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중국에서 10년 가까이 젊은 지식인들을 대상으로 사역하는 가운데, 많은 것을 느끼셨으리라 생각됩니다. 먼저 선교사님께서 알고 이해하는 오늘의 중국 젊은이들에 대해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 중국이라는 사회주의 집단체제 속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들은 우리와는 다른 가치관을 갖고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처음부터 그들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언어가 어느 정도 통하고, 우리의 삶을 있는 모습 그대로 보여주고, 첨차 깊이 있는 교제를 해 가면서 조금씩 그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희 부부가 대학생들과 성경공부한 지 2~3개월쯤 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돌아가면서 기도제목을 나누자고 하니, 학생들이 굉장히 당황하며 거부감을 나타내더군요. 왜 나의 비밀을 여러 사람 앞에 공개해야 되는냐는 것이지요. 사실 이 학생들은 한 학교, 같은 과, 같은 기숙사에서 3년 넘게 함께 살고 있는 친구들로 누구보다도 서로를 잘 안다고 하는 사이였습니다. 그런데도 결코 자기 마음 속 깊은 사정을 털어놓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6개월 정도 계속 말씀을 공부하면서 이들은 비로소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기도제목을 나누자고 했을 때 한 학생은, 매주 한 번씩 편지를 보내오던 여자친구의 편지가 2주 동안 끊어졌다며 기도해달라고 했습니다. 한 주일이 지나고, 모임에 온 그 학생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습니다. 여자친구의 편지 두 통이 한꺼번에 왔다며 기도 응답에 기뻐 어쩔 줄 모르는 것이었습니다.
중국 젊은이들을 대하면서 발견한 놀라운 사실은, 중국인의 사고 체계에 있어서 어린아이와 성인만 있지 그 중간이 없다는 점입니다. 단적인 예로 중국에는 ‘사춘기’의 의미인 ‘靑春期’라는 단어는 있지만, 개인적으로 사춘기의 경험을 갖고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즉 우리들이 청소년기나 청년기에 경험하는 정서적, 감정적 변화에 대해 관심을 갖거나 담론해 본 경험이 없다는 것입니다. 20대 학생들에게 ‘사춘기’의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들을 겪어봤냐고 물어보면 한 사람도 그런 것을 겪어보지 않았다고 합니다. 더 구체적인 연구가 있어야겠지만, 개인적으로 이것은 개인 정서의 자유를 용납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자로오면서 감정이 무시되고 억제된 결과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예수님을 영접한다는 것은 먼저 자신의 마음을 열고, 주님을 신뢰할 수 있어야 가능한 것인데, 처음부터 자기 마음을 열기 어려운 중국인들에게 곧바로 예수님을 소개하고 말씀을 가르치는 것은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선교사님은 어떤 방식으로 그들에게 다가가 복음을 전하셨습니까?
- 우선, 언어가 자유롭게 통해서 서로 마음을 열고 삶을 나누며 깊이 교제할 수 있는 상황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말보다는 예수 믿는 사람들의 삶이 어떻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젊은이들은 먼저 믿은 크리스천, 즉 사역자들의 삶을 보면서 많은 도전을 받습니다. 그래서 선교사의 가정생활은 매우 중요합니다. 대학생들이 저희 가정을 방문하여 모임을 가질 때, 우리 부부가 스스럼없이 서로를 대하며 자기 허물을 솔직하게 나누고 용납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심 놀랐다고 하더군요. 이런 가정을 처음 봤다는 것입니다.
함께 교제했던 15명 학생들의 대학 졸업식에 참석한 적이 있는데, 한국의 대학 졸업식과는 너무 달랐습니다. 졸업생들이 슬리퍼에 반바지 입고 와서 10분 정도 식에 참석하고 그냥 뿔뿔이 흩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가족들이 와서 기념 사진을 찍는다거나 함께 식사를 한다거나 그런 일은 전혀 없어요. 그래서 우리는 졸업기념으로 함께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었거든요. 지금은 그 젊은이들이 저마다 흩어져 직장생활을 하고, 결혼도 했지만 계속적으로 저희와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한 형제는 우리집으로 신혼여행을 오기도 했습니다. 형제는 마치 자기 집에 온 것처럼 편하게 지냈고, 예수님을 믿지 않던 그 형제의 부인도 저희와 교제하는 가운데 점차 마음이 열렸어요. 그래서 돌아갈 때쯤에는 예수님을 영접했지요.
외국인으로서 중국인들을 대할 때 그들과 우리의 다른 점을 인정하고 그들을 이해하는 것이 무척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젊은이들, 특히 사역자들이 지식인들을 대할 때 깊이 고려해야 할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 많은 분들이 열정과 사랑으로 사역을 잘 하고 계십니다만, 간혹 보면 중국 대학생들을 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사역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한 캠퍼스에서 제자훈련 사역을 하고 있는 한 한국인 사역자가, “제가 가르치고 있는 중국 학생들이 제 말을 잘 듣도록 기도해주십시오.”라고 기도를 부탁하더군요. 물론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외국인으로서 중국인에게 권위적인 태도로 무조건적인 순종만을 강요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윗사람이라고, 나이가 더 많다고, 혹은 복음을 먼저 알았다는 이유로 고압적인 태도, 가르치려는 태도를 취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우리가 중국인을 대하는 기본적인 태도는 ‘섬김’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복음의 우월성을 명령이 아닌, 자신의 삶으로 직접 보여주어야 합니다.
저는 중국 지식인들을 대할 때, 중국 민족이 우리 민족에게 우수한 문화 등 좋은 영향력을 준 것에 대해 감사를 표합니다. 그래서 빚을 갚고자 하는 심정으로 복음이라는 좋은 선물을 주기 위해 왔다고 말하면, 그들의 태도가 달라집니다. 역사적으로 중국인들은 아편전쟁, 청일전쟁을 겪으면서 제국주의 열강에 의해 상처를 받아 민족적 자부심이 많이 상실되었습니다. 그래서 외국인에 대해 일종의 피해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특히 청일전쟁은 중국이 동방의 패권을 일본에 넘겨준 뼈아픈 패전입니다. 그 패전의 원인을 중국인들은 자기 문화, 즉 유교에 있다고 봅니다.
그 이후 중국인들은 자신들의 문화에 대해서 어떨 때는 우수성을, 어떤 때는 멸시하는 이중성을 갖습니다. 누군가 그 문화를 멸시할 때는 우수성을 들고와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고, 반대로 그들의 우수성을 칭찬하면 그들은 오히려 자기 문화를 멸시하는 태도를 보입니다. 이런 그들에게 우리가 복음을 전함으로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말씀을 실천함으로써 그들의 짓눌린 마음을 해방시켜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스스로 존귀히 여기지 못하는 그들에게, 외국인이 진실한 마음으로 그들의 장점과 우수한 점들에 경의를 표할 때, 그들은 마음을 열고 우리의 말에 귀를 기울입니다. 물론 그들의 것이 무조건 다 좋다고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올바른 역사관, 문화관, 하나님의 세계관에 대해 알려 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외국 선교사들이 우월성을 가지고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겸손히 그들의 장점을 인정하는 태도를 가지는 것이 복음을 증거하는데 있어 더욱 효과적이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지금까지는 캠퍼스 사역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는데요, 대학을 졸업하고 직업의 현장에 있는 젊은이들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전문인 선교사로 사역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전문인 선교사로서 효과적으로 사역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현재 전문인 선교사로서 기업이나 공장 등에서 현지인 직원에게 복음을 전하고 제자훈련을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삶의 다양한 영역에서 복음이 전해지는 것은 무척 바람직한 일입니다. 다만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은 외국인 선교사이든, 현지인 사역자이든 직장속에서 복음을 전하려고 하는 사람 자신이 먼저 직장인으로서 바른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직함과 부지런함,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을 희생하는 헌신적인 태도가 관건입니다. 어떤 분들은 중국에 와서 사업을 하면서, 현지인 직원의 노동력을 부당하게 착취하거나 신앙교육이라는 명모으로 비인격적인 대우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경우 아무리 신앙이 좋은 사역자라고 해도 중국인들은 그에게서 배우려 하지 않습니다. 신뢰를 얻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역자가 중국인들의 신뢰와 존경을 얻지 못한다면, 그가 전하는 복음도 받아들여지기 어려울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지만, 캠퍼스에서 예수님을 믿고 난 젊은이들이 졸업 이후 직장이나 결혼 생활 등 현실 속에서 신앙을 지키며 사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중국의 지식인들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중국은 아직까지 기독교에 대한 인식이 낮기 때문에 예수믿는 지식인들은 현 체제, 사회 구조의 중심에서 분리될 수밖에 없습니다. 대학 이상의 고등교육을 받은 지식인들은 사회적으로 중요한 지위를 얻을 수 있지만,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지불해야하는 대가가 있습니다. 사회에서 중요한 직위에 있으면서 신앙을 표현하고 유지하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제가 아는 한 대학 교수는 크리스천이기 때문에 학교의 중요한 행사 등에 초대받지 못하고, 정부에서 제공하는 혜택도 받지 못합니다. 특히 정부 관료가 되려면 대개 공산당원이 되어야 하는데, 종교를 가지면 당원이 될 수 없다는 규정 때문에 크리스천들은 갈등할 수밖에 없지요.
캠퍼스에서 선교사를 통해 예수님을 믿고 매우 모범적으로 신앙생활하고 있는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찾는 과정에서 어떤 지방의 현장(縣長)으로 발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현장이 되려면 반드시 공산당원이 되어야 했습니다. 갈림길에 선 이 형제는 결국, “나는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선택한 그 길을 가겠다. 설령 그 길이 지옥으로 가는 길이라 할지라도 나는 그 길을 선택하겠다.”고 말하고는 떠났다고 합니다.
이처럼 현재 중국의 크리스천 지식인들은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습니다. 당원이 되느냐 기독교인이 되느냐 양단 간에 선택하라고 강요하는 것보다, 기독교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말씀공부와 복음전도, 기도생활 등을 통하여, 그들이 스스로 출세보다 예수님을 선택할 수 있도록, 그리고 직장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빛의 역할을 감당하도록 돕고 권면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하게도 이미 중국 사회의 각 영역 안에 신실하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심지어 공산당원, 정부 관료, 군인, 의사들 중에도 신실하게 신앙을 지키며 주위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 믿는 것을 요란하게 떠벌리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삶을 통해 예수님의 빛을 드러내며 사는 것입니다.
말씀을 들으면서, 이미 믿은 젊은 지식인들을 위해 더욱 많은 기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그들을 돕고 격려함으로 그들이 중국을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될 것을 기대합니다. 오랜 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인터뷰, 글/ 한영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