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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7.3  통권 263호  필자 : 강창섭  |  조회 : 1576   프린트   이메일 
[특집] - 특집/ 세계와 함께하는 화인 디아스포라선교
화인 디아스포라선교의 중요성

한국교회의 헌신, 중국교회의 활력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수많은 한국교회가 중국에서 교회를 개척하고 각종 훈련 프로그램과 신학교육을 통해 교회 지도자들을 육성하는 사역을 주로 감당하였다. 이는 오늘의 중국교회가 활력이 있어 성장하는 토착교회가 되는 데 많은 기여를 하였다. 최근에는 중국에서 비자발적으로 혹은 선교 환경의 변화로 인하여 수천 명의 한국선교사들이 귀국하였다. 귀국한 선교사 중에 대부부은 화인 디아스포라가 많은 동남아지역으로 사역지를 옮겼으며, 일부 소수의 선교사는 중국인을 찾아 먼 아프리카, 유럽, 중앙아시아, 러시아, 라틴아메리카 등지로 떠났다. 현재 한국교회의 중국선교는 선교의 주체이신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화인 디아스포라선교를 지향하게 되었다.

해외에 거주하는 중국인 디아스포라는 약 5천만 명(홍콩, 마카오, 대만 등 지역은 제외)이다. 북미지역이나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과 같이 많은 교회와 유수한 신학교가 있어 사역자가 부족하지 않은 지역도 있지만, 대부분의 지역에는 오랫동안 중국어 및 현지어 사역자가 많이 부족하였다. 특히 중국의 개방정책과 일대일로 정책과 더불어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중국인이 해외로 이주하여 사역자의 필요는 과거보다 현저히 증가되었다. 목자 없는 양같이 지구촌 곳곳에 흩어진 중국 영혼들을 구원할 뿐 아니라 선교적 백성으로 사용하시기 위하여 선교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그동안 중국에서 수고한 선교사들을 불러내시어 복음이 더 필요한 세계의 여러 지역으로 인도하시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중국인의 이주 형태 
과거 중국인이 선호하는 지역은 발달된 지역이었으나, 최근 일대일로 정책의 영향으로 아프리카에 진출한 중국인들 중에 현지에 정착한 사람들이 많다. 라틴아메리카의 중국인 이주역사는 청나라 말기로 거슬러 올라 가고, 파나마운하 건설과 여러 나라의 서구 식민세력이 경영하는 농장의 저임금의 계약 노동자로 진출하여 많은 간고를 겪었으며, 현지화한 그들의 후예들이 대륙 전 지역에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중국인의 해외 이주역사와 정착 과정은 수난의 역사이다. 새로운 이주지의 열악한 환경에서 중국인들은 많은 희생을 당했으며, 가족에 대한 헌신 또한 희생적이었다. 19세기 중엽 노예 해방시기에 중남미에서 중국인 계약 노동자들이 노예 취급을 당하여 항거하다 수백 명이 한밤에 죽임을 당하기도 했다. 가족을 떠나 해외에서 홀로 사는 삶 자체가 가족 중심의 중국인에게는 힘든 일이지만 가히 상상할 수 없는 고난을 당하면서 가족을 위해 희생을 감수하였다. 또한 해외 현지인들의 경계와 질시를 받는 상황에서도 그들은 중국인으로서 정체성을 보존하기 위해 언어와 문화 계승을 힘썼다. 중국인의 해외 이주 이야기는 곧 수많은 역경을 극복한 ‘인간승리’ 이야기 그 자체이다. 

필립 쿤(Philip A. Kuhn)은 근대 중국인의 이민을 다소 중복되는 기간도 있지만 대략 다음과 같이4시기로 나누어 분석하였다.1) 

초기 식민시대(16C-19C 중엽) 
대량 이주시대(19C 중엽-1930년대) 
아시아 혁명시대(19C 말기-20C 말기) 
글로벌 통합시대(20C 말기 이후부터~ )

근대 중국인의 해외 이주는 1500년대에 유럽인들의 동남아시아 도착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유럽인들이 강력하게 설립한 현지 무역관리 본부가 있는 곳 어디서나 중국인 상인들의 근거지가 있었다. 포르투갈인이 있는 말라카(1511년), 스페인이 있는 마닐라(1570년), 네덜란드인이 있는 자카르타(1619년), 영국인이 있는 싱가포르(1786년, 1819년) 등의 지역에 이미 중국인 상인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중국인들은 그 지역에서 유럽인들의 관리 아래 식민지에서 중간 관리자의 역할을 하였다. 유사한 과정이 아직 식민지화하지 않은 1800년 중엽까지 동남에서도 발생하였다. 방콕 시대의 시암에서 중국인은 1700년대에 왕실의 재정관리를 담당하였다.

초기 식민시대에 중국인들은 식민지 통치자들을 위해 중국과의 무역, 현지인과 거래, 세금 징수 등에 있어 중간 대리자 역할을 감당하였다. 대량 이민시대는 영국이 나폴레옹전쟁 기간 이후에 동남아로의 진출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아편전쟁 이후 서구 열강은 중국 항구로 몰려들었으며, 저들은 조약체제 아래서 아무런 장애 없이 때로는 강제와 사기로 이주자들을 모집해서 전 세계의 노동력이 부족한 농장과 광산에 선적되었다. 

이민의 자유가 허락된 1860년부터 1893년까지 자발적, 비자발적 이민이 증가하였으며, 1900년 후부터는 성(性)의 비율도 균형을 이루게 되었다. 이 기간은 악명 높은 쿨리무역(coolie trade)이 성행하였고, 아시아인과 중국인뿐 아니라 인도인과 자바인들이 전 세계 식민지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저임금 착취를 당하던 시기였다. 증기선박의 발달로 인해 더 많은 중국인이 먼저 이주하여 현지화한 중국인들 곁에 정착하게 되었다. 더 안전하고 빨라진 교통수단으로 인해 이민자들과 조국인 중국과의 관계는 보다 강화되고 정치화하였다.2) 

아시아에서 식민통치와 제국주의에 항거한 시대인 ‘아시아 혁명’ 시대에 일본은 지역의 강국으로서 서구의 지배를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에서 축출하였다. 해외의 중국인들은 과거 식민통치 아래 현지인들인 말레이인, 인도네시아인, 필리핀인, 베트남인 등의 통치 아래 나라에서 소수민족임을 깨닫게 되었다. 소수자가 된 중국인들은 갑자기 식민지 세력의 보호를 잃게 되었고, 그들의 정치적, 문화적 정체성과 경제적 전략에 새롭고 긴급한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 시기 말에 이민은 중단되었고 본토 중국에서 새로운 정부의 출현으로 인해 이민자 사회에서 타이완과 중국 사이에 정치적 경쟁과 분열이 초래되었다.3)

글로벌 통합시대에는 중국인 이민 형태에 있어 일련의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동남아는 더 이상 이민의 선택지가 아니게 되었으며, 북미와 호주는 아시아 이주민들을 보다 환대하였기 때문에 이민의 물결이 극적으로 변하게 되었다. 중국인을 배제하거나 백화주의의 규정들이 폐지되고 중국 이민자에 대해 더욱 관대한 정책이 실행되었다. 유럽 또한 새로운 이민 물결을 불러일으켜서 수천 명의 이전 식민지역 이주민들이 재이민하였다. 중국 개방정책 이후 저렴한 항공료와 통신수단의 발달로 인해 대륙과 교류가 활발해지게 되었다. 그 결과 계층과 현지 출생의 중국인 이민자들은 실질적으로 변화하였다


화인 디아스포라선교의 전략적 중요성4)
해외 거주 중국인 디아스포라는 2011년 당시 모두 4천 3백만 명으로서 148개국에 거주하고 있으며, 이는 홍콩, 마카오, 타이완 등의 지역을 제외한 숫자이다.5) 이들 중 65%는 4개국에 거주하고 있다. 인니에 800만 명, 태국에 750만 명, 말레이시아에 650만 명, 미국에 420만 명이 살고 있는 상황이다.

2011년 세계 대륙 밖의 디아스포라 화인교회의 상황은 다음과 같다. 아시아에 7,217개, 미국과 캐나다에 1,614개, 유럽과 오세아니아에 311개, 라틴아메리카에 109개, 아프리카 32개 모두 9,283개이다.6) 디아스포라 화교들의 분포가 다양한 만큼 화교권 교회 형태도 다양하다. 초기 화교 이민자들로 구성된 교회로서는 광둥인(廣東人)교회, 커자인(客家人)교회, 차오저우(潮州人)교회, 타이완인(台灣人) 중심의 교회(민난어(閩南話)교회, 국어(國語)교회), 동남아 이주자들의 교회(월남 화교교회, 인니 화교교회 등)를 들 수 있다.

중국의 개혁개방 이후 중국인 이주자(新移民)가 크게 증가하면서 현지의 광둥인들의 교회들은 만다린어(國語)부를 신설하거나 문화적 차이로 인하여 신이민자들이 독자적으로 교회를 신설하기도 한다. 비서구권의 중국인 신이민자들을 선교하는 자들은 주로 홍콩, 싱가포르, 타이완, 미국, 캐나다 등지의 화인교회에서 파송한 자들이며, 중남미와 같은 곳에서는 인근에 산재하는 중국인 디아스포라를 위하여 순회사역을 하기도 한다.

디아스포라 선교학자인 원이눠(溫以諾, Enoch Wan) 박사는 무신론 국가인 중국과 불교 국가인 타이완의 신이민자들의 해외이주는 현대 선교역사에 있어서 전례가 없는 ‘kairos moment’의 기회라고 말하였다.7) 그는 화인들이 대부분 10/40 창에 속한 국가들에 거주하고 있으며, 중국 내에서처럼 해외 이주자들 가운데도 복음에 수용적이나 복음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아서 현대선교에 있어서 가장 긴급한 과업 중 하나라고 주장한다.

해외 주요 화인 분포도

원이눠 박사는 또한 화인 디아스포라교회들의 괄목할 만한 선교 참여를 지적하면서 저들을 향한 선교와 저들을 통한 선교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인도네시아의 화인교회는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많은 교회들이 화인교회를 표방하지 않고 완전한 현지화를 추구하여 현지인들과 구별하지 않고 현지인과 함께 복음을 전하고 있다. 또한 중국인의 문화와 전통을 유지하는 교회라 할지라도 현지인선교를 위해 헌신하고 현지어로 신학교육을 감당하고 있다. 

중화권에 사역자가 부족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신이민자들의 해외 진출 이전에도 사역자들이 많이 부족하였지만 해마다 증가하는 신이민자로 인하여 어느 국가나 지역에 사역자들이 더욱 절실한 상태이다. 이민 역사가 오래된 지역에서 일찍 설립된 도시지역의 화인교회들은 대부분 안정적이며 자민족 선교에 열정을 가지고 교회를 개척하고 연합하여 신학교를 설립하여 지도자 양성에도 헌신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중남미지역과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의 교회들은 교역자의 공급이 수요에 크게 미치지 못한 형편이다. 선진국의 화인선교 지도자들은 이 같은 상황을 개선하기 위하여 크게 노력하였다. 로잔운동의 지도자이며 오랜 기간 세계 화인교회의 지도자였던 토마스 왕(王永信) 목사(선교단체인 大使命과 中信의 설립자)는 세계 여러 지역에서 화인선교대회를 개최하여 화인 디아스포라선교를 위해 크게 힘썼다. 

필자가 90년대에 사이판에서 중국인노동자선교를 할 때 왕목사님은 13개국의 화인교회 선교 지도자들과 함께 ‘태평양 도서지역 중국인선교대회’를 개최하여 이 지역의 중국인선교를 위한 동원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 결과 북미와 홍콩의 많은 교회에서 장단기 선교사를 이 지역에 파송하여 선교에 큰 도움이 되었다. 화촨(華傳선교회, Go-International)의 설립자 린안궈(林安國) 박사는 ‘華傳路’ 창간호에서 선교단체 창립 목적 중 하나는 “서구 선교단체가 화인 디아스포라를 소홀히 하므로 이를 보충하기 위하여 예수님과 바울의 전도 방법과 전략을 따라, 먼저 동족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을 교두 보로 삼아 다른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라고 하였다.8) 그래서 화촨은 초기에 화인들이 거주하는 지역들 중에 멕시코, 페루, 아르헨티나, 사이판, 태국, 미얀마, 캄보디아, 한국 등의 지역에 선교사를 파송하였다. 그는 이 정책을 ‘僑橋策略’이라고 칭한다. “각지에 흩어진 교포는 단지 선교의 대상일 뿐 아니라 복음전파의 교량이며, 최종 목적은 만민선교로서 모든 민족을 주의 제자로 삼는다.” 이를 위하여 ‘화촨’은 화인 디아스포라교회가 있는 국가에 지부를 설립하였으며, 화인 집단이 있는 국가에는 화인교회를 개척하였다.

린안궈 박사의 화촨 설립의 취지는 현재에도 그 중요성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화인 디아스포라교회들이 다소 느릴지라도 성장하고 있는 추세이지만 대륙에서 새롭게 이주하는 신이민자가 많이 증가하면서 저들을 향해 전도할 수 있는 사역자가 많이 부족하다. 일부의 오래된 화인 이민교회들은 대륙의 신이민자를 위하여 사역자들을 요청하기도 한다. 중남미 수리남의 한 화인교회가 대표적인 예이다. 네덜란드의 모라비안 교단에 속한 그 화인교회는 그 지역에 새로 이주한 약 2만 명의 중국인들에게 만다린으로 전도할 수 있는 사역자를 구하던 중 전 중국선교사였던 김남경 선교사를 청빙하였다. 김 선교사는 그 교회에 만다린어 예배를 신설하여 신이민자 선교를 활발히 감당하고 있다. 이처럼 현지 화인 디아스포라교회를 통한 현지선교는 매우 탁월한 전략이다.


신이민과 선교의 기회
중국의 개혁개방 이전에 해외에 거주하는 화인들 가운데 이미 설립된 교회들도 사역자가 많이 부족하지만, 신이민 중국인들을 위한 선교가 절실한 형편이다. 예를 들자면, 중남미 페루에 푸젠(福建)성 출신의 신이민자들이 약 20만 명이 있으며, 그중 12만 명이 리마에 거주하며 주로 식당업에 종사하고 있다. 페루에는 약 7,000개의 중국 식당이 있다. 리마에는 Overseas Chinese Alliance Church(利馬華僑宣導會, 1979년 설립)와 Iglesia China Alianza Cristianay Misionera de San Borja(寶華堂, 2003년 설립)이 있으며 두 교회 모두 합쳐 100명 미만의 약한 교회이다. 이처럼 페루에는 중국인을 향한 선교사가 절실한 곳이며, 중남미의 거의 모든 지역이 페루의 상황과 큰 차이가 없다.

또한 중국이 아프리카에 대대적으로 투자함에 따라서 현재 아프리카에는 2,500개 정도의 중국인 회사가 있으며 약 2백만 명의 중국인이 진출해 있다. 아프리카에서 사역하는 화인선교사는 모두 50명이며 이들은 주로 대만, 홍콩, 미국 등지에서 파송되었다. 남아공에는 약 50만 명의 화인이 거주하며, 최근 미국의 화인신학교인 Global Enrichment Theological Seminary(普世豐盛神學院)에서 개설한 2주 교육과정에 40명이 등록하였다.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에도 중국인을 위한 선교사가 크게 부족한 형편이다.

2013년 시진핑(習近平) 주석은 주변국들과 관계 증진과 참여 정책을 천명한 뒤 중국은 2011-2015년 간의 5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기반시설과 인접 국가들과 다른 연결망을 개발하고, 다른 국가들과 호혜적인 투자 수준을 증진하고, 국제 경제와 금융기관에 자국의 영향력을 강화하는 목 표를 수립하였다.9) 중국은 아세안 국가들을 원조함에 있어서 기반시설 건설에 자금을 보조하고 농업개발을 지원하며, 기술훈련을 제공하고자 하였다. 2014년 중국의 아세안 국가들과 교역량은 4,800억 달러나 되며,10) 중국의 아세안 국가에 대한 수출량은 2,720억 달러다.

아세안의 여러 국가는 기반시설들이 부족하고 노후화하였지만 자금이 부족한 상황에서 중국의 협력을 매우 환영하고 있다. 캄보디아, 미얀마, 라오스 등은 전통적으로 중국의 강한 동맹국이며, 이 지역에서 가장 미개발되었고 경제 개발에 중국의 원조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이 지역에서 발전된 국가인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은 경제에 있어서 중국과 상호 보완적이며, 일대일로를 통하여 중국의 투자가 유입되어 산업화를 가속화하려고 한다.11) 중국은 이미 이 지역의 철도, 고속도로, 항만 시설, 발전소, 디지털 통신 네트워크 설비 등 기반시설 건설에 거대한 투자를 하였다. 중국과 말레이시아의 기간 설비 건설에 있어서 상호협력이 증진하고 있다. 2016년 말레이시아 수상 나지브 라자크(Najib Razak)가 베이징(北京) 방문 시 맺은 협정에 의하면 중국은 말레이시아-중국 쿠안탄 산업단지(MCKIP), 말라카 관문 항구 프로젝트, 동해철로 등의 건설을 위해 거대한 투자를 하기로 했다. 중국은 2009년 이후 동남아 국가들의 가장 큰 무역국이 되었다. 

중국은 동남아 국가들과 경제 관계를 강화함으로써 그 지역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려고 한다. 라오스는 외국인 투자 유치 노력의 일환으로 10년 이상 거주자에게는 국적을 허락하였다. 중국의 신이민자들은 라오스 북부지역을 선호하였으며, 도로 건설 프로젝트에 많이 투입되었으며, 완공 뒤에는 남아서 사업을 하는 자들도 많이 있다. 특히 윈난(雲南)성 사람들이 정부의 지원을 받아 사회 기간 사업 프로젝트, 농업, 무역 등에 진출하였다. 2006년에는 20만 명의 중국인이 거주하였고, 그중 4만 명은 중국 기술자들과 무역상들이다. 2007년에는 1만 명 이상의 중국인이 라오스로 이민하였다.12)


캄보디아의 수도에 위치한 ‘프놈펜 화인협회’에 의하면 2014년에 화인의 혈통을 가진 자들이 70만 명 정도였다. 현재 캄보디아에 거주하는 중국인은 크게 급증하고 있다. 2017년 말에 10만 명에서 2018년 10월 에는 21만 명으로 급증하였다.13) 프놈펜 거주 화인은 135,000명이며 이 도시 인구의 1/3에 해당한다.14) 캄보디아에는 8개의 화인교회가 있으며, 만다린어를 사용하는 교회는 시엠립에 한 개가 있다. 캄보디아의 최대 해변 리조트 지역인 시아누크빌(Sihanoukville) 에는 약 78,000여 명의 중국인이 거주하며, 조용하고 유명한 휴양지가 번잡한 중국 카지노타운으로 변하였다. 이미 중국인 카지노가 30여 개가 있으며, 약 70여 개가 공사 중이다. 시아누크빌 특별경제구역(Special Economic Zone)은 4.4 평방 마일의 산업 단지로서 121개 기업 중 104여 개가 중국인의 소유이다.15) 시아누크빌에는 두 개의 화인교회가 있다.

미안마에는 200만의 중국인이 거주하고 있다. 25개의 화인교회가 있으며, 그중에 만다린어를 사용하는 교회는 세 개이다. 중국 개방 이후 중국의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의 투자와 지원에 힘입어 수많은 기업과 상인들이 대거 진출하였다. 그 영향으로 샨주(Shan State)의 라쉬오(Lashiao)시 인구의 30-35%는 화인이다. 또한 북부 국경지대의 몽라(Mong La), 쉐리(Shweli), 뮤세(Muse), 라이자(Laiza) 등의 지역은 화인이 다수이다. 화인들은 주로 불교를 믿으며 기독교인은 극소수이다. 중국의 언어, 화폐, 문화 등이 많은 지역의 일상생활의 정취를 변화시키고 있으며, 중국의 영향은 국경을 훨씬 넘고 있다.16)

말레이시아 인구는 총 3,138만 명 정도이며, 그중 화인은 20.8%이다. 회교국가로서 회교도는 61.7%이며, 기독교인은 9.2%이다.17) 2006년 자료에 의하면 기독교인 가운데 원주민은 64%, 화인은 6.6%이다.18) 화인교회는 모두 932개가 있으며, 그중 만다린어를 사용하는 교회는 187개나 되며, 5개의 화인신학원이 있다. 중국과 말레이시아는 지난 20년간 많은 부문에서 경제적으로 교류를 하고 있으며, 최근에 중국은 말레이시아 최대의 교역국가가 되었다. 최근의 주요 교역 내용의 예를 들자면, 2018년 초에 말레이시아 총리 마하디르 모하마드가 집권한 이후 3개의 중국 기업들이 12억 위안(RMB) 투자를 결정하였다. 말레이시아는 그간 75억 달러를 중국에 투자하였으며, 이는 중국의 말레이시아 투자액보다 더 많은 액수이다. 지난 9년간 중국은 말레이시아의 가장 큰 교역 국가이며, 지난 2년간 제조 업체의 가장 큰 투자 국가일 뿐 아니라 건축업계의 가장 큰 파트너이다.



베트남의 인구는 2018년 9,649만 명으로 세계 14위에 이르며, 화인은 약 1.1%에 달한다.19) 호치민시에 가장 많은 화인이 거주하며 약 50만 명으로 이 도시 경제의 1/3이 화인들의 손에 있다. 화인 중 광둥어 사용자는 50%, 민난어 사용자는 30%이며 소수의 커자어(客家語) 사용자가 있다. 젊은이들은 중국어를 못하지만 최근에 중국어 학습이 활기를 띠고 있다. 복음주의 기독교인은 12%이며, 그중 75%는 소수민족이다.20) 월남에는 모두 11개의 화인교회가 있으며, 중국어를 사용하는 교회는 호치민시에 9개의 화인교회가 있고, 그중 만다린을 사용하는 교회는 華人宣道會와 越南華僑基督教會 등 두 교회가 있다.21) 중국은 일대일로 정책의 일환으로 소위 ‘양랑일권(两廊一圈)’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이는 베트남과 중국의 경제발전협약으로 두 개의 회랑 즉 중국 윈난성의 쿤밍(昆明) 과 베트남 라오까이-하노이-하이퐁-광닝(하롱베이 몽까이)의 두 회랑을 하나로 묶는 국가 차원의 경제발전 계획이며, 이 지역으로 중국기업이 집중 투자하고 중국기업체와 중국인들이 모여들고 있다.22) 두 개의 회랑의 중심축이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이다. 2017년 11월부터는 양선 몽까이 등 국경지역은 자가용 자유여행지역으로 정하여 중국의 자가용 부대들이 물밀듯이 들어오고 있다. 또한 하노이 각 대학에 중국 유학생이 3,000명가량이 있다. 화교교회가 있고 중국인 예배공동체가 세워져 가고 있다.

태국의 인구는 6,925만 명 정도이고, 화인이 전체 인구의 14%를 차지하며 만다린어를 사용하는 4개의 화인교회가 있다.23) 태국 화인은 태국에 매우 큰 기여를 했다. 특별히 경제에 있어서는 화인이 태국 자본 시장의 80-90%, 제조업의 90%, 은행과 금융업의 50%, 상장한 주식회사의 80%가 화인들의 소유이며, 5명의 최고 억만장자도 화인이며, 수상의 17명이 화인이었다.24) 중국의 일대일 프로젝트와 국제진출(going global) 장려정책으로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가 국민의 해외진출을 크게 지원함에 따라 많은 중국인이 태국으로 진출하고 있다.25) 태국은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중국과 교류를 힘쓰며 특히 화인 기업가들이 교량적인 역할을 하여 많은 중국 기업들이 진출하고 있다. 선교사를 전략적으로 재배치하는 일을 고려할 때, 가장 중요한 지역 중 하나는 인도네시아라고 할 수 있다. 인도네시아의 총 인구는 2억 6천만 명(세계 4위)이며, 17,000여 개의 섬으로 형성되어 있고, 300여 개의 종족들 가운데 약 1,000여 개의 언어가 사용되고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많은 무슬림이 사는 나라로서 인구의 87%가 무슬림으로 대략 2억 명이 넘는다. 인도네시아는 해외 화인 디아스포라가 가장 많은 나라이며, 화인은 전체 인구의 3-4%, 즉 800만 명에서 1,000만 명 정도로 추정된다. 수하르토 대통령은 재직 시 화인을 인도네시아인으로 동화시키기 위한 정책을 실행하여 화인들이 중국어, 중국식 이름을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1998년 혁명으로 수하르토가 하야한 뒤 다시 화인들의 언어와 문화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지만 32년의 중국어 사용 금지로 인해서 중국어를 읽고, 쓰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게 되었다. 

2010년에 실시한 인구조사에 의하면 인도네시아 화인의 35%가 기독교인(천주교 포함)이며 불교는 54.7%이다. 인도네시아 화인교회는 배화운동의 아픈 상처로 인하여 화인의 문화와 전통을 적용하는 토착화나 상황화를 시도하지 않은 것으로 본다. 그래서 일부 화인교회들은 현지 동화와 인도네시아화의 길을 택하였다. 그러나 일부 화인교회들은 만다린어와 인니어 통역 예배를 드리고 있으며, 만다린어 사역자가 없는 교회들이 만다린어 사역자를 필요로 하고 있다. 만다린어를 사용하는 자들은 다소 연로한 자들이지만 중국과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많은 학교와 교회들이 중국어 교육에 힘을 쓰고 있다. 일부 여력이 있는 교회들은 젊은 교역자를 타이완이나 중국에 유학을 보내 중국어 사역을 준비하기도 한다. 

중국어가 가능한 한국선교사들이 인도네시아 화인교회를 섬김으로써 화인선교를 수행할 뿐 아니라 화인교회를 동원하여 현지인선교를 할 수 있다. 인도네시아 메단의 화인교회에 재배치되어 성공적으로 사역하고 있는 유황수 선교사는 화인교회를 섬김으로써 현지인선교를 추진할 수 있다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역의 방향을 인도네시아 화인교회를 ‘선교적 교회’로 전환시키는 것으로 설정하였다. 화인교회가 선교적 교회로 전환되어진다면, 1차적 선교 대상인 화인 중에서 아직 그리스도를 믿는 않는 자들에게 복음을 증거할 수 있게 될 것이고, 교회가 1차적 선교 목적을 이루면서 복음에 대한 열정과 영적 능력을 회복할 때, 인도네시아 선교와 무슬림 선교를 위한 첫발을 내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유 선교사가 제시한 인니 화인교회를 통한 현지 선교전략은 린안궈 박사의 僑橋政策과도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서, 세계 모든 지역에 흩어져 있는 화인 디아스포라교회를 통한 현지선교라는 탁월한 전략적 선교 모델이다.

중국의 아프리카 여러 나라에 대한 투자가 증가함에 따라 중국 투자기 관과 기업들이 많아져 많은 중국인들이 아프리카 대륙에 함께 진출하였다. 아프리카 거주 중국인은 2004년에 100만 명에 달하였으며, ‘해외 중국인 연례 보고서(The Annual Report on Overseas Chinese)’에 의하면 아프리카 거주 중국인의 수는 지난 20년간 7배로 증가하였으며 그 수는 2012년에 111만 명에 이른다. 2015년 요하네스버그에서 개최된 아프리카 중국협력포럼(2015 Forum on China Africa Cooperation, FOCAC)에서 중국은 투자를 2012년 200억 달러에서 2015년에는 600억 달러로 증액하기로 약속하였다.26) 중국은 자원 광물질을 아프리카에서 조달하고, 기계, 섬유, 플라스틱 제 품, 교통장비, 화학 전기 제품들을 아프리카로 수출하고 있다. 무역이 증진함에 따라 중국은 아프리카에 2005년에는 16억 달러를 수출하였고, 2012년에는 213억 달러를 수출하였다.27) 아프리카에 진출한 중국 신이민자들은 두개의 범주에 속한다. 하나는 큰 규모의 공기업(State Owned Enterprise)의 프로젝트에 관계된 1년에서 3년 정도 근로계약으로 진출한 노동자들로서 광산, 기간시설, 통신 분야의 종사하는 자들과 지방 정부와 계약하여 수자원 공사, 자연 자원 등의 부문에 종사하는 자들이다. 일부 노동자들은 이 같은 기업들의 직원으로 아프리카의 해외 공사를 위해 일시 파견된 자들이다.28) 일부는 베이징 이외의 지역에 있는 정부가 승인한 사기업이 고용한 자들이다.29) 이 장에서는 지면의 제한으로 인하여 아프리카의 화인 디아스포라 현황을 극히 개괄적으로 다루고자 한다.

아프리카교회들은 홍콩과 타이완 출신의 선교사들이 화인들을 위하여 사역하고 있다. 국제선교단체들도 아프리카 화인들을 위한 사역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으나 사역자들이 매우 부족한 형편이다. OMF는 아프리카에 진출한 중국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남아공, 짐바브웨, 케냐 등에 지부를 설립하였고, SIM은 해외 화인 사역 팀(海外華人事工, Chinese Diaspora Ministry)을 설립하여 아프리카 화인들에게도 선교하고 있다. 남아공에는 35만 명에서 50만 명의 화인이 거주하고 있다. 15개의 화인교회가 있고 평균 교인 수는 30-50명 정도이다. 화인 교인은 화인 가운데 오직 0.13%밖에 되지 않으며, 많은 사역자가 필요하다.30) 최근 경기침체와 더불어 치안이 악화하면서 화인들이 출퇴근 시에 납치당하는 일들이 발생하고 있다. 이는 또한 복음사역에 많은 도전이 되고 있으며, 집회 장소와 시간 등도 안전을 고려해야 한다. 2000년을 전후하여 온 수많은 중국 유학생 가운데 졸업 후 남아서 뿌리를 내린 자들도 많이 있다. 현재 화인 사역자들이 노령화하고 떠난 자들도 있고 남아공으로 오는 선교사도 매우 적으며, 이민 2세들을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는 사역자가 필요하다.31)

나이지리아의 인구는 1억 9천만 이상이며(세계 7위) 흑인이 중심인 국가로서는 최대 인구의 나라이다. 기독교인은 전 인구의 50%에 해당한다. 캐나다선교사 Walter Gowans, Roland Bingham, 미국선교사 Thomas Kent 등이 1983년에 기존의 선교단체들이 관심을 보이지 않는 사하라 남부의 복음을 접하지 못한 6,000만 명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수단 내지선교회(SIM, Sudan Interior Mission)를 설립하고 라고스에 도착한 지 1년 만에 Gowans와 Kent 두 선교사가 합병증으로 사망하였고 Bingham은 말라리아로 귀국한 뒤 다시 시도하여 1902년 해안에서 800키로나 먼 나이지리아 내지 Patigi에 정착할 수 있었다. 2012년에 약 2만 명의 중국인이 거주하였다.32) 

SIM 해외화인사역 팀은 나이지리아에 선교사를 파송하여 사역하고 있다. 라고스는 서남부에 위치한 항구로서 제일 큰 도시이다. 2004년에 차이나타운 상가들을 건축하였고, 2006년 세금 문제로 잠시 폐장하였다가 2011년에는 각종의 장애로 인해 경영이 어려워짐에 따라 많은 상인이 귀국하였다. 화인 예배처가 2008년 라고스에, 2011년에 빅토리아 섬에 CCF(Chinese Christian Fellowship, 華人基督徒團契)가 설립되었으며, 홍콩, 타이완, 대륙,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지에서 온 소수의 화인이 출석하고, 2017년에 이 두 곳이 연합하였다.33) Kano는 나이지리아 인구 900만 명으로 나이지리아 두 번째로 큰 도시이며 또한 상업중심지이다. 인구의 98%가 회교도이며 화인은 약 1만 명 정도 거주한다. 현재 SIM의 선교사가 영어학원을 설립하여 사역을 시작하려고 준비 중에 있다.

에티오피아에는 2015년에 설립된 화인교회가 있다. 탄자니아에는 2012년에 아프리카 32개 국가에 198개의 중국 회사가 있었다. 그중 80%는 사기업(私企業)이고 20%는 정부의 기업이다. 우간다의 수도 캄팔라에 중국인들의 주일예배 모임이 7개 정도가 있으나 사역자는 없다. 김동국 선교사에 의하면 코트디부아르에 약 2만 명의 중국인이 거주하지만 그들을 위한 예배 처소가 없다. 곽기종 선교사에 의하면 라이베리아에는 약 1만 명의 중국인이 거주하며, 대부분은 공장이나 도로공사의 노동자들이다. 화인교회가 있다. 세네갈에는 약 3만 명의 중국인이 거주한다. 수도 다카르에는 2007년부터 독립기념탑으로부터 시내로 들어가는 드골 거리에 1km 정도가 중국인 가게로 들어차기 시작해서 꼴로방과 메디나를 중심으로 중국인 집단 거주지가 생겨나고 도로공사와 어업을 통해 중국인은 세네갈 전역에 퍼져 나가는 상태이다.

그 밖의 일본, 중앙아시아, 유럽 등지의 중국인 신이민자들을 위한 선교사가 크게 필요하지만 지면 관계상 본장에서 상술하지 못하였다.


화인교회와 협력

▶화인교회와 협력 유형
한국인 선교사가 해외 중화권에서 사역할 수 있는 유형을 대략 아래와 같이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1) 화인교회 담임: 화인교회의 청빙을 받아 담임 사역자로 섬길 수 있다. 교회의 지도자들의 특성을 사전에 잘 알아야 하고, 또한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교회인자 잘 분별하여야 한다. 주변 지도자들과 성도들이 그 교회에 대하여 어떻게 평가하는지 잘 알아보아야 한다. 특히 한 교회에서의 목회자의 평균 사역 기간이 2년밖에 안 되는 북미지역에서 더욱 유의하여야 한다. 또한 자신의 교회 적합도를 알기 위해 처음부터 교회를 담임하기 보다는 일정 기간 교회를 섬기며 교회에 대하여 살펴보는 기간도 필요하다.
2) 화인교회 협력선교사: 화인교회의 담임목사가 리스크가 높은 직책임을 고려할 때, 행정적 부담이 비교적 적은 말씀 사역만을 감당하는 협력선교사로 섬기는 것이 장기 사역을 위해 좋은 방법이다. 
3) 화인교회와 협력하여 새로운 사역 개발(교회개척, 훈련원, 신학교): 기존의 화인교회나 기관과 협력하여 선교사 중심으로 새로운 사역을 개발하는 것도 갈등 없이 장기 사역을 할 수 있는 방법일 수 있다.
4) 독자적으로 화인교회를 개척한 뒤 화인교회나 단체와 협력: 화인권과 무관하게 화인교회나 기관을 개척한 뒤 선교사의 리더십 아래 화인권과 협력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이 경우는 일반적으로 현지에 화인권교회가 없어서 선교사가 개척한 경우가 될 것이다. 
5) 화인교회 순회사역: 많은 화인교회는 사역자가 부족하기 때문에 교단과 협력하여 순회 사역을 할 수 있을 것이다. 
6) 한인교회나 한인선교사와 협력하여 교회개척 후 화인권과 협력: 한인 디아스포라교회나 현지 한인선교사를 통하여 비자발급, 건물 사역, 현지 적응, 초기 사역 협력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 후에 화인권과 협력하여 사역을 확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화인권 사역 시 유의할 점들
1) 사역보다는 신뢰관계 형성에 더 노력하여야 한다. 일단 신뢰가 형성되면 사역은 쉽게 진행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2) 카리스마적 지도자보다는 겸손하고 온유한 목회자가 화인권과 협력하는 데 더 쉽게 적응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화인 목회자들은 참으로 겸손하고 온유하고 매우 평범해 보이지만 지혜롭고 성실한 분들이 많이 있다. 
3) 성도들의 잘못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덮으며 끌어안을 때 지도자로 인정받고 존경을 받을 수 있다. 한국교회의 치리 개념보다 용서와 사랑, 관용이 잘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4) 섬기는 목회자로 다시 태어날 수 있어야 화인교회에서 목회에 성공할 수 있다. 많은 화인교회(약 1/3)는 지방교회의 영향이 많아서 목사를 한국처럼 존중하지는 않는 경향이 많다. 
5) 화인교회는 성령과 성령의 사역에 대하여 매우 근본주의적인 인식을 가진 교회들이 많고 매우 민감하다. 따라서 자신의 신학적 성향과 협력하고자 하는 교회나 기관의 입장이 같은가를 먼저 잘 확인하여 접근하여야 한다. 
6) 화인교회들은 독립교회들이 많이 있다. 그래서 한국처럼 교단의 구분이 강하지 않고 초교파적으로 협력을 잘하는 편이다(Singapore Bible College와 대만의 華神은 초교파임). 한국교회처럼 교단의 특색이 있는 교리를 크게 강조하지 않아서 그런 경향이 있어 보인다. 선교사들이 복음주의적 본질을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신학적 폭을 넓힐 필요가 있다.


나가는 말
중국선교에서 화인 디아스포라선교로 전환하는 시기에서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선교사를 가장 필요로 하는 곳이 재배치의 우선적 고려 대상이어야 하며 지역에 대한 사역 현황을 잘 파악하여 순조롭게 정착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한 선교지에서 일정 기간 사역을 한 뒤 새로운 나라로 선교지를 옮기어 현지 문화와 언어를 새롭게 익히고 사역을 시작하기 위하여 선교사는 새로운 헌신이 필요하다. 재배치를 준비하는 자들은 대개 50대 전후이며 새로운 언어를 배워야 하는 부담도 많고, 자녀들과 헤어져야 하는 어려움도 있을 것이다.

새로운 선교지에는 이미 동료들이 선임 선교사로 자리를 잡고 안정적인 사역을 하고 있으나, 자신은 신임 선교사로서 저들의 안내와 지도를 받아야 하는 부담도 있을 것이다. 또한 생활과 사역적인 측면에서 이미 형성된 특성들이 새로운 사역지에서 재조정될 필요도 있다. 이전 선교지의 경험이 반드시 새로운 사역지에서 성공적인 사역을 보장하는 것도 아닐 수도 있다. 

화인 디아스포라 사역을 계속할 경우, 화인 디아스포라들은 국내에서 경험한 자들과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고 해도 문화가 많이 다르기 때문에 새로운 이해와 접근법이 필요하다. 따라서 재배치를 위한 훈련원도 필요하다. 화인 디아스포라의 2/3가 동남아에 거주하므로 동남아 화인들과 동역이 중요하다. 또한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의 영향으로 계속하여 많은 중국의 자본과 기술 그리고 사람들이 동남아 일대로 진출하고 있으므로 많은 선교사가 필요하다. 아프리카에도 중국의 진출이 매우 활발하여 많은 중국인이 이주하고 있으며 사역자가 없는 지역이 많다. 화인 디아스포라가 있는 곳에는 어디든지 선교사가 필요한 형편이다. 


미주
1) Philip A. Kuhn, “Why China Historians Should Study the Chinese Diaspora, and Vice-versa,” Journal of Chinese Overseas, Vol 2, no. 2 (November 2006), pp.164,163-172.
2) Philip A. Kuhn, “Why China Historians Should Study the Chinese Diaspora, and Vice-versa,” Journal of Chinese Overseas, Vol 2, no. 2 (November 2006), 165.
3) Philip A. Kuhn, “Why China Historians Should Study the Chinese Diaspora, and Vice-versa,” Journal of Chinese Overseas, Vol 2, no. 2 (November 2006), 165. 
4) 일반적으로 해외 화인은 중국이나 해외에서 출생하고 중국의 혈통을 소유한 자로서 중화지역인 중국 대륙, 타이완, 홍콩, 마카오 등의 지역 외에서 사는 자를 말한다. 
5) Dudley L Poston Jr and Juyin Helen Wong, The Chinese diaspora: The current distribution of the overseas Chinese population, Chinese Journal of Sociology 2016, 2(3) 2016, 363.
6) GoInt’l, 49호 2018.1-2, 세계 화인교회에 관한 정보를 알려면 다음의 사이트를 참고하기 바람 https://church.oursweb.net/ 
7) Enoch Wan, Mission among the Chinese Diaspora: A Case Study of Migration and Mission Missiology: An International Review, 31(1), January 2003, 36.
8) 林安國 亞洲教會情況資料, https://www.ct.org.tw/category/news/
9) Hong Yu, China’s Belt and Road Initiative and Its Implications for Southeast Asia, Asia Policy, Number12, July 2017, 478.
10) United States Government Accountability Office, SOUTHEAST ASIA: TRENDS IN U.S. AND CHINESE ECONOMIC ENGAGEMENT, Current Politics and Economics of South, 25(4). 
11) Hong Yu, China’s Belt and Road Initiative and Its Implications for Southeast Asia, 120.
12) Tran Thi Hai Yen, The New Chinese Immigrations in Laos Present-day, International Relations and Diplomacy, December 2017, 5(12), p729. 
13) 김상훈, ‘일대일로’ 바람 분 캄보디아 소도시 中 카지노가 점령,’ 연합뉴스, 2018. 10. 20. https://www.msn.com/ko-kr/news/national/ 
14) https://en.wikipedia.org/wiki/Chinese_Cambodian 
16) Nicholas Farrelly and Stephanie Olinga-Shannon, Establishing Contemporary Chinese Life in Myanmar, Trends in Southeast Asia, (15),2015, 8. 
17) Malaysia Demographics Profile 2018. https://www.indexmundi.com/malaysia/ demographics_profile.html 
18) 원주민을 bumiputra(땅의 아들)라고 하며, 기독교인은 말레이인이 아닌 토착민들로서 동말레이시아 사바와 사라와 주의 토착민 중의 신자를 말한다.
19) Vietnam Population2018, World Population Review, http://worldpopulationreview.com/countries/vietnam-population/ 
20) https://omf.org/asia/vietnam/about-vietnam/ 
21) 中華基督教網路發展協會 https://church.oursweb.net/slocation.php 
22) 中國昆明-越南老街-河內-海防-廣寧(下龍,芒街), 中國南寧-越南諒山-河內-海防-廣寧
23) 미등록자를 포함하면 7천만 명 정도라고 한다. http://worldpopulationreview.com/countries/thailand-population/ 
24) Alexander Franco, Book Review of “History of the Thai-Chinese,” ASEAN Journal of Management & Innovation, 2(2),101. 
25) Yos Santasmbat, Chinese Capitalism and Economic Integration in Southeast, Asian Trends in Southeast Asia, 2018, 7.
26) AGNES NGOMA LESLIE, China-Africa Relations: Theoretical and Practical Perspectives on African “Migrants” in China, African Studies Quarterly, 17(4), February 2018, 1. 
27) M. Giovanna Merliy, Ashton Verderyz, Ted Mouw§ and Jing Li, Sampling migrants from their social networks: The demography and social organization of Chinese migrants in Dar es Salaam, Tanzania, MIGRATION STUDIES, 4(2), 2016: 182–214.
28) M. Giovanna Merliy, Ashton Verderyz, Ted Mouw§ and Jing Li, Sampling migrants from their social networks: The demography and social organization of Chinese migrants in Dar es Salaam, Tanzania, 184. 
29) M. Giovanna Merliy, Ashton Verderyz, Ted Mouw§ and Jing Li, Sampling migrants from their social networks: The demography and social organization of Chinese migrants in Dar es Salaam, Tanzania, 186.
30) Grant, S. & Niemandt, C.J.P., ‘The Chinese House Church Movement in South Africa’, Bulletin for Christian Scholarship, 80(2) 2015, 182.
31) SIM 海外華人事工特訊 Chinese Diaspora Ministry Newsletter, 2017年 第二期, 7-8. 
32) 미국 소재 Pew Research Center의 통계 재인용, 海外華人事工特訊
33) SIM 海外華人事工特訊.






▩ 사진 출처 | 픽사베이
▩ 강창섭 |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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