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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고구마 한 상자가 우리 ‘지구촌 선교문학 선교회’ 사무실로 배달되었다. 주소를 보니 충청남도 태안군에서 보낸 것이었다. 나는 고구마 상자를 잡고 먼저 조용히 기도를 드렸다. 이 고구마는 정말 특별한 고구마였기 때문이었다. 누군가는 고구마면 그냥 고구마이지 뭐가 그리 특별하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사실 그렇다. 슈퍼마켓에만 가도 얼마든지 있는 것이 고구마이다. 그것도 종류별로 말이다. 호박고구마, 밤고구마, 꿀고구마, 자색고구마 그리고 요즘 나온 신품종의 다호미고구마 등등. 드디어 고구마 상자를 뜯어보니 색깔이 호박고구마인 듯했다. 먹음직해 보이는 색깔의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적당한 크기의 고구마들이 상자에 정성스레 가득 담겨 있었다.
나의 선교학 박사학위 논문이 제본되어 나왔다는 소식을 들은 몇몇 ‘선교문학’ 독자들로부터 논문을 얻을 수 있겠느냐는 연락이 왔었다. 고구마를 보내온 목사님도 그중에 한 분이었다. P목사님은 서울 분이었지만 지금은 은퇴를 하고 태안에 내려가서 살고 있다. 하지만 P목사님은 지금도 캄보디아선교를 하고 있다. 한 달씩 캄보디아의 신학교에 들어가서 집중해서 조직신학, 예배학 등을 가르치고 돌아온다. 그런 P목사님이 내게 연락을 해 온 것이다. 캄보디아의 신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데 내가 쓴 선교학 박사 논문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이다. 그래서 나는 선뜻 논문 한 권을 보내드리겠다고 했다. 논문을 보내고 얼마 뒤에 P목사님은 뜻밖에 손수 농사 지었다는 고구마를 한 상자 보내온 것이다. 간식으로 먹으라고 하면서 말이다. 좀 비싸다고 여겨진 고구마를 한 상자씩 선뜻 사 먹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었지만 그것보다도 P목사님의 정성 어린 따뜻한 마음이 나는 참 고마웠다.
얼마 전 P목사님이 카카오톡(이하 카톡)을 보내왔다. 밭에서 고구마를 캐다가 좀 힘들어서 잠시 쉬러 집에 왔는데 카톡이 와 있어서 답장을 보낸다는 내용이었다. 비로소 나는 P목사님의 땀과 수고가 배인 농사의 결실로 얻은 고구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즉 사서 보낸 것이 아니라 손수 농사를 지어 보낸 정성이 깃든 그야말로 특별한 고구마였던 것이다. 이런 고구마이니 택배로 배달된 이 고구마 상자를 잡고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P목사님의 건강과 선교 사역 그리고 그분의 삶에 하나님의 복이 충만하게 넘치기를 간절히 기도드렸다. 그러고 나서 내 입가에는 미소가 가득 흘렀다. 나의 박사학위 논문을 처음 달라고 한 분이 그 논문을 받고 답례로 보내온 것이 고구마 한 상자라니 참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문득 내 어린 시절이 아득히 떠올랐다. 당시 초등학교 선생님이셨던 아버지는 아주 깡 시골에 있는 작은 분교에서 근무하셨다. 그곳의 주민들은 주로 농민들이셨는데 이상하게도 몸이 아프면 우리 집에를 찾아왔다. 사범학교를 나오신 아버지가 어디서 의술을 배우셨는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아프신 주민들이 찾아오면 의사처럼 청진기를 귀에 꽂고 진료를 하시고, 미리 사다 둔 간단한 치료약을 주민들에게 처방해 주셨다. 지식인들이 별로 없는 깡 시골 마을에서 아버지는 유일하게 대학까지 나온 지식인이셨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버지에게 진료를 받고 약을 타서 먹은 동네 주민들은 병이 다 나았다고 하면서 답례인사를 하기 위해 다시 우리 집을 찾아왔다. 당시 시골에는 돈이 귀했다. 그래서 동네 주민들이 우리 집에 올 때 가지고 온 것은 밭곡식이 대부분이었다. 옥수수나 고구마, 콩 같은 농산물을 감사의 표시로 가지고 왔다.
사실 우리 아버지가 간단한 의술을 배우신 것은 시골에서 키우게 된 우리 형제들을 위해서였다. 그리고 아버지의 고등학교 동창 중에 의료원 원장인 의사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나도 몸이 아플 때면 종종 아버지가 처방해 주는 약을 먹고는 했다. 60년대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는 그리 잘 살지 못했다. 시골은 더 말할 나위가 없었다. 우리가 살던 깊은 산골에서는 의료혜택을 거의 받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아버지는 교육뿐 아니라 당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이나 주민들에게 간단한 의료혜택도 베푸신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나의 아버지도 상당히 인도적이고 따뜻한 마음을 가지신 분이심에 틀림이 없었을 것이다. 태안에서 보내온 고구마 한 상자를 바라보며 문득 어린 시절의 경험인 이런 생각이 떠오른 것은 지극히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두 경우 모두 선의의 베풂과 나눔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농산물을 가져 왔다는 점에서 보면 말이다.
나의 논문을 첫 번째로 받아본 분이 보내온 고구마 한상자의 의미는 그래서 내게는 더욱 정겹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고인이 된 우리 아버지도 옛날 시골에서 주민들의 가벼운 병을 고쳐주고 나서 주민들이 자의로 가져온 농작물을 받으셨을 때 내가 느낀 이런 푸근한 기분을 아마도 느끼셨을 것이다. 사람은 어쩔 수 없이 감정적 존재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박애정신의 가치관에 의해서 지극히 당연하게 봉사를 할 수도 있지만, 그런 봉사에 대해 상대방이 사례하고 감사의 표시를 해 줄때 더욱 그 박애정신은 고양이 된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마침 은행에 볼 일이 있어서 갔다가 간 김에 통장정리를 했다. 그런데 GMLS 선교회 후원 통장에 뜻밖에 적지 않은 후원금이 들어와 있었다. 바로 P목사님이 보내온 것이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왜냐하면 내가 논문을 보내드린 목사님은 이미 은퇴하신 목사님이기도 했지만 농사지은 고구마를 보내주신 것으로 고마움을 표시하신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특별한 후원금을 받고 나는 마음이 따뜻해졌다. 내가 박사학위 논문을 쓰기 위해 들였던 땀과 노력, 그 긴 시간을 몰입해서 얻어낸 성과물에 대해서 누군가가 알아준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가을에 태안으로부터 배달된 고구마 한 상자는 더 특별한 고구마였다. 우리 가족이 고구마 한 상자를 다 먹는 내내 나는 행복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갈 때 누군가의 노력으로 거저 얻게 되는 것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또 그 감사를 표현하고 있는지 한 번쯤 깊이 생각해 보는 이 가을이 되었으면 좋겠다.
형제여 성도들의 마음이 너로 말미암아 평안함을 얻었으니 내가 너의 사랑으로 많은 기쁨과 위로를 받았노라. (빌레몬서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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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은혜 | 장로회신학대학교 선교문학 석사, 미국 그레이스신학교 선교학 박사, 지구촌 선교문학 선교회 대표, 지구촌 은혜 나눔의 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