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시편 110:3)
시편 110편은 다윗의 시로 메시야 예언시라고도 합니다. 즉 다윗은 부활 승천하신 메시야(1절), 왕이신 메시아(2-3절), 제사장 되신 메시야(4절), 심판주 되신 메시아(5-7절)에 대해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다윗은 청년들을 새벽이슬과 같다고 말합니다.
건조한 팔레스타인지방에서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새벽에 내리는 이슬이 정말 중요합니다. 새벽이슬이 없다면 아예 농사를 지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 나라와 교회는 새벽이슬처럼 헌신하는 젊은이들이 없다면 부흥의 역사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또한 새벽이슬은 넘치는 생기와 새로운 희망과 신선함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전날 광야의 뜨거운 햇볕으로 시들해진 나뭇가지와 풀, 꽃들이 새벽이슬이 잔뜩 맺힌 아침이 되면 다시 생기를 얻습니다. 하나님 나라와 교회도 새벽이슬 같은 청년들, 젊은이들을 바라보면 생기가 넘치며 희망이 솟아납니다.
헬라어로 ‘청년’을 가리키는 말 중에 ‘νεανια(neania)’는 원래 ‘새사람’이라는 뜻입니다. 특별히 새시대 새로운 인물이 나타났을 때 그를 일컬어 ‘네아니아스’라고 합니다. 청년은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용기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열정을 가진 자입니다. 실패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를 가리킵니다.
청년(靑年)이라는 한자어는 특별히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푸를 청, 해 년, 즉 푸르고 푸른 시절을 말합니다. 푸르다는 것은 강한 믿음의 힘과 결단력, 타협하지 않는 불굴의 용기, 생동감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청년의 때는 불가능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불의를 보면 끓어오르는 가슴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정의를 보면 환호하는 깨끗함도 가지고 있습니다. 순간순간 푸른 하늘을 보며 원대한 꿈을 품을 수 있으며, 아름다운 꽃과 들판을 보며 함박웃음꽃을 피우며, 장애를 안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함께 아파하는 아름다운 감수성을 지니고 있는 시기가 바로 청년의 시기입니다. 그래서 이 시기의 ‘헌신’은 그 어느 때의 헌신보다 순수합니다. 보수나 대가를 바라지 않고 즐거이 헌신합니다.
성경에는 청년에 관한 기사가 아주 많습니다. 요셉이 바로왕 앞에 설 때가 30세라고 기록되어 있는데(창 41:46), 이는 청년 때로서 그는 이보다 앞선 어린 날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을 경외하여, 한창 청년으로서 실수하기 쉬운 때 심한 유혹도 물리쳤습니다(창 39:10). 애굽에 팔려간 때가 17세 때(창 37:2) 그러므로 13년을 경과하는 동안에도 요셉은 청년기를 인내로써 일관하여 대성하였습니다.
사무엘이 이상 중에 주의 음성을 들은 것은 소년의 때, 엘리에게 수종들던 때로 유대의 역사가 요세푸스는 사무엘의 이야기 첫머리에 “사무엘이 예언하기 시작한 때, 이미 12세의 나이를 끝내고 있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유대, V.348=10:4). 이 연령은 유대인 남자는 ‘율법의 아들’로 불리며, 율법에 복종해야 할 책임을 지니기에 이른 시기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부모와 함께 최초 예루살렘에 올라간 것도 12세 때였습니다(눅 2:42). 다윗이 전 이스라엘의 왕이 된 때는 30세 때로(삼하 5:4-5) 한창 나이였습니다. 솔로몬이 왕위에 오른 것은 ‘작은 아이’ 때였는데(왕상 4:7), 여기서 작은 아이란 왕으로서의 큰 사명에 비추어 경험이 부족한 자라는 겸손한 의미로 여겨집니다(대상 29:1). 그의 나이 몇 살이었을까? 70인역의 어떤 사본은 2:12에 12세에 즉위했다고 하고, 요세푸스의 고대기에는 14세로서 80년간 통치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히스기야가 위에 나아가 그 개혁을 시작한 것은 25세 때부터였습니다(왕하18:2). 요시야왕이 왕위에 오를 때의 나이가 8세였으며, 예루살렘 성전 수축의 준비를 한 때는 25-6세의 때로 여겨집니다(왕하 22:3-7). 많은 선지자 중에서 왕자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대선지자 이사야는 소명을 받은 때가 20대의 청년이었던 것으로 생각되고, 이미 그는 주 안에서 원숙한 사상을 갖고서 종교적 신념에 불타고 있었습니다(사 6:1- ). 예레미야가 소명을 받은 것도 청년이 되는 무렵이었습니다. 18세 정도의 청년 예레미야로 보기도 하는데(J. Bright), 20세 전후로 보아 좋으리라(렘 1:6). 다니엘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뜻을 정한 때도 연소기였습니다(단 1:8). 예수께서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놀라운 말씀을 한 것은 12세 때(눅 2:40-52), 그 가르치심을 시작한 때는 30세 때였습니다(눅 3:23). 예수께서 부르신 제자들은 모두 청년이였습니다. 이 밖에도 바울의 청년기의 회심, 디모데, 디도 등 모두 청년기의 활동을 전해 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청년기야 말로 중요한 시기일 뿐더러 주를 위한 일에 정력을 기울일 나이기도 합니다.
요즈음 즐겨 사용하는 말 가운데 이런 말이 있습니다. “청년이 살아야 교회가 산다” “청년들이 움직일 때 교회가 성장한다” “청년이여! 불꽃처럼 타올라라” “청년들을 바라보면 그 교회의 미래를 볼 수 있다” “한국교회의 미래는 바로 청년들에게 달려있다” 등등의 말들을 많이 듣게 됩니다. 진실로 그렇습니다. 우리나라 총 인구의 약 40%가 이삼십 대 젊은이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통계에 의하면 30세 미만에서 교회를 얼마든지 떠날 수 있는 확률이 93%가 된다고 합니다. 그 교회가 살아 있는지 아니면 죽어 가고 있는지는 그 교회의 청년들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청년 대학생들이 점점 늘어 가는 교회는 진실로 건강한 교회이며, 부흥하는 교회일 것입니다.
기독교 역사를 논할 때 교회 역사를 논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또한 선교 역사를 논할 때 학생선교 역사를 배제시킬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기독교 역사를 정리할 때 대학생선교운동의 역사가 바로 정리되고 조명되어야 합니다.
(1) 18, 19세기 캠브리지대학의 학생선교운동 학생운동을 논하라고 할 때에 1779년에 캠브리지대학에서 일어난 찰스 시므온(Charles Simeon)이 일으킨 학생운동을 결코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이때 일어난 운동이 결국 영국의 복음주의 기독청년학생운동의 기원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운동이 일어난 뒤 케직(Keswick)수양회에서 옥스포드와 캠브리지 기독 학생들이 서로 만남으로 1928년에 기독청년학생운동을 전국 운동으로 확대시킬 것을 합의하였고, 영국의 기독학생운동이 새 출발을 하게 됩니다. 그후 1940년에 존 스토트가 캠브리지대학에 입학하고 이 운동이 더욱 확산되게 됩니다. 오늘날에는 이 운동이 세계적인 기독학생운동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문서운동을 전개하므로 기독 청년들에게 바른 신앙과 학문을 통해 바른 사상을 정립시켜주는 데 공헌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바나선교대회를 이어받아 세계선교에 동참하게 됩니다.
(2) 19세기 영국의 부흥운동과 옥스포드대학 학생선교운동 독일이 경건주의 시대가 지나고 합리주의의 물결이 계몽주의라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을 바로 그때에, 프랑스가 합리주의와 불신앙 사상으로 전환되고 있을 그때에, 영국은 청도교 주의가 성행한 뒤 반동적인 물결이 일어나 자연주의와 자연신론이 영국을 휩쓸고 있을 그때였습니다. 또한 이러한 사상의 배경 속에 그래도 약간의 믿음을 찾아 볼 수 있었던 곳이 영국과 미국대학교 내의 뜻있는 소수 기독 학생들이었습니다. 바로 이런 때에 영국 옥스포드대학에서 학생선교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이 운동의 주역들이 바로 요한 웨슬레, 찰스 웨슬레, 죠지 휫트필드, 오한 윌리암 플레이체 등입니다. 이들은 ‘거룩한 단체(Holy club)’라는 공동체를 조직하였습니다. 처음에는 매주 2회의 모임을 갖다가 나중에 매일 밤마다 일정한 장소에 모였습니다. 매일 저녁 6시부터 9시까지 모여서 그들은 기도, 성경연구, 고전 연구를 통해 영적 능력을 쌓은 뒤 나중에 복음전도와 사회 봉사에 적극 동참하게 됩니다. 이들은 미국으로 선교사를 파송하기에 이르고, 마침내 웨슬레 형제가 1735년 오글레듭 장군의 초청을 받아 식민지 조지아주에 직접 나가서 선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3) 17, 18세기 할레대학의 경건주의운동과 학생운동 우리는 독일교회 역사에서 일어난 운동 중에 경건주의운동이 국민과 교회에 끼친 영향에 대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독일의 경건주의를 일으킨 사람은 바로 필립 야곱 스페너입니다. 또 스페너에게 영향을 받은 자가 라이프치히대학에 재학 중이었던 학생 아우구스트 헤르만 프랑케였습니다. 프랑케는 경건주의운동을 확산시키려는 목적으로 귀족 자녀들을 위해 특수학교를 설립하였습니다. 나중에 목사가 되어 할레에서 고아원을 세우고, 사범학교와 신학교를 세웠습니다. 할레에 대학이 설립된 지 3, 40년 만에 약 6천 명의 신학자가 배출되어 한때는 경건주의가 국가와 루터교회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까지 평가하고 있습니다. 고아의 아버지 죠지 뮬러도 할레 출신이고 그가 할레대학에 다닐 때,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기도모임에서 큰 은혜를 받고 나서 대학을 졸업한 뒤 선교사로 나가기 위해 영국으로 건너가 공부를 하다가 결국 고아를 위해 일생을 헌신하게 되었습니다.
(4) 미국의 학생선교운동사 미국의 선교운동도 학생운동이 불을 당겼습니다.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부르심을 받은 사무엘 밀즈(Samuel G.Mills)는 하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그는 메사추세츠의 윌리엄즈 타운에 있는 윌리엄즈대학에 사역 준비를 위해 입학하였습니다. 거기서 그는 세상 끝까지 가야 할 불꽃에 불을 밝혔습니다. 그는 선교의 열정을 가진 형제들을 중심으로 1808년 9월에 형제단(Society of the Brethren)을 조직하였습니다. 이에 동참한 사람들의 이름은 제임스 리차드, 프란시스 로빈스, 하비 루미스, 고든 홀, 루터 라이스 등이었습니다. 그들은 캠퍼스 근처의 단풍나무 숲에서 기도와 토론을 위해 자주 모임을 갖고는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운동을 헤이스텍운동(Haystack Movement, 건초더미운동)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1806년 6월 어느 날 위에 열거한 다섯 명의 학생들이 메사츄세츠주에 있는 윌리엄즈에서 기도하러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길을 가던 그들은 마틴 루터처럼 갑작스런 폭풍우와 천둥 번개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황급히 근처의 건초더미 밑으로 대피했습니다. 천둥 번개를 피해 있던 그들은 거기서 평소에 기도했던 이방 세계를 위한 기도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일어서서 말하기를 “만약 우리가 뜻하기만 하면 우리는 그것을 할 수 있다”라고 외쳤습니다. 이 기도회로부터 미국 최초 ‘학생선교회’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그리스도인들 중에 영국 캠브리지에 있는 임마누엘대학 출신의 하버드가 보스톤에 하버드대학을 세우게 되고, 예일, 프린스톤, 콜롬비아 등 미국의 수많은 명문 대학들도 기독교적 신앙의 성경적인 이념으로 세워지게 되며, 대학생선교에 이바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복음적인 대학 출신들이 미국의 정치·경제·사회 전반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지도자로 부각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의 경우도 기독교가 전래된 이후 1866년 이화학당과 1886년 6월 8일 배제학당이 설립됨으로써 한국학생선교운동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화 학당의 스크랜톤(Mary F. Scranton) 여사와 배제학당의 아펜젤러(Henry G.Appenzeller) 선교사를 한국학생운동의 선구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구체적인 학생선교운동이 일어나기 전에 우선 1896년에 학생 YMCA와 YWCA가 결성되었습니다. 그리고 1946년에 KSCF(Korea Student Christian Federation)이라는 한국기독학생 총연맹이 결성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운동들은 당시 한국 학생들로서는 불가능했고 거의가 선교사들에 의해 탄생되었고 지도, 유지되었습니다. 지금은 대학 안에 많은 학생선교단체들이 있지만 서서히 그 힘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한국교회는 대학생을 비롯한 젊은이 복음화를 위해 대학선교단체들을 비롯한 다음세대 선교 기관들을 책임지고 적극 후원하며 도와야 할 것입니다.
참고적으로 기독학생운동의 특징으로는 첫째, 기독학생운동은 당시 교회의 영적 침체와 영적 무감각에 대하여 강한 반성적 동기를 심어주고 영적 각성제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둘째, 기독학생운동은 당시 교회에 선교적 이상과 선교운동을 일으켰습니다. 셋째, 기독학생운동은 교회의 개혁과 갱신뿐만 아니라 사회 개량적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넷째, 기독학생운동은 복음주의 입장에 서서 종교개혁신학을 고수해 왔습니다. 군선교의 대상이 60만 장병이라면 대학선교는 100만 대군입니다. 더구나 이들은 동질집단이기 때문에 잘 준비된 미끼만 있으면 얼마든지 복음으로 낚을 수 있는 그야말로 황금어장입니다. 대학생 한 명의 영혼이 주께로 돌아오는 것은 장래 파급되는 영향을 고려할 때 한 명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한 사람 바울의 회심을 통하여 온 유럽이 주께로 돌아온 것을 생각해 봐도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사범대생 1명이지만 이들이 졸업 후 교단에서 수많은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세계를 품는 비전도 실로 대학생 때부터 가능합니다. 그런 점에서 대학은 선교전략의 교두보라고 할 수 있으며, 젊은이선교는 21세기 한국교회에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과제가 될 것입니다. 위기의 한국교회를 위한 새로운 돌파구를 젊은이 선교에서 다시 찾아야 할 것입니다.
현성길 목사 | 제주서광교회, MCJ 공동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