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3일은 중국 정부가 1952년 9월 3일 옌볜(延边)지역을 ‘조선족자치주’로 지정하고 고유의 언어와 풍습을 허용한 이래로 옌볜조선족자치주가 설립된 지 7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조선족에게는 가장 의미 있는 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조선족이 중국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책임을 다하고, 다양한 활동을 하며 여러 방면에 공헌한 것은 사실이다. 1970년대까지 조선족 사회는 농촌 등 마을에 기반을 둔 ‘밀집형 지역공동체’였다. 하지만 개혁개방과 한중수교를 계기로 탈농촌과 도시화, 내륙 도시 및 해외 진출 등의 추세에 속도가 붙으면서 ‘네트워크 공동체’로 바뀌고 있다. 현재 170만 조선족의 중국 내 분포를 보면 베이징(北京) 등 수도권 8만 명, 칭다오(靑島) 등 산둥(山東)성 20만 명, 상하이(上海) 5만 명, 광둥(廣東)성 4만 명 등 동북3성을 제외한 지역에 37만 명이 산다. 해외로도 대거 빠져나가 한국에 70만여 명, 일본에 8만여 명, 미국과 유럽 등 기타 지역에 5만여 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추산된다.1) 필자가 10여 년 전에 집필한 저서 《디아스포라 조선족》에서 이미 밝힌 것처럼 자연스럽게 해외나 한국에 조선족 디아스포라 공동체가 형성된 것이다.
조선족을 생각하면 하나님의 선교에 대한 비전으로 마음이 들뜨다가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아프기도 하다. 자치주 인구 감소로 인해 자치주 해체라는 말이 나오는 상황도 그렇다. 제도적으로는 자치주 지위가 유지가 된다고 하더라고 인구가 감소하는 속도를 보면 자치주의 역할이 지속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 2일자 연합뉴스에 따르면 “2020년 기준으로 옌볜조선족자치주 인구 194만 명 가운데 조선족은 59만7천여 명으로, 비중이 30%가량에 불과하다. 자치주 성립 초기인 1953년에는 70%가량 차지했으나 그 후 70년 동안 절반 이하로 줄어든 것이다. 반면에 30% 이하였던 한족 비중은 66%까지 늘었다. 조선족 비중이 줄어든 가장 큰 원인은 한국으로의 이주다. 현재 재한 조선족은 70만 명을 넘어섰다. 옌볜조선족자치주 내 조선족보다 더 큰 규모”라고 한다. 이렇게 인구수가 점점 줄어들면서 기울어져 가는 미래가 안타까우면서 중국과 한국으로 흩어진 현대판 이산가족의 아픔도 있다.
이제는 조선족에 대해 명확하게 정의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 되었다. 중국 전역에 흩어진 조선족의 자녀들은 중국인학교를 입학하여 한글을 모르기 때문에 조선족이기보다 한족 아이에 가깝다. 한국에 있는 조선족들도 아이들을 한국학교로 보내기에 그들은 조선족이기보다 한국 아이에 더 가깝다. 이러한 현실 가운데 조선족의 밝은 미래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더욱이 옌볜에서는 ‘한글우선폐지정책’이 시행되어 모든 간판은 중국어로 바꿔야 하며 중국어 교육을 우선순위에 두고 있다. 서방과 점점 대립 양상을 보이는 상황에서 사회주의 노선을 걷는 중국으로서는 중화민족주의와 국가통합주의 정책이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옌볜에 조선족 인구도 59만여 명으로 한국의 70여만 명보다도 훨씬 적다. 이렇게 점점 기울어져 가고 있는 조선족의 현실은 황무하게 보이기도 한다. 다니엘은 예루살렘의 황무함이 70년 만에 마치리라고 하는 소망의 말씀을 보았지만 나는 거꾸로 옌볜조선족자치주의 70주년은 황무함의 시작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까움만 더한다.
중국에서 기독교복음화를 위해 조선족교회들이 헌신하자 한족들은 물론이고, 소수민족들을 향한 선교적 발자취에서도 많은 열매를 맺었다. 다민족국가인 중국에서 살면서 조선족교회들은 중국인 사역과 소수민족 사역, 북한 사역에 얼마나 공들이며 뛰어왔었는가. 디아스포라로 중국 어디든지 흩어져 있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그런데 한국에 세워진 조선족교회는 선교 지향적인 교회로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중국에서만큼 이루어지지 못한 것 같다. 생존형 목회와 정착형 목회로 애쓰다가 이제는 코로나19로 인해 이마저도 피폐해지며 어쩔 줄 몰라 갈팡질팡하는 경우들을 보았다. 선교와 구제 사역을 한다는 것이 벅차기만 하다. 언젠가부터 선교적 야성을 잃어가고 있고 선교적 자원이 유실되는 안타까움만 더하고 있다.
한국교회는 몇십 년 동안 정착된 목회를 했다. 조선족교회는 우리 세대까지만 허락된 이민형 목회라는 것을 빨리 인식해야 할 것이다. 사실대로 말하면 다음세대에게는 조선족교회가 없을 수도 있다. 《디아스포라 조선족》 책을 쓰면서 다음세대는 조선족교회가 없을 수 있다고 주장해 조선족의 존재를 무시한다고 지적당한 적도 있다. 다음세대에 조선족교회가 없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지금 조선족교회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호소하는 것이다. 멸종위기의 북극곰을 보라. 멸종위기이니까 귀한 것이다. 멸종위기에 처한 많은 보호 동물처럼 조선족교회가 귀한 존재로 인정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북극곰처럼 자신이 어찌할 바를 모른 채 헤매고 다니면 안 된다.
하나님이 조선족을 한국 땅으로 세계 속으로 흩으시는 디아스포라로서의 정체성을 속히 확립해야 한다. 코로나19로 경종을 울렸는데도 아직도 선교적 교회로 존립하는 일에 ‘만만디(慢慢的)’로 지체한다면 참으로 그것만큼 답답한 일은 없을 것이다. 한국교회나 중국교회는 얼마든지 만만디하며 여유를 가져도 된다. 그들의 방식대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선족교회에 주어진 기회는 가히 ‘종말론’적이다. 마지막이 눈앞에 선한데 준비하지 않으면 되겠는가.
세례 요한이 주님 오실 길을 예비하는 마지막 선지자였다. 그가 목이 잘려나가는 종말을 맞아도 그는 하나님 앞에서 “주의 길을 예비하고 평탄케 하는 사명을 감당하였다” 하는 할 말이 있었다. 실제로 세례요한은 그렇게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대로 살았다. 우리도 그렇게 할 말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중국 현지의 조선족사역자들에게는 중국인교회로 탈바꿈하라고 얘기한다. 그럼 한국에서는 어떻게 할까. 선교 지향적인 교회로 탈바꿈해서 주어진 기간 동안 사명을 다하도록 대안을 제시해본다.
중국인선교 중국 조선족은 중국에서 소수민족으로 살았다. 역으로 현재는 중국 한족이 한국에서 소수민족으로 산다. 한국선교사들이 중국에서 역대급으로 추방당하며 중국선교가 막혔고 선교계마다 중국인 사역을 재편성하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에서 유학생, 신학생, 노동자들이나 다문화가정을 통한 중국인선교의 역량은 항상 부족하다. 조선족이지만 중국에서 살았기에 한국에 있어서 중국선교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다. 그리고 어떤 조선족사역자들은 이미 자녀들이 중국선교로 나아가도록 선교적 자원으로 준비하기도 한다.
중국 현지의 종교정책에 비추어 대안적 선교로 거듭나야 한다. 신학생 사역자를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민감한 종교정책 때문에 평신도사역자를 비롯한 일꾼양성에도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한다. 그리고 전문인사역자를 양성하도록 준비하여 전통적인 ‘교회’ 개척이 아닌 새로운 모델을 가지는 다양화한 교회로 준비해나가야 한다.
북한선교 한국에는 3만 명 이상의 새터민들이 정착해서 살아가고 있다. 새터민들은 한국에서 집도 주고, 재정도 지원해준다. 그리고 한국교회들도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새터민들은 여전히 탈북과정에서 경험한 트라우마와 북한과 상반된 생활 배경으로 인해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한국에 잘 정착하지 못하고 있다. 반면에 조선족들은 정착이 아주 빠르다. 10년 전 한국으로 귀화한 사람은 불과 1만여 명이었지만 현재는 10만 명 이상이다. 사회주의국가에서 살았지만 개혁개방의 물결을 경험한 조선족들은 한국에서 비교적 빠르게 적응하고 있다. 새터민들은 언어가 같지만 조선족과 동등시되어도 안 되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존재이다. 조선족의 존재가치는 그래도 통일이라는 방향에서 드러나야 하고 준비되어야 한다. 탈북자들이나 탈북사역단체들도 나름대로 준비되겠지만 중국 조선족교회와 한국 조선족교회들도 각각의 위치에서 북한선교라는 비전을 가지고 준비할 수 있어야 한다.
이주민선교(다문화선교) 이주민선교는 한국교회가 주도해가고 있다. 그래서 조선족교회는 이주민 사역을 할 수 없다고 보는가. 중국에서 조선족교회는 얼마나 많은 소수민족 사역에 앞장섰는가. 초기에 소수민족들은 피해의식으로 한족을 배척하며 같은 소수민족의 신분을 가진 조선족을 더욱 친근하게 영접했기에 조선족을 통한 소수민족의 복음화율이 높았다.
한국에서도 조선족교회는 얼마든지 이주민선교를 할 수 있다. 한국은 상하관계가 명확하다. 이주민들은 한국인 밑에서 일하고 조선족들도 마찬가지이다. 그 말은 조선족과 이주민은 동등성을 가진다는 것이다.
나는 김포에 살 때 거의 매일 외국인들을 만났었다. 필리핀, 러시아, 몽골, 베트남, 중국, 고려인,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아프리카 등 접촉하다 보니 참 친구가 되어 주어야 할 추수할 곳이 너무 많다는 것을 항상 느꼈다. 중국에서도 소수민족에게 하듯이 이주민선교로 불교권, 이슬람권, 공산권 모두 다 가능하다. 멀리 그 나라로 갈 필요도 없고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글을 맺으면서 교회는 모이는 공동체이다. 그래서 정부의 코로나19 방역정책에 반발과 충돌이 심했었다. 그만큼 모임을 떠나서는 교회를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조선족교회는 생존과 정착을 위한 모이는 데만 역량을 다 쏟아부으면 언젠가는 사역의 (종말)이 눈앞에 다가와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된다. 모이는 사역만 말고 흩어지는 디아스포라적 사역으로 선교와 구제에 앞장서는 조선족교회는 미래를 준비하는 교회이다. 나는 그래서 항상 디아스포라선교를 외치는 디아스포라선교사이다. 비록 코로나19로 큰 타격을 받았지만 지금부터 다시 심기일전하여 구제와 선교사역을 통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위해 노력하며 나아가자!
미주
사진 출처 | (위) 바이두 (아래) 중국기독교망 홍해 목사 | THE문화교회 담임, 우리나눔 공동대표, FAN전문인훈련원 원장
주요 저서 | 《디아스포라 조선족》, 《하나님의 모던하우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