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5일 제9기 4차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全人大)가 시작되어 15일 막을 내렸다. 이번 회의는 21세기 초 중국 경제의 청사진을 확정하는 대회이자, 2002년과 2003년 당.정 지도부 교체를 앞두고 열렸기 때문에 국외적으로 큰 관심을 모았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인사와 관련된 아무런 결정도 내려지지 않았고, 오직 4명의 전인대 상임위원을 새로 선출했을 뿐이다. 이같은 결과를 놓고 중국의 정치 소식통들은 장쩌민(江澤民)을 위시한 7인의 정치국 상무위원들 간에 후계구도에 대한 구체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후진타오(胡錦濤. 59) 부주석을 장쩌민의 후계자로 한다는 것 외에는 어떤 인사변동 사항도 합의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중국 정치계 최대의 관심사는 2002년 10월에 개최될 16차 공산당대표대회(이하 당대회)이다. 이 대회에서는 공산당의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당 정치국상무위원회를 포함한 정치국, 당 중앙위원회, 당 중앙군사위원회의 대폭적인 인사 이동이 벌어진다. 물론 2003년 3월에 열릴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국가 주석, 총리 등 정부(국무원) 최고 인사에 대한 결정이 내려지지만, 국정 전반이 공산당 지도하에 결정, 운영되는 중국의 정치 특성상 정부의 최고 지도자는 바로 당 정치국 상무위원에서 선출된다. 따라서 사실상 내년의 당대회에서 실질적인 정부 인사의 윤곽이 드러나게 된다. 

베일에 싸인 중국 최고층의 인사변동은 당 정치국상무위원이나 막후 원로들 간의 합의 내지 투표에 의해 결정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별히 16차 당대회가 중요한 것은, 이때 장쩌민 주석과 주룽지(朱鎔基) 총리를 비롯하여 당 정치국원의 3/4, 당 중앙위원의 60%가 물러나고, 50대 후반에서 60대 전반의 제4세대 젊은 기수들에게 권력이 이양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누가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선출될 것인가에 있는데, 16차 당대회가 열릴 내년 가을 이전, 즉 2002년 여름 베이다이허(北戴河) 회의에서 이 문제가 매듭지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현재 7인의 상무위원들간에, 그리고 개혁파와 보수파, 민주세력들 간에 치열한 권력암투가 벌어질 것이 확실하다.

후진타오의 권력승계 작업 
후진타오는 지난 92년 49세의 젊은 나이로 당 정치국 상무위원이 되면서 핵심 리더 그룹에 뛰어들었고, 이미 차세대 지도자임을 공인받았다. 2000년 5월 장주석을 대신해 5. 4운동 80주년 기념 연설을 했고, 나토의 유고주재 중국대사관 폭격에 대한 국가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지난해 12월 후 주룽지 총리를 제치고 동남아국가연합(ASEAN) 정상회담에 장 주석 대신 참가, 마치 국제무대에서 장의 후계자임을 공인받으려는 듯한 인상을 풍겼다. 

후 부주석은 덩샤오핑, 천윈 등 당 원로들이 살아있을 때부터 여러 ‘시험’을 거쳐 능력을 인정받은 4세대의 선두주자이다. 92년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승격하여 덩샤오핑에 의해 4세대 ‘지도핵심인물’로 지명되었다. 1997년 15차 공산당대회 이후 얼마 되지 않아 그는 국가 부주석에 취임, 일찌감치 권력승계의 준비를 시작했고, 99년에는 중앙군사위 부주석(주석은 장쩌민)까지 겸임, 군부에 대한 영향력도 강화시켰다. 

당의 인사권을 장악하고 있는 후 부주석은 수년 전부터 중앙과 지방의 중요 직책에 자신과 가까운 젊은 인재들을 배치하는 ‘세대교체’ 작업을 꾸준히 진행해왔다. 후에 의해 발탁된 인물들은 그가 당서기를 지냈던 공청단(共靑團: 공산주의청년단) 출신이거나 중앙당교(中央黨校: 중앙공산당학교)에서 인연을 맺은 인물들이다. 지난해 12월 가오창리를 밀어내고 사법부장에 임명된 장푸선, 인사부장에 임명된 장쉐중, 푸지엔(福建)성 당서기로 임명된 숭더푸 등은 모두 후의 공청단 인맥이라고 할 수 있다. 작년 말과 올 연초 잇달아 단행된 전국 각 성의 당서기와 성장, 중앙부처의 일부장관 교체작업도 후 부주석의 세대교체 의지가 작용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외에도 후 부주석은 21세기 중국을 이끌 공산당의 새로운 이념에 대한 연구작업을 중앙당교를 통해 비공개리에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경제의 발전과 더불어 점점 희미해져가는 사회주의 이념과 새로운 세대들의 실리주의 성향에 따라, 공산당은 거대한 중국을 통합하고 다양한 지역간, 부문간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할 숙제를 안고 있다. 특히 노동자와 농민을 위주로 하는 공산당을 광범위한 중산층과 기술인, 금융인, 벤처기업 인사까지 포함하는 ‘대중 정당’으로 확대하는 작업이 필수적이다. 후 부주석은 장쩌민 주석이 제창한 ‘3개 대표이론(공산당이 노동자, 농민 뿐 아니라 ‘광대한 인민의 근본이익’을 대표한다고 명시)’을 기반으로 ‘공산당의 대중화’를 도모할 것으로 보인다.

불투명한 장쩌민의 완전퇴진 
후 부주석이 장쩌민 주석의 뒤를 이어 4세대 최고 지도자가 될 것은 의심의 여지없는 사실로 굳어지고 있으나, 홍콩 언론들에 따르면 장 주석은 자신의 권력을 한 사람에게 물려주기보다는 3~4명에게 분산시킴으로써 자신의 영향력을 계속 유지하려는 전략을 갖고 있다. 그래야만 자신이 최종적인 의사 결정자로서 무대 뒤에서 그들을 조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장은 쩡칭홍(曾慶紅) 당 조직부장, 우방궈(吳邦國) 부총리, 황쥐(黃菊) 상하이시 서기 등 자신의 수하에 있는 상하이방(上海幇) 멤버들을 정치국 상무위원 등의 요직에 임용하기를 원한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장 주석은 은퇴 후에 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직을 계속 유지함으로써, 당분간 4세대 지도자들의 배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장 주석과 반목하고 있는 차오스, 완리 등 당 원로 그룹은 반대하고 있으나 장완녠(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 위웅포(중국인민해방군 총 정치부 주임) 등 장의 심복들은 “국가를 위해, 사회, 경제 상태의 안정을 위해” 장 주석의 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직을 유임시키기 위해 군 최고 간부의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러한 점들을 종합할 때 장 주석은 퇴임 이후에도 여전히 중국 정치의 대부로 남으려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된다.

4세대 지도자들의 특징과 약력 
베이징 정가 소식통들의 의견을 종합해 보면, 4세대 최고 지도부의 구성원이 될 주요 인물로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는 이들은 다음과 같다. 후진타오 국가 부주석 겸 군사위 부주석(58), 쩡칭홍(曾慶紅) 당조직부장(61), 원자바오(溫家寶) 부총리(58), 리창춘(李長春) 광동성 서기(56), 우방궈(吳邦國) 부총리(59), 황쥐(黃菊) 상하이시 당서기(62), 자칭린(賈慶林) 베이징시 당서기(60) 등이다. 

후진타오 부주석은 칭하대 수리과(水利科)를 졸업했으며 간쑤성 건설위원회 부주임, 공청단 중앙서기처 서기, 시짱자치구 당위 서기, 중앙당교장 등을 역임하였다. 덩샤오핑으로부터 티벳 등 개발 공로를 인정받아 발탁된 그는 온화한 성격에 뛰어난 실무능력과 함께 두뇌회전이 빠른 지도자로 평가받고 있다. 

쩡칭홍은 장쩌민의 핵심 측근으로 장 주석이 상하이 시장과 당서기로 있을 때 그를 총애했다. 오래 전부터 장 주석 다음 가는 막강한 실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베이징 정가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현재 그는 정치국 후보위원이기 때문에 2002년 말 16차 당대회에서 곧바로 상무위에 진입하는데 약간의 무리가 있어, 오는 10월 15기 5중전회에서 일단 정치국 위원으로 한 단계 올라선 뒤, 그 다음에 상무위에 진입하는 수순을 밟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그의 뛰어난 지략과 담력, 식견에 대해서는 이미 국내외에 널리 알려져 있지만, 일부에서는 장 주석의 힘을 업고 출세가도를 달렸다는 점에서, “견제가 만만치 않을 것” 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차기 총리로 유력시되는 원자바오는 16차 당대회 이후 후진타오와 동맹관계를 구축할 것으로 보이는데, 그것은 공통적인 경력이 많기 때문이다. 두 사람 모두 중국의 이공계 명문인 칭화대 출신인데다, 최초의 지방 부임지가 간쑤성이며, 당시 간쑤성 당위원회 제1서기인 숭핑(전 정치국 상무위원 겸 당 원로)의 비호를 받고 있다. 원자바오는 ‘현대의 주은래’ 라고 알려져 있으며, 과거 수년 간 중국 경제의 주요 부문인 금융과 농업을 담당하였다. 당서기처 서기로도 집무하고 있으며, 4세대 지도자로서는 유일하게 당정 요직을 역임하고 있다. 

쩡과 함께 장 주석의 강력한 지원 하에 차기 총리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이 리창춘 광동성 당서기이다. 지난 해 여름 베이다이허 회의에서 16차 당대회 준비를 위한 인사문제 논의과정에서 장 주석이 “문혁 이전에 성장한 간부들은 퇴진하고, 40년대 출생한 젊은 지도자들이 발탁돼야 한다”고 말한 것도 리 서기를 염두에 둔 것이라는 지적이 있다. 이제까지 총리 후보감으로는 주룽지 총리 계열로 분류되는 원자바오 부총리가 1순위로 꼽혔으나, 강력한 추진력과 장 주석의 신임, 지방에서의 업적 등을 쌓은 리창춘이 등장함으로써, 앞으로 권력층 내부에 불꽃 튀기는 파워게임이 벌어질 가능성이 점쳐진다. 

우방궈 부총리도 장 주석의 인맥이며 상하이방이다. 주룽지, 후진타오, 황쥐 등과 함께 칭화(淸華)대 동문이다. 그 역시 장 주석처럼 상하이 시장과 당서기를 거쳐 중앙무대로 진출했다. 그는 수년 전까지도 주룽지 총리의 뒤를 이어 총리 후보로 거론됐으나, 업무능력과 조직 장악력 등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해 경쟁대열에서 좀 밀려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반면 상하이에서 때를 기다리고 있는 황쥐 서기가 중앙으로 진출할 것은 확실해지고 있다. 중국 최대의 경제도시 상하이의 푸둥(浦東)개발을 이끈 황 서기는 경제관련 부총리를 맡을 가능성이 높다. 

장 주석이 미는 또 한 명의 인물인 자칭린 베이징시 당서기는 최근 기세가 주춤하는 양상이다. 지난해까지도 그의 정치국 상무위 진입은 확실해 보였으나, 신 중국 건국 후 최대의 부패사건이라 볼 수 있는 샤먼 밀수사건에 그의 부인이 연루되었다는 의혹이 불거져 나오자 주위의 견제가 만만치 않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특히 주룽지 총리가 이 사건의 수사방향을 둘러싸고, 자 서기를 비호하고 있는 장 주석과 대립하고 있다는 소문도 나돌고 있다.

4세대 지도층에 대한 전망
후진타오를 비롯하여 새롭게 부상하는 4세대 지도자 그룹은 모두 50대 후반~60대 초반의 젊은 층으로, 현재의 3세대들과는 정치적 성향에서 이미 구분된다. 훨씬 진보적이고 과학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이들 기술관료(테크노크라트)들은, 국민들의 광범위한 지지를 얻기 위해 보다 대담한 경제, 정치개혁을 추진할 가능성이 많다. 

하지만 이런 온갖 예측에도 불구하고, 중국 정계 소식통들은 “아직 1년 반이나 남았으며, 그동안 어떤 변화가 일어날 지 아무도 모른다”는 말을 반복 강조하고 있다. 공개된 선거방식에 따라 지도자가 선출되는 서방 민주국가와 달리, 밀실에서 소수에 의해 지도자가 결정되고 돌발변수에 따라 결과가 엄청나게 달라질 수 있는 ‘불가측성’ 이 지배하는 중국 정치게에서, 아무도(심지어 당사자들까지도) 자신있게 미래를 장담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3세대의 완전퇴진이 불투명한 현 상황에서, 권력층 내부의 ‘힘의 흐름’을 예민하게 관찰해야 할 것이다.

<참고자료>
「주간조선」1999.10.21/ 2001.3.29
「SAPIO」2001. 2. 28 

한영 | 본지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