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를 먼저 저에게 해주세요”
“왕 선생님, 이번에 하실 로마서 강해를 먼저 저에게 해 주세요.”차 안의 고요함을 깨고 젠 자매는 나에게 당당한 목소리로 간청을 했다. 주위를  의식한 나는 난감함을 표시하였으나, 배움의 열정을 가진 그녀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전형적인 중국 농촌의 아낙. 이것이 젠 자매에 대한 나의 첫 인상이었다. 145㎝ 정도의 키에 투박한 얼굴 모양과 거친 피부, 그리고 강한 지역 억양의 목소리를 가진 40대 후반의 여성이었다. 그녀는 삼자 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였으며, 교회에서 베테랑 평신도 교역자로서 신도 목양을 담당하며 한 달이면 19번 이상의 설교를 한다고 하였다. 그녀는 성경과 교회 사역을 보다 체계적으로 배우기 위해 삼자 신학교에서 공부를 하였고, 신학교 재학 중에도 남다른 학구열에 불타 있었다. 더 많이 공부를 하기 위해 하루 4시간 이상 잠을 자본 일이 없으며, 심지어 저녁 취침을 위해 소등(消燈)한 이후에도 책을 들고 불이 밝혀있는 학교 교문 앞에서 공부를 하였다고 한다. 내가 그의 학구열에 탄복하자 그녀는 수줍은 듯이 “세상 일이나 영적인 일이나 했다하면 목숨을 아끼지 않습니다(屬世的屬靈的, 幹起來不要命)”라고 대답하였다. 실제로 우리가 차에 있는 네 시간 동안 나와 말을 하는 잠깐의 시간을 제외하고는 가방에서 꺼낸 설교학 책을 계속 읽고 있었다.

성경 강해 방법
이번 사역은 북부 지역 삼자교회의 젊은 교회 지도자들에 대한 훈련이었다. 일반적으로 가정교회 지도자 훈련을 해왔던 나에게 이번 사역은 조금은 거북스러워 망설여졌지만, 나를 청한 이와 그 지역의 삼자교회 지도자들이 주님께 참으로 헌신된 복음적인 사람들이었기에 조심스러웠으나 응하였다. 가정교회에서 지도자 훈련할 때와 같이 이번에도 나의 신분은 산둥(山東) 출신의 자유전도자 왕 선생이었다.

내가 준비한 것은 로마서와 데살로니가전서 강해였다. 비록 그들이 신학교에서 로마서에 관한 수업을 들은 바 있고, 그들 자신도 교회에서 신도들에게 로마서를 강해한 바 있으나, 혹시나 새로운 은혜로운 말씀을 전하지나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모두들 진지하게 강의에 임하였다. 그들의 이런 상황을 잘 알기에 나의 로마서 강해는 더욱 많은 기도와 준비가 따랐다. 시간 관계상 나는 로마서를 5∼8장만 하기로 하였다. 데살로니가전서를 강해하는 데 있어서도 바울의 목자적 입장과 목양적 차원을 통해 말씀을  풀어 나갔으며, 현실 목회와의 적용점을 찾아가면서 말씀을 전하였다. 로마서와 데살로니가전서 말씀 강해를 하면서 나는 말씀 전체를 관통하는 주 메세지와 해당 단락의 메세지를 밝혀 내면서 각 절의 말씀을 한 절 한 절씩 해석해 나갔다. 이런 방식의 가르침은 말씀의 은혜를 끼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들이 다시 교회로 돌아가 신도들에게 같은 말씀을 전할 때 유용한 자료가 될 수 있다. 그와 더불어 성경을 보는 다양한 시각과 성경 해석의 방법을 강해와 동시에 강의하곤 하였다.

강의는 하루에 10시간씩 5일 동안 지속되었고 강사는 나 혼자였다. 강행군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매일 새 힘을 공급해주셨다. 젠 자매는 매일 오전 강의와 저녁 강의가 끝나면 나에게 강의 노트를 빌려 달라고 했으며, 점심 휴식시간에도 쉬지 않고 계속 그녀의 필기 노트와 나의 강의 노트를 대조하면서 필기를 보충하였다. 힘들지 않느냐고 물으면, “어렵게 얻은 배움의 기회에 열심히 배워야지요. 쉬는 것은 나중에 해도 되요.”라고 하였다. 5일 내내 젠 자매는 점심시간에 한 번도 쉬지 않았고, 저녁 때도 12시가 넘게 필기에 여념이 없거나 성경을 읽었다.

몰래 믿은 예수를 열심히 전함
젠 자매가 예수를 영접한 것은 문화혁명 때였다. 이웃에 살고 있는 한 아주머니가 몰래 그녀에게 전도하였는데, 예수는 그녀의 공허한 심령에 큰 위로가 되었다. 무엇보다도 그녀는 누군가에게 기도를 할 수 있는 것이 좋았다고 했다. 그때 나이 22세였다. 하나님은 그 이듬해 그녀에게 복음전도의 사명을 주셨으며, 사명을 받은 그녀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고 고백하였다. 문화대혁명 기간 그녀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신앙생활과 전도를 하였으며, 특히 그때 신자들 사이에 몰래 돌려보는 성경을 읽는 차례가 자기에게 오면 잠을 자지 않고 읽었고 반납하는 순간까지도 읽었다고 하였다.

 개혁개방 이후 젠 자매가 살고 있는 지역에도 삼자교회가 생겨 그녀는 자연스럽게 예배에 참석하였고, 교회 일에 열심을 내었다. 교역자가 부족한 상황에서 그녀는 가끔씩 설교도 하게 되었다. 그 지역에서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자 많은 가정에 집회처소를 만들었으며, 그후 그녀는 교회 교역자를 도와 평신도 사역자로서 가정처소에서 본격적으로 설교를 하게 되었다. 이런 와중에 그녀에게 있어 첫 번째 시련은 남편의 핍박이었다.

젠 자매의 남편은 조용한 성품을 지녔으나 젠 자매가 복음전도와 교회 일로 매일  늦게 집에 돌아오자 인내의 한계를 보이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몇 마디 푸념하는 정도였는데 점차 심한 욕으로 발전하다가 결국에는 구타를 하게 되었다. 젠 자매가 남편이 신고 있던 신발로 매를 맞을 때 그녀의 마음은 이상하게 평온하였다고 했으며,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니 자신을 하나님께 맡겼다고 하였다. 그 일이 있은 후 그녀는 가정생활에 보다 충실해야겠다는 다짐을 하였다.

원래 젠 자매는 농촌의 아낙으로 논, 밭일을 하면서 평소에는 양계장에서 달걀을 가져다가 동네 주변과 읍내까지 가서 달걀을 직접 판매하였다. 이전에 그녀는 자전거 큰 광주리에 달걀을 싣고 돌아다니면서 팔았고, 달걀을 파는 동시에 전도와 심방을 하였다. 그러나 남편에게 매를 맞은 후부터는 귀가 시간을 앞당기기로 결심하였다. 최소한 저녁식사는 가족과 함께 하겠다는 결심이었다. 달걀을 빠른 시간 내에 팔아서 더 많은 시간을 전도와 심방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 간절하게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은 진정 그녀의 기도를 들어 주셨다. 기도를 한  후 그녀는 달걀이 이전보다 빨리 팔리는 것을 경험하였다. 한 번은 3백 근(斤)의 달걀(약 2천4백 개)을 싣고 팔러 나섰는데, 하나님은 한 시간도 되기 전에 길에서 만난 10명의 손님을 통해 전부 팔리게 하셨다. 결국 그녀는 오전은 물론이거니와 오후 내내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돌면서 전도와 심방을 하였고, 그날은 평소보다 더 많은 이가 그녀의 전도로 새신자가 되었다고 흥분된 어조로 나에게 간증하였다.

그녀의 간증을 들으면서 하나님께서 이 농촌 아낙을 통해 놀랍게 역사하고 있으며, 그녀를 진정으로 귀하게 쓰고 있음을  느꼈다. 신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그녀가 많은 사역을 한 것이 놀라와 나는 신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어떻게 성경공부를 하였고, 어떤 훈련을 받았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녀는 그녀에게 영향을 끼친 가장 중요한 책은 띵량차이(丁良才)가 쓴 좥경훈류찬(經訓類纂)좦이라는 조직신학 책이라고 했다. 240쪽이나 되는 이 어려운 조직신학 책을 보자마자 하루만에 독파하였고, 이 책의 구입이 불가능하자 그녀는 손으로 책의 요점을 노트에 필기하기 시작하였다. 이 과정을 통해 그녀는 기독교 교리에 대해 체계를 잡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책에서 인용한 관련성구를 하나 하나씩 찾아보는 것으로 인해 성경을 관통하는 식견도 갖게 되었다고 하였다. 참으로 놀라왔다.

그러나 그녀는 가장 좋은 교과서는 성경 자체라고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성경을 수십 차례 통독하였고 외우고 있는 성구가 매우 많았다. 내가 지도자 훈련을 하는 동안 젠 자매는 누구보다 성경을 빨리 찾았으며, 성경 이야기를 언급할 때 언제나 즉각 대답하였다. 그녀의 이런 모습을 볼 때면  존경심이 저절로 솟아났다.
 

질문 많고 말씀을 사모하는 젠 자매
지도자 훈련을 하면서도 젠 자매는 항상 질문이 많았고, 특히 목회에 있어 실제적으로 직면하는 문제와 신도들의 신앙적 질문을 하곤 하였다. 신도들이 열심을 내지 않는데 어떻게 해야할지, 이혼을 하려는 신도가 있는데 어떻게 상담해야 하는지, 상급(上級) 종교사무처 간부가 교회 시찰을 할 때, 지역의 종교사무국 관리들이 교회에서 준비하는 식사에 술과 담배를 준비해 놓으라는 주문을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세상 향락에  빠진 교회의 장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등등이었다. 젠 자매는 또 내가 데살로니가전서를 강해하면서 제4장과 5장의 종말론에 관한 내용을 다룰 때도 서슴치 않고,“왕 선생님은 천년왕국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갖고 있습니까? ”라고 질문하였다. 나는 중국 교회의 교리논쟁 중에 천년왕국설 때문에 서로 이단시하고 자기를 정통이라고 주장하는 풍토를 잘 알고 있기에 단지 천년왕국설에 대한 각 설의 견해와 타당성만 제시하였고, 내가 갖고 있는 견해는 그들에게 밝히지  않았다. 그렇게 되면 무익한 교리논쟁이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인간론 부분에 서 그녀는 영혼과 육체의 ‘이분법’을 주장하기에 영, 혼, 육의 ‘삼분법’을 주장하는 것을 격렬하게  비판하기도 하였다.

쉬는 시간에 나는 젠 자매에게 농촌의 교역자로서 가장 어려운 점이 무엇이냐고 물어보았다. 그녀는 서슴치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확실하고 능력있게 전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녀는 자주 자기의 지식수준이 낮기 때문에 말씀 이해의 한계를 깊이 느낀다고 하였다. 또 그녀는 교역자는 마치 의사와 같아서, 약 처방을 잘못하면 사람의 건강을 해치듯이 교역자가 말씀을 잘못 전하면 신도의 영혼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그녀는 말씀을 배울 수 있는 기회만 있다면 불원천리(不遠千里)하고 달려와 공부한다고 하였다. 사실 이번 지도자 훈련 때문에 그녀는 그녀의 바쁜 목양일을 잠시 놓아두고 장시간 차를 타고 온 것이다.
 

“이것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훈련을 마치자 나는 돌아가는 방향이 같아서 또다시 젠 자매와 동행을 하게 되었다. 역에 일찍 도착하여 차 시간이 남았기에 나는 역 앞 시장골목에서 이발을 하기로 했다. 내가 머리를 감는 동안 젠 자매는 재빨리 이발료 5원을 이발사에게 주었다. 시장을 나오면서 그녀는 바나나를 사야겠다고 했는데 과일 상점에서 거금 40위안(元)을 내고 비싼 바나나를 샀다. 그런데 그것을 나에게 주며 사모와 아이에게 갖다 주라고 했다. 내가 받지 않겠다고 하자 “왕 선생님, 왜 이렇게 고집을 부리세요? 제발 받아주세요. 이것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라고 하였다.
 
받으면서도 나는 마음이 부담스러웠다. 40위안은 그녀에게 있어 일주일의 반찬값이었다. 역으로 향하면서 그녀는 또 나의 가방을 들어주겠다고 하였다. 가벼우니까 혼자 들어도 된다고 하자, “선생님은 강의하느라 수고를 너무 많이 하셨으니까 제가 들어드리겠습니다.” 라고 했다. 나는 그럴 수 없다고 왕씨 고집을 부려 사양했다. 결국 우리는 각각 손잡이 하나씩을 드는 것에 합의를 보았다. 젠 자매의 고집은 내가 꺾지 못하는 왕중왕 고집이었다.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왕 선생님 우리 식사를 하고 열차를 타죠.”라고 했다. 나는 떠나기 전 훈련장소의 주인이 준 참깨 빵이 있으니 캉스푸(康師傅) 컵라면이나 두 개 사서 열차에서 먹자고 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안된다고 하면서 나를 끌고 식당으로 데리고 가려고 하였다. 실랑이를 벌이다가 이번에는 나의 의견대로 역 바로 옆 노상에서 죽을 파는 곳에서 죽을 먹기로 하였다. 왕씨 고집의 승리였다. 내가 맛있게 죽을 먹자 젠 자매는 “선생님 그러면 안되는데요. 밥과 요리로 식사를 하셔야지요.”라고 하였다. 선생을 대접하려는 젠 자매의 마음이었다.

우리가 타려는 열차는 한 시간 늦게 저녁 7시 10분에 출발하였다. 빈 좌석이 많은 열차에서 우리는 서로 얼굴을 맞대고 또 다시 대화를 하였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때때로 “왕 선생님 피곤하시니까 눈 좀 붙이세요.”라고 권했다. 이런 저런 대화 끝에 그는 성경을 많이 알았으면 좋겠다고 하였고, 내 눈치를 살피다가 그녀는 대뜸 이렇게 말을 하였다.

“왕 선생님, 이번에 로마서를 5장에서 8장까지만 강해하셨는데, 저에게 1장에서 4장, 그리고 9장에서 16장까지 강해를 해주실래요? ”

왕쓰웨 목사 | 본지 편집위원 · 중국복음선교회 중국선교사훈련원 교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