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면서 오랫동안 선교는 선교사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져 왔다. 이것은 선교사들의 잘못이라기보다는 많은 교회의 오해에 기인한다고 생각된다. 선교동원가로 교회를 방문하면서 늘 듣는 이야기는 요즘 선교가 잘 되느냐, 요즘 선교사 파송이 잘 되느냐이다. 선교가 잘 된다는 것을 선교사들이 얼마나 많이 파송되느냐로 판단하는 교회의 이런 모습은 선교는 선교사가 한다는 전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선교는 선교사들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생각은 선교에 대한 성경적 이해에도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사도 바울은 선교사였고, 따라서 선교는 사도 바울에 의해서 이루어졌다고 하는 선입견을 갖는 사람들에게 성경은 제한적으로 읽히게 되어 있다. 사도 바울이 훌륭한 선교사였으며 그로 인해 이방인들이 주님께 돌아온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성경은 사도 바울이 한 선교가 큰 선교의 그림 중에 나오는 한 부분임을 알려준다.
지난 200년 동안 선구교회에 의해서 진행된 선교는 많은 지역에서 선교사들에 의해 진행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당시 선교사들은 열악한 선교지에서 복음을 전하는 일에 헌신했다. 하지만 그 시절의 선교사들은 대부분 자신들이 지배하고 있는 지역으로 갔기 때문에 비자를 받는 것과 같은 선교지 진입에는 많은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오늘날 선교사의 사역은 지구상 상당히 많은 지역에서 선교사 비자를 받지 못해 선교지에 진입하는 데에 상당한 제한을 받고 있다.
이 글을 통해서 필자는 풀뿌리 선교라는 다소 생소한 용어를 소개하려고 한다 풀뿌리 선교란 선교사라는 정체성을 갖지 않고 자기가 있는 곳에서 선교를 담당하는 타문화 복음전파를 말한다. 풀뿌리 선교라는 단어는 생경하게 들리지만 그렇다고 해서 풀뿌리 선교가 최근에 갑자기 튀어나온 것은 아니다. 이미 사도행전에도 등장하고 초대교회와 근대 심지어는 현재도 진행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풀뿌리 선교의 의미와 성경적 근거 그리고 풀뿌리 선교의 역사적인 예들을 설명하고 선교사들의 진입이 제한을 받는 오늘날 선교적 환경에서 풀뿌리 선교가 어떻게 대안이 될 수 있는가를 설명하려고 한다.
1. 풀뿌리 선교의 정의 풀뿌리 선교란 선교사라는 타이틀과 상관없이 자기의 상황 속에서 자발적으로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을 실천하는 모든 선교적 행동을 말한다. 풀뿌리 선교의 전제는 다음과 같다.
(1) 선교사가 아니라는 정체성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많은 사람들은 선교는 선교사들이 한다고 생각한다. 풀뿌리 선교에는 선교사들에 의해서 진행되는 선교는 포함하지 않는다. 풀뿌리 선교란 선교사라는 타이틀을 지니지 않은 성도들에 의해서 진행되는 선교만을 말하는 것이다.
(2) 자기의 상황 속에서 풀뿌리 선교에서 가장 중요한 전제는 자기가 있는 상황 속에서 선교가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즉 풀뿌리 선교란 자기가 속해 있는 사회 안에 있는 다른 문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같은 직장 같은 캠퍼스, 자기가 거주하는 동네에서 수시로 만나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고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것을 풀뿌리 선교라고 한다. 따라서 자신이 속한 상황을 넘어서 진행되는 단기 선교, 여행 등은 풀뿌리 선교가 아니다.
(3) 자발적으로 풀뿌리 선교는 자발적으로 이루어진다. 이 말의 의미는 선교단체에 속한다든지 어느 그룹에서 하는 선교사역의 일부로 진행되지 않음을 의미한다. 즉 풀뿌리 선교는 누군가에 의해서 강제되지 않은 자발적 동기에 의해서 진행된다는 뜻이다.
(4) 삶의 목표, 지상명령의 성취 풀뿌리 선교를 담당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삶의 목표를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을 성취하는 것으로 정한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무엇이든 희생하려는 헌신적인 삶을 살아간다. 그러한 헌신 안에는 복음을 전하려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은 물론이고 그들의 언어와 문화와 종교를 배우고 연구하려는 열정을 포함한다.
2. 풀뿌리 선교의 유사한 개념들 풀뿌리 선교와 유사하지만 다른 개념들은 다음과 같다.
(1) 직업선교(missions with vocations) 선교사들이 선교지에서 직업을 가지고 선교하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직업선교사라는 의미는 다양하다. 필자는 직업선교를 다섯 가지 타입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다음의 표를 통해 다섯 가지 타입을 명확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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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타입 |
2 타입 |
3 타입 |
4 타입 |
5 타입 |
타이틀 |
선교사 |
직업을 가진 선교사 |
선교사가 된 직업인 |
해외에 있는 직업인 |
국내에 있는 직업인 |
소속단체 |
유 |
유 |
유 |
무 |
무 |
사역적 재정적 책무 |
유 |
유 |
유 |
무 |
무 |
언어와 문화 이해 |
높다 |
높다 |
높다 |
낮다 |
전무 |
후원 |
필요 |
필요 |
대부분 필요 |
필요 없음 |
필요 없음 |
선교지 비자 |
선교사 비자 |
비자 직업 |
비자 직업 |
비자 직업 |
없음 |
사역의 기대 |
높다 |
높다 |
상대적 |
낮다 |
낮다 |
선교지의 선택 |
의도적 |
의도적 |
중간 |
비의도적 |
없음 |
1타입은 전통적인 선교사를 의미한다. 이들은 선교사라는 정체성만을 가지고 있었다. 1타입의 선교사들은 대부분 직업이 없었으며, 설령 직업이 있었다 해도 선교사라고 하는 정체성만을 유지한다. 2타입은 대부분 선교지에서 선교사 비자를 가질 수 없어서 직업을 갖게 되는 경우다. 이들은 본국에서는 선교사라고 하지만 선교지에서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는 두 가지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2타입의 경우 대부분 직업적 전문성이 낮거나 그 직업을 실천하지 않는다. 2타입의 선교사들은 직업적 전문성은 낮지만 사역적인 전문성은 높은 편이다.
3타입은 선교지에 갈 때 실제 직업을 가지고 가는 선교사들을 말한다. 이들은 직업적 전문성이 높고 현지에서 그 직업을 실천한다. 4타입은 선교사가 아니며 현지에 일반인처럼 해외에서 취업을 한 경우를 말한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을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을 말한다. 5타입은 국내에 있으면서 해외에서 온 이주민들에게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그리스도인들을 말한다.
풀뿌리 선교는 위에서 설명하는 다섯 가지 타입 가운데 4타입과 5타입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2) 전문인선교(missions by professionals) 직업을 가지고 선교지에 가는 선교사들 가운데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나 직업적 전문성이 매우 높은 선교사들을 전문인선교사라고 부르며, 이들이 하는 선교사역을 전문인선교사역이라고 한다. 전문직이라고 할 때는 의사나 교수처럼 특정 직업에 종사하기 위해서 소정의 학업이나 훈련을 필요로 하는 경우를 말한다. 그렇다고 해서 특정 직업군에 있는 사람만을 전문인선교사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일반 직업의 경우에도 그 분야를 사람들을 가르치거나 훈련하는 사람들은 전문인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선교지에서 한국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을 전문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한국 요리 강사는 전문인이라고 할 수 있다. 전문인선교사들은 개방된 일반 선교지보다 창의적 접근지역에 봉사 형태로 가게 된다.
(3) 평신도선교(missions by lay people) 평신도라는 용어는 사제나 목사와 같은 성직자(clergy)에 대응되는 용어다. 이런 용어는 가톨릭교회에서 사용하는 것으로 만인제사장을 기반으로 하는 개신교에는 어울리는 용어가 아니다. 대부분 신학을 하지 않고 목사로 안수받지 않은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다. 풀뿌리 선교는 대부분 평신도들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평신도들이 하는 선교사역을 모두 풀뿌리 선교라고 할 수는 없다. 만약 평신도들이 자신의 상황에서 벗어나 다른 지역에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선교를 하거나 교회나 어떤 단체의 지원 등을 배경으로 선교한다면 그것은 풀뿌리 선교라고 할 수 없다.
(4) 텐트메이커(tent-making missions) 텐트메이커란 사도행전 18장에서 사도 바울이 고린도에 머물 때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와 함께 천막을 만들었다는 것에 착안하여 1960년대부터 등장한 용어다. 따라서 텐트메이커란 직업을 가지고 선교하는 모든 선교를 지칭한다고 할 수 있다. 앞에서 설명한 직업선교의 2타입에서 5타입까지를 모두 일컫는다. 미국에서 시작된 이 용어가 한국 교회에서 소개될 때 자비량선교로 소개되었는데 자비량선교는 직업을 통해서 소득이 발생되고 따라서 교회나 후원자들의 후원이 필요 없는 선교를 말한다. 텐트메이커 가운데는 2타입처럼 직업은 있지만 그 직업을 통한 소득이 없거나 있어도 여전히 후원이 필요한 경우가 있는데 이럴 때는 자비량선교라고 할 수 없다. 텐트메이커들 가운데 풀뿌리 선교를 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3. 풀뿌리 선교의 성경적 근거 사도행전을 살펴보면 선교는 사도행전 13장에서 안디옥교회가 바울과 바나바를 이방인들에게 파송하기 이전부터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1) 사도행전 8장과 11장에는 스데반의 순교로 시작된 핍박을 피해서 사마리아로 간 사람들과 안디옥으로 간 흩어진 사람들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이들은 선교라는 차원에서 다시 조명될 필요가 있다.
(1) 흩어진 사람들 “19그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20그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21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행 11:19-21).
특별히 사도행전 11장 20절에서 안디옥에 갔던 흩어진 사람들은 처음에는 유대인들에게만 복음을 전하다가 헬라인들에게도 주 예수를 전파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선교를 타문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때 이 흩어진 사람들은 선교를 감당했다고 말할 수 있다. 특히 11장 20절에서 흩어진 사람들이 헬라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사용한 ‘주(kyrios)’라는 용어는 당시 헬라의 신들에게 사용되었던 경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복음을 전파하는 대상에 따라서 그들의 문화에 적절한 사역을 했다고 할 수 있다.2)
(2) 바나바의 안디옥 파송 그 후 안디옥에서 헬라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였다는 소식을 듣고 예루살렘교회가 바나바를 안디옥으로 파송하게 된다.
“22예루살렘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23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하니 24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25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26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행 11:22-26).
흥미로운 것은 예루살렘교회가 무명의 바나바를 안디옥으로 파송했다는 사실이다. 바나바는 사도행전 4장 36절의 기록대로라면 구브로에서 태어난 유대인 디아스포라다. 그가 예루살렘에서 파송을 받아 안디옥에 갔을 때 ‘하나님의 은혜’를 보았다고 고백한 것은 하나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는 헬라인들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선교사의 눈을 가지고 있었다. 더욱이 바나바는 안디옥에서 새로운 사역의 기회들이 생겼을 때 자신을 파송한 예루살렘교회에 추가로 사역자를 보내달라고 한 것이 아니라 다소 출신의 디아스포라인 사울을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헬라인 성도들을 위한 사역을 함께하게 된다.
(3) 바나바와 바울의 사역 팀 그리고 안디옥교회는 얼마 지난 후 바나바와 바울을 다른 지역에 복음을 전하도록 재파송 하기로 한다.
“1안디옥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2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3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행 13:1-3).
여기서 필자가 재파송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바나바의 경우는 사도행전 11장 22절에 기록된 것처럼 이미 ‘예루살렘교회가 안디옥교회에서 이방인들이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바나바를 보냈다라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기록이야말로 예루살렘교회가 공식적으로 바나바를 파송했음을 의미한다. 사울의 경우도 사도행전 11장 27절부터 30절을 보면 바나바와 함께 예루살렘에 가서 사도들과 새로운 차원에서 교류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일이 있은 후 안디옥교회는 바나바와 사울을 새롭게 파송한 것이므로 필자는 재파송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싶다.
바나바와 바울이 안디옥을 중심으로 해서 선교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동안 흩어진 사람들은 사라져버린 것이 아니다. 그들은 사도행전 8장 4절에 기록된 것처럼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했을 것이다. 이러한 흔적은 사도행전 11장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런 풀뿌리 선교사역을 담당했던 흩어진 사람들의 모습은 계속해서 18장의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 20장에 가이사랴에서 계속 전도자로서의 삶을 살고 있던 빌립 집사, 21장의 오래된 제자 나손 그리고 바울이 로마에 도착했을 형제들이 바울을 영접했다. 실제로 흩어진 사람들에 의해서 이루어진 풀뿌리 사역은 사도 바울의 사역지보다 더 넓은 곳에서 이루어졌다. 엄밀하게 말해서 사도 바울은 시리아, 길리기아, 갈라디아, 아시아 그리고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방의 한정된 지역에서만 사역했다.
어떤 이들은 사도 바울의 사역이 예루살렘에서부터 스페인까지 이른다고 말하지만 그런 근거는 성경에 나와 있지 않다. 심지어 사도 바울은 사도행전 28장에서 피고인의 자격으로 로마 군인들의 호송 하에 로마에 도착하게 되는데, 사도 바울이 로마에 도착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로마에 있는 성도들이 그를 영접하러 나오는 기록이 있다. 이것은 사도 바울이 로마에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니라 그 전에 이미 로마에 복음을 전한 사람들이 있다는 증거다. 사도 바울이 로마에 가기 전에 쓴 로마서에도 로마교회 성도들의 이름이 많이 열거되고 있음은 사도 바울의 로마 방문 이전에 이미 로마에 교회가 존재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필자는 흩어진 사람들에 의해 로마에도 복음이 전해졌을 것이라 확신한다.
4. 두 모델의 비교 위에서 언급한 흩어진 사람들에 의해서 이루어진 선교 모델을 필자는 풀뿌리 선교 모델이라고 하고 바울과 바나바와 같은 사도들에 의해서 이루어진 선교 모델을 바-바(바울과 바나바의 이름 따서 필자가 붙여 본 것임) 선교 모델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렇다면 아마도 다음과 같은 표로 설명이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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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뿌리 선교 |
바-바 팀 선교 |
선교의 주체 |
모든 성도(사도 이외) |
사도 |
선교지역 |
모든 지역 |
제한된 지역의 전략적 선택 |
조직 |
자유로움 |
팀 형태 |
재정 후원 |
후원이 필요 없음 |
후원이 필요함 |
파송교회 |
없음 |
안디옥교회 |
선교전략 |
자유로움 |
팀에서 세움 |
현지의 수용성 |
비교적 반발이 적음 |
반발이 많음 |
(1) 선교의 주체 우선 선교의 주체를 보면 풀뿌리 선교는 특정한 사람들만이 한 것이 아니라 당시 그리스도를 따르는 많은 사람이 선교를 감당한 것으로 보인다. 스데반의 죽음으로 인한 핍박이 왔을 때 예루살렘에서 사도 외에는 모두 흩어졌는데 그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했다고 말한다. 한편 바-바 모델은 교회에서 인정받은 사도들에 의해서 행해졌다.
(2) 사역한 지역 풀뿌리 선교를 담당한 성도들은 로마 전역으로 흩어져 사역했다. 사도행전 8장 4절은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했다”고 전하고 있다. 이들이 사역한 지역은 한정되어 있지 않다. 이들은 예루살렘에서 시작해서 유대와 사마리아와 모든 지역으로 흩어져 갔다. 하지만 바울과 바나바가 사역한 지역은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아시아와 아가야, 마게도냐지역에 한정되어 있다.
(3) 사역 팀 조직 풀뿌리 선교를 담당한 성도들은 엄밀한 의미에서 사역 팀이 없었다. 하지만 바울과 바나바와 같은 사도는 언제나 팀으로 사역했다. 바울은 처음에 바나바와 사역했지만 사도행전 15장에서 바나바와 헤어진 뒤에는 실라와 디모데, 그 후에는 더 많은 사람들과 팀으로 움직였다. 하지만 풀뿌리 선교사들은 상황에 따라서 팀으로, 그렇지 않은 경우는 독립적으로 사역했다.
(4) 재정후원 풀뿌리 선교를 한 사람들은 자신의 재정을 자신들의 직업을 통해 충당했다. 따라서 풀뿌리 선교는 글자 그대로 자비량선교의 전형이라고 하겠다. 하지만 바-바 모델의 경우는 교회나 개인의 후원에 의존한 경우가 많았다. 많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사도 바울에 대한 오해 가운데 하나는 사도 바울이 텐트메이커였다는 점이다. 필자는 사도 바울이 텐트를 만드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고, 가끔씩 기술을 이용해서 사역에 필요한 비용을 충당해 가며 선교를 감당했다 데는 동의한다. 하지만 텐트 만드는 일을 사도 바울이 전업으로 했다고 하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유대인들의 전통 속에는 고관대작의 자녀라도 반드시 세속적 직업을 하나는 가지고 살 수 있도록 했다. 아마도 오랫동안 타민족의 지배를 받으며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태에서 매우 현명한 가르침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사도 바울도 그렇게 했을 것은 이해가 가는 장면이다 그리고 자신의 직업이 필요한 때 얼마든지 그것으로 전도에 활용하거나 혹은 재정을 충당하는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도 바울이 텐트 만드는 일을 전업으로 했다는 증거는 없다.
어떤 사람들은 사도 바울이 후원을 받지 않고 직업을 가지고 자비량으로 선교를 했다고 하지만 필자는 개인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성경을 보면 오히려 사도 바울은 교회들로부터 재정후원을 받았다고 하는 증거가 더 많다. 우리가 잘 아는 고린도전서 9장, 고린도후서 12장 그리고 빌립보서 4장에서 사도 바울은 노골적으로 재정 이야기를 한다. 성경에 나오는 이런 표현들이 사도 바울이 텐트만 계속 만드는 자비량선교사였고, 교회들이나 성도들의 후원이 필요 없었다고 말하는 것에 대한 중요한 반증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그는 사도로서 후원을 받으며 전적으로 사역에 전념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도행전 8장부터 나오는 흩어진 사람들은 재정과 관련해서 다르다. 이들은 누구에게도 이런 재정적 요청을 하지 않았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다. 그들은 아마도 가는 곳마다 계속 텐트를 만들었을 것이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에게는 텐트를 만드는 것이 오히려 선교사역을 하는 데 더 효과적일 수도 있다. 단순한 재정적 필요를 충족하는 것만이 아니라 사람들과의 접촉에서도 효과적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5) 현지의 수용성 풀뿌리 선교를 담당한 성도들은 선교지에서 로우키(low-key)로 지냈다. 그들은 현지인들을 동네 이웃으로 시장에서 자신들처럼 물건을 사고파는 사람으로 만났다. 그렇다고 해서 풀뿌리 선교를 담당했던 사람들의 사역적 수준이 낮았다고 할 수 없다. 풀뿌리 선교를 대표한다고 볼 수 있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의 경우 에베소에 머무는 동안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사역자 아볼로를 데려다가 성경을 가르치고 그를 고린도교회의 사역자로 파송하는 일을 감당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반면 바-바선교 팀은 자신들의 신앙을 전파하는 사람들로 이해했다. 그들은 교회에서 교사, 선지자, 사도라는 직책으로 불렸다. 풀뿌리 선교를 하던 성도들과는 대조적으로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팔며 일반 사람들과 만나기보다는 종교 지도자들과 논쟁을 하기도 했다. 따라서 때때로 적대적인 군중들과 마주해야만 했다. 사도 바울 팀은 그들이 전한 복음 때문에 여러 번 소요사태를 마주해야만 했다.
5. 역사적 풀뿌리 선교 모델
(1) 초대교회의 선교 선교의 역사를 보아도 선교가 진행되는 모든 형태를 풀뿌리 유형과 바-바 유형으로 나누어서 볼 수 있다. 일찍이 F. F. Bruce는 2세기 말 초대 영국 선교사역에서 평신도의 활동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영국에 기독교가 전파된 것은 평범한 사람들 곧 고올(Gaul) 지방에서 온 상인들이었다.” 이들은 날마다 사업장을 통해서 선교의 역사를 이룰 수 있었다.3) 이들이야말로 이 글에서 말하는 풀뿌리 모델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2) 모라비안 교도들의 선교 풀뿌리의 유형은 모라비안 교도들이나 바젤선교회 등의 모습에 잘 나타나 있다. 모라비안 교도들은 선교사들을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형태로 파송한다면 세계선교를 이룰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하여 의도적으로 직업을 가지고 생계 문제를 해결해 가면서 선교사역을 감당하는 모델을 개발하고 이를 실천해 나갔다.4)
1732년에서 1760년 사이에 무려 226명의 모라비안 선교사들이 10여 개국으로 파송되었다. 모라비안 선교사들은 세인트 크로이섬, 수리남, 남아프리카, 북미, 자메이카, 엔티가섬 등으로 나갔다. 그들은 에스키모인들과 교역을 하여 남은 이익으로 선교사역을 하기도 했다. 모라비안 교도들은 후에 바젤선교회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는데 이들은 전 세계적으로 명성을 날리는 회사의 운영을 통하여 그리스도인의 삶을 보여주면서 선교를 한 풀뿌리 선교운동의 대표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다.
(3) 근대의 풀뿌리 선교 선교의 황금 세기라고 불리는 19세기에도 선교사들만이 선교지에서 그리스도를 증거 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19세기 중반에 인도네시아에서 안팅(Anthing)이라는 사람은 당시 인도네시아를 지배하고 있던 네덜란드 총독부의 관리로 왔지만 서구식 기독교가 아니라 인도네시아 문화에 뿌리박은 기독교를 심기 위해 자신의 재산을 다 탕진하여 자바와 순다의 토착적 교회를 위해 노력했다.
1871년에 일본 구마모토에 간 제인스 대위(Captain Janes)는 선교사로 간 것이 아니라 그 지방의 다이묘의 군인들에게 신식 군사기술을 가르치러 갔다. 하지만 제인스 대위는 영어와 성경이 서구의 근본임을 강조하면서 군사기술과 함께 성경을 가르쳤다. 1876년 1월 35명의 사무라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충성하겠다는 맹세를 하게 된다. 이때 그리스도에게만 충성하기로 한 그리스도인 사무라이들을 구마모토 밴드(Kumamoto Band)라 부른다. 이들은 이후 신문기자, 문인, 교수, 목사 등으로 활약하며 일본 기독교계는 물론이요, 일본 근대화에 지대한 공헌을 하게 된다.5)
1876년 홋카이도에 홋카이도농업대학이 생기고 미국의 농업학자인 클라크 박사(Dr. Clark)가 교수로 가게 된다. 그는 1회 입학생 15명에게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는데 이때 그리스도를 믿기로 한 사람들을 일본에서는 홋카이도 밴드(Hokkaido Band)라고 부른다. 이들 역시 이후 일본 교계에 중요한 기여를 하게 된다.6)
6. 대안으로서 풀뿌리 선교
(1) 창의적 접근지역의 확대 우선 상당히 많은 선교지에 선교사들이 더 이상 쉽게 입국할 수 없게 되었다. 몇 십년 전에도 선교지가 선교사를 환영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 당시에는 선교사를 파송하는 나라들이 영국, 프랑스, 독일 같이 다른 나라를 지배하던 세계 열강이었기에 선교지 진입이 어렵지는 않았다. 그 당시에 피선교지 정부가 선교사의 자국 체류를 싫어해도 선교사를 쫓아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거나 많은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하지만 이제 선교사를 파송한 나라의 정부가 무서워서 선교사를 쫓아내지 못하거나 선교사에게 비자를 주는 나라는 존재하지 않는다. 더욱이 이슬람 국가들이나 여전히 공산 정부가 있는 나라에서는 선교사라고 하는 신분으로 입국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이렇게 선교사 비자를 받고 들어갈 수 없는 지역을 창의적 접근지역이라 부르는데 이런 지역은 시간이 지날수록 확대되고 있다. 예를 들어 인도는 1980년 이후 새로운 선교사 비자를 발급하지 않고 있다.
(2) 개방적 접근지역의 접촉점의 한계 창의적 접근지역에 대응되는 나라들, 즉 정부로부터 정식으로 선교사 비자를 받고 들어갈 수 있는 나라들을 개방적 접근지역이라고 부르는데, 우리가 개방된 나라라고 부르는 일본, 태국, 대만 같은 곳에서도 사실 최근의 선교적 상황은 창의적 접근지역과 그렇게 다르지 않다. 개방된 접근지역에 들어갈 때 선교사들이 정식으로 선교사 비자를 받아 가기는 하지만 100년 전처럼 혹은 50년 전처럼 선교사라고 하는 외국인에게 현지인들은 더 이상 관심을 갖지 않는다. 이런 개방된 지역에서 선교사들은 다시 현지인들과의 새로운 접촉점을 마련하기 위해서 창의적인 노력을 해야만 한다. 태국이나 일본 같은 지역에서 교회를 개척한다 해도 50년 혹은 60년 전처럼 사람들을 교회에 모으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선교사들은 전도 이전에 태권도를 가르치든지 기타를 가르치든지 영어를 가르치든지 혹은 한국 요리를 가르치면서 현지인들과 접촉점을 만들려고 애쓴다.
(3) 선교비의 증가 전통적인 선교사는 선교지에 갈 때 일반적으로 매우 높은 비용의 지출을 전제로 한다. 선교본부를 운영해야 하고, 여러 가지 멤버케어를 위해서 들어가는 비용을 포함하면 선교사들이 모금하는 액수는 높아지게 된다. 이런 재정적 운영 형태가 되어서는 높은 선교비를 모금할 수 있는 한정된 숫자의 선교사밖에는 파송하기가 어렵다. 한국교회가 2만 명의 선교사를 위해서 지출하는 비용이 줄잡아 연간 5억불가량 된다. 이런 상황에서 선교사를 추가로 더 파송하는 것은 그만큼 한국교회의 재정적 부담을 더 증가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풀뿌리 선교의 경우는 스스로가 재원을 조달함으로 재정후원을 받아야 하는 부담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4) 이슬람선교에서 배워야 할 교훈 필자가 인도네시아에서 교수 사역을 할 때 한 세미나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그 세미나에서는 인도네시아에 어떻게 이슬람이 전파될 수 있었는가에 대한 논의를 하고 있었다. 세 가지 강력한 가설이 있었는데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아라비아의 상인들이 이슬람 신앙을 가지고 왔을 것이다. 둘째, 인도의 상인들이 이슬람 신앙을 가지고 왔을 것이다. 셋째, 중국의 상인들이 이슬람 신앙을 가지고 왔을 것이다.
필자에게 있어서 가장 충격적인 것은 이 세 가지 가설 속에 나타난 공통점이었다. 이들이 모두 상인들이라고 하는 점이다. 이러한 이슬람의 선교의 모델이야말로 사도행전에 나타난 풀뿌리 선교의 모습이 아닌가.
7. 풀뿌리 선교의 회복을 위한 제안 한국교회들이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선교사 중심의 선교에서 흩어진 사람들, 즉 풀뿌리로 선교가 그 운동력을 다시 회복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를 제언한다.
(1) 모든 선교지역을 창의적 접근지역으로 보아야 한다. 창의적 접근지역에 진입할 때는 물론 더 조심을 해야 하지만 개방된 지역이라고 하더라도 종교다원주의 등의 영향으로 기독교의 고자세적인 태도에 대해서 냉담하거나 심지어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선교사가 큰 소리 치며 다니는 시대는 지나갔다는 인식을 빨리 해야 한다. 이제 풀뿌리 선교처럼 로우키로 현지인들에게 다가가야 한다.
(2) 모든 성도들이 선교적으로 사는 것이 준비되어야 한다. 풀뿌리 선교를 담당하는 성도들은 공적으로 파송되는 선교사 못지않게 선교적 자질을 갖추어야 하며 본국에 있을 때부터 선교적으로 사는 것은 더 중요하다. 풀뿌리 선교를 하려는 비전이 있는 사람이 본국에서 그런 직업을 갖고 자기의 상황 속에서 사역을 해본 적이 없다면 선교지에서 선교사역의 열매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풀뿌리 선교를 감당할 성도들은 적어도 본국에서 자신의 직업을 가지고 어떤 형태로든 사역을 감당하는 훈련이 전제되어야 한다.
(3) 약함으로부터의 선교를 배워야 한다. 이제까지 선구선교 그리고 그 선교를 답습하고 있는 한국교회의 선교는 무언가 해 줄 것이 있어야 선교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선교지에 센터를 세우고 교회당을 건설하고 심지어 현지 사역자들의 생활비를 제공하는 것이 선교의 전제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이러기 위해서 선교는 강력한 재정적 지원을 전제로 진행된다는 생각이 교회나 성도들에게 일반적으로 팽배하게 퍼져 있다. 하지만 선교는 강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 초대교회의 흩어진 성도들처럼 연약한 상태에서 진행되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7)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흩어진 사람들은 자신들보다 강대한 로마제국을 향해 나갔다. 그리고 자신들을 핍박하는 헬라인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이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는 복음 이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4) 새롭게 주어진 기회를 잡아야 한다. 두 가지 새로운 기회를 주님이 우리에게 열어 주고 계시는데 하나는, 800만에 달하는 한국 디아스포라를 통한 선교이며, 또 하나는 우리나라에 와 있는 200만 명에 달하는 이주 노동자들에게서 복음을 전할 기회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일하는 필리핀 노동자, 혹은 인도 출신의 노동자들은 선교사라고 말하지 않지만 어려운 환경 속에서 그리스도를 증거 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있다. 이들은 풀뿌리 선교를 실천하고 있다.
(5) 2, 3세계교회에 선교 모델을 제시해야 한다. 오늘날 교회의 중심은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로 이동하고 있다. 하지만 선교의 동력은 불균형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여전히 선교의 인적·물적 자원은 서구교회나 혹은 서구교회를 따라가고 있는 몇몇 국가에서 나오고 있다. 이들 2, 3세계가 지난 200년 동안 서구교회가 해왔던 선교사 중심의 선교를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이제는 저비용의 새로운 선교의 모델이 필요하다. 그 모델은 아마도 풀뿌리 선교 모델이 될 것이다.
나가면서 어떤 사람들에게는 필자가 제안하는 풀뿌리 선교 모델은 새롭게 등장한 선교 모델처럼 보인다. 하지만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풀뿌리 선교 모델은 이미 사도행전에 기록되어 있을 뿐 아니라 지난 2000년 선교역사에 계속 존재하고 있었다. 다만 대부분의 선교역사는 선교사를 중심으로 기록되어 있어서 그동안 풀뿌리 선교에 대한 조명이 약했을 뿐이다. 이제 선교사를 파송하는 전통적 선교 방식은 많은 지역에서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 하지만 풀뿌리 선교를 통해 새로운 선교의 동력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선교적 상황을 우리에게 허락하신다. 새로운 선교적 상황은 새로운 선교 모델을 필요로 한다. 이런 상황에서 풀뿌리 선교 모델은 21세기에 적절한 선교 모델이 될 것이다.
미주 1) 사도행전을 선교적으로 읽으면 두 모델이 보인다. 손창남, 죠이출판부, 2015, pp. 105-149. 2) 기독교의 미래, 이문장, Andrew Walls 외, 청림출판, 2006, p.112. 3) F. F. Bruce, Epistle to the Hebrews: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Grand Rapids: Eerdmans Publishing Companya, 1964), p. 354, from 재인용 전문인 선교론 이수환 저, 한국학술정보, 2009. 4) 퍼스펙티브스, 4판, 랄프 윈터, 한철호 외, 예수전도단, 2010, p 709. 5) 일본 기독교 선교의 역사, 나카무라 사토시, 홍성사, 2016, pp 154-158. 6) ibid, pp 158-164. 7) 정용갑 약함으로부터의 선교, 지혜의 일곱 기둥, 2009, p.78.
※참고 문헌 직업과 선교, 죠이출판사(2016), 손창남. 사도행전을 선교적으로 읽으면 두 모델이 보인다. 죠이출판사(2017), 손창남.
손창남 | OMF 선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