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천년을 맞이하면서 한국교회는 조선족선교에 있어서 방향전환을 모색하도록 요청 받고 있다. 이제 지난 공과(功過)를 뒤로하고, 조선족선교에 있어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아내야 할 시점이다. 이를 위하여 새롭게 고려해야 할 변수들이 발생하였는데, 몇가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조선족과 한국인의 관계가 이전보다 상당히 소원해졌다. 인간관계가 긴밀하지 않은 상태에서 진정한 의사소통은 불가능하다. 조선족선교를 원만히 수행하기 위해서는 조선족과 한국인의 관계회복이 무엇보다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둘째, 조선족 공동체가 점진적으로 해체되고 있다. 요녕일보(遼寧日報) 조선문보 계광현 총편이 사설에서 “새 천년에도 200만 조선족의 력사는 존속될 수 있는가?”라는 제하(題下)의 공동체 해체관련 내용을 다룰 만큼, 조선족공동체의 존속여부는 이미 조선족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다. 조선족의 거주 형태는 ‘집거’(集居: 조선족이 집단적으로 마을을 이루어 사는 것)와 ‘잡거”(雜居: 조선족이 한족 등 다른 민족과 더불어 마을을 이루어 1/2이상을 차지하지 못하며 사는 것)에서 ‘산거’(散居: 조선족이 흩어져 사는 것)로 전환되어 가고 있다. 기왕의 거주지에는 호구만 있고 사람들은 도시로 이주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 조선족의 복음에 대한 수용도가 상당히 낮아지면서 조선족 교회가 쇠퇴하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으며, 전도에 주력하던 교회는 목양으로 그 역량을 전이시키고 있다.
조선족선교의 반성
냉정히 살펴보면 과거 한국 교회의 조선족선교는 공보다는 과가 크다는 점을 부정하기 어렵다. 감격과 뜨거운 사랑으로 조선족선교에 헌신하였으나, 본격 사역을 수행하면서 부정적인 면들이 부각되었다. 그 동안 한국교회가 조선족교회의 재건과 형성, 지도자 양성에 이모저모로 기여한 것은 분명하지만, 그 부작용 역시 심각한 수준으로 드러나게 된 것이다. 조선족교회가 토착교회로서 성장할 수 있는 자생력이 많이 약해졌고, 일부 조선족교회 사역자들은 종교사업가로, 성도들은 선교의 주역에서 주변인으로 머무는 경향이 농후해졌다. 조선족 교회는 경제요인에 의해 한국교회의 요구와 간섭을 거절할 수 없었던 약점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빌미로 일부 한국교회와 선교사들에 의해 조선족 선교의 주객이 전도된 것도 사실이다. 이에 따라 선교현장에서는 치유하기 어려운 많은 병리현상이 야기되었다.
조선족선교는 물론 중국선교, 북한선교에 있어서 한국 교회와 조선족 교회가 이상적인 시너지효과를 창출할 수 있으려면 한국 교회와 선교사들은 조선족선교의 주도권을 조선족 교회에로 다시 돌려주어야 하며, 조선족 교회와 눈높이를 맞추고 섬기되 주관하지 않는 동역자가 되어야 한다.
조선족선교의 목표
이제 한국교회는 조선족선교의 방향과 목표를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 한국 교회가 조선족선교에서 추구할 목표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첫째, 조선족교회가 회복되도록 해야 한다. 조선족 교회는 중국선교와 북한선교를 위한 고귀한 그릇으로서의 사명과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건강한 교회로 회복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한국교회가 조선족선교에서 가장 중점을 두어야 할 목표는 교회의 회복이다.
둘째, 조선족교회가 선교하는 교회로 성장하도록 섬겨야 한다. 조선족교회는 중국선교와 북한선교에 기여할 수 있는 잠재역량을 갖추고 있고, 실제로 중국선교와 북한선교, 탈북자 보호에 헌신한 교회도 있다. 조선족교회 전체가 중국선교와 북한선교에 부담을 갖도록 동기를 유발하고, 실제로 선교에 헌신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선교교육과 훈련을 실시해야 한다. 그리고 선교를 수행하는데 있어서의 필요들을 채워주는 통로역할을 해 주어야 한다. 필자는 조선족교회가 선교하는 교회로 성숙해갈 때 한국 교회의 조선족 선교가 성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셋째, 조선족교회가 조선족공동체의 중심이 되도록 도움을 주어야 한다. 현재 조선족 공동체에서의 교회는 중심이 되지 못하고 주변 존재에 불과, 교회가 공동체에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 공동체의 중심이 되지 못하고 주변인으로 머물고 만다면 진정한 토착교회는 요원하다. 조선족교회가 공동체의 중심이 되는 진정한 토착교회가 되도록 유도해야 한다.
넷째, 조선족공동체가 번영하도록 섬겨야 한다. 현재 조선족공동체는 이농현상과 해외, 특히 한국으로의 노무송출, 출산율 저하로 인한 인구의 감소, 경제적인 피폐, 한족과의 결혼, 조선족 문화의 와해 등으로 인해 존폐의 위기에 처해있다. 조선족 공동체가 와해된다면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을 잃게 된다. 조선족공동체가 길이 지속되고 번영을 누릴 수 있도록 우리가 도와야 한다.
다섯째, 조선족공동체와 교회를 이끌어갈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 이러한 목표는 한국 교회에 의해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조선족 인재들에 의해 성취되어야 할 것이다. 조선족교회를 이끌어갈 인재의 양성이 조선족선교의 성패를 좌우하게 될 것이다. 조선족공동체를 이끌어갈 올곧은 인재들을 조선족교회가 배출할 수 있도록 섬겨야 한다. 훌륭한 지도자가 세워질 때 조선족 교회와 공동체의 앞날에 소망이 있다.
목표의 실현 방안
이러한 목표를 위한 실현 방안은 다음과 같다.
첫째, 조선족 사역자의 영성과 지도력, 헌신도의 제고에 초점을 모아야 한다. 1) 사역자의 영성을 위해 그들이 하나님만을 의지하도록 해야 한다. 한국 교회에 의존하게 만드는 사역은 절제되거나 차단되어야 한다.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영성이 조선족 교회를 살릴 것이다. 2) 지도력의 기본인 정직성과 사역역량을 제고시켜야 한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정직한 사역자들이 인정받도록 배려하고, 사역능력의 제고를 위해 성경해석 능력, 목회역량 등을 갖추도록 지원해야 한다. 3) 목회자사역자와 평신도 사역자를 구별하여 세워야 한다. 평신도 사역자로 헌신할만한 사람을 전임 목회자로 세우는 우를 범하지 말자. 이를 위해서 신학교육과 훈련도 신중한 선별을 거쳐 진행시켜야 한다. 4) 조선족교회의 사역자와 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해 바울과 바나바와 같은 신앙과 영성, 인격과 지도력, 목회역량을 갖춘 선교사를 파송해야 한다. 성품이나 사역적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선교사는 재교육을 받게 하거나 조정이 필요하다.
둘째, 조선족 회로 조선족의 복음화에 진력하도록 지도해야 한다. 조선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조선족 교회가 가장 잘 할 수 있다. 조선족교회가 위치한 곳에서는 물론 조선족이 이주하여 거주하는 지역에도 사역자를 파송하거나, 그곳에 있는 성도들을 격려하여 조선족을 전도하도록 하여 교회를 세우게 해야 한다.
셋째, 조선족의 상처받은 마음이 치유되도록 하여야 한다. 많은 조선족들이 중국과 한국에서 동족인 한국인들로부터 경제적인 피해와 함께 육체적인 상처를 받았다. 생활의 터전을 잃었고, 심지어 목숨을 잃기도 하였으며 가정이 파탄되기도 하였다. 고국과 동족에 대한 기대가 컸던 만큼 상처와 배신감도 큰 것을 알아야 한다. 이제는 그들의 상처받음 마음이 위로 받고 재기할 수 있도록 한국교회가 도움을 주어야 한다. 일회성이거나 정치적인 접근이 아니라 지속적이고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참된 섬김이 상처받은 조선족 동포들의 마음을 치유할 수 있을 것이다.
넷째, 조선족공동체가 지속적으로 번영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조선족 공동체가 정체성을 유지하고 번영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의 배려가 필요하다. 조선족 교육, 특히 언어교육을 잘할 수 있도록 필요한 것들을 돕고 조선족 문화를 계승 발전시킬 수 있도록 원조하며, 조선족이 21세기의 중국 사회에서 적응하고 번영할 수 있도록 직업교육의 기회와 비용도 제공해 주어야 한다. 중국에서 사업을 하는 기독 실업인들은 헌신하는 자세로 조선족들을 채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다소 어려움이 따를 수 있으나, 조선족 기업인들을 사업상의 파트너로 인정하고 기회를 주어야 한다. 정부 차원에서도 재외동포법의 개정은 물론 출입국 문제에 융통성을 갖고, 조선족이 방한하여 어느 정도의 돈을 벌러 중국에서 생활기반을 닦을 수 있도록 영향력을 행사하여야 한다.
다섯째, 조선족 교회가 선교에 헌신하도록 동기를 유발하고 격려하며 필요를 채워주어야 한다. 이미 신장위구르자치구나 시짱자치구에까지 가서 한족과 소수민족선교에 헌신하는 조선족 사역자들이 세워지고 있다. 한국 교회는, 조선족 교회가 선교에 헌신하도록 이끌어주고, 선교훈련을 시키며, 파송하고 후원하는 일에 섬기는 자로서 참여하고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통로가 되어주어야 한다.
이제 한국 회는 조선족 선교에 있어서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노력해야 한다. 상처받은 조선족 동포들을 위로하여, 다시 동족으로서의 관계와 친밀함을 회복하도록 마음을 써야 한다. 한(韓)민족이면서 동시에 중국인으로서 안정감 있는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도록 배려하며, 경제적으로도 번영할 수 있도록 후원과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세속화되고 타락한 조선족 교회가 영성을 회복하고 건강한 교회가 되도록, 그리고 조선족 공동체의 중심으로서 조선족의 삶의 애환을 돌보고 섬기며 선교하는 교회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하도록 동역자로서 격려하고 섬겨야 할 것이다. 이러할 때 비로소 한국 교회의 조선족선교는 조선족선교의 참 주권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풍성함을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인병국 | 중국선교연구원 대표, 한동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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