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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3  통권 209호  필자 : 이수구  |  조회 : 3555   프린트   이메일 
[특집] - 2020년, 선교단체에게 듣는 중국선교 사역과 비전
2020년대의 동북아시아 선교 비전

Ⅰ. 들어가는 말
여기서 동북아를 말한다면 주로 한국(북한 포함), 중국, 일본을 지칭하는 말이라 하겠다. 그런데 이 세 나라는 오랜 세월의 역사 속에서 때로는 형제처럼 서로 나누며 때로는 적대적인 관계로, 때로는 선의의 경쟁을 하며 지내오던 사이었다. 세 나라는 관계 면에서 서로를 필요로 하면서도 자주 대립하면서 수천 년을 지내왔을 뿐 아니라 이러한 관계는 앞으로도 그리 좋아질 전망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이 세 나라가 어떻게 하면 평화롭게 서로 좋은 이웃으로 서로 유익을 줄 수 있는 관계로 발전할 수 있을까? 아마도 그 온전한 해답을 이 세상의 방식 안에서 얻는다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굳건한 신앙 공동체를 통해서 국가주의적인 반목과 갈등을 넘어서 서로가 신뢰하고 협력하는 이상적인 관계의 가능성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특히 필자가 지난 20여 년간 일본의 삿포로국제교회를 통해서 일본인과 중국인, 한국인 공동체를 섬기면서 실제로 경험했던 것을 중심으로 간략하게나마 그 대안을 나누어 보고자 한다.

Ⅱ. 한·중·일이 협력을 해야 하는 당위성

 

 

동북아시아의 세 나라 중국과 일본, 한국은 늘 함께 공존해 온 민족이라 하겠다. 외형적으로도 비슷할 뿐 아니라 유교와 불교의 영향을 받았으므로 종교적 문화적인 동질성을 가지고 있으며, 한자를 공유한다는 점에서도 서로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1) 그런데도 동북아시아에서 세 나라는 지난 세월 수없이 갈등을 일으켜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동북아시아에서 진정한 협력이 요구되는가?

1. 평화 공존을 위해서

지금 중국은 동아시아에서 패권을 쥐기 위해서 인근지역 해양으로 넓혀 가려 한다. 이것은 주위 나라에 위협이 되고 있으며, 일본은 이러한 중국과 북한을 대항하여 평화헌법을 개정하여 군대를 만들고2) 군비 예산을 증가시켜 군사력을 키우려고 하고 있다. 한국도 이러한 점을 의식하여 경계하기 위해서 북한뿐 아니라 이웃 나라들의 움직임에 편승, 군비 증강에 매년 수조 억 원의 군사비를 지출하고 있다. 서로가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면 느낄수록 군비경쟁은 더욱 증가하며 가속화할 것이다. 하지만 협력을 통해서 신뢰를 쌓아 나간다면 서로가 군비를 증강하지 아니해도 평화스럽게 공존해 나갈 것이다. 유럽연합(EU)은 1993년에 정식으로 출범을 하게 되었는데, 그전에 그들은 서로가 두려움과 공포를 느꼈기에 동과 서로 분열할 뿐 아니라 이웃 나라들과 늘 전쟁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들은 더는 이웃 나라들을 경계하지 아니해도 되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연합체를 구성하여 상호 이익을 추구하는 공동체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토록 중국과 일본, 한국도 협력을 통하여 서로 간의 신뢰와 평화의 관계를 이루어 간다면 보다 많은 재정과 힘을 자신의 나라의 복지를 위하여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우리는 더는 상대방을 경계하지 아니해도 될 것이다.


2. 경제적인 면

일본재무성이 발표한 2017년도 한 해의 중국의 일본과 한국에 대한 무역 수지 통계를 보면 아래와 같이 드러나고 있다.3)

  

 

 

 세 나라는 수출입의 격차에 있어서 얼마간의 차이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세계의 어떤 나라보다도 무역 수지에 있어서 음으로 양으로 아주 밀접하며 중요한 경제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고 생각된다.4) 이것은 세 나라가 비록 정치나 경제체제가 서로 다른 점이 있으나 문화적·역사적으로 연계되어 있을 뿐 아니라, 지리적으로도 가깝기에 어떤 나라보다도 경제적으로 서로의 필요한 부분들을 신속하고 저렴하게 채워 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특히 한국과 중국의 무역 규모는 1979년 1천9백만 달러(홍콩, 싱가포르 중계무역 포함)에서 1980년에는 1억9천만 달러, 1985년에는 13억 달러로 증가하더니, 1992년 한·중수교 이후 1992년에는 32억4천 달러에서 2010년에는 2071억7천 달러로 연평균 24.2%씩 증가했다.5) 그리고 2017년에는 2,399억8,400만 달러로서 두 나라 간의 무역 규모는 30여 년 만에 1,263%가 증가했다. 이는 한국에 있어서 중국이 세계 최대의 무역국임을 의미한다. 이렇듯 세 나라는 무역 규모뿐 아니라 무역의 내용 면에 있어서도 서로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는데, 일본은 기술적인 면에서, 중국은 생산적인 면에서, 한국은 서로를 연계시키는 중계자의 역할을 잘 감당함으로써 서로가 없어서는 안 될 관계가 된 것이다. 이렇게 세 나라가 앞으로 온전한 경제 협력을 이루어 간다면 더 윤택하게 될 뿐 아니라 동아시아와 세계 경제에 큰 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


3. 환경적인 면

지금 전 세계는 지구 온난화 현상으로 몸살을 앓기 시작하면서 지역 간의 협력은 더더욱 중요하게 되었다. 특히 최근 우리 한국은 황해와 서해를 통해서 중국으로부터 오는 미세 및 초미세 먼지로 몸살을 앓고 있다. 특히 중국에서는 대기 오염뿐 아니라 해양과 토지의 사막화, 일본에서는 도시화로 인한 대기와 수질오염, 원전 사고에 따른 방사능누출 등이, 한국에서도 역시 도시화로 인한 대기, 황해의 해양오염, 쓰레기 처리 등에 홍역을 앓고 있는 가운데 있다.6) 이러한 문제는 한 나라에게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이웃 나라는 물론 더 나아가서는 전 세계에 영향을 끼치는 골치 아픈 이슈가 되어 가고 있다. 이를 위해서 많은 논의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선진국에서는 공해 문제를 위해서 국제적인 회의나 포럼 등을 통해서 구체적인 제안이나 계획안을 만드는 등 적극적인 활동을 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저개발 및 개발도상에 있는 국가들은 공해 문제보다도 기초적인 삶을 영유하기 위한 대책이 더 시급한 형편이다. 하지만 이러한 가운데서도 국제 협력이라는 틀 안에서 협의가 이루어지고 서로의 필요를 이해하고 돕는 것을 통해서 환경의 문제를 풀어 나아가야 할 것이다. 특히 환경 문제는 국가적인 레벨에서의 협력도 중요하지만 민간 레벨에서도 긴밀한 협력과 교통이 필요하다고 여겨 진다. 예를 든다면 중국과 몽고에서 사막화가 되고 있는 지역에서 일본과 한국의 자원단체가 수년 전부터 그들의 자체 기술과 경험을 살려서 식목을 돕고 있다. 이로 인해서 매년 중국과 몽고로부터 불어오는 황사가 최소화 될 것을 기대한다.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은 예전 어느 때보다 절실해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Ⅲ. 협력에 있어서 장애물들

동북아시아의 세 나라는 역사적인 관점에서 볼 때 종교와 문화에 있어서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특히 5세기경 중국에서 태어난 공자에 의해 주창된 유교사상은 중국에서뿐만 아니라 한국과 일본에도 국가와 사회의 체계를 세우고 발전시키는 데 깊은 영향을 주었다. 그래서 세 나라가 서로 협력해 나가는 것이 비교적 수월하리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의외로 많은 장애물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면 과연 협력에 영향을 주는 장애물은 어떤 것들일까? 이 부분을 잘 파악함으로써 이를 극복하며 피할 수 있는 지혜를 얻게 될 것이다.

1. 전쟁으로 남은 흔적들

동북아의 세 나라는 협력과 교류가 왕성하게 이루어졌던 시기도 있었다. 특히 유교뿐 아니라 불교의 전래 역사를 살펴보면 중국으로 시작으로 한국으로 그리고 한국에서 일본으로 흘러갔고, 당나라 시대에는 일본7)은 학자들을 중국으로 보내어 보다 깊은 불교 이론을 공부해 온 기록이 남아있다. 하지만 이러한 교류의 추억보다는 한국은 중국과 일본에 대해, 중국은 중·일전쟁과 난징(南京)대학살 등의 침략으로 멍든 상처가 사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그대로 존재하는 상황이다. 그래서 지금도 정치적인 이슈로 갈등이 일어날 때는 일어난 문제가 부풀어져 감정적으로 흘러가 버리고는 한다. 이것은 과연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겉으로는 상호 필요에 따라서 협력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관계에 있어서 진정한 신뢰에로의 회복은 아직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전쟁으로 인해 깊이 묵혀 있는 상처는 생각 외로 뿌리가 깊은 듯이 보인다.
 

2. 체제(system)의 상이점을 극복하는 것
동북아의 세 나라는 아주 비슷한 점들이 많이 있다. 바로 유교의 영향(충[忠], 효[孝], 예[礼]사상)은 대가족공동체로 이어졌다. 그러므로 집안에는 남자인 아버지가 중심으로 사회와 가정의 질서를 이어 갔다. 하지만, 지난 반세기를 지나며 동북아에 정치적인 변혁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1) 중국의 경우
중국은 장개석의 중화민국이 몰락하고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서면서 국가의 시스템뿐 아니라 사회와 가족의 공동체에 영향을 받게 되었다.8) 그래서 대가족공동체는 부부형 가족 공동체로 변했다. 특히 2002년의 통계에 의하면 부부형 가족(2-3인 가정)의 총 비중이 50.1%이며, 5인 이상의 비중은 19%가량이다. 또한 토지개혁으로 인해서 가부장제에서의 남편의 권위가 감소하고 부부관계의 평등성이 확대되었다. 이뿐만 아니라 국가 제도에 있어서도 주권이 국민보다 공산당 정부에 있기 때문에 공산당이 정책을 세우고 결정하면 그대로 따라야 한다. 이러한 사회주의 정권은 국민의 자유와 시장 경제를 인정하지 아니하기 때문에 그러한 체제를 이해하지 못할 경우, 자유 민주 시장체제를 지향하는 일본이나 한국과는 항상 문제가 일어날 소지를 안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뿐만 아니라 중국은 아직도 아시아 패권 정책을 포기하지 않은 채 일본과 한국의 기술이나 자본을 통한 경제 협력을 바라고 있다. 그러기에 한국과 일본과는 동등한 위치나 관계 안에서의 협력이라기보다는 자신들이 원하는 경제적인 부분에서 만의 협력을 바라고 있기 때문에 언제든지 마찰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중국은 일본이나 한국처럼 민주 국가가 되는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부자 나라가 되는 것을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9)


2) 일본의 경우

일본은 유교 전통주의 국가로 세워져 왔지만 메이지 정권과 더불어 탈아시아를 하려고 발버둥을 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19세기 말 중국이 서구의 힘에 의해 힘없이 지배를 당하게 되고, 또한 1883년 흑 함대의 페리 제독의 문호개방 압력을 받으면서 문호를 개방하여 서구로부터 배워서 부국강병을 이루어 내지 아니하면 나라의 장래를 낙관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메이지 정부는 1871년 12월 23일 요코하마로부터 장관급 인사들 48명을 2년간에 걸쳐서 북미와 유럽을 돌게 하면서 서구의 문물뿐 아니라 서구의 정치, 경제, 군사, 교육 등 사회 전반에 걸쳐서 배우고 오도록 했다. 이를 토대로 일본은 아시아에서 최초로 근대화를 이루는 국가가 될 수 있었다. 이로 인해서 입헌군주제 안에서 민주주의국가로서 자본 시장 경제를 충실하게 세워 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일본은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민주주의국가로 발전하게 되었다. 일본은 옛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서구의 영향으로 인해서 개인주의로 발전되었다고 생각된다.
 

3) 한국의 경우
한국의 역사는 고난과 시련의 역사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한국은 강대 열강 속의 틈 속에서 쉴 새 없이 침략과 공격을 받아오면서 혼란을 겪어왔지만, 1945년 해방과 더불어 한국도 일본의 경우와 같이 자유 시장 경제를 추구하는 민주 국가로서 비슷한 체제를 갖게 되었다. 국민이 주도하는 정부이므로 국민이 무엇을 원하는지 국민의 뜻이 최우선시되어야 했고, 또한 자유 경쟁을 통하여서 자신의 자본과 이익을 창출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정치와 경제체계가 다른 세 나라가 공존을 한다는 것은 간단한 일은 아니다. 언제든지 상호 이익이 맞지 않을 때는 충돌을 일으켜서 협력이 와해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3. 영토 문제

세 나라는 지금도 영토 문제로 당사자 간의 갈등을 풀어야 할 문제를 안고 있다. 일본과 중국 사이에서는 센카쿠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문제로,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독도(일본명 다케시마), 중국과 한국 사이에는 이어도의 문제를 안고 있다. 이러한 영토 문제는 자국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이슈이기 때문에 서로가 쉽게 포기하지 않을 전망이며, 오히려 이러한 문제는 국내에서 정치적으로 이용될 뿐 아니라 쌍방 간에 군사적인 갈등을 일으킬 가능성이 남아있다고 말할 수 있다.


4. 서로 지기 싫어하는 우수한 민족

예전부터 중국과 일본, 한국은 혈연동맹체로서 아주 우수한 민족이라고 인정받아 왔다. 그러기에 이 세 민족은 서로가 지기를 싫어할 뿐 아니라 서로 자신의 힘을 이웃에 과시하려 했다. 이런 결과 세 민족은 자주적이며 독립적인 경쟁관계를 유지해 왔다. 사실 객관적으로 봐도 세 나라는 동아시아에 있어서도 리더십의 위치에서 정치, 경제, 군사, 예술적인 부분 등을 주도해 오고 있다. 이러한 것은 세 민족이 서로 우수함으로써 협력보다는 경쟁관계 속에 있기에 오히려 협력이 더욱 어렵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므로 세 나라는 무엇을 하든지 늘 경계와 감시를 하기 쉽다. 바로 우수하므로 인류 문화적인 면에서 볼 때 서로 협력하기가 까다로울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중국은 일본과 한국에 대해서 자신들이 대국이라는 자신들만의 자만심, 일본은 서구 문명을 일찍 받아들임으로써 동아시아에서 지배했다고 하는 자만심, 한국은 이웃에 대해서 침략한 적이 없다는 의미에서의 도덕적 정의감 같은 것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것이 자기 민족의 정체성을 만들려고 하는 것인데 바로 협력에 있어서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Ⅳ. 협력을 위한 끊임없는 시도들

일본에서는 매년 나라별 호감도 조사를 해 오고 있는데 특히 한·중·일은 시간이 흘러도 그리 크게 변하지 않는 모양새다. 특히 좋아지는 듯하면 급격하게 하락하는 그래프를 그려간다. 지금까지의 시도들을 잠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정부 간 교류의 활성화

한·중·일은 수교 이후 각각 지금까지 지속적인 정부 차원에서 협력 관계를 더욱 증진하기 위해서 여러 시도를 해오고 있다. 정부 간 경제 협력뿐 아니라 이제는 정치, 문화, 군사, 정보 등 다각적인 협력이 확대, 논의되고 있다. 하지만 세 나라에는 여전히 긴장과 편견은 사라지지 않고 때로는 악화하는 느낌마저 든다. 특히 각 나라의 정권이 바뀌거나 정책이 바뀌면 그간의 협력이 무색해질 정도로 냉각되며 적대적인 행위가 발발하게 된다. 특히 지금 일본과 한국 사이에는 약속(조약)의 불이행으로 경제전쟁이 이미 시작되었다. 또한 중국과 일본 사이에는 센카쿠도의 영유권으로 양국의 전투기가 발견되어, 전쟁 일보 직전까지 갔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세 나라의 협력관계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보다 구체적인 대안은 없는 것일까? 앞으로도 3국은 관계를 진전시켜 에너지, 금융, 환경, 테러 등 일련의 문제에서도 활용될 공통의 협력의 틀이 필요하다. 또한 지역 공동체라는 먼 미래를 위해 3국은 문화와 경제 교류를 확대하여 국민 사이의 이해와 신뢰를 높일 수 있어야 한다.10) 그러한 가운데 지방 자치제 간의 자매결연으로 지역 간의 정보, 문화, 예술, 스포츠 등을 교류하면서 정규적인 친선 방문이 진행, 추진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정부 간 차원에서도 정기적인 경제, 군사, 문화 등에 있어서 정기적인 교류를 통해서 쌍방 간의 이해를 더 돈독하게 할 뿐 아니라 보다 신뢰관계를 돈독하게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2. 비정부 간 협력 체계의 확대

3국은 정부의 체제나 과거의 아픈 역사가 있기에 정부 간의 공식적인 교류보다도 오히려 비정부(NGO), 즉 민간차원에서 단체나 개인의 교류를 확대해 나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특히 서로가 필요로 하는 분야나 쉽게 나눌 수 있는 영역에서 시작하는 것이 중요한 데, 특히 의료나 사회봉사, 사막지역에서의 식목활동, 각 분야에서의 스포츠 등은 이미 수년간에 걸쳐 미미하게나마 진행되고 있는데 이러한 활동을 확대해 나가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이러한 교류를 통해서 한·중·일이 국가주의의 얼룩지고 자폐적인 내셔널리즘에서 벗어나서 동북아시아의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현재 세 나라 NGO의 활동을 보면 일본은 비교적 적극적이며 보편화가 되어 있지만 한국과 중국은 아주 미미한 형편이다. (참고로 2005년 통계를 보면 일본이 한국과 중국에 비해 10배 정도 많은 NGO 활동을 하고 있음.11)


3. 기독교 신앙을 통한 공동체 안에서의 협력

사실 한·중·일은 기나긴 역사 속에서 때로는 서로 나누고 주는 아름다운 시대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기나긴 세월을 서로 물고 뜯으면서 싸우고 탈취하고 괴롭혔던 시대가 더욱 많았다. 그로 인해 아직도 그 상처와 아픔은 깊게 자리 잡고 있어서 조그만 문제로도 금방 화를 내며 참지를 못하게 된다. 어떻게 온전하게 치유할 방법은 없을까? 그리고 더 좋은 미래를 만드는 근본적인 방법은 없는 것일까? 여기에 바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한 기독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이다.

1) 국경 없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정체성 확립

‘그리스도인은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확실한 정체성을 갖게 될 때 국가와 민족을 초월해서 행동할 수 있게 된다. 왜냐하면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국가의 통치나 지배보다 하나님의 통치를 우선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1968년 5월 베르나르 쿠시네(Bernard Kourchur)에 의해서 설립된 ‘국경없는 의사회(Medecins Sans Frontiers)’는 현재 3만여 명의 의사들이 전 세계에서 활약하고 있다. 이들은 국가와 민족을 초월하여 어느 곳이든지 치료가 필요한 곳에 달려가서 사람을 구하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 그들은 어느 곳에서든지 자신의 민족과 이익을 먼저 구하지 않는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민족과 국가를 초월할 수 있어야 한다. 바로 우리는 하나님께 속했다는 하나님의 자녀이며 천국시민으로서 주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우선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를 기다리노니”(빌 3장 20절). 우리 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 어떤 한 민족이나 국가에 속해 있기 전에 우리는 주 안에서 천국시민으로서 주의 나라에 속한 자이다. 즉 주 안에서 국경이 없는 초월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우리의 신분이 명확하게 될 때 즉 협력은 자연스럽게 이루지게 될 것이다.

 

 

 

2) 우주적인 교회 공동체
창세기 11장의 바벨탑 사건을 보면 우리는 하나님이 모든 인류가 함께 모여 사는 것을 두려워하신 것처럼 느껴진다. 왜냐하면 그 백성들이 서로 말이 통하지 못하게 언어를 혼잡하게 만드셨기 때문이다.12) 정말 모든 민족이 함께하는 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지 아니하셨을까? 그렇지 않다. 이 문맥을 전후로 살펴보면 그들은 하나님과 관계없이 독립적으로 살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과 관계없이 자신들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들의 왕국을 건설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심으로써 그들의 힘을 약화시키시려는 것이었다. 만약 그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하나님을 중심으로 모여 살기를 원했다면 인류 공동체는 흩어지지 아니하고 영원히 존속되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민족이 주 안에서 하나 됨을 바라고 원하신다.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으니, 곧 영생이로다”(시 133:1-3)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하나 됨은 누구나 아무런 조건 없이 함께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확실하게 주(主)로서 고백하는 자만이 함께하는 것을 말씀하고 계신다(마 16장 16∼18절). 교회는 민족과 국가를 초월해야 하는 공동체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한·중·일의 관계를 보아야 할 것이며 또한 교회가 중심이 되어 이끌어 갈 때 협력은 무난하게 이루질 것이다.


Ⅴ. 삿포로국제그리스도교회(Sapporo International Church)의 배경과 다민족 사역


1. SIC 교회의 역사와 배경


1) SIC 교회의 설립과 역사

SIC 교회는 1986년 11월 3일 영국에서 온 OMF(Overseas Missionary Fellowship)의 소속이었던 Alan Michell 선교사 부부에 의해서 삿포로13) 시내 중심부에서 시작되었다. 이는 삿포로 시내에도 오래된 기존 교회가 있었지만 그들은 복음전도의 열정이 부족했을 뿐 아니라 직장인 사역을 할 여건이 구비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OMF선교회는 많은 직장인이나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전도활동을 하기 위해서 시내 중심에 교회를 설립하게 되었다. 하지만 시내는 월세 등이 아주 비싼 편이였기에 보다 저렴한 곳을 교회의 예배당으로 사용키 위해서 여러 곳을 이동하다가 마침내 정착한 곳이 북해도 대학14) 근처였는데, 필자가 이곳에 부임했을 때는 교회가 개척된 지 이미 10여 년이 되었을 때였다.


2) 교회 구성원

초창기의 교회의 구성원을 보면 리더는 OMF 선교사들이었지만 교회원은 대부분 일본인과 몇 사람의 서양 사람이었다. 하지만 리더가 잠시 홍콩에서 온 중국계 선교사로 바뀌고 있는 동안 근처 북해도 대학에 공부하러 온 대만인, 중국 본토에서 온 중국인들이 소수 회원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그리고 한국인인 우리가 리더십으로 부임한 이후부터 수십 년 중국에서 살던 전쟁고아들이 그의 가족들과 함께 집단으로 삿포로로 이주하여 살다가 다수 교회의 회원이 되었다. 이리하여 SIC 교회는 주로는 일본인이었으나 많은 중국계인 회원이 오게 되었다. 이뿐만 아니라 필자는 SIC 교회에서 18년을 섬기며 사역을 해 왔는데, 필자가 이곳에서 사역한 지 10여년이 될 쯤 한국에서 온 유학생과 주재원, 재일동포들이 조금씩 오기 시작하면서 그야말로 국제교회로 변모하고 말았다.
 

2. 다민족 사역 안에서의 갈등과 해결방안
SIC교회는 하나님의 큰 축복과 은혜로 많은 다민족의 사람들이 모여서 예배하는 공동체로 자랐다. 하지만 이로 인해서 어려움과 갈등들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하게 되었다.
 

1) 다민족 공동체 안에서의 갈등
초창기 주일 예배에서는 당연히 일본어를 사용하면서 소수의 외국인을 위해서 동시통역을 해오고 있었다. 하지만 많은 아시아인, 특히 중국에서 온 중국인들은 일본어뿐 아니라 영어도 이해하기가 어려운 형편이었다. 이러한 형편에도 많은 중국인이 예배에 참여하여 때로는 즐거워하였지만 여전히 도울 방안을 모색해야만 했다. 또한 더 큰 어려움은 예배를 마치고 식사를 하면서 교제를 하게 되는데 다민족이 모여 있었기 때문에 서로 소통의 어려움을 느낄 뿐 아니라 교제가 겉으로 맴도는 느낌이었다. 왜냐하면 타인에 대한 배려를 특별히 잘하는 일본인들이 자신들 주위의 중국인들을 배려하다 보니 자신들의 교제가 온전하게 이루어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러는 가운데 교회가 존재해야 할 속성 중 하나인 성도의 교제가 약해지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2) 다민족 예배공동체로의 전환
처음에는 다민족 공동체로서의 예배와 교제가 천국의 분위기와도 같은 느낌을 받기는 하였지만 시간이 지나감과 함께 여러 문제나 갈등에 부딪히게 되었다. 그 예로 언어 장애로 인한 소통과 교제의 결핍 현상들이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 함께 회의를 통해서 결단한 것이 바로 주일 예배를 언어별로 나누는 것이었다. 일본어, 중국어, 한국어, 영어 예배로 인원수에 따라서 시간별로 나누게 된 것이다. 즉 오전에는 일본어 예배, 오후에는 중국어 및 한국어 예배 그리고, 저녁에는 영어예배로 드리게 되었다.

3) 주 안에서 하나 됨으로써 서로가 섬김으로 사랑하는 공동체임을 강조
다민족이 함께 하는 사역을 하면서 우리는 하나의 분명한 원칙을 세웠다. 그것은 SIC교회 공동체 안에서는 서로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다. 비록 예배가 나뉘어서 드려질지라도 서로의 공동체에 관심을 가지고 섬기고 돕는 것이다. 처음 중국어 예배를 시작할 즈음에 중국인들은 십여 명이 있었지만, 예배를 위해서 봉사할 만한 중국인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주안에서 서로서로 섬김으로 사랑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하고 연습해야 한다고 강조해왔기 때문에 중국어 예배를 위해서 일본인 형제자매들이 매주 찬양과 피아노를 봉사하며, 중국인 형제자매들의 자녀들을 위해서 주일학교 교사로 아니면 보조교사로 자진하여 섬기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서 중국인 형제자매들은 일본인 형제자매의 따스한 마음과 손길을 보면서 서로 마음이 열리고 서로 격려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우리는 모든 재정도 한곳에 놓고 함께 상의하면서 주의 나라와 의를 위해서 사용함으로 더욱 신뢰를 견고하게 할 수 있었다.
 

3. 다민족 공동체 사역을 통한 축복과 열매들
SIC교회는 다민족이 모임으로 인한 갈등과 불편함을 넘어 엄청난 유익과 축복을 경험했다고 생각한다. 


1) 보다 넓은 관용과 포용력을 학습하는 기회가 됨단일 문화권에 살면 소통이 더욱 편리할 수 있겠지만 사고나 라이프 스타일이 단순해지고 편협해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문화를 경험하거나 그러한 환경 가운데 사는 사람들은 이웃에 대해서 더욱 관용적이고 포용적이게 될 수 있다.15) SIC 안에서도 민족을 초월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삶을 나누기 시작하면서 주위 사람들에 대해 더욱 넓게 보고 이해하려는 경향이 일어났다. 예전에는 일본인만의 편협한 생각이나 가치관을 따라 행동을 하는 경향이 다분했지만 주위의 여러 민족을 경험하면서 그들만의 것을 고집하지 않게 되었다. 상대방의 문화와 생각들을 존중하면서 자신들의 것을 때로는 포기해야만 했다. 이를 통해서 수년 뒤에는 여러 나라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교제할 수 있는 단계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어떤 일본인들은 중국어 예배를 보다 효과적으로 섬기기 위해서 중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아주 수준급의 중국어을 사용한다.
 

2) 보다 다양성 있는 선교의 기회들인간적인 면에서 보면 다민족이 함께 공존한다는 것은 매우 혼란스럽고 위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의사소통이나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갈등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교적인 면에서 본다면 다민족 공동체는 엄청난 유익이 있다는 점을 증언하고 싶다. 특히 다민족 공동체 안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주위 사람에게 더 많은 관심사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 예술 등은 서로에게 더 신선한 영향력과 관심을 유발할 수 있다. SIC의 경우도 많은 일본인이 중국이나 한국의 문화나 언어에 관심이 있었기에 교회로 첫 발걸음을 옮긴 경우가 많이 있었다. 많은 일본인이 이렇게 교회로 자연스럽게 인도되었고, 자연스럽게 그리스도인이 된 것이다.


3) 그리스도 안에서의 사랑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게 됨

우리가 이 세상에서 자기 민족과 문화를 초월하여 서로가 우정을 나누며 교제한다는 것은 간단한 것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이 세상의 모든 문화와 언어를 극복하게 하는 힘이 있다. 즉 하나님 아버지의 진정한 사랑을 깨닫고 경험한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누구도 사랑하고 품을 수 있게 된다. 나의 생애 가운데도 처음으로 일본에 들어가서 일본인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문화가 다르다 보니 여러 오해도 생기고 또 민족 감정도 되살아나는 때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마다 잘 극복하고 이길 수 있었다.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의 넓이와 높이와 깊이와 영원함을 묵상하노라면, 아니 그리스도를 통해서 받은 조건 없는 사랑을 생각하면 민족 간의 갈등과 차이, 아니 문제들로 옹졸해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을 내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처럼 용납하게 되고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이 일어난다. 하나님은 그렇게 국제적 공동체를 섬길 수 있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 우리 교회는 세계 각국에서 수많은 인종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교제를 하지만 행복하고 즐거웠다. 문제는 주 안에 있느냐 없느냐였지 그들의 국적이나 문화가 다른 것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축구 경기를 보다 가도 문득 우리 교회 형제의 나라를 응원하게 되고 혹 이기기라도 하면 전화를 해서 축하해 주고 싶은 생각이 든다.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는 삶이 아닐까 한다. 우리가 주의 나라에 가면 거기는 국경도 나라도 민족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의 임재 앞에서 사랑하며 용서하며 격려하며 그리고 교제하며 살게 될 것이다.


Ⅵ. 진정한 협력을 위한 우리들의 준비


1. 주의 복음을 잘 알고 경험하는 것이다

주의 복음 안에는 엄청난 능력이 있다. 그러므로 복음을 잘 이해하고 경험한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사람들을 사랑으로 섬기고 품을 수 있게 된다. 그러면 복음이란 무엇일까?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분이 왜 이 세상에 오셨을까?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무엇을 하셨는가?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다. 복음의 본질은 그분의 십자가와 부활이 나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잘 이해하고 경험할 때 명백해진다. 이것을 온전하게 경험하고 체험한 사람만이 World Christian으로 이웃을 품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2. 겸손과 사랑으로 섬기려는 성숙함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웃을 섬기고 사랑하는 것은 어린아이에게 불가능하다. 어린이들은 조급하여 참을 수 없으며 미숙하여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결코 장차 펼쳐질 먼 거리를 예측할 수도 없다. 자신의 바로 앞에 있는 것만 보일 뿐이다. 하지만 어른이 되면 이웃에 대해서 이해하고 참고 섬길 힘이 생긴다. 그래서 어느 곳에 있든지 이웃과 함께할 수 있게 된다. 한 나라 안에도 이러한 성숙한 시민 정신이 자라나야 한다. 성숙한 나라는 이웃과도 사이좋게 지낼 수 있게 된다. 바로 그리스도인도 주 안에서 겸손과 사랑으로 섬길 줄 아는 성숙함이 없이는 결코 이웃을 품을 수도 함께할 수도 없을 것이다.


Ⅶ. 나가는 말

지금까지 동북아시아의 나라들은 관계의 필요성을 절감하여 여러 방면에서 많은 연구를 해왔고, 이 연구를 토대로 많은 시도를 해오고 있지만 진정한 발전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도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세 나라의 관계가 급격하게 좋아진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세 민족은 그간의 긴 역사를 함께 걸어오며 많은 상처를 주고받았고, 그저 덮어보고자 노력은 했지만 여전히 아픔은 남아있고, 또 서로의 정치적인 체제나 사회/문화적인 시스템이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기에 영토문제까지 얽혀 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한·중·일은 어떻게 하면 밝은 장래를 맞이할 수 있을까. 정부 간, 비정부 간의 교류도 더 확대하면서 자주 오고 가는 소통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노력만으로 해결될 수는 없다. 주의 복음 안에서의 교제와 교통을 이루어 가야 한다. 한 주, 한 하나님, 한 예수님 안에서 주의 가족이 되어 가는 기독교 공동체가 근저에 깔리고, 그 위에 세 나라가 더욱 신뢰 관계를 형성해 나가며 친밀한 공동체를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이렇게 동북아시아를 넘어 아시아와 세계로 확대되어 가는 아름다운 공동체를 꿈꿔본다.



미주   
1) 우수근, ’한·중·일 힘의 대전환’, 경기고양, 위즈덤하우스, 2019년, p165-167.
2) 일본 패전 후 만든 헌법 9조에 공격할 목적으로 군대나 무기를 소지하지 아니할 것을 명시하고 있는데 이 법을 개정하여 현재의 자위대를 군대로 바꾸고 무기를 소유하려는 움직임이 구체화되고 있다.
3) 일본재무성 2017년 무역통계 사이트(www.jftc.or.jp).
4) 임현진/임혜란, “동아시아의 협력과 공동체”, 경기파주, 나남출판 2013년, p274.
5) 임현진/임혜란, “동아시아의 협력과 공동체”, 경기파주, 나남출판, 2013년, pp. 273-4.
6) 임현진/임혜란, p. 171.
7) 尾山令仁、‘日本人とキリスト教の受容’、東京,羊群社₍1995年)、p.103-104.
8) 임현진/임혜란,’동아시아 협력과 공동체’,파주,나남출판, 2013년 p.129-132.
9) 우수근, ‘한·중·일 힘의 대전환’, 경기고양, 위즈덤하우스, 2019년, p36-37.
10) 임현진/임혜란, ’동아시아 협력과 공동체’, 파주, 나남출판, 2013년, p34.
11) 임현진/임혜란, p47-48.
12) 창세기 11장 6~7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나 이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려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13) 삿포로는 일본에서 5번째로 큰 도시이며 인구는 현재 200만에 육백하고 있다.
14) 북해도 대학은 ‘Boys be ambitious.’로 유명한 말을 남긴 William Clark 박사가 7개월간 사역했던 삿포로 농업학교의 후신이다.
15) 문상철(2015), ‘변형적 상황화:일본선교의 통합적 접근법’, 서울:한국선교연구원, p76
 

※참고문헌
임현진/임혜란(2013), ‘동아시아 협력과 공동체’, 경기파주, 나남출판.
우수근(2019), ‘한중일의 대전환’, 경기고양 위즈덤하우스.
평화네트워크(2013), ‘동아시아와의 인터뷰’, 경기파주 서해문집출판.
차창훈(2009), ‘중국의 부상과 동아시아의 협력’ 학술연구재단(구학술진흥재단) 논문.
신욱희, ‘동아시아 다자주의의 제도적 디자인(세 유형 비교)’.
강문호(1995), ‘중국 대륙선교’, 서울:도서출판 칼빈 서적.
문상철(2015), ‘변형적 상황화:일본선교의 통합적 접근법’, 서울:한국선교연구원.
아더 J. 부라운 저/김인수 역(2003), ‘韓中日宣教史’、서울:쿰란출판사.
小野静雄₍2012₎、‘日本教会史’カルバンアカデミー出版.
尾山令仁₍1995年)、‘日本人とキリスト教の受容’、東京,羊群社.

 


* 이 글은 <전방개척선교> (2020년 1/2월호, Vol.86)에 실린 내용을 저자의 허락을 받아 게재하였습니다.






사진 |  국민일보 캡처(사진 위) / 예향원(사진 아래)
이수구 | 선교사, 일본복음선교회(JEM)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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