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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4.20  통권 63호  필자 : 무명  |  조회 : 1692   프린트   이메일 
[내가 만난 하나님]
마약중독자가 빛을 만나기까지

징포족은 중국 윈난성(雲南省) 서남부와 미얀마의 접경지역에 모여 살고 있다. 20세기 초 선교사인 사라 다마우 나우(Saran Damau Naw)는 미얀마를 통해서 윈난성에 들어와 10만 명의 징포족에게 복음을 전했다. 그 당시의 복음 활동은 상당히 흥왕해서 많은 열매를 맺었다. 현재 징포족 가운데 있는 많은 성도들이 바로 이 글을 쓴 형제와 마찬가지로, 3대 이상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난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모든 사람들에게 독특하고 다양하게 임하시기 때문에,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모두 다 순조롭게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형제를 훗날 다시 주님께 돌아오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이 형제를 사용하시기를 기뻐하여 그의 고향에서 주님을 섬기는 전도자가 되게 하셨다.

3대째 기독교인, 그러나···
징포족인 나는, 3대째 예수를 믿는 명목상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다. 외할머니 말씀에 의하면 미얀마에서 온 한 전도자에 의해 조상들이 주님을 믿게 되었다고 한다. 예수님을 영접한 우리 집 어른들은 식사 기도를 한다거나 잠자기 전 기도하는 것을 배웠지만, 안타깝게도 나의 대에 이르러서는 이 모든 것이 사라졌다. 물론 지금까지도 어른들은 이러한 신앙생활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하지만 신앙적으로 아무런 양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설교가 무엇인지도 몰랐다. 어렸을 적 식사하기 전에 어머니는 항상 눈을 감고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기도하셨다. 이러한 침묵기도에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는 말도 없었고 단지 ‘아멘’이란 한마디로 끝을 내고 곧 밥을 먹었다. 

사실 어머니의 이런 행동도 웃어른들로부터 물려받은 것에 불과했다 외할머니가 한 행동을 따라서 한 것일 뿐, 사실 어머니도 신앙의 실제적인 뜻은 알지 못했던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나 역시 신앙에 대해 아무 지식 없는 것은 당연하였다. 게다가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은 온통 무신론 지식뿐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없다고 믿는 환경 속에서 자라나면서 하나님의 존재를 믿기란 더욱 어려웠다. 비록 내 심령 깊은 곳에는 하나님이 존재하고 있었지만, 생각과 이성으로는 하나님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심지어 어떤 때는 “하나님은 없다.”고 공공연히 선포하고 다닐 정도였다. 나는 중국의 수많은 사람들처럼 오랜 동안 전형적인 마르크스·레닌주의자로서 공산주의 사상과 이론에 현혹되어 있었다.

미얀마에서 다시 만난 예수님
1992년 나는 미얀마의 옥 가공 공장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그 때가 학교를 떠난 지 2년 째 되던 해였는데, 나는 당시 중국의 청년들과 마찬가지로 ‘현실우선, 물질제일’의 가치관 때문에 미얀마까지 왔다. 이곳에는 징포족들이 많이 있었는데, 그중 기독교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았다. 그러나 내가 이곳에 온 목적은 한 사람의 물질주의자로서 사업을 보다 발전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실리만을 추구하는 이곳에서 성실하고 정직하게 사는 크리스천들이 어리석게 여겨져 처음에는 그들을 비웃었다. 그러나 점차적으로 그들에게는 평안과 기쁨이 넘치는 생명이 있음을 볼 수 있었다. 반면 나를 돌이켜 보니 사업이 실패하거나 환경이 순조롭지 않을 때 술과 마약으로 스스로를 마취시키면서 아무 기쁨도 누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물질 위에다 쾌락을 건축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의 생명과 그들의 생명은 확연한 대조를 이루었다. 

내가 현실 지상주의 사회에서 무시당하고 아무런 관심도 받지 못하고 있을 때, 하나님은 그의 종을 보내어 나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사실 미얀마에 온 이후 친구와 함께 몇 번 교회에 간 적이 있지만 그것은 우리 동포의 대부분이 교회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따라간 것에 불과했다. 이런 나를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고 볼 수는 없었다. 
 

결코 잊지 못할 어느 날 밤의 일이다. 교회 목사님은 내게,

“만약 당신이 오늘밤 죽는다면 어디로 갈 것 같습니까?”

라고 질문했다. 그때는 모른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이런 질문을 저에게 하는 것은 지나치게 이른 것 아닙니까?”

라고 묻고 싶었다. 죽음이라는 말은 나이든 노인들의 전유물이지 않는가? 그는 다시 물었다. 

 

  

출처 | 展望中華, 4, 福音證主協會(CCL)

번역 | 곽숙 · 편집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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