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크가 없는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시진핑 1인 시대 시작 더 이상 계파정치는 없다. 한 사람의, 한 사람에 의한, 한 사람을 위한 정치만 있을 뿐이다. 최근 시진핑(习近平·69) 1인 천하를 연 중국 얘기다. 이를 바라보는 외부 시각은 곱지 않고 기대보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국내 또한 크게 드러나지 않지만 베이징(北京), 상하이(上海)의 ‘현수막 시위’ 등 과거와 다른 모습이 소셜미디어(SNS)와 언론보도 등을 통해 알려졌다. 제4세대 최고 지도자였던 후진타오(胡锦涛·79) 전 총서기가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 폐막식 도중 전격 퇴장한 것과 관련해 국내외 언론과 중국전문가들이 이런저런 분석을 내놓았지만 분명한 것은 과거와 달리 ‘브레이크가 없는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시진핑 1인 시대가 시작됐다는 점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미중 대립과 갈등 속에서 국가핵심이익을 더욱 확고히 하고 ‘중국식 현대화’를 통해 질적 성장, 과학·교육 진흥, 공동부유 등을 달성해 사회주의 최강대국으로 등극하기 위해서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한다는 명분에 따라 중국공산당의 정치문화의 하나인 최고 지도부 내 계파 간 조화와 균형은 온데간데없어졌다. 지난 10월 23일 중국공산당 제20기 중앙위원회 제1차 전체회의에서 드러난 정치국 상무위원과 정치국 위원 인선 면면을 보면 ‘시진핑 시대의 집중영도체제’, 즉 완벽한 원톱 체제를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시 총서기를 핵심으로 하는 최고 지도부에서는 10년 주기 최고권력 교체, ‘칠상팔하(七上八下·만 67세면 유임, 만 68세면 퇴진)’ 원칙 준수, ‘집단지도체제’ 실행이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 ‘칠상팔하’ 원칙은 2002년 16차 당 대회 때 (장쩌민, 江泽民·96) 총서기가 68세의 리뤼환(李瑞环) 정치국 상무위원의 연임을 막기 위해) 만들어져 오랫동안 지켜 왔던 이른바 잠규칙(潜规则, 암묵적 관행)이었다. 당 중앙위원 205명의 명단이 공개되기 전까지만 해도 칠상팔하 원칙에 따라 리잔수(栗战书·72)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장과 한정(韩正·68) 상무부총리는 퇴진하겠지만 67세 동갑내기 리커창(李克强) 국무원 총리와 왕양(汪洋)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주석은 완전 퇴진하지 않고 내년 3월 전인대 상무위원장, 총리(또는 정협 주석)로 각각 선출될 거라는 예측이 있었다.
그러나 리커창, 리잔수, 왕양, 한정 모두 중앙위원 명단에서 빠지면서 모든 관심은 ‘리틀 후’로 불리던 후춘화(胡春华·59) 부총리(19기 정치국원)와 시 총서기의 측근그룹 ‘시자쥔(习家军)’이 어떤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인지 집중됐다. 시자쥔의 발탁은 어느 정도 예상됐지만 진짜 이변은 후춘화가 정치국 상무위원은 물론 정치국 위원에도 들지 못했다는 것이다. 상무위원을 포함해 정치국원이 25명에서 24명으로 줄어든 것과 관련해 그가 마지막에 낙마했기 때문이라는 관측이 있을 정도다. 2017년 시 총서기의 신임을 얻어 후춘화와 함께 정치국 위원으로 발탁됐던 천민얼(陈敏尔·62) 충칭(重庆)시 당서기는 상무위원으로 승진하지 못했지만 위원 자리라도 유지했는데 후춘화는 205명 중앙위원 중 한 명으로 강등돼 ‘재기가 어려운 비운의 별’이라는 평가까지 받고 있다. 퇀파이(团派)로 알려진 중국공산주의청년단(中国共産主義青年団) 제1서기 출신은 후춘화 외에 저우창(周强·62), 루하오(陸昊·55), 허쥔커(贺军科·53) 등이 중앙위원에 포함돼 있지만 그 기세가 전만 하지 못하게 됐다. 공청단 제1서기 출신인 후진타오는 4세대 최고 지도자로 10년간 총서기를, 리커창은 5세대 최고 지도자 반열로 10년간 총리를 각각 재임했던 것과 비교할 때 이번 성적표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기술 혁신과 산업경쟁력을 선도할 테크노크라트(기술 관료)의 대거 발탁 중국 고위직 인사의 3대 요소인 연령과 정치 경력, 업무 경력 등이 시진핑 1인 시대에는 최소한 정치국원 인사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줬다. 시 총서기의 인사스타일은 자신과 합을 맞추어 보고 업무능력과 충성도 등을 검증한 인물들을 우선 발탁한다는 것이다. 푸젠(福建)성, 저장(浙江)성, 상하이 등지에서 근무할 때 함께했던 인물들이 계속 승승장구하고 있다. 정치국 상무위원만 해도 모두 시자쥔으로 분리해도 무리가 아니다. 이에 비해 공청단 제1서기 출신과 특별한 인연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그동안 편의상 혈연, 지연, 학연 등 계파(派系)와 관시(关系)에 따라 ‘타이즈당’, ‘상하이방’, ‘퇀파이(공청단)’, ‘칭화방’, ‘비서방’ 등으로 분류했던 각 세력 판도가 최고 지도부 인선에서는 더더욱 무의미해졌다. 상무위원 연임에 성공한 자오러지(赵乐际·65), 왕후닝(王沪宁·67)은 전인대 상무위원장, 정협 주석으로 각각 선출될 것으로 예측된다. 상무위원에 새롭게 진입하며 차기 국무원 총리로 유력해진 리창(李强·63)을 비롯해 차이치(蔡奇·67), 딩쉐샹(丁薛祥·60), 리시(李希·66)는 시 총서기를 지근거리에서 보필했던 심복(亲信)그룹이다. 차이치는 중국공산당 중앙서기처 서기, 리시는 중국공산당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로 각각 임명됐다. 상무위원 중 유일한 1960년대 생 딩쉐샹은 내년 3월 상무부총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당 대회에서 시 총서기가 업무보고를 통해 지난 5년, 10년의 성과와 변화를 돌아보고 향후 5년간 정책과 2035년까지의 청사진을 제시했다는 점과 중미 갈등과 경쟁 속에서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중국공산당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시진핑 총서기의 당 중앙 핵심 지위와 전당 핵심 지위, 그리고 당 중앙의 권위와 집중 통일영도를 각각 결연히 수호한다”면서 ‘두 개의 수호(兩个维护)’를 당장(党章·당헌)에 포함시켜 더욱 강력한 조직과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것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시진핑의, 시진핑에 의한, 시진핑을 위한 1인 체제가 확립됐음을 대내외적으로 천명했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 정치국, 중앙위원회라는 점에서 5세대(1950년대생)와 6세대(1960년대생)의 절묘한(?) 조합이 눈에 띈다. 정치국 위원 24명 중 1960년대생은 10명(41.67%). 중앙위원회 전체 376명의 평균 나이는 57.4세이다. 이밖에 2022년 5월 기준 성급 지도자 62명의 출생 연도에 따르면 5세대(1955∼1959년생) 당서기는 8명(25.8%)인 반면 6세대(1960∼1964년생) 당서기는 23명(74.2%)이다. 성(省)장의 경우 1958년생은 1명(3.2%)인 반면 1960∼1967년생은 30명(96.8%)이다.
정치엘리트의 교체율을 볼 때는 정치국 상무위원의 57.1%(4명 교체), 정치국 위원의 54.17%(13명), 중앙위원회 위원의 64.88%(133명), 후보위원 171명 포함한 중앙위원회 전체의 65.4%(246명)가 바뀌었다. 정치엘리트의 회전율(순환율)이 매우 높다는 점에서 장관급 지도자에 대한 새로운 피 수혈이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또 다른 관전 포인트는 기술 혁신과 산업경쟁력을 선도할 테크노크라트(기술 관료)의 대거 발탁이다. 중앙위원의 49.5%가 테크노크라트다. 1980년대와 1990년대 테크노크라트 출신 지도자 비율을 국무원 부장, 성 당서기, 성장(시장, 주석), 중앙위원으로 각각 나눠보면 1982년에는 1명(2%), 0명(0%), 0명(0%), 4명(2%)과 1987년에는 17명(45%), 7명(25%), 8명(33%), 34명(26%) 그리고 1997년에는 28명(70%), 23명(74%), 24명(77%), 98명(51%)이었다. 장쩌민 총서기 시절에는 성급 지도자(당서기, 성장) 중 테크노크라트가 60%(14차 당 대회 당시), 66%(15차 당 대회)를 각각 차지했다. 테크노크라트 비율이 후진타오 총서기 시절인 16차 당 대회 때는 37%, 17차 당 대회 때는 29%로 줄었다가 시진핑 총서기 시절인 18차 당 대회 때는 29%, 19차 당 대회 때는 37%로 다시 늘었다.
한편 시 총서기의 이번 업무보고를 찬찬히 뜯어보면 시진핑의 1인 시대가 부동산, 실업 등 국내의 산적한 경제 문제와 미국과 정면 대결 등 국제 문제에 적극 대처하기 위해 선택한 중국공산당의 시대정신 산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중국공산당의 국내외 정세인식을 살펴보면 국내적으로는 전략적 기회와 위험, 도전이 병존하는 시기라고 설정하고 국제적으로는 세계, 시대, 역사적 급변의 시기를 맞아 중국공산당의 전면 영도와 투쟁 정신으로 맞서야 한다는 것이다. 대외 불확실성에 대응해 내수 확대를 기반으로 지속가능한 성장을 확보하기 위한 ‘쌍순환(双循环)’과 국가주도의 혁신발전 전략, 빅테크 민영기업과 부유계층에 대한 통제 강화를 담고 있는 공동부유(共同富裕)와 분배제도 개선에 나선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창군[建军] 100주년을 맞이하는 2027년까지 핵무기 강화를 통한 강대한 전략적 억지능력(전략적 핵전략 강화)과 군사 건설을 실현하는 한편 공산당 일당 체제 수호를 통한 정치안전을 포함해 국내외 모든 분야에서 안전을 이룩하고 평화, 발전, 공평, 정의, 민주, 자유 등에 있어서 중국적 가치와 종합적 국가안보관을 확립하기로 했다. 시진핑 1인 시대는 당 내의 견제와 균형이라는 다양성과 유연성을 버리고 확실한 충성 단일대오를 구축해 마르크스주의의 중국화와 시대화라는 정체성에 따른 정치 강화,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중국식 현대화 추구, 산업과 핵심기술의 자주화, 대만 문제 등 국가핵심이익 보호 등의 과제를 푸는 데 맞춰져 있다.
시진핑 1인 시대, 앞으로 10년 또는 2035년 이후까지도 갈 수 있다면 어찌 할 것인가 그렇다면 기독교 등 종교 문제는 이 같은 변화 속에서 어찌 될 것인가? 국가주도형 해결방안이 속속 제시될 개연성이 크다. 이에 대한 예고편이 2018년의 신(新)종교사무조례, ‘기독교의 중국화’를 포함한 ‘종교의 중국화’ 실현, 중국교회와 성도들의 활동 제한과 제도 밖 가정교회에 대한 끊임없는 단속과 처벌, 해외선교사들에 대한 핀셋 추방 등을 통해 스스로 포기하게 하는 전술 구사 그리고 국가종교사무국령 제17호인 ‘인터넷종교정보서비스관리방법(互联网宗教信息服务管理办法)’ 시행 등 온오프라인 조치였다. 지난 10년의 시진핑 시대에서 종교 문제는 더 이상 관찰과 계도의 대상이 아니라 타격의 대상이 됐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특히 제도 내 삼자교회의 경우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관리, 감독하겠지만 제도 밖 가정교회의 경우는 더 이상 관용을 베풀기 어렵다는 것을 분명히 해왔다. 그러나 시진핑 1인 시대에서는 설령 삼자교회일지라도 중국식 현대화에 방해된다면 박멸과 척결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본보기로 특정 삼자교회는 물론 목회자들과 교인들을 향한 강도 높은 각종 조치들이 소셜미디어와 언론보도를 통해 널리 알려지게 될 것이다. 시진핑 1인 시대가 앞으로 최소한 10년 또는 2035년 이후까지도 갈 수 있다면 어찌 할 것인가? 이에 대한 대답을 중국교회는 물론 중국을 위해 기도하는 해외교회들이 찾고 대응해야 한다.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게 행동하는 ‘일상의 축적’으로 주님이 예비하신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가기를 바란다. 기독교인들의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모습이 결국 참된 승리의 길을 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결과는 각 과정의 총합임을 잊지 말고 오늘, 아니 매순간 충실한 우리 모두가 되면 좋겠다.
사진 출처 | (위) 인민망 (가운데) 바이두 (아래) 픽사베이 왕이 | 중국인 사역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