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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2.2  통권 210호  필자 : 려용덕  |  조회 : 2921   프린트   이메일 
[경교비 해설]
대진경교유행중국비, ‘600년대 중국기독교비’ (2)

경교, 중국 당나라 시대에 세워지다
경교(景敎, Luminous Religion)라는 이름은 그리스도교파의 하나인 네스토리우스파(Nestorianism)가 중국에 전래된 이후에 붙여진 이름이다.

경교는 지난호에서 말한 것과 같이 635년(貞觀 9년)에 당 고조(唐高祖) 이연(李淵)의 아들인 태종(太宗) 이세민(李世民)이 알로펜(阿羅本, Alopen)을 단장으로 한 네스토리우스파(派) 일행을 장안(長安)에 머물게 하여 경전(經典)을 한문(漢文)으로 번역할 수 있게 했다.

 

당 태종은 638년에 신교자유령(信敎自由令)을 공표하였는데 이때 세워진 중국 그리스도교의 명칭이경교이다.

당 태종 이세민은 599년에 태어났으며 형과 아우를 죽이고(현무문의 변) 태자가 되어 626년에 즉위하여 649년까지 당을 다스렸다. 제위에 오른 이세민은 정관(貞觀)이라고 연호를 바꾸는데(627), 중국 역사에서 가장 찬란했던 그의 치세 기간은 국력이 강성하고 경제적으로 번영하여 이를 ‘정관(貞觀)의 치(治)’라고 한다. 중국의 대표적 명군으로 손꼽힌다.


경교를 처음에는 페르시아에서 왔다는 의미에서 파사교(波斯敎)라고 했다. 경교비에 의하면 네스토리우스파 그리스도교를 경교라고 하게 된 내력은 ‘그 공덕과 효행이 뛰어나게 밝기 때문’이라고 했다.


경교의 중심사상은 어떤 것인가

경교의 주요 경전인 ‘예수메시아경(서청미시소경, 序聽迷詩所經)’과 ‘세존포세론(世尊布世論)’ 등에 의하면 경교의 중심사상은 일신론적(一神論的) 신관(神觀)이었다고 할 수 있다.

‘예수메시아경’은 장안의 대진사(大秦寺)에서 645년에 기록되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그 체제(體制)는 황지(黃紙) 두루마리이며, 총 405행(行)의 글로 되어 있다.

그 가운데 유제이(喩第二)의 부분을 소개하면 “모든 만물은 보이거나 안 보이거나 가릴 것 없이 하나님이 만드셨으며, 하나님이 만물을 지배하지 않으신다면 천지는 한시도 보존되지 못한다. (萬物見一神 一切萬物 旣是一神 一切所作若見 所作之若 赤共見一神 不別 以此故知一切萬物 是一神所作 可見字 不可見者 是一神 所造 之時當今 現見一神 所造之物 故能安天立地 至今之燮 天無柱支託 若非一神所爲 何因而得久立不從上落 此及一神 術妙之力 若不一神所爲 雎能永久住持不落)”라고 했다.

 

 


한편 경교의 찬송문이나 예배서에 해당하는 ‘존경(尊經)’과 ‘경교삼위몽도찬(景敎三威蒙度讚)’은 엄격하지는 않지만 삼위일체의 교리를 보여주고 있다. 경교가 중국 당 문화 전통에 적응하려던 흔적이 여러 곳에서 나타나는데 성령(聖靈)을 ‘현풍(玄風)’으로, 교회당(敎會堂)을 ‘사(寺)’로, 수도사(修道士)를 ‘승(僧)’으로, 사도(使徒)를 ‘승가(僧伽)’로, 천부(天父)를 ‘천존(天尊)’으로 번역한 것은 중국 전통 종교와의 연결성을 추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당 초기에 국가적인 배려를 받으면서 발전한 경교는 당 말기에 쇠퇴하게 되는데 약 400여 년간 거의 소멸되었다가 원(元)나라 때 일시적으로 재흥하였다.

다음 호에서는 경교가 원나라 시절에 야리가온(也里可溫)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나타난 일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려용덕 │ 도봉중앙장로교회 담임목사, 문학박사, 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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