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단기선교를 출발하기 전, 단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해외로 떠나는 선교였기에 걱정과 기대로, 설렘과 두려움으로 이루 말할 수 없는 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대만 단기선교는 저뿐만 아니라 은혜의빛큰숲교회 청년부에도 새로운 도전이기도 했다. 여행지가 아닌 선교지로 떠나는 것이라는 생각에 가는 길부터 그리스도인으로서 좋은 모습을 보여야겠다는 다짐이 더 긴장하게 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이번 단기선교는 단순한 선교가 아니라 다음 선교를 위해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기회가 되었다. 선교사님과 전도사님 그리고 청년부와 함께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선교의 현장을 직접 보고 특별한 경험을 하는 시간이었다. 그 여정 속에서 만난 하나님의 은혜와 도전과 새로운 깨달음을 나눌 수 있어서 기쁘게 생각한다.
대만에 도착하니, 선교사님이 환대하며 맞이해 주셔서 한국을 떠나기 전에 걱정했던 일들이 한순간에 풀어지는 것 같았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끌어 주시는 선교사님의 뒤를 따라가며 든든함과 감동이 밀려왔다.
그렇게 교회로 가는 길에 펼쳐지는 색다르고 놀라운 풍경이 나를 사로잡았다. 특히 오토바이를 일반적인 교통수단으로 사용한다는 대만에서 만나게 되는 많은 오토바이는, ‘초보 단기 선교자’의 눈에는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이 위험해 보였다. 그리고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보니 이런 환경에서 운전면허를 따는 것 역시 쉽지 않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대부분의 시민은 자동차보다 오토바이를 선호하고, 오토바이는 도심 교통체증을 해소하는 핵심 교통수단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와는 다른 새로운 일상과 문화를 경험할 수 있어서 좋았다. 또 한 번도 본 적 없는 생소한 과일을 호기심으로 먹다가 알레르기 반응을 경험하였고, 대만 음식 특유의 향을 맛보는 등 작은 차이 하나하나가 모두 다 감사했다.
길을 가다가 편의점을 들렀는데 여기서도 다른 점을 발견했다. 바로 검은 달걀 ‘차예단(茶葉蛋)’이었다. 가격도 세븐일레븐에서는 10NTD(신대만달러) 이었으나 다른 편의점은 13NTD였다. 그 맛이 궁금해서 한번 먹어보았다. 역시 대만 특유의 간장 향이 있었지만 우리나라의 장조림과 크게 다른 맛을 느끼지 못했다. 겉보기에 너무 거무스름해서 선뜻 다가가기가 힘들어서 첫 시도가 너무 힘들었지만 그럼에도 도전해서 먹어보니 좋았다. 선입견을 버리고 사물을 대하니 좋은 결과를 주신 것 같아 감사하고 기뻤다.
대만 사람들은 아침을 사 먹기 때문에 차예단은 간단한 아침 식사 대용으로 좋은 것 같았다. 아침을 사 먹는 사람들로 길거리의 음식점은 이른 아침부터 가게 문을 열고 장사하는 분주한 모습이었다. 대만의 길거리 음식을 체험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첫날에는 ‘타이베이 101’ 전망대를 갔는데, 이는 타이베이(臺北)시 신이(信義)구에 위치한 초고층 빌딩으로 대만의 수도 타이베이, 더 나아가 대만 전체를 대표하는 랜드마크였다. 개장일인 2004년 12월 31일부터 2010년 1월 3일까지 약 5년간 세계 최고층의 마천루였다. 이날은 89층까지만 올라갔는데 위에서 내려다본 타이베이는 참 아름다웠다. 하나님은 우리를 대만으로 이끄신 큰 뜻이 있음을 눈으로 확인해 보라고 하시는 것 같았다. 또 하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이 101층 건물의 92층 내부에 ‘조절된 질량 제동기(Tuned Mass Damper)’로 불리는 지름 5.5m, 무게 660톤의 황금색 거대한 구체(球體)가 걸려 있다는 것이었다. ‘Tuned Mass Damper’는 최근 발생한 규모 7.2의 강진 여파에도 버텨낸 비결이었다. 이에 전 세계의 이목이 쏠렸었는데, 이 거대한 공 모양의 진자(振子)는 건물이 지진과 태풍으로 요동하거나 진동할 때 충격 방향과 반대로 움직이면서 에너지를 거대한 충격 흡수 장치로 전달해 진동을 흡수하여 자신이 대신 진동함으로써 건물의 진동을 상쇄한다고 했다. 그러하기에 509m 높이의 이 고층 건물이 무너지지 않는 것이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 거대한 진자는 마치 내 마음 중심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말씀 같았다. 세상에서 힘들고 지치고 흔들릴 때 이를 말씀이 흡수해 상쇄시켜 주심으로 다시 일어나 하나님을 향해 나가게 해 주시는 것처럼 말이다.
둘째 날에는 타이베이 시립동물원 방문과 마오콩 케이블카를 탔다. 먼저 타이베이 시립동물원에서 종류별 동물을 볼 때는 자연스럽게 창세기가 떠올랐기에 참 좋았다. 특히 많은 한국 관광객을 위해 제공되는 한국어 안내 책자는 반갑기까지 했다. 생각보다 동물원이 커서 돌아다니며 구경하는 것으로도 운동이 될 정도였는데, 아시아에서 가장 큰 동물원다웠다. 이런 다양한 동물을 구경하는 데 비싸지 않은 입장료도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동물들을 위해 철조망을 없애고 넓은 공간을 마련하여 최대한 자연과 가까운 환경을 조성했다는 것이다. 130여 종의 새를 바로 눈앞에서 볼 수 있는 경험도 감사했다.
그리고 마오콩 케이블카를 탔는데 그림처럼 펼쳐진 남쪽의 아름다운 산악지역을 볼 때 시야가 탁 트였다. 나무가 우거진 숲과 시내 전망도 한눈에 들어왔고, 저 멀리 101 타워도 위풍당당하게 보였다. 대략 4㎞ 정도 케이블카를 타고 이동하면서 목격한 아름다운 풍경은 그 모습 자체로도 작은 의미로 다가왔다. 정상에 도착하니 그곳에서 경작되는 차밭이 눈에 한가득 들어왔다. 차가 유명하다는 대만에서 맛보는 차향을 음미하며, 대만 사람들의 차 문화를 경험하였다. 그러면서 그들도 이 깊고 은은한 차 맛처럼 예수 그리스도 복음이 은은하게 스며들기를 기도했다.
셋째 날은 국립박물관과 조지 레슬리 맥케이(George Leslie Mackay, 馬偕) 선교사 유적탐방 그리고 베이터우(北投) 온천을 갔다. 먼저 방문한 곳은 세계 4대 박물관으로 불리는 국립 고궁박물관이었는데 무려 69만 점에 달하는 유물을 볼 수 있는 곳이었다. 두 시간가량 박물관을 둘러보았는데 두 시간이 절대 길지 않았다. 오히려 많은 유물을 보기에는 시간이 턱 없이 부족했다. 특별히 수많은 도자기와 육형석(肉形石)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육형석은 벽옥으로 동파육(東坡肉)을 본떠 조각한 작품이다. 층을 이루는 벽옥의 성질을 살려 완성한 예술 작품이다. 이 외에도 참으로 신기하고 아름다운 유물들을 볼 수 있었다는 것이 보람되었다.
그다음 1872년 캐나다 장로교 최초의 선교사로 대만 북부지역 교회의 창시자요, 의료와 교육 활동을 통해 대만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맥케이 선교사님의 유적을 따라 걸었다. 그때 맥케이 선교사님의 마음은 어땠을지를 상상하며 걸으니 그 시절 선교의 현장에 있는 듯한 깊은 울림이 전해왔다. 대만 전체 인구 중에 기독교 인구는 3%라고 하는데, 지금 선교의 현장 한가운데 있다는 것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대만을 자기의 고향이자, 마지막 고향으로 여겼던 맥케이 선교사님은 대만에 온 뒤 단 두 번 캐나다를 방문하였다고 한다. 맥케이 선교사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걸으니, 예수님과 함께 걷는 것 같았다. 그리고 베이터우 온천에서 그간 알게 모르게 긴장으로 쌓인 피로를 풀며, 저녁을 보내니 하루하루의 삶을 허락하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만 단수이(淡水)에 있는 조지 레슬리 맥케이를 기념하는 기념비 넷째 날에는 아침부터 시장을 갔다. 한국 음식을 만들어서 현지 대만 성도님들께 대접하기 위해 식재료를 구하러 갔다. 시장을 가니 아침부터 많은 사람으로 북적북적했다. 피곤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앞으로 가며 더 좋은 식재료를 찾으려 노력했다. 오후에는 대만과 중국 본토 모두의 국부로 추앙받는 쑨원(孫文)을 기리는 국부 기념관에 갔다. 장제스(蔣介石) 동상도 봤는데 생각보다 큰 동상에 놀랐다. 둘러보고 와서 저녁에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이때가 좀 힘들었다. 음식을 만들기 전에 식재료별로 필요한 중량을 다 미리 계산해 놓았는데 중량을 잴 저울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참으로 당황했다. 이걸 어찌 해결해야 할지 순간 생각이 복잡해졌다. 하지만 내 안에 성령님께서 부정적인 마음을 제거하시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이 상황을 바라보게 하셨다. 할 수 있다는 평안의 마음을 주셨고, 그렇게 마음가짐을 다잡고 최선을 다하여 음식을 만들었다. 김치전이 무사히 완성되었다. 그리고 김밥의 부재료들을 미리 준비했다.
다섯째 날,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전날에는 밥할 시간이 없었으므로 밥이 없었다. 그래서 서둘러 그날에 먹을 밥을 바로 짓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번에도 뜻하지 않은 변수가 생겼다.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는 밥솥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최대한 물 비율과 시간을 조절하여 밥 짓기에 도전했다. 이런 일 자체를 불안해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대하는 자세를 긍휼히 여겨 주셨던 것 같다. 이뿐만 아니라 생각하지 못한 주방의 크기와 주방 도구 등 익숙하지 않아 불편한 것들이 오히려 도전의 계기가 되었다. 매일 매번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걱정과 두려움에 휩싸이게 되어 좌절하고 포기하였는데, 결국 선교의 현장에서 절대적으로 성령님을 의지하게 하심으로 걱정과 두려움을 이기게 하신 성령님의 능력을 신뢰하는 시간이 되었음에 기쁘고 감사하다.
대접한 음식을 대만 현지 성도님들께서 맛있게 드셔서 마음이 참으로 즐거웠다. 그리고 성도님들과 주일 예배를 드렸는데 그동안 준비한 모든 것을 성도들 앞에서 하나님께 올려 드렸기에 더 값진 예배 시간이 되었다. 긴장하며 준비한 찬양과 워십을 드릴 때는 더 용기를 내야 했다. ‘마라나타’를 부를 때,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 고백의 눈물이 흘렀는데 성령님이 내 마음에 주신 감동의 눈물이었다. 각자의 언어로 주를 찬양하며 기쁨과 두려움, 걱정과 행복을 모두 주께 드리며 나아가는 시간이었음에 감사드린다.
대만 단기선교 기간에 매일 아침 QT와 저녁 예배는 하나님을 순간순간마다 기억하며 나아가는 힘과 지혜를 충전하는 특별한 시간이 되었다. 얼마나 행복한 시간이었는지 모른다. 저녁에는 조별 모임도 있었는데 특히 ‘맑은 물 붓기’ 시간은 더없이 값진 시간이었다. 맑은 물 붓기는 하루 동안 같은 조원의 장점을 발견하여 그것을 말해주는 시간이었다. 오랫동안 보아온 청년부원들임에도 불구하고 장점에 대해 생각하려고 하니 그들을 또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게 되니 하루가 참으로 귀하고 특별했다. 이 외에도 다른 주제의 이야기로 조별 모임을 하며 또 다른 관점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느낀 점을 나누는 데도 각각 다 다른 느낌을 서로의 언어로 나눔을 하는 시간 자체가 너무 소중했다. 물론 두려움과 걱정이 몰려올 때도 있었지만 그럴 때는 더욱 간절히 기도했다. 아주 잠깐이라도 기도했다. 선교사님의 댁이기도 한 교회에는 개가 한 마리 있었는데 그 자리를 피하지 않고 굳건히 버티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힘든 부분이었다. 하지만 그 자리를 피하지 않고 지켜내려는 도전을 멈추지 않으려고 애썼다. 남들은 “덩치는 산만 한데 그거 하나 무서워하냐?”라는 말을 한다. 나는 개에게 물릴 뻔한 수많은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서 오랫동안 노력해 왔다. 그런데 단기선교를 온 현장에서 나의 길고 긴 트라우마를 극복한 것이 많은 이에게 보였던 것 같다. 아무리 작은 개라도 만지지 못했는데 나는 바로 이곳에서 개를 만졌다. 용기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행동이었다. 잠깐의 만짐이었지만 개털의 부드러운 촉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달라진 내 모습이 보였다. 예배 시간에 서로의 연약함을 보듬어 주는 말씀을 들었다. 한국으로 돌아가서도 이런 마음가짐으로 삶을 대하도록 힘써야겠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도 하나님이 지켜 주시는 평안함을 느낄 수 있었고, 한국으로 돌아온 지금, 이 순간도 끊임없이 기도로 나아가기를 새롭게 다짐한다. 하나님의 큰 계획 속에 대만이라는 첫 해외선교를 허락하셨다. 그리고 이번 대만 단기선교를 통해 늘 부족한 것뿐이라고 생각해 온 나를 향해 하나님은 “너는 소중한 사람이란다”라고 말씀해 주시며, 믿음이 한껏 성장하도록 이끌어 주셨다. 이렇게 귀한 시간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며, 함께해 주신 선교사님께 감사드린다. ▤
▤ 사진 출처 | (가운데) https://felicialin.medium.com/george-leslie-mackay-canadian-missionary-iconoclast-and-his-contributions-to-taiwan-with-rev-302d239abd90 [2025. 3. 3. 접속함] ▤ 유진 | 은혜의빛큰숲교회 청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