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중국의 도시화 개황 Ⅱ. 도시 속의 농촌교회 개황 Ⅲ. 도시화가 빚어가는 농촌교회 Ⅳ. 도시화에 대한 농촌교회의 대응 Ⅴ. 전망과 토론
개혁개방 이후 중국교회는 농촌 지역에서 먼저 부흥하기 시작하여 도시의 부흥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리하여 중국교회 대부분의 연구는 농촌에 분포된 가정교회(초기에는 지하교회라고 부르기도 함)에 집중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도시화(Urbanization)’가 중국 사회의 중요한 시대적 변천이라고 할 때, 그에 따른 중국교회의 구도적인 변화도 마땅히 깊이 있게 연구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 또한 중국선교의 시대적 전략을 세우는 데 매우 중요한 작업이 될 것입니다.
이 글에서는 중국 도시 속의 농촌교회에 관한 연구를 통해 도시화 추세에 대응하는 중국교회의 변화를 살펴보고, 아울러 도시 속 농촌교회의 기원과 운영 형태 그리고 중국 도시화의 구체적인 특징과 도시화가 중국교회에 던진 충격과 도전 그리고 도시 속 농촌교회의 대응 방향에 대해 조망해 보고자 합니다.
우선 이 글에서 사용될 ‘농촌교회’의 개념에 대해 정의를 내리고 시작합니다. ‘도시 속의 농촌교회’란 삶의 영위를 위해 도시로 유입된 농촌 지역 기독교인들이 구성한 교회를 지칭합니다. 혹자는 ‘농민공교회(農民工敎會)’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머리가 되는 교회는 사회계층이나 직업의 구분이 있어서는 안 되지만, 이 글에서 사용하는 ‘도시 속의 농촌교회’는 사회학적 접근으로 임의 지칭한 교회 유형임을 양해 바랍니다. 그리고 이 글에서 도시 속의 농촌교회를 ‘농촌교회’로 약칭하겠습니다.
Ⅰ. 중국의 도시화 개황
1. 도시화 추세 도시화란 도시의 경제가 급속하게 번영하고 행정관리와 정치조직이 강화되며, 교통망의 밀집과 발달로 인구가 끊임없이 도시로 유입되는 과정을 말합니다. 도시화는 경제, 사회, 인구의 변화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삶과 문화 방식의 변화이기도 합니다. 도시화의 구체적인 양상은 농촌 인구가 도시로 대량 유입되는 것과 도시 면적이 끊임없이 확장되어 농촌 지역을 잠식하는 것 그리고 도시 문화와 생활 방식이 전통적 농촌 삶의 체계를 치환하는 것입니다.
당대의 중국 도시화는 중국만의 특별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첫째, 도시와 농촌의 이원화한 호적제도입니다. 1949년 중국공산당이 집권한 이후 곧바로 엄격한 호적제도를 실행하여 농촌과 도시를 제도적인 규제를 통해 격리하였습니다. 최근 30여 년 동안 많은 분야의 개혁개방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호적제도만은 여전히 근본적인 변화가 없습니다. 이는 인구의 자유로운 유동을 제한하는 제도적 요소로 남아 있습니다.
둘째, 삶을 영위하기 위해 도시로 들어온 농촌 인구는 공식적인 시민권이 없어서 국가 제도권(정치, 교육, 복지 등) 밖에서 방치되어 결국 도시 속의 ‘유랑 시민(속칭 ‘氓流(멍류)’라고 부름)’이 됩니다.
셋째, 도시로 일자리를 찾아 유입된 농촌 인구는 도시 생활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이 많기에 도시에 거주하고 있지만 고향과 끈끈한 연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도시에 적응하지 못하면 결국 농촌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2. 베이징의 도시화 사례 중국의 도시화 상황은 베이징(北京)을 대표적인 예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베이징의 도시화는 다음의 몇 가지 특징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첫째, 도시 인구의 급속한 증가입니다. 도시화 과정에서 인구의 증가는 주로 다른 성(省)에서 오는 이주민인데, 그중에서 농촌에서 온 인구가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2010년 중국 제6차 인구조사의 수치를 보면, 2010년 말 베이징의 상주(常駐)인구는 1961.2만 명으로 10년 전인 2000년보다 604.3만 명이 증가하였습니다. 그리고 베이징의 ‘농민공(農民工)’은 약 500만 명으로써 전체 베이징 인구의 25%를 차지합니다. 농민공은 주로 전국 각지에서 유입되지만 가장 많은 지역은 허베이(河北), 허난(河南), 산둥(山東) 그리고 안후이(安徽) 네 개 성입니다.
둘째, 도시 구역 면적이 지속적으로 확장됩니다. 1981년 베이징의 도시 구역이 346㎢였는데 해마다 확장되어 2005년에는 1,209㎢ 그리고 현재는 1,400㎢까지 확장되었습니다. 도시화의 추진에 따라 주변의 농촌 지역이 재개발되면서 도시 구역으로 편입되었습니다.
셋째, 문화와 생활 방식이 다양성을 보입니다. 대량의 농촌 인구가 베이징에 유입되면서 서로 다른 문화가 베이징의 문화와 생활 방식에 따라 새롭게 빚어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베이징에서 생활하지만 각자 자기들의 지연과 혈연을 유대로 각자의 공동체를 이루어갑니다. 예를 들어 ‘허난촌(河南村)’, ‘안후이촌(安徽村)’, ‘저장촌(浙江村)’과 ‘신장촌(新疆村)’ 등 내부적으로는 여전히 고향의 문화와 생활 방식을 유지하는 공동체들입니다. 그런데 베이징의 도시 재개발로 말미암아 각 성의 지연, 혈연 공동체는 충격을 받아 와해하는 추세입니다.
넷째, 호적제도, 시민권으로 도시와 농촌 사이의 ‘주변인(邊緣人, Marginal Man)’으로 됩니다. 도시 인구의 통제를 목적으로 하는 호구제도는 도시에 유입된 농촌 사람들이 도시 호적을 취득할 수 없도록 제한하기 때문에 농촌 사람들은 도시에서 시민권이 없어 기본적인 시민의 권리와 사회적 권리를 받을 수 없습니다. 그리하여 농촌 사람들은 도시 속의 ‘주변인’, 즉 소외층이 됩니다. 이러한 주변인의 신분은 경제적인 지위에서뿐만 아니라 문화적인 차원에서도 독특한 위치에 처하게 됩니다. 결국 도시의 현대적 사회에도 스며들기 힘들 뿐만 아니라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면 또한 농촌 생활에도 적응하지 못합니다.
Ⅱ. 도시 속의 농촌교회 개황
1. 농촌교회 형성의 배경 베이징 농촌교회는 허난과 안후이 지역의 농촌 기독교인들이 중심이 되어 11990년대에 시작되었습니다. 도시화 과정에서 농촌 인구의 대량 유입이 직접적인 배경이 됩니다. 그리고 농촌 기독교의 부흥, 도시 ‘종교시장(Religious markets, 종교사회학 용어를 그대로 차용)’의 분화, 도시와 농촌의 이원화 구조의 붕괴, 자유시장경제의 구축 등 사회구조적 변화는 농촌교회의 부흥에 사회적 기회와 자원을 제공합니다.
2. 농촌교회의 시작 도시화 과정에서 대량의 농촌 인구가 도시로 밀려들면서 농촌의 기독교인들도 그 유입에 포함됩니다. 낯선 도시에 들어온 농촌 기독교인들은 신앙생활을 위하여 도시의 기성 교회(주로 도시의 삼자교회)에 가입하기도 하지만, 또한 자발적으로 기도와 교제의 모임들을 조직합니다. 이렇게 농촌교회 리더들의 참여와 조직 그리고 고향교회의 지원을 받아서 기도처나 예배처 등의 형태로 농촌교회가 시작됩니다.
3. 농촌교회의 성장 첫째, 성도의 숫자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지속적으로 진행되는 도시화는 끊임없이 농촌 기독교인들을 포함한 농촌 인구를 도시로 흡수하여 도시 속 농촌교회의 신입 구성원들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점은 새로운 농촌교회와 그 구성원의 빠른 증가는 도시선교를 통한 결과가 아니라, 도시 속에 흩어져 있던 농촌 기독교인들 취합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둘째, 농촌교회 조직의 핵분열과 복제가 빈번합니다. 도시화 과정은 대규모의 재개발을 수반합니다. 이러한 재개발은 농촌교회의 핵분열과 복제를 가속하는 객관적인 요인이 됩니다. 재개발로 기존의 거주지역이 철거되고 교회 구성원들이 분산되면, 교회는 구성원들의 새로운 거주지역에 따라 지역별 그룹으로 나눠지게 되고, 그 소그룹이 성장하면서 새로운 교회의 조직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이와 같이 도시의 재개발이 농촌교회의 부흥 발전에 새로운 기회도 되지만, 또한 교회가 충격받고 구성원들이 유실되는 부정적인 요소가 되기도 합니다.
Ⅲ. 도시화가 빚어가는 농촌교회
도시화는 일종의 경제와 사회 그리고 문화 영역에서의 변화입니다. 이 변화는 도시 속에서 농촌교회의 발전을 빚어냅니다. 그 두드러진 표현은 다음의 몇 가지 차원에서 나타납니다.
1. 농촌교회의 자원 첫째, 유동적인 활동 장소입니다. 도시의 기존 삼자교회들은 고정적이고 공개적인 장소를 사용하고 있으며, 신흥도시교회(新興城市敎會, 도시인들 중심의 교회를 칭함)는 오피스텔을 장기 임대 혹은 매입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에 비해 농촌교회들은 도심 속의 오래되고 낡은 지역이거나 도시 변두리의 단층집, 창고 혹은 폐업한 공장 건물들을 집회 장소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는 임대 비용이 저렴한 것도 있고 농민공들이 주로 일하는 곳과 근접한 이유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장소들은 또 수시로 철거되고 재개발될 위험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집회 장소의 잦은 변경은 농촌교회가 유기적 신앙 공동체를 구축하는 것을 방해하게 됩니다.
둘째, 불안정한 교회의 구성원입니다. 농촌교회의 유동적인 장소 이동은 기존의 구성원들이 유실되기도 하지만 또한 새롭게 유입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농민공들의 불안정한 취업 상태 역시 교회 구성원들의 유동성을 증대시킵니다. 이 때문에 농촌교회 성도들의 교회 참여도가 낮고 교회의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목회를 저애하게 됩니다.
2. 농촌교회 제도와 치리 방식 중국 농촌 기독교는 조직화와 제도화 차원에서 볼 때 그 수준이 낮기에 일종의 철저한 ‘회복주의(Restorationism, 초대교회의 회복)’라고 평가하기도 합니다.1) 도시 속의 농촌교회는 본래의 농촌 기독교의 운영 방식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습니다. 다수의 농촌교회는 문서화한 제도와 규정이 없이 주로 관례와 경험과 목회자의 ‘카리스마적 권위(charismatic authority)’에 의존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의존은 도시화와 도시 생활의 충격과 도전을 받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교회 규모의 확장, 발달한 도시 사회의 조직과 제도의 영향 그리고 교회 젊은이들의 교회 권위에 대한 도전입니다, 이 세 가지 요소는 모두 도시화와 밀접한 연관성이 있으며, 상호 영향을 증대시키면서 교회 치리 제도의 변화를 촉진합니다.
3. 농촌교회의 신앙 환경 도시 속 농촌교회의 신학적 뿌리는 농촌 기독교에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사회 공공적인 이슈를 언급하지 않고 개인적 영혼 구원과 초대교회적 신유를 강조하는 근본주의와 은사주의가 농촌교회의 주된 신학적 기반이었습니다. 근본주의와 은사주의의 영향으로 농촌교회 성도들은 ‘개인 종교(Personal religion)’의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하나님과 개인 간의 관계는 중요시하지만 교회와 사회의 관계는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농후하였습니다.
그런데 도시 생활에서 농촌교회 구성원들은 현대 사회의 문화와 생활 방식의 도전을 받게 됩니다. 탈콧 파슨스(Talcott Parsons)은 현대 사회는 일종의 세속 문화이기에 은사주의 신앙 형태는 세속적인 도시에서 설 자리가 점점 작아진다고 분석하기도 합니다.2) 또한 도시 환경에서 농촌교회 성도들은 예전에 농촌에서 접하지 못했던 신앙 서적들과 인터넷 자원들을 통해 이성적이고 지식적인 신앙 형태들을 습득하게 됩니다. 이뿐만 아니라 도시 생활 속에서 발달한 정보 매체와 네트워크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졌으며, 사회 문제에 관한 관심도 높아지게 됩니다.
Ⅳ. 도시화에 대한 농촌교회의 대응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중국의 도시화는 여러 방면에서 농촌교회에 도전을 줍니다. 중국교회의 지도자들은 이러한 도전을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지, 농촌교회의 변혁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고민해야 합니다. 이는 결국 중국 농촌교회가 어떻게 대응하는가를 중요하게 살펴봐야 할 부분입니다.
1. 농촌교회의 구조적 변화 도시화로 인하여 재개발이 빈번히 일어나면서 도시 ‘주변인’인 농민공들이 유동과 유실이 심각합니다. 이는 곧바로 농촌교회의 소멸과 직결됩니다. 따라서 농촌교회 지도자들은 교회의 변화, 특히 구조적 안정성이 높은 교회로 변화를 추구하며, 농민공 성도들을 포함하는 도시의 다양한 구성원을 품는 현지교회(local church)로 방향을 바꾸는 시도를 해야 합니다. 이러한 시도는 어떤 패러다임으로 진행되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패러다임은, ‘방갈로 교회(bungalow chapel)’에서 ‘아파트 교회’로 전환입니다. 변두리 지역이 갖고 있는 재개발의 불안정성을 극복하고 아파트 단지에 진입하여 예배 장소의 안정성을 확보할 뿐만 아니라 도시인들을 향한 전도를 통해 현지교회로 탈바꿈하려는 적극적인 시도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들은 대부분 실패합니다. 그 이유는, 첫째는 이웃 주민들의 신고 때문이고, 둘째는 농민공들이 아파트 문화와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패러다임은, ‘작은 그룹’을 ‘작은 교회’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전에는 지역별로 소그룹을 결성하여 예배와 집회는 본 교회로 모였지만, 이제 흩어진 영역이 넓어짐에 따라 소그룹 모임을 소규모 교회로 독립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에 따른 문제는 준비된 목회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원이나 재정이 분산됨에 따라 결국 본 교회도, 작은 교회도 모두 생명력을 잃게 됩니다. 세 번째 패러다임은, 자체적으로 교회 건물을 매입하거나 건축하는 것입니다. 건축용지를 매입하고 교회의 필요에 따른 건축설계를 하여 ‘모교회(母敎會)’를 건축합니다. 그리고 ‘모교회’는 예배와 집회 장소로 사용할 뿐만 아니라 ‘지교회(支敎會)’를 위한 신학 및 행정 교육의 센터로 구축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금하여 건축하는 일은 많은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첫째로, 극도로 긴장된 ‘정교관계(政敎關係)’, 둘째로, 천정부지로 치솟는 도시 부동산 가격, 셋째는 교회의 법인 자격의 부재입니다.
2. 농촌교회 치리의 제도화 치리의 제도화는 중국 농촌교회의 미래 발전에 매우 중요한 요소이며 교회의 연속성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농촌교회의 제도화가 미흡하거나 수준이 높지 않은 상황은 교회 행정의 불투명성으로 비치게 되어 목회자의 권위와 성품에 대해 의심하게 만듭니다. 농촌에서 교회는 끈끈한 혈연과 지연으로 결성되어 있어서 목회자 개인 리더십으로 치리가 가능했을지 몰라도 이제 도시로 들어온 농촌교회는 더 이상 제도적 행정 체계가 없이는 치리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3. 농촌교회 정체성의 변화 문화적 연속성으로 볼 때, 중국 농촌교회는 대부분 농촌 문화를 그대로 도시까지 ‘이식(移植)’해 온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적인 도시로 진입하여 농촌교회는 신앙적 지도, 행정적 치리, 선교적 방법 등 모든 분야에서 도시 적응을 위한 원만한 절충이 필요합니다. 결국 전통과 권위로 지탱되었던 농촌교회의 정체성은 이제 도시와 농촌 사이의 어느 중간 지점에서 새롭게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특히 은사주의 신앙이 도시 생활에 적응하면서 이성적 사고방식의 영향을 받는 젊은이들의 비판을 받으면서 농촌교회의 정체성은 변화하고 있습니다.
Ⅴ. 전망과 토론
이 글을 통해 우리는 중국의 도시화 과정에서 형성되고 변화하는 도시 속 농촌교회의 상황을 살펴보았다. 또 그 속에서 도시화와 농촌교회의 상관관계는 일방적인 주도관계가 아니라, 양자 간에 상호 자극과 추동(推動)의 관계임이 밝혀졌습니다. 다시 말하면 도시화는 도시 속의 농촌교회가 부흥 성장하도록 추동하였고 농촌교회의 자원과 제도와 문화를 빚어냈지만, 농촌교회는 도시화 추세 속에서 완전히 수동적인 위치에만 있은 것이 아닙니다. 농촌교회 지도자들은 도시 문화를 배우면서 새로운 사회·문화 환경에서 능동적으로 교회를 개혁하고 교회와 사회 간의 대치 요소들을 조정하였고, 교회의 변화를 통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도시 현대 생활에 스며들어 갑니다. 그리하여 중국의 도시화 과정은 또한 농촌교회들의 신앙 공동체적 몸부림에서 시민 공동체의 구성으로 합류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탈콧 파슨스는 전통사회가 현대 사회로 전향해 가는 과정을 분석하면서 배타주의(Particularism)와 보편주의(Universalism)를 하나의 특징으로 지적하였습니다.3) 이로 비추어볼 때 중국교회는 보편성보다 배타성에 더욱 기울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농촌교회의 생성과 유지는 혈연과 지연이라고 하는 사회 네트워크에 더욱 크게 의존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교회공동체가 현대적이고 공공적인 공동체로 발전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을지 질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때문에 필자는 농촌교회의 변화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점을 지적하여 더욱 심도 있는 토론의 디딤돌을 제공하고자 합니다.
첫째, 농촌교회 변화의 추진력은 무엇일까 하는 점입니다. 우선, 현대적 시대 의식과 개혁 사상을 가진 교회 지도자들이 농촌교회 변화의 추진력이 될 것입니다. 이런 지도자들은 그룹을 형성할 것이며 중국교회 안에서도 공감대를 이룰 것입니다. 그다음, 농촌교회 구성원들은 점차 경제적 수준과 사회적 지위의 분화(分化)를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그중에서 일정한 경제력을 가지고 있는 구성원들이 교회의 주도적인 헌신자들이 될 것인데, 이들은 도시화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도시 생활에 합류하고자 하는 욕구가 더욱 큽니다. 따라서 이들은 변화와 적응을 추진하려는 교회 지도자들의 유력한 조력자들이 되어 교회 개혁을 강력하게 도울 것입니다.
둘째, 농촌교회 변화의 방향은 어디일까 하는 점입니다. 다시 말하면 도시화 추세 속에서 농촌교회는 과연 전통적인 교회 공동체를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현대적 의미의 시민 공동체로 발전할 것인지에 관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도시의 현대 생활과 문화는 농촌교회의 문화적 특징을 빚어가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이는 농촌교회가 도시 생활에 적극 융합하려는 욕구의 반영이며, 현대적이고 공공적인 공동체로 변화하여 가는 방향을 예시해 보기도 합니다.
셋째, 농촌교회의 배타주의 성향이 유지 가능할까 하는 점입니다. 농촌교회 지도자들과 구성원들이 제도화에 대한 초보적인 인식이 형성되고 또한 제도화를 추진함에 따라 농촌교회는 공적인 공간을 제공하게 되었습니다. 이 공적인 공간은 구성원들의 공적인 참여도를 향상하게 합니다. 따라서 배타적이고 은사주의 색채의 신앙은 더 이상 독점적인 지위를 유지 못하고 이성적인 신앙과 반성이 구성원 가운데서 확산하게 됩니다. 이런 경향은 구성원들이 공동체의 사무 행정에 관심을 가질 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복지 사업과 사회적 봉사 사업에 관심을 두게 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경향은 교회 공동체가 현대성과 공공성이라는 특징을 갖게 되었다는 것을 반영해 줍니다.
앞에서 세 가지 점은 비록 적극적인 요소로 드러나지만, 중국 도시 속의 농촌교회는 아직 남미 혹은 미국의 이민교회처럼 충분한 사회적 자원이 있지만 미흡한 상황입니다. 남미의 일부 나라에서 도시화 과정에서 은사주의 색채의 오순절교회들이 빈곤한 계층에 널리 확장하면서 구성원들에게 직업훈련을 포함한 생활 지원을 감당하였던 사례, 혹은 미국에서 도시 이민교회가 이민자들이 도시 생활에 정착하도록 여러 방면에서 지원하였던 사례는 향후 중국 도시 속 농촌교회의 변화와 발전에 유익한 참고 자원이 될 것입니다. ▩
미주 1) 梁家麟, 《改革開放以來的中國農村教會》, (香港: 建道神學院, 1999). 2) Talcott Parsons, The Social System (London: Routledge, 1991). 3) Talcott Parsons, The Social System (London: Routledge, 1991).
▩ 사진 출처 | (위) 픽사베이 (합성) ▩ 문영걸 목사 | 미도(美道)중국선교연구소 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