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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5.3  통권 225호  필자 : 유관지  |  조회 : 2593   프린트   이메일 
[발행인통신]
“우리나라와 중국은 일의대수(一衣帶水)의 인접국으로…”
<중주> 가족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가정의 달 5월을 맞이하였습니다. <중주> 가족 여러분의 가정에 주님의 은총이 가득하시기 바랍니다. 

어느 분에게 “평안하시기 바랍니다”라고 인사했더니 “요즘은 그런 인사보다 ‘코로나19로부터 안전하시기 바랍니다’라고 인사하는 것이 더 실용적입니다.”라고 하더군요. “그렇군요” 하면서 함께 웃었는데요, <중주> 가족 여러분, 코로나19로부터 모두 안전하시기 바랍니다.

의화단이 왜 이 산골짜기까지?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4년 전에 중국 지린(吉林)성 지안(集安)시 위린(楡林)진 양쯔(陽子)촌에 있는 야소교초립비를 단체로 방문했던 사진이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것을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아마 같이 갔던 일행 중 누군가가 올린 것 같습니다. 야소교초립비는 이양자교회(裡陽子敎會)가 있던 자리에 세워졌는데 비의 형태와 비문은 매우 간단합니다. 사진에서 보는 것과 같이 냇가의 자연석에 “耶蘇敎初立 1898 됴선人”이라고 새긴 것이 전부입니다. ‘조선’이라고 하지 않고 ‘됴선’이라고 한 것은 평안도분들이 이 비를 세웠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양자교회는 나라 밖에 세워진 최초의 한인교회인데 세워지고 나서 2년 뒤에 의화단에 의해 불태워졌고, 그 뒤에 재건되었다가 1945년에 일본이 항복하고 철수하던 일본군들이 다시 불을 질렀다는 사실을 현지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의화단이 이양자교회를 불태운 일은 《조선예수교장로회사기》 상권에 잘 기록되어 있는데요, “南滿洲 楫安縣 裡陽子敎會난 當時 淸國에서 義和團이 蜂起하야 敎會를 殘害할새 西人의 家屋과 禮拜堂을 衝火하고 敎人과 宣敎師를 虐殺하며 紛亂을 大起한 中 裡陽子敎會도 禮拜堂을 燒失하고 敎人들은 深山窮谷으로 避하야 患難을 免하였더니”(원문에는 띄어쓰기가 되어 있지 않음)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아니 의화단의 난은 산둥(山東)성, 허베이(河北)성 등을 중심으로 벌어진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변두리 지역의 깊은 산골에 있는 교회까지 찾아와 불을 질렀던 말인가? 더구나 의화단의 난은 부청멸양(扶淸滅洋)을 부르짖으며 일어난 반서양운동인데 이 교회는 선교사들과 직접적인 관계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왜 그랬지?’ 의아하게 여겼습니다. 

야소교초립비가 서 있는 곳은 아주 깊은 골짜기입니다. 교통편이 마땅하지 않아 마을에서 걸어서 한참 들어가거나 오토바이 뒤에 앉아 가거나, 여럿이 방문하려고 하면 ‘빵차’라고 부르는 소형 봉고를 이용해야 합니다. 부근에는 일제강점기에 독립군 기지였던 곳이 있고, 주변에는 산삼을 채취하는 분들이 살고 있습니다. 

야소교초립비 사진을 보면서 그때 가졌던 의문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마침 시간 여유가 있어서 이 궁금증을 풀기 위해 여러 기록을 찾아 읽었습니다. 의화단의 난은 의외로 한국교회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압록강과 두만강 연안지역에 살던 동포들이 피해를 많이 입은 사실이 여기저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의화단의 난 때 중국에서 사역하던 선교사들 가운데 적지 않은 숫자가 한국으로 피난을 왔는데 그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 선교사들 가운데 몇 분이 1903년에 원산에서 열린 사경회에 참석해서 중국에서 겪은 어려움을 전해주어서 모두 숙연해졌습니다. 그 사경회에 하디 선교사(Robert A. Hardie, 1865-1949)가 강사로 초청을 받아 왔는데, 하디는 그 전에 김화의 지경대라는 곳에서 선교할 때 아주 교만하게 처신했습니다. 성령께서 하디에게 그 일을 공개적으로 회개하라고 강권해서 하디는 그에 순종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원산부흥운동이 일어났고 이 일이 평양대부흥과도 관계가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입니다.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 때 중국의 목사님들과 선교사님들이 한국을 찾아와서 부흥의 현장을 보고 돌아갔지요. 중국교회와 한국교회는 이같이 서로 영향을 많이 미쳤습니다.

장강이 막고 있다고 해서
문득 ‘일의대수(一衣帶水)’라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일의대수는 한 줄기 띠와 같은 물, 한 줄기의 띠처럼 좁은 냇물이나 강물 하나를 사이에 둔 것과 같이 매우 가까운 거리에 있는 것을 비유하는 말입니다. 중국과 한국 그리고 중국교회와 한국교회는 정말 매우 가까운 거리에서 영향을 주고받으며 지내오고 있습니다.

제가 그때 야소교초립비를 찾아간 것도 중국에서 있었던 일과 관계가 있었습니다. 로스 선교사(John Ross, 1842-1915)가 선양(瀋陽)에서 번역하여 출판한 로스역 한글성서(정식 이름 <예수성교젼셔>) 완간 130주년을 기념하여 로스 선교사 선교루트 탐방단이 조직되었는데 저도 그 가운데 끼어 있었습니다. 그 탐방코스에 야소교초립비가 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포털사이트 Daum의 어학사전에서 ‘일의대수’란 말을 찾았더니, 일의대수라는 말의 뜻과 이 말이 어떻게 해서 생겨났는지 설명하고, 이어 용례가 나오는데 ‟우리나라와 중국은 ‘일의대수’의 인접국으로, 옛날부터 정치, 경제, 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끊임없이 교류를 해 왔다.”라고 되어 있더군요. 저도 모르게 ‘어, 인터넷이 나를 도와주네!’ 했지요.



일의대수라는 말은 수나라의 문제 때문에 생겼다고 합니다. 수문제(隋文帝)가 폭정을 일삼고 있는 진나라 황제 진숙보(陳叔寶)를 치기 위해 588년에 군사를 일으키면서 “내가 백성의 어버이로서 어찌 한 가닥의 띠와 같은 장강이 막고 있다고 해서 그곳의 백성들을 구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我爲百姓父母, 豈可限一衣帶水不拯之乎)”라고 했다고 합니다. 

여기 “한 가닥의 띠와 같은 장강”에서 일의대수라는 말이 나왔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읽으면서 서해, 압록강과 두만강 건너의 중국의 성도들을 위해 우리가 더 많은 관심을 갖고 기도해야 하겠다는 마음이 새로워졌습니다. 비록 장강과 같은 어려움이 있다고 하더라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5월호의 특집은 중어권한인선교사협의회(KMAC)에서 주관, 진행하는 ‘2021 중어권 선교 On Sharing 콘퍼런스’의 내용을 정리하여 다루었습니다. 중어권 선교의 네트워크와 선교사역 나눔, 공유, 개발을 위하여 세계 각국에서 흩어져 사역하는 중어권선교사들을 강사로 초청하여 온라인상으로 매주 화요일에 진행되는 강사들의 강의 내용을 정리하여 실었는데요, 강의를 해주신 태국의 왕부장 선교사님, 수리남의 김남경 선교사님, 인도네시아의 유황수 선교사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태국의 왕부장 선교사님은 작년에 한국에 오셔서 DMZ 기도탐방을 할 때 교제를 나눈 일이 있는데 이렇게 지면에서 다시 대하니까 더 반갑네요. 이 콘퍼런스는 5월에도 연속해서 진행되는데 그 내용은 6월호에 특집으로 실을 계획입니다.

5월, 노천명 시인이 노래한 것처럼, 풀냄새가 물큰 향수보다 좋게 코를 스치고, 청머루순이 뻗어 나오던 길섶 어디선가 한나절 꿩이 울고, 아름다운 노래, 서러운 노래를 부르고 싶고, 보리밭 푸른 물결을 헤치며 종달새 모양 마음이 하늘 높이 솟는, 아름다운 계절입니다. 5월에 어울리는 아름답고 좋은 일들이 <중주> 가족들에게, 그리고 가정에 넘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사진 설명 | (왼쪽 위) 양쯔촌의 야소교초립 비명
사진 출처 | (아래) 바이두
유관지 | 중국어문선교회 고문 겸 웹진 〈중국을주께로〉 발행인, 용산감리교회 원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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