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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5.3  통권 237호  필자 : 김종구  |  조회 : 1758   프린트   이메일 
[선교일언]
성경을 읽으며 선교를 생각하다

글을 시작하며
21세기 세계선교에 가장 큰 도전은 기독교 자체 내에서 생장한 현대신학의 두 가지 물결이다. 하나는 종교다원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세속주의로 볼 수 있다. 이것들은 다시 포스트모더니즘, 종교혼합주의, 종교종합주의 등으로 파생되어 성도들의 신앙과 공동체로서 교회와 세계선교에 많은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현상들은 하나님의 특별계시인 성경을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지 않으며, 신앙과 신학의 근거로 성경보다는 인간의 지성과 이성을 근거로 하기 때문일 것이다. 기독교 신앙의 근거는 당연히 성경이며, 신학의 근거도 성경이어야 한다. 우리는 오직 성경을 통해서만이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복음을 알고, 믿고 구원에 이른다.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함이니라(요 20:31). 아울러서 선교 또한 그 근거가 성경이어야 한다. 성경에서 선교의 근거와 위임, 선교의 동기, 선교의 내용, 선교의 능력, 방법론, 목적 등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하지 않거나, 인간적인 생각으로 진행되는 그 어떤 선교사역도 진정한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 성경이 말하고 있는 선교에 대해 같이 고민하며, 생각하고 배울 수 있기를 소망한다.1) 이글을 통하여 선교가 성경에 근거하고 있다는 확신과 열방을 품고 계신 하나님의 마음이라는 확신을 새롭게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I. 성경적 선교 개요
신구약 성경은 정확 무오(無誤)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또한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부르시는 선교의 책이다. 하나님 나라의 도래(到來)를 위한 선교가 성경의 중심 주제 중 하나인 것은 분명하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선교는 창조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을 선택하는 데도 나타난다. 하나님이 이들을 선택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창조주 되심과 절대주권을 인정하는 언약 공동체로서 만민에게 하나님의 창조주, 통치자, 구속주 그리고 심판자가 되심을 선포하기 위해 선택하신 것이다. 먼저 개론적으로 신구약 성경에 나타난 선교적 사상을 살펴보고자 한다. 

1. 구약성경
하나님의 창조와 인간의 타락, 은혜 언약, 노아 언약, 아브라함의 선택과 아브라함 언약, 출애굽과 모세 언약, 이스라엘 역사의 다양한 국면들, 시편, 선지서와 이스라엘의 포로 시기 전후, 성전과 회당제도, 제사와 예배제도, 이방인들에 대한 관심과 요나서, 시편의 메시아사상 등 구약성경 전체에 선교하는 하나님의 주도적 역할과 행동하심이 나타나 있다. 구약성경의 시작은 하나님이 천지와 그 가운데 만물을 창조하셨다고 선포하며 시작하고 있다. 이것은 선교의 가장 중요한 기초이다. 하나님만이 유일한 창조주 하나님이시고, 그 하나님이 모든 피조물, 즉 인류와 만물의 존재의 근원이 되신다. 하나님의 주권과 영광을 선포하는 것은 선교의 기초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인간의 타락은 선교의 원인이 되며, 아브라함의 선택과 이스라엘을 택하신 것은 부르심에 동반된 선교의 수단이요, 명령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출애굽을 통하여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것은 구약성경에 나타난 선교의 절정이요, 모델이다. 출애굽 한 사람 중에는수많은 잡족(출 12:38)으로 표현된 이방인들이 있으며, 너희가 함께 거류하는 타국인이 여호와의 유월절을 지키고자 하거든 그 모든 남자는 할례를 받은 후에야 가까이하며 지킬지니 곧 그는 본토인과 같이 될 것이나…’(출 12:48) 등으로 보면 이방인이 유대인에 들어가는 것을 배제하지 않았으며, 본토인과 동등하게 대한 것을 본다면 출애굽 사건은 충분히 선교적 사건이다. 구약성경의 역사서와 시가서 그리고 선지서에는 선교적 의미를 가진 수많은 역사적 사건들과 하나님의 현현과 부르심과 용서하심과 찬양을 받으시는 일들이 기록되어 있다. 구약성경은 충분히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행하시는 선교를 보여주고 있으며, 선교가 선택받은 아브라함과 이스라엘 민족 그리고 구원받은 우리에게 동일하게 주어진 분부요 명령이요, 약속인 것을 선포하고 있다.

2. 신약성경
신약성경은 구원의 복음을 온 세상에 알리는 선교의 책이다. 구약에 예언한 메시아는 그 예언대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인간의 몸을 입고 인류 가운데 오셨다. 선교의 하나님은 독생자인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셨고, 타락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하셨고, 말씀대로 부활함으로 인류 구원 사역을 완성하셨다. 이같이 하나님의 선교적 행동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분기점으로 해서 신약시대에 들어서도 계속되었다. 복음서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의 완성, 오순절 성령 강림과 예수를 그리스도 주(主)로 고백하는 믿음과 예배 공동체인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선교는 진행되고 있다. 사도행전과 바울의 선교 여행, 일반 서신들에는 열방으로 번져 가는 복음의 역사가 나타나 있다.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향한 하나님의 선교는 계속될 것이다. 신약성경에는 구약성경과 달리 분명한 표현으로 선교를 명령하고 약속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19-20). 또한 선교의 근원이 선포되어 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 20:21). 신약성경에서 선교는 그리스도의 교회와 성도들이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계속해야 할 과업인 것을 선포하고 있다.

II. 구약성경에 나타난 선교
의외로 구약에도 선교가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이들이 더러 있다. 이에 대한 대답은 선교의 정의에 따라 다르게 볼 수 있다. 하나님의 파송을 받은 선교사가 왕이신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의 증거를 통해 불신자를 회심시키고, 교회를 세우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감당해가는 것을 선교라고 정의한다면 구약에는 선교를 발견할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선교의 완전한 기초가 신약에 있다고 하더라도 신약에 대한 뿌리로서 구약이 존재한다면 구약에서 선교적 기초를 찾기는 어렵지 않다. 선교를 하나님에게서 소외된 인간의 회복을 원하는 하나님의 궁극적인 관심과 구체적인 행동이라고 폭넓게 정의할 때 선교는 구약 전체에서 나타난다. 우리는 구약 전체에서 열방을 향한 하나님의 선교적 마음을 읽을 수 있다. 

1. 구약성경과 선교  
구약성경은 선교적인 책이다. 하나님은 선교적인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구약성경은 구약적 선교의 개념을 포함하여 신약성경을 위한 많은 배경을 제공하기 때문에 선교학적으로 진지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구약성경은 하나님 나라 백성의 역사를 나타낸다. 그것은 세계 만민을 향한 맥락 속에서 전개된 하나의 역사로서 심오한 선교적 의의를 지닌다. 성경에 포함된 역사는 당연히 신학적인 것이며, (구약)성경은 인간 역사 안에서 활동하는 하나님을 계시한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은 인간 구원을 위해 활동하는 분으로 계시되었다. 진노 아래 있는 인간이 하나님의 은총으로 되돌아올 수 있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이 주도적으로 역사하셔야만 한다.” 창세기로 시작되는 구약성경은 그렇게 활동하는 하나님에 대한 기록이다. 

하나님의 선교적 역할은 물리적 우주의 창조주이며 아울러서 보존하는 하나님으로 온 우주의 소유주이시다. 우주는 그 전체가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나타내 보이며, 하나님에 의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을 위해 지음 받은 존재로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가 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그들과 특별한 관계를 맺고 계신 이스라엘의 아버지이시며 구속주이시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목적은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특별계시를 수령하고 보존하며, 메시아가 인류 역사의 흐름 속으로 들어오는 일에 통로 역할을 하며, 만국과 만민 중에서 하나님의 종과 증인으로서의 사명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는 열방을 향한 하나님의 선교적 행동하심이다. 구약성경이 말하는 선교에 대하여 바빙크(Johannes Bavinck)는 창조에 나타난 하나님의 우주적 관심 강조, 땅에 거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사랑과 관심의 대상, 이방 민족들을 멸망의 운명에 버려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끝없는 관심의 대상, 이것이 마태복음 28:19-20의 뿌리를 제공한다.고 말한다. 또한 존 스토트(John Stott)는 구약의 하나님은 선교의 하나님으로 묘사될 수 있다. 그 이유는 모든 인류의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구약의 하나님은 이스라엘 부족신(部族神)이 아니라 하늘과 땅의 창조주, 모든 족속의 주님, 모든 육체의 생명의 하나님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 주권 회복이야말로 선교적 기초가 되고 있다.고 말한다.

1) 창세기 3:15과 선교
하나님은 도덕적 우주의 통치자이며 심판자이시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인간도 도덕적 존재로서 하나님에 대하여 책임을 지게 되어 있다. 하나님과 언약 혹은 금령을 어긴 인간은 전적 타락의 존재가 되었으며 하나님은 이런 인간을 심판보다는 구원하고자 하셨다. 하나님의 진노로 인해 우리 인간들에게는 복음이 필요하게 되며,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해 우리는 복음에 접할 수 있게 된다. 이 사실은 하나님에게서 선교적 요소를 볼 수 있게 한다. 전적으로 타락한 존재로 죄인 된 인간을, 하나님은 에덴동산으로 찾아오셨다. 이것은 하나님 자신이 선교의 하나님으로 나타내신 선교적 사건이다. 세계의 숱한 종교들은 인간들이 하나님(신)을 찾고 있는 반면에 성경에서는,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이 인간을 찾아오신 것을 말한다. 오히려 하나님과 언약을 파괴한 인간은 하나님을 피하고 숨었다. 

그들이 그날 바람이 불 때 동산을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창 3:8-10). 그러나 하나님은 아담이 불순종한 현장으로 찾아가셨다. 그리고 찾으셨으며 발견하셨다. 그리고 죄인 된 인간에게 구원을 베푸셨다. 

인간은 타락한 상태 그대로, 곤경에 처한 상태로 버림당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인간을 찾아오셔서 확실한 구제책을 마련하셨다. 죄 없이 온전했던 존재요, 창조주와의 언약 안에서 창조주 하나님과 화목하며 아름다운 질서에서 살도록 창조된 존재가 스스로 범죄함으로 모든 것이 깨어진 상태가 된 그곳으로 찾아오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에덴동산에서 인류의 시조(始祖)요, 언약의 대표인 아담에게 복음을 선포하셨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창 3:15)

하나님은 파괴된 모든 것이 회복될 수 있는 길, 창조주와 깨어진 관계를 화목하게 할 수 있는 구원 계획을 말씀하셨다. 인류의 메시아가 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예언적 선포를 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궁극적인 계획은 인간과 피조물을 저주하는 것이 아니다. 메시아인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류를 구원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계획과 일하심으로 메시아인 예수 그리스도를 인류에 유일한 구원자로 세우신 것이다. 이것이 복음이고, 이 복음이 선교의 핵심이 되는 것이다.


2) 아브라함의 부르심과 선교
창세기 12장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시는 사건은 선교에 있어서 큰 의의를 지니고 있다. 열방 중에서 행하신 하나님의 활동은 보편적인 언약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에서 절정에 달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온 세계를 다루기 위해서 한 민족, 이스라엘을 다루는 것을 보여주신다. 그는 모든 사람이 구원의 기회를 갖게 할 목적으로 이스라엘 백성 안에서 행하신 그의 사역을 통해서 그의 구원을 나타내 보이셨다. 따라서 아브라함의 부르심과 이스라엘의 이후 역사는 선교의 차원에서 다루어져야만 한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창 12:3)

아브라함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은 두 가지 측면을 지닌다. 첫째,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리라.” 둘째,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이 양자는 상호 간에 밀접한 연관을 가진다. 즉 하나님의 목적은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려 함이다.’(갈 3:14)인 것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행하신 것은 열방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하나님이 그의 약속을 성취하셨을 때 그는 또한 열방도 상대하고 계심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안에서 이루신 것은 열방에도 의미심장한 것이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창 12장)과 이스라엘 민족(신 7:6-8)을 선택하신 것은 하나님의 은총이 전제(前提)되어 있다. 선택은 부르심과 보내심을 모두 포함하며, 사명을 위한 목적을 내포하고 있다. 카이저(Kaiser)는 창 12:1-3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선택하시고, 그분의 계획을 선포하심-아브라함의 선택과 언약은 아브라함이 복을 받을 뿐 아니라, 그와 그의 후손이 모든 나라의 복이 될 것을 약속하심이다라고 한다. 이스라엘의 선택은 이스라엘 백성이 특별한 방법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그의 영광과 주 되심을 세상에 나타내게 하려고 그들을 만민에게서 구별한 것이다. 선택은 편애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직무를 감당하기 위한 것이다. 선택받은 이스라엘은 세상에 대해 하나님의 선교사가 되어야 했다. (다음 호에 계속) 


미주   
1) 이 글은 필자가 참고문헌에 밝힌 책들을 중심으로 하여 아신대학교신학대학원(ACTS)과 서울성경신학대학원에서 강의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참고문헌

1) J. HERBERT KANE. CHRISTIAN MISSIONS IN BIBLICAL PERSPECTIVE. 이재범 역. 서울: 도서출판 나단, 1994.
2) Roger E. Hedlund. Biblical Theology of Mission, 송용조 역. 서울: 서울성경학교 출판부, 1991.
3) 이동주. 《현대선교신학》.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2003.  
4) 김학유. 《변하지 않는 성경적 선교》. 경기 수원: 합신대학원출판부, 2019.
5) 전호진. 《선교학》. 서울: 개혁주의신행협회, 1999. 
6)  김종구. 선교신학, 선교학 개론 강의안.





김종구 선교사 | 빌리온선교회 대표, Ph.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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