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을 품고 출발,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다 선교지에 나가기까지 많은 것들을 준비하고 마음을 굳게 다잡았지만, 막상 현장에서 부딪히는 문제는 때로는 나를 삼킬 것만 같았다. 어디를 가나 인간의 삶은 문제에 부딪히기 마련이지만 마음은 불편하고 아팠다. 특히 협력 사역 중에 관계적인 면에서 잘 풀리지 않는 어려움과 건강상의 문제가 어려움을 가중했다. 선교지에서 4년여의 시간을 넘기면서 갑작스럽게 찾아온 병은 사람을 기피하게 만들었는데 이로 인해 몇 년 동안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여러 가지 요인의 복합적인 문제들이 결국 병이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바람처럼 빨리 회복이 되지 않았다. 시간도 더디게 갔다. 동역하는 이들에게 짐을 보태는 것 같아서 본국으로 되돌아가야 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이 됐다. 하지만 동역자들과 현지 친구들의 지속적인 사랑의 보살핌은 육체뿐 아니라 마음과 정신의 건강도 차츰차츰 좋아지게 했다. 아픔의 시간은 주님을 더욱 간절히 바라게 하였고, 더욱더 소망하며 기도하게 하였다.
규칙에 사로잡히고 격식에만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더 중요한지에 대해 몸으로 배우며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주님은 나 자신의 연약함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의 작은 어려움까지도 헤아리며, 그들을 용납하고 수용하도록 마음의 지경을 넓혀 주셨다. 주님의 마음을 더 깊이 알아가고 주님을 오롯이 만나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 삶의 주인은 주님이시며, 주님이 아니면 안 되는 나 자신을 보게 되었다. 무엇이든지 이룰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을 안고 선교지에 도착했지만, 더딘 언어적 진보에 마음이 조급해지고, 배울수록 중국어는 어린아이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 것 같아서 절망감에 사로잡혔다. 이뿐 아니라 깨어진 선임자와 관계는 나에게 괴로움을 더했다. 엎친 데 덮친다고 병이 찾아왔으니 내 마음이 마음이 아니었던 것이다. 몇 년간 정성을 들여왔던 소수민족지역 선교의 문까지 닫혔을 때는 정말 본국으로 되돌아가고 싶었다. 결국 쓰라린 아픔과 실패는 나를 더욱 겸손하게 만들었으며, 진정으로 주님과 동행하며 주님을 섬기는 일이 무엇인지 가르침을 주었다. 선교사는 선교훈련을 통해서 완성되는 것이 아닌가 보다. 현지에서 그들과 함께 살며, 실패와 어려움을 겪으면서 만들어져 가는 것인가 보다.
비즈니스 이야기 선교적 접근이 어려운 지역에 좀 더 활발한 접근을 위해서 비즈니스를 통한 선교사역을 꿈꾸게 되었다. 외국인 거주가 힘든 지역에 공식적으로 거주하기에 용이한 것이 비즈니스이다. 비즈니스 사역은 현지인을 고용하는 일이었고 그것은 곧 복음전파와 제자훈련을 시작하는 공식적 시간을 갖는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커피는 다른 나라에서 생산하고 카페와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면서 성공적으로 제자훈련을 하고 있는 곳을 리서치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카페와 게스트하우스 직원들의 서빙은 한국에서도 보기 어려울 정도로 훌륭했다. 팀 체제로 운영되고 있었는데 한 팀이 완벽한 팀워크를 이루지 못하면 일손이 부족할지라도 그 팀에 새로운 직원을 보충해주지 않는다. 한 팀은 교회의 소그룹과 같은 역할을 하며, 그 팀장을 통해서 복음전도와 성경공부, 제자훈련이 이뤄졌다. 비즈니스는 일자리 제공뿐 아니라 주님의 제자를 양성하는 귀한 자리이며, 리더십훈련과 교회를 개척하고 든든히 세워갈 수 있는 매우 훌륭한 도구이다.
우리 팀은 이러한 생각을 공유하고 비즈니스를 위한 사역을 준비했다. 앞에 소개한 사역과는 비교도 안 되는 수준이지만 우리는 실제로 3년여간 비즈니스를 하였다. 우리의 비즈니스 사역은 먼저 제자들 스스로가 자영업자로서 교회를 더 잘 섬기려는 제안에서 시작됐다. 그렇게 중국인 동역자들과 동일 자본으로 사업을 시작하였다. 우리는 6개월간의 준비 기간을 가지면서 공동 투자 계약을 체결하였는데, 3년 이내에 모든 기술을 이전하고 선교사들은 물러난다. 향후 기술적 지원 이외 모든 수익에는 관여하지 않고, 수익의 20%는 선교와 구제를 위해 사용하는 데 동의하였다. 사업은 순차적으로 얼마간 잘 진행이 되었지만 핵심 기술을 전수받는 이의 건강에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부득불 모두의 동의하에 사업을 정리할 수밖에 없었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사업이 진행되는 동안은 재정적인 부족이나 손실이 없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우리가 얻은 가장 큰 유익은 함께한 이들의 믿음의 성장이었다. 이들이 교회의 지도자로서 신앙과 삶의 균형을 이루고 교회 리더십으로 훈련이 된 것이다.
사업을 하면서 자유롭게 시간을 활용할 수 있는 것이 교회사역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교회가 필요로 하는 사역에 더 많은 지원을 하였고 사역을 확대해 나갈 수 있었다. 노동절이나 추수감사절에는 우리 사업장 주변의 지역을 청소하시는 분들 20-30명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감사의 마음을 전하였다. 또 현지 대학생사역자들을 돕는 등 주변의 이웃들에게도 관심을 가지고 구제의 범위를 좀 더 넓혔다. 이를 통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을 산다는 것은 복음을 나누는 것뿐 아니라 이웃의 필요를 살피고 섬기는 것임을 몸으로 체험했다. 사업을 통한 부의 창출은 축적이 아닌 나누기 위함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함께하기에 겪을 수밖에 없는 갈등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연약함과 문제 속에서 서로 사랑하고 소통하는 방법들을 배웠다. 3년여의 짧은 시간에 정리된 사업은 혹자의 눈에는 실패일 수도 있겠지만, 이러한 모든 과정을 통해서도 그리고 교회와 선교적 측면에서도 우리는 많은 것을 경험하고 배우는 시간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균형 잡힌 주님의 제자들을 양육하고, 교회를 세우고, 개인과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도구로서의 비즈니스를 우리의 경우를 통해서도 알게 되었다.
교회 이양 복음을 나누고, 성경공부와 제자훈련을 하고, 교회를 개척하고 세우는 모든 일의 주체는 하나님이시다. 주님은 교회를 개척하는 과정을 통해서 당신의 교회는 당신께서 책임지신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셨다. 교회를 개척하는 단계에서부터 우리는 이양을 염두에 두었다. 물론 중국의 특수한 상황은 이양에 대해 더 많은 고민과 기도를 하게 했지만, 결국 총 2회에 걸쳐 교회를 이양하기로 결정했다. 중국 정부의 교회에 대한 핍박은 더 심해졌고, 주일마다 가정교회 지도자들을 강단에서 끌어 내리는 소식들이 들려왔다. 우리는 교회를 보호하기 위해 거의 한 달간 주일예배에 참석하지 않았고, 세례받은 이들이 예배와 말씀선포를 감당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은 하나님의 뜻을 더욱 견고히 굳히며 교회의 기초석을 쌓는 역할을 했다. 또 주중 소그룹을 통한 전도와 성경공부 외에 별도로 핵심 리더십 양육의 필요성이 제기되어 얼떨결에 시작하였다. 리더십 교육은 주로 설교를 할 수 있게 성경을 해석하고 성경을 더 깊게 공부하는 것이었는데, 그들이 우리를 가르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1년에 2, 3회 진행되는 성경통독 또한 마지막 날 성경 분량을 정해서 그들이 우리에게 성경을 가르치게 하였다.
별도의 리더십 모임은 그중 한 사람의 특별한 순종과 헌신으로 교회는 더욱 견고하게 되었다. 동일한 메시지가 선포되었을지라도 받는 이들에 따라 차이를 보였다. 처음에는 말씀대로 삶 속에서 반응하고 순종하는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의 차이는 아주 작다. 그렇지만 자신의 삶 속에서 진심으로 말씀을 진지하게 적용하고, 교회를 섬기고, 직장에서 주일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들은 믿음과 함께 리더십이 성장하였다. 그렇지 못한 이들은 이런저런 구실을 붙여 가면서 자기변명을 늘어놓음과 동시에 세상 속에서 자신의 길을 찾다가 주일성수마저 새카맣게 잊어버리고 살아갔다. 처음에는 보잘것없고 아주 작은 차이가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면서 아주 확실하게 차이가 벌어졌다. 교회를 섬기려고 애썼던 사람은 그의 삶을 통해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형통’이라는 단어에서 찾을 수 있었고, 큰 대가를 지불한 그 반대의 사람도 지켜보았고, 총명한 사람이었지만 자신이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조차 모르고 혼란 속에서 헤매는 것을 보기도 했다. 리더십 교육은 교회의 어려움 속에서 시작되어 꾸준히 성장하였고, 교회의 요청에 응답하는 리더십들을 통해 더욱 견고해졌다. 처음에는 대학전도 팀과 설교권을 한 사람의 리더에게 이양하고 우리는 여전히 최고의 리더십을 가지고 있었다. 이렇게 부분 이양이 점차적으로 이뤄졌다.
두 번째 이양은 한국선교사들이 모든 리더십을 중국사역자들에게 이양하고 현지교회의 파송을 받고 떠나면서 이뤄졌다. 그리고 이때 나는 처음으로 약 6개월 정도 안식년을 갖게 되었다. 최종 이양이 이뤄지기 6개월 전부터 리더십들에게 떠날 시기를 구체적으로 알리고, 이양에 필요한 부분들을 함께 살피고 이양 절차에 대해 구체적으로 의논하고 실행했다. 6개월의 시간은 더 간절함으로 서로 마음을 다해 함께하는 시간이 되었고, 우리는 교회의 파송을 받고 떠나게 되었다. 그리고 안식년을 마치고 다시 그 지역으로 들어가면서 다른 지역 개척을 위한 리서치 작업과 함께 해당 지역의 교회 리더십들과 성경공부를 하면서 섬기는 일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의논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리더십을 이양했던 교회 리더들이 6개월간 교회를 실질적으로 인도하면서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었다. 그래서 주중에 다시 리더십 모임을 갖고, 성경을 해석하고 설교하는 일 등 쌓였던 문제를 하나하나씩 함께 풀어갔다.
이 일은 비자발적으로 선교지를 떠나기 전 9개월 동안 계속 이뤄졌다. 우리가 선교지를 떠날 때는 이양이 거의 끝나 가는 시기였다. 그저 감사할 뿐이다. 현재 현지교회는 리더십들의 가정을 중심으로 견고히 세워져 가고 있는데, 그중 연결된 신학교 안에서 다른 교회들과 연합을 통해 홀로 있지 않도록 여러 안전장치와 돕는 커뮤니티를 형성하여 활동하고 있다. 뒤를 돌아볼 때 우리가 선교지에서 그들에게 많은 사랑을 준 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들에게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음을 고백한다.
주님 사랑의 감동을 받고 나간 선교지에서 주님의 사랑을 쏟아부으려고 한 이곳에서, 오히려 더 많은 사랑을 받았으니, 우리의 선교현장은 날마다 흥겹고 풍성함이 넘치는 천국 잔칫집이었다.
사진 | 픽사베이 김찬미 | 중국선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