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학년 무렵 나는 부모님의 훈련으로 4개월간 한국에 잠깐 나오게 되었다. 초등학교 2학년까지는 한국에서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한국이 낯설거나 어색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 초등학생들의 눈에는 중국에서 온 내가 매우 낯설었던 모양이다. 처음 전학을 오고 며칠은 친구들이 나를 외국인 대하듯 했다. “은하는 한국인이야? 중국인이야?” 이런 말을 적은 쪽지를 나에게 주며 자기들 나름대로의 관심을 보여주었다.
어린 나로서는 살짝 혼란스러웠다. ‘나는 분명 한국에서 태어났고 한국말도 잘하고 그냥 한국인인데? 왜 나를 이렇게 대하는 거지?’ 하며 혼자 나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하였다. 그런 정체성과 관련된 고민은 MK로 살면서 지속적으로 수없이 마주해야 했던 것 같다. 지금은 MK로서의 나를 충분히 이해하게 되었지만 말이다. 이렇게 스스로 나의 정체성을 인정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고, 이런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고, 무엇보다 하나님 안에서 정체성을 확립해야 했다.
많은 MK들이 그렇겠지만 새로운 곳으로 자주 옮겨 다니다 보니 헤어짐에도 익숙해져야 했다. 아무래도 청소년 때는 친구가 세상 전부였던 시절이었기에 친구와 헤어짐은 다른 어떠한 것보다도 나를 힘들게 했다. 한편으로는 이런 왔다 갔다 하는 생활을 통해 적응력은 날이 갈수록 좋아졌다. 부모님이 안식년을 갖게 되면서 중2 때 한국에 다시 들어오게 되었는데, 교회에서 60-70대 할머니들과 함께 성경공부를 하고 수다를 떠는 경지(?)에 이르기도 했다.
이렇게 돌아다니는 삶에 익숙해진 듯했지만 내 속에서는 어딘가에 정착하고 소속되고 싶은 갈증이 있었다. 더욱 그랬던 것이 어쩌다 보니 미인가 초등학교를 다녔고, 안식년을 보내면서 중학교 과정이 중간에 비게 되었고, 고등학교를 중퇴하면서 학교를 졸업하지 못하게 된 것이었다. 결국 초·중·고 검정고시를 다 치르게 되었다. ‘소속된 곳도 없고, 친구들도 멀리 떨어져 있고, 대학은 어떻게 가지…’ 인간적인 마음으로는 막막함과 외로움이 컸었던 것 같다.
하지만 하나님은 정말 다 아셨는지 때에 맞게 길을 열어주셨다. 수능을 치르지 않고 검정고시만으로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선례가 거의 없었는데, 신기하게도 당시 교육부의 정책이 바뀌어 수시전형이 생긴 것이다. 그래서 정말 하나님의 은혜로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에게 정말 필요한 공동체를 만나게 해주셨다. 대학에 입학하면서 ‘죠이선교회’라는 선교단체에 들어가게 됐고, 그 속에서 특히 공감대가 같은 MK 언니를 하나님이 붙여주셨다. 그래서 내 안에서 부딪치는 가치관들을 나누며 고민들을 많이 해소하였고, 공동체에 속함으로써 소속감과 안정감이 생기게 되었다.
또한 공동체 안에서 사랑을 주고받으며 신앙적으로도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나의 존재 그대로를 받아주는 사람들을 만난 것이다. 죠이선교회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인격적인 하나님을 경험할 수 없었을 것이고, 여전히 정체성에 대해 고민만 하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하나님 안에 있을 때, 내가 MK든 뭐든 상관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조금씩 하나님 안에서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 하나님의 방법으로 나를 다듬으시고 이끄심에 감사할 수 있게 되었다.
또 감사한 것은 MK로 살면서 부모님을 통해 선교하는 삶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어릴 때는 중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선입견을 가지고 바라보았던 것이 사실이다. 현지 사람들의 개념 없는 행동이 이해가 안 되고, 현지의 보안 문제로 항상 긴장하고 조심해야 하는 것 등 머리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 한둘이 아니었다. 당시에는 다 깨닫지 못했지만 이 모든 것들을 삶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선교의 일부분임을 부모님의 모습을 보며 배우게 되었다. 지금 다시 그때를 되돌아보면 부모님이 참 대단하고 존경스럽다.
대학생활 중 죠이선교회에서 떠난 중국 단기선교를 통해 현지인들에 대한 마음과 생각이 변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마음 그리고 그런 마음을 품은 부모님이 현지인들을 만났을 때 ‘이런 마음이었겠구나…’ 조금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고 있지만 단순히 부모-자녀로서의 관계를 넘어 서로 중보하고, 동역하는 관계로 나아가고 있음에 또한 감사하다.
MK로 살면서 경험한 시간들이 있었기에 사람들을 잘 포용하고 공동체에서 물같이 어우러지는 지금의 내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연령대와 문화권의 사람들을 만나고 소통하며 시야가 넓어진 것에 감사하고, 비록 동네 소꿉친구는 없지만 여러 나라에 사는 친구들과 동역자들이 있다는 것이 든든하다. 아무나 가질 수 없는 관계를 지닐 수 있는 특권을 MK는 가지고 있고, 모든 삶이 특별하지만 MK의 삶은 눈물과 은혜가 넘치는 삶이기에 더 특별한 삶이라고 자부한다.
* 이 글은 (2021년 봄 통권 81호)에 실린 내용을 저자의 허락을 받아 수정, 보완하여 게재하였습니다.
사진 | 픽사베이 양은하 | 말레이시아선교사 자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