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이번 호의 ‘선교현장 이야기’는 <북한개발소식> 11월호(통권 181호)에서 ‘북한선교와 조선족교회’라는 주제로 다룬 내용 가운데 한 코너에 실린 글입니다. 북한선교를 위해 수고하시는 많은 조선족 동포 사역자들이 계십니다. 또한 이들이 북한 선교현장에서 힘쓰며 섬기시는 다양한 모습들이 있습니다. 특별히 엘리야(가명) 선교사님을 만나 인터뷰를 한 내용을 정리한 글로써 본웹진 독자님들께도 북한을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가는 데 유익이 되기를 바랍니다.
저는 90년대 중반부터 최근 몇 년 전까지 북한을 왕래했습니다. 친척방문을 통해 방문하기도 하고 주로 사업 명목으로 방문했습니다. 고난의 행군 시기는 말할 것도 없고 최근까지도 북한 서민들의 살림살이는 열악하고 고단합니다. 저는 가능한 자주 북한을 방문해서 연결된 친척이나 또는 기업소 사람들을 돕고 교제하는 것으로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큰 규모는 아니지만 할 수 있는 만큼 연결된 각 가정들이 제가 감으로써 가족을 조금이나마 배불리 먹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나누었습니다. 북한의 상황이 전에 비해 많이 나아졌다고 이야기합니다. 고난의 행군 시기와 비교하면 나아진 것은 사실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 서민들의 상황은 너무나도 열악합니다. 저는 북한의 민생 상황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면 “들으신 것보다 더 심각합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적어도 제가 방문했을 당시까지는 그러했습니다. 저는 북한을 방문하면 꼭 장마당을 들릅니다. 북한의 모든 가정들이 장마당에 나와 생계를 꾸립니다. 집에서 무엇이라도 갖고 나와서 팔아야 돈으로 바꾸고 식량을 구할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다 시장에 나와 있습니다. 시장에서는 특히 전대를 잘 챙겨야 합니다. 꽃제비들이 눈 앞에서 채어 가 버리기 때문입니다.
오랜 기간 북한을 드나들며 저는 인내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람 간의 깊은 관계와 신뢰가 제 선교사역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구제를 하는 것도 무턱대고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차근차근 순리를 따라 진행했습니다. 한 번은 북한의 기업소와 관계를 맺고 그 기업소를 주기적으로 방문하여 기업소 직원들에게 조금씩 쌀과 콩기름 등을 지원하면서 도왔습니다. 수년간 그 기업소를 드나들며 직원들과 신뢰를 쌓아가고, 그 주변에 어려운 다섯 가정 정도를 찾아 추가로 도왔습니다. 제가 직접 가정을 찾아가서 도울 수 없었기에 믿을 만한 분께 돈을 맡겨 쌀과 기름을 각 가정에 나눠주었습니다. 사실 돈을 맡기면서도 제대로 구제가 될 것인지 아니면 중간에 착복하지는 않을지 걱정이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믿고 시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러한 점을 우연찮은 기회에 확인시켜 주셨습니다. 제가 동네 상점에 미리 쌀값을 지불하고 구제 대상 가족들이 물품을 가져가도록 하였는데 상점 주인이 돈만 받고 잡아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 거래 목격자의 증언으로 구제 대상 가족들에게 물건이 전달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일화를 통해 제대로 구제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셨습니다.
북한 서민들은 가난하지만 수수하고 인정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날도 여느 때와 같이 장마당을 찾았는데 머루와 다래를 한 컵에 1위안에 파는 시장 할머니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상태도 영 별로여서 팔릴까 싶은, 그것이라도 팔아야 생활을 이어갈 수 있을 할머니의 처지가 눈에 들어와 할머니에게 그 머루 한 컵을 사고 1위안 대신 10위안을 손에 쥐여 드리고 나왔습니다. 그 모습을 몇몇 장사하는 아주머니들이 보셨습니다. 어찌 보면 경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장사이지만 그 아주머니들이 오히려 더 좋아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위정자들이나 고관대작들은 악한 꾀를 부리지만 서민들은 순박하고 순수한 사람들입니다. 북한 사람들을 한 명이라도 더 만나기 위해, 또 좋은 관계를 가지기 위해 숙소도 중국계 초대소가 아닌 북한 초대소를 꼭 들렀습니다. 20대 청년 직원이 주로 일하는데 그 친구들과 친하게 관계를 이어 갔습니다. 그중 한 자매는 아버지는 술에 빠져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병이 있어 자매가 일해서 가족을 부양하고 있었습니다. 그 사정이 딱하여 200위안을 도와주었는데 눈물을 흘리며 고마워했습니다. 계속 주기적으로 방문하면서 쌀과 기름 외에도 옷가지나 화장품 등 필요한 것들을 조금씩 도우면서 신뢰관계가 쌓였을 때 그 자매에게 주변에 3-4명 정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찾아서 알려 달라고 귀띔했더니 다음 방문 때 그 친구들을 데리고 와서 소개해주었습니다. 그렇게 어렵고 힘든 아이들과 가정들을 도울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신뢰가 쌓였을 때 기독교인으로서 나의 행실과 말이 그 친구들에게 영향력을 미치고 하나님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그 친구들도 자신들을 별다른 연고도 없이 돕는 이분이 누구인가 궁금해하게 되고, 특별히 드러내지 않더라도 자신을 돕는 이가 신앙인이며, 그 신앙 외에는 이러한 도움의 동기를 설명할 수 없음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북한 사람들을 돕는 일은 ‘신뢰 쌓기’입니다. 그러한 신뢰를 잘 쌓아 가는 것이 저의 주요한 관심이었습니다. 제가 북한 사람들과 교제하면서 주의했던 점 중 하나는 확실하지 않으면 약속하지 않는 것입니다. 통 크게 무언가 해줄 것처럼 약속하고는 정작 약속을 지키지 못해 신뢰를 잃는 일들을 종종 볼 수 있었습니다. 열악한 환경과 갈급한 필요를 볼 때 어떻게 해서든지 필요한 것을 해주고 싶은 마음이야 모두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호언장담은 했지만 비용적으로, 또 여건상 해주기 어려운 경우가 자주 나타나는 데 의도하지는 않았더라도 신뢰를 깎아 먹는 일입니다. 또한 동정이나 무시의 태도로 그들을 대해서는 안 됩니다. 저는 도움을 줄 때 드러내고 공개적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없을 때 조심스럽게 나누었습니다. 또 상대방이 특정 요청을 해올 때 가능하면 그것은 채워 주고자 애썼습니다. 사람이 무언가를 부탁할 때는 분명 많은 고민 끝에 결정한, 자존심을 굽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대신 확답해 주기보다는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사를 표하며 괜한 기대를 가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대화했습니다. 물론 북한을 방문한 것이 단순 자선사업을 위한 것은 아닙니다. 저의 궁극적인 목적은 예나 지금이나 복음을 전하는 것, 선교입니다. 단지 공격적으로 사역을 추진하지는 않았을 뿐입니다. 현장의 위험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내와 꾸준함이 중요합니다. 북한 사람들과 신뢰를 쌓는 데 보통 수년의 왕래가 필요했습니다. 꾸준한 섬김과 사랑의 실천을 통해 서로에 대한 믿음을 쌓고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때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관계를 이어 가다 보면 제가 의도하지 않더라도 우연찮은 기회와 계기를 통해 저의 신앙인으로서 정체성에 대해서 드러내게 되고, 그들도 관심을 가지고 복음에 대해서도 마음이 열리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그 사람들이 궁금해하고 먼저 질문해 올 때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조심스럽게 복음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복음을 심는 데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하나님이 인도하십니다.
복음을 전했다고 해도 전문적인 제자훈련을 시킨다든지 하지는 못했습니다. 시공간적으로도 어렵고 안전의 문제도 있습니다. 간단한 복음의 기초와 사도신경, 주기도문 정도의 내용을 전달하는 정도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부족한 이들에게 삶의 체험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보여주시고 믿음을 키워 주셨습니다. 한 번은 방문 중에 복음을 전했던 한 가정의 식구가 중병에 걸린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적절한 약을 쓴다면 살 수 있는 병이었지만 당장 약을 구할 수 없었습니다. 다음에 올 때 필요한 약을 구해볼 테니 기도하자고 이야기하고 돌아온 저는 다음 방문 기회가 빨리 오길 고심초사(苦心焦思)하며 약을 구하고 간절히 그 성도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다음 방문길에 그 가정을 만난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하나님이 그 성도의 병을 치유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체험을 통해 북한의 성도들은 격려를 얻고 저 또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체험하는 은혜가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성도들의 신앙이 자라고 영적 필요가 늘면서 요청에 따라 자연스럽게 신앙 자료를 준비해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저를 아는 분들은 북한에 지하교회가 있는지 물어보고는 합니다. 저는 “나는 지하교회를 모른다”라고 먼저 답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북한의 성도들과 제대로 함께 예배를 드리고 그 공동체를 체험한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저 같은 눈에 띄는 외부인이 그런 행동을 한다는 것은 모두를 위험하게 만드는 일이기에 감히 그런 시도를 할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어서 “그렇지만 북한에 지하교회는 있다”라고 답변합니다. 북한에 우리가 생각하는 교회는 아닐지라도 예수님을 믿고 그분을 의지하는 성도가 있다는 것은 확실하게 증언할 수 있습니다.
북한선교가 가능한 이유는 전적인 하나님의 인도하심 덕분입니다. 사역 초기 친척방문으로 북한을 방문했을 때 일입니다. 세 명이 팀을 꾸려서 북한에 들어가는데 일행 중 한 분이 그래도 성경책을 가져가야 하지 않겠냐고 하시며 몸에 성경 7권가량을 숨겼습니다. 그렇지만 정작 세관에 와보니 검신(檢身)이 엄격하여 도저히 들키지 않고 지나갈만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속으로 하나님께 도움의 기도를 간절히 드렸습니다. 막 검신 차례가 돌아오는 찰나에 세관에 전화가 울렸고, 검사관은 한참이나 통화를 했습니다. 기다리는 우리 마음은 더욱 타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전화가 계속 길어지자 검사관이 줄을 힐끔 보더니 맨 앞에 있던 저희 일행 중 한 명에게 지나가라고 했습니다. 아마 이미 검사를 어느 정도 실시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그 일행이 바로 성경책을 몸에 숨긴 분이었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의 도우심 외에는 설명할 수 없는 기적입니다.
친척 방문지의 가족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도 주님께서 인도하셨습니다. 갑자기 무턱대고 복음을 이야기할 수 없으니 새벽에 중국에서 간 세 명이 함께 기도를 드리는데 칠 일째 되던 날 그 집의 할머니께 들키고 말았습니다. 저희는 때가 되었다는 마음의 감동을 따라 할머니에게 하나님에 대해서 이야기를 드렸습니다. 그때 할머니의 반응이 의외였습니다. “나도 하나님 믿습니다”라는 것입니다. 자세히 이야기를 들어보니 새벽에 물을 떠놓고 기도하는 미신적인 수준의 믿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복음의 기초에 대해서 차근차근 말씀을 나누었는데 할머니께서는 “그렇게 고마우신 분이라면 믿어야지요”라고 하시며 주님을 영접하셨습니다. 날이 밝고 일터에 갔다 온 가족들에게도 순차적으로 복음을 조심스레 전했고 그 가정 모두가 영접하는 은혜가 있었습니다. 그 후로 약 5일 정도 복음의 기초와 주기도문 등을 가르쳐 드리고 숨겨서 가지고 갔던 성경책을 집에 숨겨가며 보실 수 있도록 전달했습니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영혼들이 있음을 다시금 체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만나게 해주신 한 나이든 자매가 있습니다. 이 자매는 중국으로 넘어와서 오랜 기간 조선족교회의 보살핌을 받으면서 예수님을 알게 되었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은혜 받으면서 수년이 흐른 뒤 이 자매는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 복음을 전하겠다고 했습니다. 북으로 돌아간다면 수년의 교화소 복역을 감수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죽음의 위기를 만날 수도 있었지만 이 자매는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렇게 북으로 돌아가서 복역을 마친 그 자매는 중국에 나온 지 오래되어 가족이 이미 다 흩어졌고 연고가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한 가정에서 그 자매를 거두었고, 그 자매를 통해 그 가정이 복음화가 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뿐 아니라 자매가 인근 시골을 다니며 복음을 전해 십여 가정이 그리스도를 영접하였습니다. 이러한 기적적인 역사가 귀한 성도의 헌신을 통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그 자매를 중국도 아닌 북한에서 우연하게 만나게 되었습니다. 비록 시간을 들여 충분히 교제할 시간적 여유는 없었고, 그 이후에도 다른 이들의 이목을 끌지 않기 위해 그저 길을 가는 행인이 서로 교차하는 듯이, 다른 곳을 바라보면서 스치듯 만날 수밖에 없었습니다만 그 자매가 섬기는 성도들의 가정을 위해 한동안 도움의 손길을 베풀 수 있었습니다. 주님의 은혜입니다.
사역을 하다 보면 마음의 열정이 불일듯이 일어납니다. 동포를 향한 애타는 마음에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을 돕고 그러면서 때를 따라 복음도 전하고 싶은 갈망이 생깁니다. 그러다 보니 한때 몇몇 사역자들은 북한 내에 상당히 큰 사업을 벌리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규모가 점점 커질수록 북한 기업소나 당국자들의 소위 ‘숙제’도 점점 커집니다. 더 많은 지원, 더 많은 물품을 가져오지 않으면 북한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겠다는 반 협박성 요구에 애를 먹습니다. 또 큰 사업을 벌리기 위해 외부의 지원을 받다 보면 사역을 증명할 수 있는 여러 보고와 자료가 필요하게 됩니다. 후원금을 많이 받으면 사역은 쉬워지기는 하지만 한 편으로는 받은 만큼 사역을 크게 벌려야 하고, 그에 따른 사역의 증거도 구해와야 합니다. 모험의 강도가 점점 더 높아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이 이어지면 결국 현지 선교사는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조선족이라고는 해도 북한을 왕래하는 일은 생명을 거는 일입니다. 강을 건너서 중국 땅을 밟고 나서야 마음 편히 한숨을 돌릴 수 있습니다. 어떤 사역자는 탈북자를 돕는 사역과 북한 내지를 돕는 사역을 동시에 진행하기도 합니다. 심정적으로는 탈북자나 북한 내지의 주민이나 같은 북한 사람이고, 사랑으로 도와야 할 이들이지만 북한 당국이 싫어하는 탈북자를 돕는 일을 하면서 북한을 방문한다는 것은 너무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북한사역은 열정과 현실의 균형이 필요합니다.
한국교회와 선교단체들은 북한선교를 위해 조선족 동포 사역자와 협력해왔습니다. 그렇지만 그 과정 가운데 불필요한 또는 있어서는 안 될 사례들이 많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저는 눈에 보이는 결과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 이러한 역효과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에 보면 교회나 단체 측에서 짧은 시일에 사역 결과를 내고자 검증되지 않은 일꾼들을, 그것도 한두 명이 아닌 여러 명을 섭외하여 사역을 벌리다가 양쪽 모두 낭패를 보는 일이 종종 있었습니다. 신뢰를 쌓지 않은 상태에서,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결과를 보여주기 위한 일 추진은 무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제대로 검증할 수 있는 소수의 현장사역자와 오랜 기간 시간을 두고 관계를 발전시켜가며, 상호간의 신뢰를 쌓아가며 일을 진척시키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재정도 처음부터 큰 규모를 밀어붙인다면 오히려 현장의 선교사를 어렵게 만들거나 역으로 물질의 유혹에 빠지게 만들 수 있습니다. 조급함을 버려야 합니다. 또 선교를 단순히 어떤 사업 벌리듯이 추진할 것이 아니라 함께 동역하는 현지선교사 한 사람 한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함께 성장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주변에 보면 현장사역자에게 사역에 필요한 경비도 채 충당할 수 없는 수준만 지원하면서 사명감으로, 헌신하여 일을 해주기를 요구하는 사례를 종종 보는데 매우 어리석은 일입니다. 제가 북한에서 구제를 할 때에도 중간에 수고하는 이에게 살림에 보태라고 별도로 좀 더 챙겨 주었습니다. 그래야 일을 하는 사람이 딴 마음을 먹지 않기 때문입니다. 헌신된 사람이긴 하지만 시간과 노력을 들여 위험을 무릅쓰고 일 하는 데 재정적으로도 손해가 된다면 장기적으로 일을 진행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비록 숫자는 적을 찌라도 진정 하나님 앞에 준비된 신실한 일꾼을 찾고, 또 그렇게 찾은 일꾼을 단순히 이용하는 것이 아닌 진정한 의미의 협력을 통해 함께 성장할 때 제대로 된 사역이 가능합니다. 최근까지 오랜 기간 충성되게 선교를 해온 사역자라면 상대적으로 신뢰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소명감 없이 외부의 지원이 많이 들어오던 때 사역을 했던 사람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대부분 사역을 그만두고 떠나갔기 때문입니다.
북한선교와 통일에 관심을 가지는 한국교회와 성도들이 있습니다. 종종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고 질문을 받을 때 저는 먼저 마음의 준비를 강조합니다. 남북 간에 사람의 왕래가 시작되는 것이 통일의 첫 발자국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만남이 있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마음이 통할 때 통일이 가까이 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분들을 달갑게 맞아 줄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지 고민해 보아야 합니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내 물질을 사용할 수 있을까요? 정말 북한 사람들이 남한에 와서 교회를 찾아올 때 우리가 반갑게 맞고 두 팔 벌려 환영할 수 있을까요? 한국교회를 보면 흔히들 통일이 되면 북한 주민들이 두 팔 벌려 우리를 환영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볼 때 오히려 서로 너무 어색하고 서먹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가 사랑으로 준비되지 않는다면 오해와 불신만 커질 수 있습니다. 진정한 통일은 우리 마음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저는 조선족 동포가 남과 북의 다리 역할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제가 북한을 방문할 때마다 남한 소식을 넌지시 알려줍니다. 남한의 옷이나 화장품 등을 선물하기도 합니다. 북한에서도 이제 남한이 잘산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고 남한 제품이 질이 좋아 모두들 좋아합니다. 또 제가 방문하고 경험한 북한 이야기를 이렇게 남한에서 나눕니다. 이렇게 남과 북이 서로를 좀 더 알아가는 것이 마음 통일의 첫걸음이라고 생각하고, 저와 같은 조선족 동포들이 그 사이의 다리 역할을 해야 할 사명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선족은 한민족 디아스포라뿐 아니라 중국교회와의 협력에도 강점이 있습니다. 우리가 같은 민족으로서 디아스포라를 이야기하고 통일을 이야기하지만 복음을 전하는 일에 있어서는 국적이나 민족에 차별이 없을 것입니다. 조선족이라고 해서 다 민족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있고 통일에 대한 열망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반면 한족이라도 북한선교를 위해 기도하며 소망을 가진 이들도 있습니다. 북한 내에서 활동하며 복음을 전하는 데 조선족보다 한족이 유리한 요소도 있습니다. 조선족들은 아무래도 북한에서 선교적 목적으로 오지 않았을까 의심하는데 한족에 대해서는 그러한 의심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근래에는 한족 기독교인 중에서도 한국어가 능통하고 북한에 대한 선교의 열정이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또 북중 간의 비즈니스가 활발해지고 중국 한족의 투자가 이어지면서 북한에서도 관련 비즈니스에 종사하기 위해 중국어를 열심히 배우고 능숙하게 구사하는 젊은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한족 출신 사역자가 활동하는 데 언어 문제도 더 이상 큰 장벽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조선족 동포 사역자들이 북한 내에서 선교의 기반을 닦고, 준비된 한족 사역자들이 치고 빠지듯이 사역을 전개하는 것도 충분히 생각해볼 수 있는 선교의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코로나19로 인해 국경이 막혀 있는 상황이지만 북한의 상황을 미루어 짐작해볼 때 곧 문이 열리지 않겠는가 하는 기대가 있습니다. 분명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이들이 북녘에는 많이 있는데 하루속히 문이 열리고 동포를 도울 수 있도록 예비된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더 나아가 통일의 길을 닦는 역사가 활발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기도해주시고 함께 노력합시다.
인터뷰를 진행하며 무엇보다 인상깊었던 부분은 선교사님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서 느껴지는 북한의 영혼들을 향한 긍휼과 사랑의 마음이었습니다. 북한을 너머 한반도 복음화와 세계 선교에 이르기까지 한민족 디아스포라의 성도들이 오해와 몰이해에서 벗어나 함께 협력한다면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받는 민족교회가 될 것이라는 비전과 소망이 북돋아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사진 | https://blog.naver.com/hwpdts/220229389035 한국오픈도어선교회 | 북한선교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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