은 모순을 발견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하고, 혼란과 후회 가운데 머릿속에 잠재하고 있던 옛 세계관이 다시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무신론, 공리주의, 휴머니즘 등이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에 막 눈뜨기 시작한 두 눈을 가려 버리는 것이다. 중국의 지식인 초신자들에게 이러한 번복과 동요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피할 수 없는 현상이다. 어떤 이들은 상당히 오랫동안 내면적 모순과 갈등을 겪게 되는데, 이것은 극히 정상적인 현상이다.

이 때 그들에게 질책이나 가혹한 요구를 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사랑과 인내로 그들의 소리에 끊임없이 귀 기울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함께 나누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여야 한다. 이것만이 그들이 회의를 버리고 갈등을 극복하며, 진정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수 있도록 돕는 효과적인 방법인 것이다. 특히 명심해야 할 것은 오직 하나님의 능력에 의지하는 것이다. 이것을 망각하고 사람의 힘에 의지하게 되면 풍랑 속에서 겨우 벗어난 사람들 또다시 깊은 바다 속으로 밀어 넣는 셈이 된다. 지식인 초신자 중 일부는 이 시기에 적절한 격려가 없었던 탓에 옛 길로 돌아가 버렸다.

공동체의 중요성 
교만은 지식인들의 안타까운 고질병이다. 대다수 지식인들은 스스로 매우 우수하며 뛰어난 재능을 지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식인 고유의 독선적이고 지나치게 자만한 태도는 다른 사람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하게 한다. 더욱이 여러 해 계속된 정치운동은 그들로 하여금 자기 방어를 터득하게 하였고, 많든 적든 권력욕을 자극했다. 

믿는 지식인 중에도 이런 옛 습관이 어느 정도 존재한다. 첫째, 자기 보호의 차원에서인지는 모르지만 이들은 남 앞에서 지나치게 신중하고, 다른 성도들 특히 자신과 비슷한 지식인 성도들을 신뢰하지 않는다. 이러한 심리는 중국 사회 전반에 나타나는 불신 풍조를 반영하는 것일 뿐 아니라, 정치적 안전에 대한 지나친 우려로 인하여 지식인들이 서로를 존중하지 않는 특징과도 관계도 있다. 둘째, 종교활동을 규제하는 현행 중국 종교정책 때문에 지식인 성도 상호간의 정상적이고 안정적인 공동체 형성이 쉽지 않다. 따라서 자신의 신앙을 극히 적은 범위 내에서 공개하거나, 혹은 마음 속에만 담아두는 지식인이 많다. 하지만 이런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하나님과의 관계, 지체들과의 교제, 특히 성경 읽기와 영성 훈련 등이 결여되어 심령이 위축될 것이다. 

공동체는 지식인 성도들의 믿음을 견고히 하고 성장하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공동체는 지역 교회에 비해 융통성이 많고 개인교제에 중점을 두며, 개개인의 어려운 문제들을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돌보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초신자들은 공동체 활동을 통해 주님 안에서 격려를 얻으며, 자신의 연약함과 이기심을 차츰 극복할 수 있고 겸손과 회개를 배울 수 있다. 특히 구성원 각자로 하여금 지체의식을 갖도록 하기 때문에 모두에게 더 많은 교제와 나눔의 기회가 제공되게 된다. 초신자들은 여러 공동체들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고 믿는 자는 한 사람도 버리지 않으신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게 될 것이다. 따라서 현재 이러한 공동체가 부족한 현실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공동체는 우리가 중국의 지식인 성도에게 관심을 가짐에 있어 그 초점이 되어야 할 것이다.

신
학과 실천 
지식인들은 이론적으로 사고하고 해석하기를 좋아한다. 생활 속의 평범한 문제일지라도 그것을 형이상학적인 범주로 끌어 올려 이성적인 설명을 덧붙이곤 한다. 그러나 신앙문제에 있어서 그들은 진정한 도전에 직면한다. 신앙과 과학은 서로 다른 범주에 속하며, 진정한 믿음은 지식의 많고 적음과 무관한 것이다. 과학의 발달이나 기술의 진보는 인류의 영혼을 정화하고, 죄를 극복하고, 정서적 필요를 충족시키는 데에는 소용이 없다. 또 일반 서적들이나 정부가 내놓은 의식 형태 중에서 인간 가치의 기본적인 문제에 대한 만족한 해답을 찾기란 어렵다. 지식인들이 만약 적합한 시기에 그리스도의 진리를 알게 되고 또 그들의 특성에 맞는 서적들을 접할 수만 있다면, 그들이 인생의 진리를 탐색해 가는 과정과 방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중국의 지식인들이 기독교 신학과 신앙에 대해 저술할 서적들을 접할 기회가 너무 적고, 또 이런 책들이 있다 할지라도 대부분 주로 서양인 독자를 대상으로 서양인이 쓴 것이라는 점이다. 일단 예수를 영접한 청장년 지식인들은 신앙의 초보 단계에서 필연적으로 여러 가지 신학적인 문제와 부딪히게 된다. 그들은 과학 이론을 연구하던 습관대로 신앙문제를 연구할텐데, 이 때 교회나 단체의 도움이 없고, 참고하여 해답을 얻을 만한 기본적인 신학서적과 신앙서적도 없다면, 풍부한 전문지식과 탄탄한 이론적 기초를 가지고 있는 그들은 신학적인 혼란으로 인해 큰 괴리감을 갖게 될 것이다. 

이로 인하여 신앙에 회의를 갖는 이들도 생길 것이다. 이론과 사고에 강한 지식인 본래의 기질이 그들 내면의 모순을 심화시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일에 원인과 결과가 있어야 하고, 이해할만한 답이 있어야 하고 논리에 부합해야만 하는 지식인들이 올바르게 신앙 생활을 하려면 일반인들보다 더 신학의 이론적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그들은 우선 자신을 납득시키는 법을 터득해야 한다. 그들의 말을 빌자면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심오하면서도 알기 쉽고, 핵심적이고, 이론적으로 깊이가 있되 이해하기 쉬운 신학과 신앙서적이다. 이런 서적을 출판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현재 중국 기독 지식인들의 절실한 필요이다. 

그러나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학문을 연구하는 식의 단순한 이론적 연구만으로는 그리스도의 진리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공체 활동, 주님 안에서의 교제, 관심과 도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나눔, 영적 성장 과정 중의 간증, 특히 기도응답의 체험은 초신자의 성장에 있어 필수적인 실천이다. 신학 이론의 뒷받침 없는 신앙은 저급하고 맹목적일 수밖에 없고, 자칫 잘못하면 엉뚱한 길로 빠질 수 있다. 또 실천이 없는 신앙은 공허하고 무의미하다. 따라서 신학적 연구와 개인적 실천이 잘 조화되어야지, 두 가지 중 한 가지도 결핍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모범과 시범의 효과 
중국은 장기간 폐쇄적인 상태로 있었기 때문에 과감한 혁신과 창조는 늘 의심과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그래서 ‘남보다 먼저 나서지 않는다(不爲人先)’ 라는 유교사상이 매우 보편적이다. 따라서 정부는 어떤 정책을 추진할 때 우선 행정권위를 내세워 본받을 만한 모델을 제시하고 민중들이 그것을 따라하도록 한다. 바로 이것은 시범의 효과를 노린 것이다. 기독교에 대해 전혀 모르거나, 조금 알긴 하지만 그저 관망만 하고 있는 지식인들에게 있어 고학력에 전문인인 동료 중 누군가가 기독교인이 되었다는 소식은 심리적 동요를 불러일으키기 마련이다.

그것이 질책이든, 모방이든 어쨌든 기독교에 대해 더 이상 무관심할 수는 없게 된다. 그들이 기독교를 믿지 않는 것은, 동서 문화의 차이 이외에도 과학 지식의 많고 적음이 아주 중요한 이유이기 때문이다. 대학생, 석사, 박사 등은 ‘훌륭한 교육을 받은 사람들’ 로 일반 노동자, 농민과는 다르다. 이러한 사람들이 종교를 가지게 됐다면 단순히 우매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없다. 만약 지식인 자신이 잘 아는 사람, 친구 혹은 자신과 경력이나 연령, 지위가 비슷한 사람이 교회에 다닌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 심리적인 동요는 더욱 커지게 될 것이다. 크리스천 지식인 자신도 이러한 시범의 효과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확실히 실제 인물과 사실은 설득력이 있다. 현실적 문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이미 믿는 지식인들 중에서 대표할 만한 인물을 어떻게 선정할 것인가? 첫째는 경력이나 간증,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후의 체험들이 다양하기 때문에, 각 종류별로 귀감이 될 만한 인물을 세워야 할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다른 사람의 사례에 흥미를 느끼기 마련이다. 둘째, 지금과 같은 중국의 사회 환경에서 어떻게 하면 그들을 공개하면서도 정치적 불이익이 미치지 않도록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크리스천 지식인들의 간증은 그들이 겪은 우여곡절의 삶과 깊은 관계가 있고, 이 점이 바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그러나 일단 정부에 보고가 되면 당사자는 압력을 받게 된다. 따라서 가능한대로 신뢰도가 높은 사실과 사례들을 더 많은 지식인들에게 알리는 동시에, 공개될 경우의 부작용을 방지할 방도를 마련해야 한다. 이런 복잡한 사정은 중국에서 기독교인이 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특히 지식인이 기독교인이 되기는 더욱 어렵다는 것을 설명해 준다. 하지만 모범적인 모델의 제시는 확실히 감화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活水/ 현재 해외에서 사회과학을 연구하는  중국 베이징 출신의 교환 교수 
 번역/ 김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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