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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9.3  통권 193호  필자 : 강진원  |  조회 : 3134   프린트   이메일 
[특집] - 특집/ 제2 사역지를 꿈꾸며
하나님 저는 캄보디아의 중국선교사입니다


팀 사역의 든든한 울타리 안에서 중국선교에 대해 기초부터 과외 수업을 받듯이 차근차근
2000년대 중반의 어느 날, 국내에서 부교역자 생활을 이미 10년 이상 하고 있던 나에게 하나님은 중국선교를 위해 강하게 부르셨다. 그때까지 나와 아내는 선교훈련이라는 것을 받아본 적이 없었고, 선교에 대해서도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에 그 부르심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러나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고집스러운 부르심 앞에 나는 결국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2007년 1월 마지막 날, 6개월 된 막내를 포함해서 어린 자녀 4명을 데리고 중국 윈난성(雲南省)으로 들어갔다.
 

 너무나 낯설었던 중국 생활은 나와 우리 가족에게 두려움이었다. 나만 쳐다보고 있는 어린 자녀들과 함께 이곳에서 잘 살아남을 수 있을지 그저 막막하기만 했다. 하나님이 나에게 사명으로 입혀 주신 중국선교라는 옷이 나에게는 도무지 맞지 않은 너무 커다란 옷처럼 느껴졌다. 이렇게 몸에 맞지 않은 큰 옷을 걸치고 중국선교의 경험이 없어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고 있던 나를 위해 하나님은 이미 건강한 팀을 준비해두셨다.

 

나는 팀이라는 든든한 울타리 안에서 중국선교에 대해 기초부터 과외 수업을 받듯이 차근차근 배울 수 있었다. 팀에서 운영하는 소수민족 신학교 사역을 동역하면서 선교는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협력하며 서로 섬기는 것이라는 것을 배우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렇게 건강하게 팀사역을 하면서 내 몸에 맞지 않는 커다란 옷처럼 느껴졌던 중국선교라는 옷이 어느덧 딱 맞게 느껴졌다. 하나님은 내가 잘 자라게 도우시며, 내가 제대로 성숙지기를 기다리고 계셨다. 팀에서 공동으로 하는 사역 이외에도 개인적으로 ○○시의 산속에 살고 있는 한 종족의 교회들을 섬길 수 있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중국에서 보낸 9년의 시간은 내 인생에 있어서 전성기였다라고 감히 고백할 수 있다.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하나님
그렇게 행복하게 중국에서 선교 사역을 하던 중 하나님이 중국의 문을 점점 닫으시고 다른 나라의 문을 열고 계셨다. 파송교회의 사역지 이동 권유, 사역하던 신학교 폐쇄, 팀 리더의 추방 그리고 선임 선교사가 민종국(民宗局)에 고발되고, 필자 역시 추방자 명단에 올라간 것 등등 소소한 것까지 알게 되었다. 이것은 우리가 중국을 떠날 수밖에 없는 중국에 대해 문을 닫고 계신다는 거부할 수 없는 여러 증거들을 우리 부부 앞에 보여주신 것이라고 여겼다.
 

하나님은 나에게 중국땅에서 하는 선교에 대한 문을 닫으시는 대신 캄보디아땅의 중국인선교에 대한 문을 열어가고 계셨다. 팀원들과 함께 출구전략 차원에서 동남아시아 7개 도시를 함께 돌아보았다. 그 가운데 캄보디아 지부가 이 땅에서 함께 동역하면 좋겠다고 우리에게 손짓을 했다. 게다가 공교롭게도 그 지부는 우리가 동남아시아로 출발하기 전에 중국 윈난성을 방문하기로 결정하고 항공권 구매까지 해놓은 상태여서 자연스럽게 만남이 이루어졌다. 그 후 중국어를 할 수 있는 분이 없냐고 하면서 윈난성의 우리 센터를 찾아와서 문의를 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를 캄보디아로 오라고 요청한 K 선교사가 우연히 다른 나라에서 사역하는 H선교사를 캄보디아 프놈펜(Pnompenh)에서 만나서 우리를 추천했다고 전해주었다. 이처럼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을 하고 있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거부할 수 없는 증거들을 친히 보여주셨다.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이렇게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그 땅으로 보내셨다는 강한 확신을 가지고 캄보디아로 떠났다. 충성하고 싶어서, 그리고 순종하고 싶어서 우리는 한국도 들르지 않고 중국에서 철수를 해서 곧바로 캄보디아로 들어갔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순종해서 도착했던 가나안 땅에 기근이 있었던 것처럼(창 12:10), 우리 역시 도착해보니 엄청난 기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중국선교사들에게 있어서 캄보디아는 똑같은 선교지가 아니었다. 특별히 보안지역에 있던 선교사들에게 있어서 개방된 지역 선교지의 환경은 거의 문화충격에 가까웠다. 한국교회보다 더 심한 조직문화, 무더운 날씨, 기존 선교사들의 텃세 등으로 인해 우리 부부는 중국선교를 포기하고 한국으로 철수를 하려고 했었다. 그렇게 끝이 보이지 않는 깊은 수렁을 경험하고 나서야 우리는 수면 위로 올라올 수 있었다.
 

전략적 제언
추방 대상자가 되어서 중국에서 캄보디아로 온 지 벌써 3년이 지났다. 캄보디아는 동남아시아의 인도차이나 반도에 자리를 잡고 있다. 태국, 베트남, 라오스 등과 인접해 있어서 접근성이 좋고 허브 역할을 할 수 있는 지역이며, 불교와 힌두교의 문화가 혼재되어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또한 중국인들이 많이 몰려오고 있는 나라들 가운데 하나이다. 중국선교사들에게 이러한 장점이 있는 지역이 캄보디아이다. 중국과 캄보디아 두 나라를 경험한 선교사로서 중국에서 철수를 경험했거나 고려를 하고 있는 선교사들에게 몇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1. 어느 책에서인가 선교사가 사역을 하던 사역지에서 철수를 하기 위해서는 평균 1년 반의 준비기간이 필요하다고 한 내용을 본 적이 있다. 철수하는 선교사는 반드시 본국이나 제3 국가로 철수를 한 뒤 정신적, 육체적, 영적 회복을 해야 한다. 특별히 추방이라는 단어는 선교사에게 상처와 트라우마로 남을 수 있다. 반드시 쉼의 시간을 가지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전략을 구상하는 마음의 여유를 가져야 한다.
 

2. 선교지 이동을 했다면 중국 사역만을 고집하지 말아야 한다. 반드시 그 나라의 현지어를 배워야 한다. 중국선교사들은 끈끈한 동지애 때문에 그 나라에 있는 기존의 선교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그들만의 고립된 섬에 갇힐 위험성이 있다. 겸손하게 그 나라의 사역문화와 선교사들을 존중하는 성숙한 자세가 필요하다.
 

3. 하나님이 일하시고 이루어 가시는 큰 판을 보는 눈이 있어야 한다. 이제 한 국가의 개념으로 사역하는 시대는 지났다. 추방 선교사, 선교지를 이동한 선교사들에게는 중국 대륙에 있던 경험을 살려 중국뿐만 아니라 다른 주변 국가들과 연계해서 사역을 할 수 있는 안목이 자연히 생긴다. 한 나라에만 있던 선교사들에게는 이런 시야는 부족할 수밖에 없다. 중국어는 동남아 특히 캄보디아에서 아주 좋은 전략적 무기가 될 수 있다.
 

4. 혼자서 사역지 이동을 하지 말고 두세 가정이 함께 이동하는 것이 좋은 전략이다. 서로의 아픔을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간다면 새롭게 정착해야 하는 어려운 환경도 좀 더 수월할 수 있다. 서로 위로가 될 뿐만 아니라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도 혼자서는 엄두가 나지 않지만 함께할 때 용기를 내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5. 선교지 이동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하지만 결국 마지막 결정은 본인이 내리는 것이다. 누가 불러서 타의에 의해서 가는 것이 아니라 선교사 본인이 선택하고 결정해야 한다. 국가를 이동해서 가보면 예전 땅으로부터 버림받은 것 같은 서러움이 마음에 남아 있다. 그리고 첫사랑 국가를 잊지 못하는 그리움이 남아 있다. 게다가 새로운 사역지 환경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어렵다. 그렇기에 단순히 타의에 의해서 이동했다고 한다면 원망만 남게 될 것이다. 선택은 본인이 한 것이고 책임도 본인에게 있다.
 

선교는 하나님이 하신다
자의든 타의든 추방이라는 것이 선교사에게 엄청나게 힘든 일이긴 하지만 큰 도전과 기회가 된다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배우게 되었다. 레슬리 뉴비긴은 “선교의 주체는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다”라고 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선교를 하기 어려운 이유는 예전에도 많았고, 지금은 더 많이 있다.
 

그럼에도 이 일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은 선교는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선교사로 걸어가야 하는 이 길은 좁은 길이다. 그렇지만 좁은 길 끝에 우리를 기다리며 서 계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발걸음이 중단되지 않는 중국선교사들이 되기를 바란다. 하나님, 저는 중국선교사입니다!

 





강진원 | 중국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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