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문화체육관광국(文体旅局)은 문화안전(국가나 민족의 생존 발전의 가치관이나 주류의식구조를 유지시켜 주는 안전)과 문화자율성을 중시하는 동시에 홍콩인들이 주도하여 문화예술의 다양한 발전과 자유로운 창작을 위한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홍콩은 곧 문화체육관광국을 설립하여 문화, 체육, 관광의 발전을 책임질 것이다. 문화는 한 나라의 근본이고, 사회발전의 가장 중요한 기본요소이다. 문화생태가 건강하지 못하면 사회의 혁신과 발전은 어렵다. 한 지역의 문화정책의 핵심은 무엇인가? 어떤 이들은 언론의 자유, 창작의 자유, 학술의 자유라고 한다. 그렇다 바로 자유가 가장 중요하다. 전 세계에서 상대적으로 강력한 소프트 파워를 가진 여러 국가의 문화체계를 살펴보면 자유가 문화안전에 기반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일본 사회는 애니메이션, 게임, 전자기기, 대중음악 등 각양각색의 창의력과 소프트 파워로 가득 차 있다. 일본의 문화자유와 혁신은 규율이 있고 규칙적이며 문화안전 시스템을 기반으로 한다. 문화안전이 있기에 자유가 효과적으로 보장될 수 있고, 사람들은 문화자유를 서로 간의 공격과 권력투쟁에 이용하지 않는다.
물론 일본에는 국가안보와 관련된 다양한 문화안전 보장이 있다. 서양 문화는 일본의 문화에 혁신적인 자원을 제공했지만 일본의 전체 문화체제는 여전히 일본 문화에 기반을 두고 있다. 예를 들어 일본 건축가 안도 타다오(Tadao Ando)와 구마 겐고(Kengo Kuma)의 건축 작품은 모두 일본 문화를 기반으로 하며 서양건축학의 디자인과 결합하여 발전한 형태이다.
일본은 서양 문화를 통해 스스로 문화적 정체성을 구축하고 있는데 이것 또한 일본의 문화안전의 토대 위에 세워진다. 그렇다면 무엇이 진정한 문화안전인가? 그것은 바로 모두가 문화를 통해 문화 영역에서 장점을 마음껏 발휘하는 것이고, 문화를 정쟁과 공격의 도구로 이용하지 않는 것이다. 일본 문화계 종사자들은 문화는 문화이고 정치는 정치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문화예술을 통해 음식, 포르노, 성인비디오(AV), 정치, 폭력 등 모든 주제를 다룰 수 있다. 이는 문화안전이 보장되어 있어서 단지 문화예술의 산물일 뿐 그 목적이 권력투쟁의 도구가 아니라 민지(民智)를 향상하고 즐거움을 만드는 중개자라는 것을 모두가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문화의 기능은 백성을 무지하게 하는 ‘어리석음(愚)’이 아니라 오락의 ‘즐거움(娛)’이다. 시민을 어리석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더 지혜롭게 만드는 것이다. (중국어의 愚와 娛의 발음은 같다)
원래 홍콩은 매우 큰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차이나타운의 다원화한 중국 문화를 혼합한 문화이다. 그러나 최근 몇 년 동안 완전히 영미(英美)화하여 영국과 미국 대중 문화의 식민지가 되어 스스로 홍콩 문화를 비하하고 있다. 예를 들어 리샤오룽(李小龙)과 청룽(成龙) 등 쿵푸(功夫) 문화는 세계에 큰 영향을 미치지만 홍콩 쿵푸는 전문 박물관도 없이 작은 전람실에서 전시할 뿐이고, 전 세계에 홍콩의 독특한 문화를 소개하는 박물관을 만들지 못했다. 비록 M+박물관을 세우지만 아시아인의 눈으로 보는 유럽과 미국이 아니라 유럽인과 미국인의 눈으로 보는 아시아를 소개한다. 이른바 모두 유럽과 미국의 관점이지 진정한 아시아의 관점이 아니다. 새로운 문화체육관광국은 반드시 문화안전을 고려해야 한다. 문화안전은 바로 문화 자주권을 갖는 것이며 문화자주는 또 국가 문화발전의 필요를 따르는 것이다. 홍콩은 비록 국제적인 대도시이지만 국제라는 단어에는 ‘국(国)'이라는 글자가 있듯이 모든 것은 나라를 근본으로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일국양제 정책 아래 외교는 국가의 문제다. 문화교류센터 그 자체도 국익의 문제이다. 만약 홍콩이 국가안보를 조성할 수 없다면 국가에서 안심하고 홍콩에 국제문화교류센터의 발전을 의탁할 수 있겠는가.
홍콩이 국제문화교류센터를 발전시키는 것은 당연히 도시 간의 점대점(点对点) 협력을 목표로 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국가안보를 이룰 수 있는가? 그것은 바로 문화안전과 문화자치이다. 문화자치는 홍콩의 주요 문화체제를 모두 홍콩인이나 중국과 연결할 수 있는 홍콩인 또는 중국인이 맡아야 한다. 이것은 결코 배타적인 것이 아니다. 한국과 태국에 가보면 알 수 있듯이 핵심적인 팀과 지도자는 모두 현지의 국민이 책임진다. 일부 특별프로젝트에서 외국인을 찾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 일본 교토의 한 대학에 미국에서 온 흑인이 총장으로 부임한 사례가 있는데 이는 드문 일이 아니다. 그러나 홍콩의 모든 중요한 공공문화기관을 홍콩인이 주도하지 않으면 국가안전을 진정으로 보장할 수 있을까? 모든 예술대학의 학장을 홍콩인 혹은 중국인이 아닌 중국과 아시아를 모르는 사람이 담당한다면 이것이 정상적인 일인가? 문화안전은 주권 문제다. 홍콩을 다스리는 것은 반드시 홍콩인이 주도해야 하며, 외국인이 완전히 주도해서는 안 된다.
홍콩은 문화안전이 필요하다. 과거 홍콩은 국제정세에 있어 현재와 같은 긴장이 없었기에 문화안전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 국제적 긴장 속에서 홍콩은 반드시 문화안전의 환경을 재정비하고 구축하여 창작자들이 아무런 근심이나 걱정없이 어떠한 정치적 압력에 직면하지 않고 창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런 문화안전을 도모하자면 반드시 알아 두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문화는 정치투쟁에 사용되는 도구가 아니며 문화는 문화 그 자체이고 즐거움이며 민지를 향상하고 사상을 자극하는 것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다시 말해 문화예술을 이용해 시민을 어리석게 만들고 정치투쟁에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 두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문화안전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다. 홍콩 문화체육관광국은 이를 목표로 삼고 중국 본토와 문화적 독립성이 결여된 홍콩 문화시스템의 현황을 재조정해야 한다.
홍콩 문화체육관광국이 주체가 되어 산업발전을 추진하는 것은 정상적인 것이지만 그 이면에 문화안전을 토양으로 하지 않으면 문화산업의 발전에 많은 문제가 생겨나 투자자들이 뒷걸음질 칠 수 있다. 문화안전은 전체적인 문화체제를 명확히 하는 것이다. 특히 문화주권과 관련된 의식 문제에 있어서 문화에 참여하는 정책 결정자와 창작자는 반드시 틀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한다.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틀이 얼마나 큰지 알아야 한다. 세상에 테두리가 없는 액자는 하나도 없다. 모든 예술 창작에는 테두리가 있고 제한이 있다. 예술가는 테두리(한계)를 연구함으로써 혁신을 한다. 한편 혁신은 반드시 안전한 환경에서 진행해야만 경험을 쌓고 최적화할 수 있다. 유럽과 미국의 자유민주의 저력이 바로 이런 것이다. 그들은 매우 체계적인 문화안전 시스템을 소유하고 있다. 우리가 평소에 볼 수 없지만, 그것은 확실히 존재한다. 홍콩은 문화체육관광국을 설립하여 문화안전의 발전을 추구해야만 더욱 지속적이고 다양한 문화의 자유로운 창작 환경을 구축할 수 있다.
출처 | <아주주간(亞洲週刊)> 2022年19期(2022/5/9-5/15) 번역 | 하늘브릿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