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중국 현지에서 발행되는 <남방주간(南方週刊)> 2000년 12월 28일에 실린 ‘신세기, 가장 큰 희망’이란 제목의 특집 가사를 번역한 것이다. 중국 전역에 살고 있는 이들의 다양하고 소박한 신세기 소망을 들어본다. 〔편집자 주〕
전국인민대회를 생방송으로
월드컵축구, 시드니올림픽, 연말 가수시상식 등 다채로운 TV 생방송 프로그램들이 시청자들의 주목을 끌고 있다. 그런데 전 국민의 민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전국인민대회이하 전인대)는 왜 생방송을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전인대가 생방송으로 중계되면, 국민들은 대표들이 어떻게 분석하고 문제들을 토론하는지, 어떻게 수많은 문제들에 대한 대책을 찾는지 직접 알 수 잇을 것이다. 이와 함께 전화와 인터넷, 편지 등으로 시청자들이 직접 참여할 수도 잇다. 이렇게 될 때 국가 정책 결정의 민주화, 과학화, 공개화가 이루어질 것이며, 국민의 정당한 주권이 실현되리라 생각한다.
_陳航 · 베이징
고향에 진료소가 생겼으면
내 고향은 교통이 매우 불편한 산골짜기에 있다. 마을 전체 주민이 800여 명이지만 진료소(우리나라 보건소보다 더 규모가 작은 의료기관_편집자 주)는 단 한 곳도 없다. 마을 주민들의 건강을 책임지는 4명의 ‘의사’(이들은 집에 약국을 갖고 있다)가 있는데 그 중 두 명만 의료자격증을 갖고 있다. 의술이 어떻든 이들이 마을 주민을 위해 공헌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들의 약은 너무 비싸고, 큰 병은 치료하지 못할 뿐 아니라 제때에 발견하지도 못한다. 만약 이들이 환자에게 큰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아보라고 권했다면,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내가 열두 살 때 어머니가 병에 걸렸는데, 마을 의사가 치료를 못하자 다른 곳의 병원을 찾아가야 했다. 당시 어려웠던 가정형편 때문에 아버지는 어머니를 개인 진료소로 데려갈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의사가 약을 과용하여 어머니는 약물중독으로 돌아가시고 말았다. 어머니의 불행을 돌이켜볼 때 도대체 누구를 탓해야 할지 모르겠다. 정말 우리 고향 마을에 진료소 하나만 생겼으면 좋겠다.
_買二兵 · 허난 신앙공군제일항공학원
온 가족이 함께 모이는 그 날을 바라며
아버지가 외지로 일을 나가신지도 어느덧 3년이 흘렀다. 올해 아버지는 50세이다. 큰 홍수가 났던 그해에 난 대학에 합격했다. 온 가족들이 나를 둘러싸고 자랑스러운 합격통지서를 보았는데, 통지서에 적힌 등록금 액수에 다들 말문이 막혀버렸다. 그날 어머니는 몰래 우셨고, 아버지는 칠흙같이 어두운 제방 위에 오랫동안 쪼그리고 앉아 계셨다. 난 내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대학을 포기하고 남쪽에 가서 일을 찾기로 결심했다. 나 때문에 식구들이 고통을 받는 것은 원치 않았다. 그런데 이튿날 아침, 아버지는 가족들에게 “나 일하러 외지로 간다,”고 말씀하셨다. 나를 대학에 보내기 위해서였다. 아버지의 결심은 매우 단호했다. 그 후 3년 동안 아버지는 집에 돌아오지 ㅇ낳으셨다. 그리고 매달 꼬박꼬박 나와 어머니에게 돈을 부치셨다. 아버지의 편지엔 항상 “난 아주 잘 지내니 너희는 아무 걱정 말라”고 쓰여 있었다. 작년 남쪽에 일하러 갔던 작은 아버지가 집에 돌아오셔서 아버지가 그곳에서 매우 고생하신다고 했다. 조금이라도 돈을 더 벌기 위해 어떤 일도 가리지 않으시고, 조금이라도 더 저축하기 위해 절약하신다고 한다.
지금 난 공부와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면서 대학생활을 꾸려가고 있다. 설을 지내면 곧 졸업이다. 나의 희망은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오셔서 온 가족이 한 상에 둘러 앉아 설을 쇠는 것이다. 더 이상 그들이 나 때문에 고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_왕젠궈(王建國) · 샹탄대학
무료교육을 소망한다
현재 중국은 9년제 의무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 의무교육은 결코 구미의 의무교육과 같지 않다. 그들의 의무교육은 완전한 무상교육이어서, 학생에게 한 푼도 학비를 받지 않지만, 우리나라는 각종 명목의 비용을 받는다. 실제 지금 중국의 부모들은 자녀교육으로 인해 무거운 부담을 안고 있다. 내가 말하려는 것은 대학교육이 아니라 초등학교 교육이다. 대다수가 월급쟁이인 부모들에게 몇 백 위안(元)이 넘는 한 학기 등록금음 만만한 액수가 아니다. 한 국가의 미래는 교육에 달려 잇다. 낙후된 국가의 배후에는 낙후된 교육이 있다. 현재의 ‘희망공정(가난으로 진학을 못하는 어린이, 청소년들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장학사업_편집자 주)’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21세기에는 중국의 9년제 의무교육이 명실상부한 ‘9년제 무상교육’으로 바뀌길 간절히 바란다.
_何亞福· 광동성
냉혹한 범죄는 이제 그만
20세기 마지막 달에 일어난 일이다. 고향에서 차를 타고 청두(成都)로 돌아오고 있었는데, 8명의 강도들이 차에 올라탔다. 나는 그들에게 반항했지만 꼼짝없이 두들겨 맞았다. 운전사의 차장은 그들의 폭행을 말리거나 차를 멈추고 경찰에 신고하지도 않았다. 승객들 역시 꼼짝없이 지켜보며 떨고 있기만 했다. 차에서 내린 나는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고 피를 흘리며 파출소를 찾아가 신고했다. 정말 비참하기 그지없었다.
이렇게 냉혹한 범죄가 자행되는 사회에서 과연 우리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인륜과 도덕이 나날이 밑바닥으로 떨어지는 이런 사회 분위에서 고도의 물질문명이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 것인가? 21세기를 맞아 우리 사회에 사랑과 배려, 친절이 회복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국가는 정치·경제체제 개혁 가운데서도 국민의 도덕, 윤리 건설에 소홀히 하지 않기를 바란다.
_ 政權 · 쓰촨성 징옌현 농업기술실
의지 근로자에게 따뜻한 친절을
개혁개방은 연해지구 경제의 빠르고 놀라운 발전을 가져왔다. 그러나 그 배후에는 고향을 떠나 고단한 삶의 무게를 지고 일하는 400만 외지 근로자(고향을 떠나 도시 등에 와서 일하는 노동자들_편집자 주)의 수고가 존재한다. 그러나 과연 그들은 얼마나 공정한 대우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는가? 비록 몇 년 전부터 노동법이 시행되고 있으나 중국 동남부 일부 지역에서는 아직도 노동자들의 임금을 떼어벅거나 체불하는 일, 기본적인 생존권의 보장도 무시ㅏ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어떤 기업에서는 지출을 절약하고 근로자들게게 음식을 부실하게 제공하여, 근로자들이 식욕감퇴, 불면증 및 온갖 병에 시달리게 만들었다. 공장 안에서의 인격모독과 시달림도 이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요소이다. 중국 경제의 보이지 않는 디딤돌인 외지 근로자들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아쉽다.
_ 楊華 · 광동성 동완
호적제 폐지
호적제는 수많은 인재들을 한 지방 또는 지방 정부 관할에 구속받는 한 개인으로 묶어두고 잇다. 호적제가 폐지되면 지역 간에 자유로운 인재 교유가 가능하다. 농민의 가정에서 태어난 나는 어렸을 때부터 호적제도로 인한 피해를 받아왔다. 농촌 호적을 가진 이들에 대한 멸시와 각가지 불평등이 그것이다. 현직 교사인 나는 1년 전 농촌 중학에서 도시 중점중학으로 전근할 기회를 가졌지만, 도시 호적이 없다는 이유로 아직까지 비정규직 교사로 있다. 곧 소학교에 입학할 내 아들도 도시 호적이 없기 때문에, 나는 아이의 교육을 위해 일반인보다 서너 배의 대가를 치루어야만 한다. 도시 아이들 교육을 위해 나의 청춘과 재능을 바쳐왔으나, 정작 내 아이의 진로가 막막한 것을 생각할 때 참으로 난감하다. 돈이 문제가 아니다. 불공평이 사람의 자존심을 상하게 한다.
_華楨 · 장시성 난창시 제일중학교 교사
서부, 날 거절하지 마세요
2001년, 나는 대학을 졸업한다. 작년 11월부터 졸업 후 어느 곳에서 직장을 구할지 여러 자료를 찾으며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때 중앙에서 내려 온 ‘서부대개발’의 구호를 보고 가슴이 뛰었다. 나는 우선 고향인 윈난(云南)성르로 가고 싶었다. 그래서 윈난성의 몇 군데 기업에 전화를 걸었는데, 하나 같이 사람이 필요하지 않다고 거절했다. 내 희망과 열정은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11월 19일CCTV 뉴스에서, 상하이 등 발달한 연해지구의 기업들이 청화대와 불경대에 사무소를 차려놓고 인재들을 미리 확보해 간다고 보도하였다. 그런데 아들 기업 중 서부 지역 기업은 한 군데도 없었다. 기자가 몇 명의 대졸자를 인터뷰했는데, 그들 모두 서부에 가서 취업하기를 원하지만, 갈 만한 회사가 없어 실망이 크다고 말했다. 기자가 전화로 칭하로(靑海), 구이저우(貴州) 등 성 인사부처에 전화를 걸었는데, 어느 누구도 명확한 답변을 하는 이는 없엇다. 서부는 서부대개발의 결기에 끄덕도 않는 듯이 보인다. 심지어 서부로 진출하려는 인재들의 열정을 방해한다. 서부여, 제발 나를 거절하지 말아다오, 나와 같은 대학졸업생 모두를…
_쏭자성(宋加升) · 난징시 허하이대학
여유잇는 귀향을 꿈꾸며
나는 직업군인이다. 내 고향은 허난(河南)성 남쪽의 농촌인데, 춘제(春節: 음력설)에 한 번 집에 갔다 오려면 6일이나 걸릴 정도로 먼 곳이다. 더구나 몇 번이나 차를 갈아타기 때문에 너무 힘들고 피곤하다. 그러나 비행기를 타면 가는 길도 수월하고 고향에서 4일 정도 더 머물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비행기표 가격으로 고향에 한 번 다녀오며 3개월 치 월급이 있어야 한다. 새로운 세기에는 비행기표 가격이 좀 싸지거나, 설만이이라도 군인에게 50% 할인혜택을 해주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되어 편히 고향에 내려가 여유 있게 가족들과 지내고 싶은 것이 나의 간절한 소망이다.
_唐建華 · 쓰촨성 시창시
행복을 꾸려 갈 집 한 채의 소망
나와 여자 친구가 사귄지도 벌써 6년이나 되었다. 이젠 결혼해야 하는데, 우리에겐 집 한 채 마련할 돈이 없다. 가정을 이루는 꿈을 하루빨리 이루기 위해 우리는 함께 광저우에 와서 일자리를 찾게 되었다. 그녀는 시내의 한 공장에, 나는 거기서 20여 킬로미터나 떨어진 교외에 있는 공장에 취직이 되었다. 힘든 생활에서 나의 유일한 기쁨은 그녀를 만나는 것이다. 3주마다 한 번씩. 난 1시간 넘게 걸리는 길을 가기 위해 두 번 버스를 갈아타고 그녀의 공장을 찾아간다. 타이완 합자(合資)공장인 이 회사는 엄격하게 외부인의 접근을 금지하고 있다. 평일에는 오후 5시 30분이 넘어야 직원들의 출입을 허락하고, 밤 10시 30분 이전에 반드시 공장으로 돌아와야 한다. 그나마 항상 야근이 이기 때문에 우리는 아주 짧은 시간 마나 서로를 위로한다.
새로운 세기에 우리가 함게 행복을 꾸려갈 작은 집 하나 갖기를 소망해본다.
_무즈(木子) · 광동성 동완 Y제조공장
마이카 시대의 도래
우리 가족이 살고 있는 곳은 비교적 외딴 곳이라, 제일 가가운 버스 정류장이 1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다. 아들은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가기에 괜찮지만 아내의 출근이 큰 문제이다. 만약 자가용이 있다면 매우 편리할 것이다. 그래서 차를 사고 싶은 마음이 떠나지 않는데, 나 같은 월급쟁이가 차를 사려면 오랫동안 돈을 오마야 할 것이다. 발달한 서구에서는 자동차가 사치품이 아니라 생활필수품이다. 수입이 증가함에 따라 높은 생활수준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마이카 시대가 결코 먼 미래의 꿈만은 아니다. 멋진 자동차에 비추인 찬란한 햇빛과 함께 나의 21세기가 시작되기를 바란다.
_ 磁 · 광동성 농업과학원
출처 | 「南方週末」 2000년 12월 28일
번역 |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