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타이완과도 다른 중국 영화
중국과 홍콩, 타이완은 오늘날 같은 중국문화권을 형성하고 있으면서도 서로 다른 성격의 영화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홍콩이 일찌감치 영화의 상업성에 눈을 떠서 오락적 가치에 치중한 대중화의 길에 들어섰다면, 타이완은 중국의 거대한 본토와 분리된 상황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데 애를 써온 것을 볼 수 있다.
홍콩 영화의 면모를 세계에 알려줬던 대표적인 홍콩 영화제작사 골든하베스트의 추완람 부사장은 한 방송국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장사가 잘 되는 영화를 제작하는 것을 대원칙으로 삼고 있다. 또한 그 원칙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홍콩 영화가 추구하는 목적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이소룡에서 성룡을 거쳐 이연걸에 이르는 무협물의 전통이나, 80년대 가장 히트한 코미디 시리즈인 <최가박당>, 도시 취향의 감각적인 영상이 돋보였던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 그리고 지금은 헐리우드의 대표적인 액션영화의 일선에 나선 오우삼 감동의 <영웅본색>류의 홍콩 갱스터 무비들은 모두 모양은 달라도 대중적이며 상업적 취향을 반영하고 있다.
그에 비해서 허우샤오시엔(侯孝賢)과 양더창(楊德昌), 리안(李安)으로 대표되는 타이완의 영화 감독들은 세계 유수의 영화제들을 석권하면서 현실도피적인 헐리우드 영화나 반공정신을 담은 친정부적 이념으로 채색된 교육용 영화가 아닌, 중국 본토와 갈라져서 작은 도시에서 살아가는 타이완 소시민들의 있는 그대로의 삶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스케일은 작지만 진실된 삶의 모습이 이들 타이완 감독들의 영화에는 깊이 배어 있다.
그렇다면 중국 영화는 홍콩이나 타이완과는 다른 어떤 풍모를 지닌 것일까? 그 해답은 중국 5세대 감독을 대표하는 장이모우(張藝謀) 감독에게서 찾을 수 있다. 장이모우 감독은 <국두>, <붉은 수수밭>, <귀주 이야기>, <인생> 등의 영화를 통해 90년대 세계 최고의 감독 반열에 드는, 가장 중국적인 영상미를 연출하는 대가로 인정받고 있다. 그는 중국 영화사에 있어서 문화대혁명과 톈안먼 사건 이후에 활동해 온 세대 중 한 사람이다. 현대 중국의 문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문화대혁명과 톈안먼(天安門) 사건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왜냐하면 이 사건들은 문화가 급격히 변하는 분기점을 이루기 때문이다. 장이모우 감독이 이 두 고비를 넘겼다는 사실은 그의 영화(다른 감독들의 영화도 비슷하지만)가 단순한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는 도구나 정치적 압력과 연계하기보다는, 비교적 자유로우면서도 자연스럽게 중국인 특유의 미학과 정서를 드러냈다는 점에서 그를 포함한 최근의 중국 영화들을 이해하는 관건이 되는 것이다.
가족애와 서정성이 돋보이는 가족영화
<아빠를 업고 학교에 가다>는 1998년 조우유차오 감독이 만든 가족영화다. 조우유차오 감독은 바로 앞에서 언급한 장이모우 감독의 조감독 출신으로 장이모우가 추구하던 중국 특유의 영상미와 연출 기법을 고스란히 전수한 사람이다. 그래서 그의 영화 속에는 대륙의 광활한 터전을 배경으로 한 넓이의 예술과, 그렇게 넓은 땅덩어리에서 살아가는 작은 인간들의 깊이 있는 인생 면모가 사실적인 바탕 위에서 그려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중국의 가난한 한 산골 마을. 어머니 없이 아버지와 남매가 사는 집. 아버지는 큰 딸을 중학교에 보낼 것인가 아니면 아들을 초등학교에 보낼 것인가를 결정하기 위해 후라이팬 돌리기를 한다. 후라이팬의 손잡이가 가리키는 방향에 있는 사람이 학교에 진학을 하게 되는 것이다. 손잡이는 남동생 석와에게 향한다. 아무 것도 모른 채 그저 학교에 가게된 것이 좋아서 환호성을 지르는 석와.
짐작하듯이 이 영화에 절절이 넘쳐 나는 것은 대다수 중국인들이 처한 빈곤의 상황이다. 비록 굶어죽지는 않지만 가족 가운데 누군가를 희생하지 않고는 얻을 수 없는 것들이 너무도 많은 현실이 우리의 과거와 너무도 닮았다. 학교에 가는 첫 날, 누나가 만들어준 신발이 닳을까봐 아버지는 석와에게 학교에 가서나 신으라고 아들의 손에 신발을 들려준다.
“공책에 글씨 잘 써. 지우개는 못사준다!”
몇 푼 되지도 않는 지우개를 사주는 것이 부담스러운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것은 역시 석와의 누나다. 중학교에 진학한 석와의 학비를 대기 위해 부잣집에 일찌감치 며느리로 팔려 가는 모습은 그 옛날 가난했던 우리 누이의 슬픈 뒷모습 그 자체다.
그러나 이 영화가 가난의 현실만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가난해도 우리의 부모들이 살 수 있었던 것은 자식의 미래에 거는 소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미래가 교육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을 바라보는 일은 이 영화의 큰 즐거움이다. 석와의 중학교 선생님은 석와의 총명함과 부지런함을 알아보고 그를 전국화학실험대회에 나갈 수 있도록 배려한다. 가난한 처지를 헤아린 선생님은 석와의 자존감에 상처 나지 않도록 대회 참가비용을 건네주면서 차용증을 쓰게 한다. 그러나 석와가 나간 뒤 그 차용증으로 만년필에 흐르는 잉크를 닦고는 휴지통에 버리는 선생님의 마음 씀씀이는 보는 이로 하여금 작은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
물론 대개의 영화가 그렇듯이 석와는 상을 타서 이에 보답하고 이를 지켜보는 아버지는 한없이 기쁠 따름이다. 우리 아버지도 그러하셨으리라. 자식에게 해 준 것 없어서 마음 편할 날이 하루도 없었는데 보란듯이 상을 받아왔으니 세상 부러운 것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의 핵심은 영화의 제목이 암시하듯 뜻밖의 상황 속에서 이루어진다. 석와는 자신이 소원하던 고등사범학교에 진학할 수 있는 입학통지서를 받았지만, 문제는 중풍으로 병석에 누운 아버지를 혼자 두고 학교에 다닐 수 없는 현실이다. 새벽에 아침밥을 차려놓고는 집에 나와 학교에 다녔던 석와였지만, 고등사범학교까지는 무려 백 리나 되는 먼 거리인데다 변변한 교통 수단이 없기 때문에 걸어다닐 수도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병든 아버지를 팽개치고 혼자 자취할 수도 없는 일. 진학을 포기하려는 석와에게 아버지는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우물에 떨어져 자살을 시도하지만 이럴수록 석와는 가슴이 아프다.
동양인 특유의 끈끈한 가족애는 이런 데서 발휘된다. 석와는 결심한다. 아버지를 포기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학교를 포기하는 것은 아버지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이다. 결론은 한 가지, 아버지를 업고 학교에 가는 길 밖에 없다. 석와는 학교 근처에 자취방을 얻고 아버지를 업고 학교에 가기로 작정한다. 짐을 싸고 이사가는 석와 부자. 어렸을 적 아버지가 석와를 업고 건네주던 그 강을 지금은 아들이 아버지를 업고 건너간다. 강물에 비치어 반짝이는 노을을 뒤로 한 채, 가난의 시름은 부자의 깊은 정에 묻혀간다. 집을 떠나 학교로 가는 길에서···.
이 영화를 재미있게 보려면
60년대 한국 영화를 보는 듯한 이 영화를 재미있게 보는 방법은 다음의 세 가지에 주목하는 것이다.
첫째, 이 영화가 갖고 있는 서정성이다. 강과 들판을 가로질러 다니는 주인공의 모습은 아련한 옛 추억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강물에 휩쓸려 죽은 여자 친구를 바라보는 어린 석와의 모습은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의 정감을 느끼게 하기도 한다. 이 영화는 도시의 삶에 길들여진 현대인들에게는 분명 청량제의 역할을 할 수 있다. 특히 <국두>의 양윤이 촬영을, <패왕별희>의 자오지핑이 영화음악을 담당했다는 점은 이 영화가 갖는 정서적 효과를 가늠케 한다.
둘째, 아들 교육을 향한 아버지의 희생과 사랑의 면모를 살피는 것도 흥미롭다. 강물에 휩쓸려 죽은 여자 아이의 장례식이 끝난 후, 강물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학교에 가지 않는 석와를 등에 업고 강을 건너면서 아버지는 이렇게 말한다.
“이 강물은 물이 많은 날도 있고 적은 날도 있어. 하지만 공부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날마다 해야 하는 거야. 넌 남자니 무슨 일을 하든 끝까지 해야 하는 거야.”
셋째, 가난한 현실을 뛰어넘을 수 있는 부자 간의 사랑을 확인하는 것은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 수 없다. 권위를 잃어버린 아버지와 제멋대로 사는 신세대로 이루어진 오늘날의 사회에서 과연 아버지와 아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 것일까? 이 영화는 그 해답을 가지고 있다.
강진구/ 영화평론가, 크리스천문화커뮤니케이션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