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웜브란트(Richard Wurmbrand·1909∼2001) 목사와 밥푸(Bob Fu,·중국명 傅希秋·1968∼ ) 목사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첫째, “고난과 핍박 가운데 있는 이들과 함께 울라”는 주님의 마음을 구현하는 기관을 세웠다. 웜브란트 목사는 1967년 ‘공산주의에 복음을(Jesus To The Communist World·현재 순교자의 소리(Voice of the Martyrs))’를, 푸 목사는 2002년 ‘차이나에이드(ChinaAid)’를 각각 창립했다.
둘째, 복음 때문에 온갖 어려움을 겪었지만 믿음을 잃지 않았다. 공산주의 치하에서 웜브란트 목사는 14년간 루마니아 감옥에서 극심한 구타와 고문, 세뇌, 폐결핵 등 형용할 수 없는 고초를 견디면서 하나님을 향한 신앙은 고수하고 동료 기독인들을 배반하지 않았다. 지하교회 연락망을 밝히라는 고문기술자들의 회유와 협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푸 목사는 낮에는 중국공산당 간부를 양성하는 중앙당교에서 영어교육을, 밤에는 가정교회와 신학교 사역을 감당하다가 정체가 결국 탄로나 아내와 함께 강제노동수용소로 보내졌고 직장까지 잃어야 했다.
셋째, 윔브란트 목사는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Tortured for Christ)’을, 푸 목사는 ‘하나님의 비밀요원(God’s Double Agent)’이라는 책을 통해 루마니아와 중국에서 기독교인이기에 감내해야만 했던 참상을 세상에 전하고 세계 곳곳에서 중보기도의 열기를 불러일으켰다. 윔브란트 목사의 삶과 신앙을 담은 영화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은 최근 ‘한국 순교자의 소리’를 통해 한국교회와 기독교인들에게 소개됐다. 현재 미국에서 중국의 종교와 인권 상황을 차이나에이드 사이트(www.chinaaid.net) 등을 통해 알리고 있는 푸 목사는 ‘한국 순교자의 소리’의 초청으로 2017년과 2018년 두 차례 한국을 방문, 중국공산당의 종교정책 변화와 집행 내용을 공개했다.
“이 책은 문학적 가치가 없습니다. 이것은 내가 감옥에서 나온 직후에 사흘 동안 쓴 책입니다. 그러나 나는 펜과 눈물로 이 책을 썼습니다. 그리고 어떤 이유에서인지 하나님은 이 책을 축복하고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사용하기로 하셨습니다.” 웜브란트 목사의 책은 67개국 언어로 번역되어 수백만 부가 배포됐다. 가난한 유대인 후예로 태어난 웜브란트는 확고부동한 무신론자였다. 하나님이나 예수 그리스도를 단순히 믿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그런 개념들이 인간의 정신에 해를 끼친다고 생각해 증오하기까지 했다. “하나님, 나는 당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확신합니다. 그러나 혹시 존재한다고 해도 당신을 믿는 것은 내 책임이 아닙니다. 내가 믿도록 당신을 나에게 계시하는 것이 당신의 책임입니다.”
이처럼 확신에 찬 무신론자에게 루마니아 산골의 늙은 목수였던 뵐프케스가 성경책을 건네며 읽어보라고 했다. 뵐프케스는 이같이 기도해왔다. “나의 하나님, 저는 이 땅에서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하늘뿐 아니라 땅에서도 상급을 받고 싶습니다. 만약 제가 죽기 전에 유대인 한 명을 그리스도께 데려온다면 그것을 상급으로 삼겠습니다. 예수님이 유대인 가운데서 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가난하고 늙고 병들었습니다.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유대인을 찾아낼 수가 없습니다. 우리 마을에는 유대인이 한 명도 없습니다. 유대인 한 명을 우리 마을로 데려와 주세요. 그러면 제가 최선을 다해 그 사람을 그리스도께 인도하겠습니다.”
목수에게 전달받은 성경책은 웜브란트에게 이상하리만큼 매우 특별했다. 성경을 읽어내려가자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극적으로 아내 사비나 오스터와 함께 기독교인이 되기로 결정했다. 웜브란트와 그의 아내는 유대인을 대상으로 한 성공회 사역에 동참했다. 웜브란트는 루터교 목사 안수를 받은 뒤 명백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핍박받는 사람들을 섬기는 사역을 시작했다. 파시스트들이 루마니아를 장악하자 그는 전쟁으로 상처받은 가족들을 돌보는 사역을 했다. 웜브란트 부부는 유대인 강제 거주 지역에서 유대인 고아들을 몰래 빼내고 방공호에서 설교하고 헝가리 집시들을 위한 구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웜브란트 부부는 유대인임에도 불구하고 독일군 몇 명이 루마니아를 탈출하도록 돕기도 했다.
1944년 8월 23일이래 소련군이 루마니아를 침공, 루마니아가 소련의 위성국가가 되면서 공산주의자들이 모든 교회를 탄압하기 시작했다. 공산주의자들은 모든 기독교 교단 지도자 4000여 명을 소집해 국회의사당에서 회의를 개최했다. 교계 지도자들은 이 회의의 명예회장으로 이오시프 스탈린을 추대했다. 주교, 목사들은 한 명씩 일어나서 공산주의와 기독교는 기본적으로 같기 때문에 공존할 수 있다고 선언했다. 사역자들은 공산주의를 찬양하고 교회는 공산당 정부에 충성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한 정교회 주교는 사제복에 망치와 낫을 달고 자신을 이제는 “주교 예하”라고 부르지 말고 “주교 동지”로 불러달라고 역설했다. 이 회의는 전국적으로 중계되고 있었다.
“리처드, 일어나요. 그리스도의 얼굴에서 이 치욕을 씻어 내세요. 저들이 예수님 얼굴에 침을 뱉고 있잖아요.” 사비나는 웜브란트에게 이렇게 말했다. “만약에 내가 그러면, 당신은 남편을 잃게 될 거요.” 그녀는 “난 겁쟁이를 남편으로 두고 싶지 않다”고 대답했다. 웜브란트는 아내의 말에 용기를 내 “우리는 먼저 예수님께 충성해야 한다”면서 공산주의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했다. 세계교회협의회(WCC) 루마니아 대표이기도 한 웜브란트 목사의 발언은 큰 파장을 일으켰다. 수많은 목회자들이 공산주의자들에게 협력하자 웜브란트는 지하교회를 세워 다른 길을 걸어가야만 했다. 주둔중인 소련군에게도 복음을 은밀히 전하던 그는 루마니아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저항세력의 ‘괴수’로 인식이 됐고 1948년 2월 29일 주일, 교회 가는 길에 비밀경찰에 납치됐다. 그는 시뻘겋게 달궈진 부지깽이와 칼로 고문을 당하거나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 수 있는 작은 나무상자 안에서 서있어야만 했다. 상자 내부 사면에는 송곳처럼 날카로운 못이 수십 개 씩 박혀있어서 조금만 움직여도 못이 살을 파고들었다. 고문기술자는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상상할 수 없는 무자비한 방법으로 웜브란트를 다뤘다.
8년 6개월 감옥에 갇혀 있다가 풀려난 그는 복음 전도자들로 구성된 비밀조직을 구성했다. 그의 행적을 끈질기게 감시하던 비밀경찰에게 다시 발각돼 또다시 5년 6개월간 재수감됐다. 하지만 복음 전도에 대한 그의 열정을 막을 수 없었다. 다른 죄수에게 전도하는 일이 엄격하게 금지돼 있었지만 그와 기독교인들은 교도관들에게 “우리는 전도할 테니 당신은 때려라”며 매질을 담보로 복음을 전했다. 피투성이가 되는 걸 반복해도 전도의 열심을 막을 수 없었다. 매질하던 교도관은 “네 목숨은 내가 쥐고 있다. 하늘에 있는 자는 너를 살려둘 결정권이 없다. 너를 살리고 죽이는 건 내 마음이다. 내가 곧 하나님이다”며 기독교인들을 조롱했다.
1965년 12월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웜브란트 목사 가족은 루마니아를 떠날 수 있었고 1967년 10월 단돈 100달러와 낡은 타자기, 500여 명의 이름과 주소를 갖고 세계 기독교인들이 겪는 시련과 간증을 알리는 단체를 만들었다. ‘순교자의 소리’는 5가지 주요 목표를 실현하는 데 힘써왔다. 첫째, 기독교를 제한하는 나라들에서 핍박받는 기독교인들에게 그들의 언어로 된 성경과 기독교 문서와 라디오 방송을 보낸다. 둘째, 기독교를 제한하는 나라들에 사는 기독교 순교자 가정에 구호물자를 보낸다. 셋째, 공산주의 억압에 고통당한 나라들에서 기독교인들이 허물어진 삶을 재건하고 복음을 전하도록 격려하는 사역을 시작한다. 넷째, 복음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한다. 다섯째, 기독교인들이 당한 잔혹 행위와 핍박받는 기독교인들의 용기와 믿음을 세계에 알린다. 웜브란트 목사는 생전에 늘 “하나님은 항상 핍박받는 자들의 편이시다”고 말했다. 그는 루마니아처럼 자유세계에도 핍박이 임할 것이라며 교회가 이 때를 준비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지하교회를 준비하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그리스도 없는 기독교’는 중국인들에게 필요 없습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지성적으로 설득력 있는 논리적인 진리입니다.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지, 또는 서로 믿지 못하는 물질만능의 사회에서 인생의 목적을 어떻게 발견할 것인지 등과 같은 어려운 문제들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이런 문제들에 대한 그리스도의 교훈을 이해하기 위해 힘씁시다. 하지만 거기서 멈추면 안 됩니다. 중국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과 희생과 봉사의 위대한 행동을 통해 감동을 받고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우리의 사랑과 봉사와 희생은 그들을 감동시킬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거기서 멈춰서는 안 됩니다.”

푸 목사의 말이다. ‘하나님의 비밀요원’을 읽다보면 어느 새 흘러내리는 눈물을 느끼게 된다. 푸 목사의 개인사를 통해 중국 기독인들이 겪어야만 하는 질고의 세월을 ‘리얼하게’ 인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이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하는, 특히 중국선교나 선교중국을 꿈꾸고 있는 이들에게 주는 진정한 울림의 메시지는 “너무 서두르지 말라”는 조언이 아닌가 생각된다. “미국인들 중에 중국에 단기선교를 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단기선교를 마치고 중국을 떠나면 중국에는 오직 영어로만 기도할 수 있는 신자들의 ‘미국화 된 중국 기독교’가 남습니다. 인스턴트식품을 만들어 먹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생명과 죽음이 걸린 구원의 문제를 놓고 결단하라고 말할 때 거의 효과가 없습니다. 오히려 역효과를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사영리는 영혼의 추수를 위해 사용하는 마술적인 판매전략이나 사업수완이 아닙니다. 나는 즉시 효과를 볼 수 있는 묘수를 찾지 말고, 대신 중국인들과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복음의 본질이 아닌 것들에게 발목 잡히지 말고 은혜와 진리의 참된 복음으로 살아가는 삶을 보여줄 때 ‘복음 안에서의 진정한 자유로움’이 빛을 발한다는 게 웜브란트 목사와 푸 목사의 일관된 목소리이자 개별 행전의 진수가 아닐까. 성공을 위해 꼼수와 악랄한 방법을 쓴다는 일부 사극의 줄거리가 현대 중국의 도덕적 타락을 조장할 수 있다며 중국 국가신문출판광전총국(광전총국)이 최근 모든 장르의 사극에 대해 신작은 6월까지 방영 불가, 이미 공개된 작품은 동영상 사이트의 추천 목록에서 제외하라는 사극 금지령, 이른바 ‘한고령(限古令)’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역사적 사실과 인물의 이미지를 비틀어 청소년들이 허구를 진짜로 믿게 하는 등 악영향을 준다”는 게 명분이다. 역사 희화화, 왜곡과의 전쟁을 넘어 사상통제를 더욱 강화하고 있는 게 오늘 중국의 민낯이다. 종교의 자유는 있으나 종교활동의 자유가 제한되는 곳에서 하나님의 사람이 살아가는 덕목은 주님과 묵묵히, 조용히 그 길을 걸어가는 것이 아닌지 나 자신을 다시 한 번 주님의 거울에 비쳐보고 있다. 주님, 저는 진짜 주님의 종입니까. 아니면 가짜 주님의 종입니까. 인지하지 못할지라도 우리를 지켜보는 이들이 있다. 목격자들의 가슴이 뛰는 날이 오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의 몫이다.
사진 | 국민일보 캡처 왕빈 | 중국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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